한국 선교 역사의 양면 (2) : 분열된 선교사들과 선교지 분할

남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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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판에는 이 홈에 올려진 글 중에 이곳에서 따로 소개하고 싶은 글도 포함됩니다. 

한국 선교 역사의 양면 (2) : 분열된 선교사들과 선교지 분할

담당 0 5
다음 글에서는 '각 선교부와 성향에 따라 선교지에 맺어 진 결과'를 살펴 보고 여기서는 선교사들은 본국에서 분열된 교회로부터 파송을 받은 후 한국에서 선교를 하는 과정에 서로 지역을 분할함으로 한국 교회는 분열이 될 수밖에 없는 역사를 잠깐 살펴 보고자 한다. 결과적으로 보면 한국 교회를 처음부터 분할을 시켜 분열이 되는 바람에 한국 교회는 큰 복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19세기 말에 시작되고 20세기초에 한국의 선교는 불이 붙었다. 선교 초기에 선교사들은 한국 교회의 미래를 결정 짓는 2가지 중요한 결정을 했다.

첫째, 한국교회의 자립원칙이다. 한국 교회가 스스로 교회를 운영해 나가게 하고 선교부는 최대한 돕는 위치에 선다.
둘째, 선교지 분할이다. 미국 호주 카나다 3개국의 장로교 감리교 2개 교파의 6개 교단이 한반도 전 지역을 분할했다.

자립의 원칙은 지금 생각해도 옳고 당연하고 그리고 결과적으로 한국 교회를 정말 최상으로 만들었다.
이 글에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선교사들의 선교지 분할이다.


한국에 온 선교사들은 미국 호주 카나다 3개 국 출신이다. 미국은 감리교와 장로교로 나뉘었고 본국에서는 각각 남장로교 남감리교와 북장로교 북감리교로 분열이 된 상태로 파송을 받았다. 카나다와 호주는 장로교만 파송을 했다. 그래서 3개국의 장로교와 감리교에서 총 6개 선교부를 한국에 개설했다. 그리고 이들은 지역을 서로 분할했다.

가장 신앙이 철저하다고 알려 진 미국 남장로교가 호남을 맡았고, 신앙이 느슨하다는 미국 북장로교는 경북과 황해도 평안도를 맡았다. 사회적으로 백호주의를 유지하던 골수 보수였던 호주 장로교는 경남을 마고, 카나다 선교부는 함경도를 맡았다. 미국의 북감리교회는 충청도와 강원도 남부를 맡았으니 전반적으로 한국의 중부가 되고 오늘 남한 지역의 북부를 맡았다. 미국 남감리교회는 경기도 북부와 강원도 북부를 맡았다. 현재 이북의 남쪽을 주로 맡았다. 전체적으로 북한 교회는 지역적으로 완전히 없어 졌으므로 남한만을 가지고 한국 교회라 하고 살피고자 한다.

한국 교회의 대세는 장로교회고, 장로교회의 대세는 WCC의 중심인 통합과 반WCC를 주장하는 합동과 고신으로 대별할 수 있다. 미국의 남 장로교회는 호남을 맡았다. 그들의 눈부신 선교 실적은 모두 줄이고, 결과적으로 볼 때 왜 호남 지역은 그들을 선교한 미국의 남장로교가 그토록 보수적이고 타협을 거부하는 정통 신앙인데 신사참배를 두고는 전멸을 했을까? 그리고 미국의 북장로교는 신학적으로 자유주의를 받아 들여 신앙이 느슨하며 호주 교회는 훗날 초교파적으로 통합을 해 버리는 WCC의 중심 성향이 짙은데 왜 그들이 맡았던 지역은 신사참배는 물론 오늘까지 보수 신앙이 버티고 있을까?

지역적 성향이 진보적이거나 보수적이라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왜 남장로교 선교부는 해방 후 한국 교회에게 신사참배 문제가 나왔을 때 그런 문제로 분열하지 말라며 적극적으로 총회의 분열을 막고 서로 양보하고 나가도록 독려를 했을까? 애양원교회의 경우 남장로교 선교부가 직접 운영했고 여수와 순천 지역은 남장로교의 가장 중요한 선교 중심지였는데, 손양원 목사님과 선교부의 사이는 내적으로 아주 냉랭했다. 손양원의 원칙주의적인 신앙을 선교부로서는 아주 불편하게 대했고, 이런 관계는 손양원의 전기에서도 잘 나타난다. 선교부와 이야기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손양원이 순교하자 선교부는 그 가족들을 무참하게 밀어 내 버린다. 손양원 가족의 개척에 조금이라도 협조를 하는 직원은 애양원에서 바로 제거를 해 버리는 바람에 애양원의 일반 환자로 거주하는 교인들은 그들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선교부의 방침을 따라 손 목사님 가족에 대해 등을 돌려야 했다.


미국 남장로교 선교부의 입장을 정리해 보면

한국 교회는 신사참배 문제로 분열을 해서 안 된다.
신사참배 문제로 결집한 경남의 고려파는 용납할 수 없다.
고려파 신앙의 손양원 노선에서 개척한 교회에 출석하면 제명한다.




그런데 남장로교, 그들은 모국에서 분열했고 한국을 분할했다. 그리고 고려파를 제거하고 한국 교회는 모두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추진을 했다. 그들 선교부는 왜 하나로 합하지 않았을까? 미국 본토야 그렇다 치고 한국에 나와 있는 선교부는 한국 교회의 통합을 위해 선교부들이 먼저 모범을 보이면 되지 않았을까? 혹시 그들이 초기에 수고하여 한국의 선교지에 이루어 놓은 결과물이 컸기 때문에 이를 아끼는 마음은 아니었을까? 선교사들의 복음 헌신만은 누구도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왜 해방 후 한국교회 내에서 신사참배를 거부한 이들을 모질게 박해를 했을까? 이 면만 질문을 하고자 한다. 현재 연구소의 위치가 애양원 입구 대로 변에 있다. 손양원의 모든 가족은 손양원의 신앙은 물론 순교 후의 사모님과 가족의 신앙에 대해 한국 교회의 해석이나 애양원의 설명을 거의 동의하지 않는다. 물론 가족 중에 손주 시대가 되면서는 한국 교회의 일반 시각으로 모두 바뀐 듯하다. 그러나 자녀 1세대는 연구소가 설명하는 손양원의 역사와 신앙 내면에 대해 전적 동의를 한다. 왜 미국 남장로교 선교부는 방향을 전환했을까?


분열할 수밖에 없는 모국의 교단 본부의 신학적 입장을 이해한다.
파견 나온 한국에서 선교사의 숫자가 적으니 지역을 분할하자는 것은 분열이 아니라 분담이라고 이해한다.
선교사들이 볼 때 해방 후 한국 교회의 분열은 분열할 사안이 아닌데 속이 좁아서 공연히 싸우니 이를 막았을까? 이해한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왜 모국에서 가장 신앙이 독실하며 타협 없이 믿어야 한다는 남장로교 선교부가 고신 제거에 나섰을까?
고신은 전체적으로 문제가 있다 치고, 손양원 사후에 그 가족이 손양원 신앙으로 살려는 노력을 그렇게 핍박을 해야 했을까?
전체의 통합을 위해 일부는 도려 내야 한다고 결심을 했다면 더 큰 통합을 위해 작은 분열을 감수한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그 것이 과연 WCC의 정신에 맞는가? 세계 교회들의 통합을 위해 소련에서 파견하는 일부 공산권 교회를 소수자라 하여 차별하지 말고 너그럽게 포용하자는 것이 WCC 정신인데, 공산당 교회는 불러 들여서 잘 배려하고 세월 속에 하나가 되자면서 손야원 가족과 신사참배 때문에 출발한 고신은 사정 없이 잘라 내 버려야 한다면, 우리는 이런 남 장로교 선교부와 그들 휘하의 교회들에게 할 말이 아주 많을 듯하다.

여수 순천을 포함하여 애양원과 통합 교단과 남장로교의 활동을 한국 선교지의 제일 모범이라고 극찬하는 분들과 마주 칠 ㄸ가 있다. 그 때마다 이런 질문을 한다. 아직 답을 해 준 분이 없다. 돌아 가신 이광일 목사님만은 솔직히 늘 말씀하셨다. '애양원 교회에 평생을 목회하지만 손양원 신앙은 고려파 신앙이고, 통합 쪽에는 그런 분위기조차 모른다' 한다. 그래서 손양원에 관련 된 연구를 하려니까 장신대는 아예 없다 할 정도고 부산의 고신에 가면 조금 있다고 한다. 그리고 공회에서 모두 이해를 했다고 한다. 그 분이 이른 나이에 가셨다. 계셨으면 지금쯤 연세로 보나 교계의 위치 등을 통해 손양원과 그 가족에 대한 애양원의 공식 입장에 아주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인데... 그 분은 애양원교회 당회록을 제공해 주셨고 기념관 모든 자료를 전부 열람하도록 전권을 주셨다. 남장로교와 그 영향권의 애양원교회 문제점도 알고, 손양원 세계를 공회적으로 함께 했었다. 당시에는 김수남 권사님과 황 장로님이 생존하여 애양원교회에 1960년 사경회를 왔던 당시의 본문과 설교 내용을 세세히 짚었었다. 나를 애양원교회에 설교 초청을 했다. 내가 가면 속에 있는 이야기를 하는 성향이 있어 가지 않는 것이 애양원에 도움이 된다며 거절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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