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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5.13 00:00
'나인숙'권사님은 이곳 홈 운영의 배경에 너무도 많은 수고와 기도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분입니다. 이곳 홈 운영을 위해 기초 준비가 시작되던 1977년부터 이곳이 백영희신앙노선에 전념할 수 있도록 사람이 할 수 있는 지원은 아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분이 거처하던 생활공간은 이곳을 향해 사무실 공간처럼 늘 제공되었으며, 1987년 경 백목사님을 모시며 평생 가지게 된 모든 자료를 이곳에 전부 주셨습니다. 그분은 195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백목사님의 개인 기록을 맡았던 분입니다. 따라서 녹음 시절 이전 초기 백목사님 관련 중요한 자료들을 대량으로 보관하고 있었으며 이 자료들 상당 부분은 복사본이 없는 자료들입니다.
백목사님 사후 대구공회와 부산공회가 분리될 때 나권사님과 이말출권사님 그리고 김현찬권사님이 이곳 입장을 전폭 지지하여 서부교회가 대구공회를 반대하고 부산공회에 서도록 했습니다. 이 3분의 결정이면 당시 서부교회 최고 핵심이며 서부교회의 만사를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이 3분이 이곳의 의견을 전폭 지지하게 된 것은 나권사님의 역할이었습니다.
그러나 1991년 서부교회가 장차 부산공회(2)로 신앙노선을 결정할 기회를 만났을 때, 나권사님은 부산공회(2) 노선을 거부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게 됩니다. 이 일이 나권사님과 이곳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의견을 달리한 사안입니다. 이후 이곳은 인간적으로는 나권사님을 육의 부모보다 더 존중하고 사랑하지만 신앙노선을 두고는 어떤 분에게도 양보할 수 없다는 원칙 때문에 나권사님과 그동안의 모든 관계를 단 순간에 절연했고 이번 임종까지 그 관계는 계속되었습니다.
신앙노선이 나뉘지 않았다면 이번 장례는 이곳에서 일절 주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노선을 달리 한 이상, 이번 장례에는 그동안 백목사님을 제일 가까이에서 평생 모셨던 분이라는 의미 때문에 일반 예배 참석자 중 한 사람으로 참석하게 될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