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후보' 논쟁 - 공회만이 아는 국가적 이야기들
담당
2
1
2019.08.17 13:28
문재인 정권 초기부터 '조국' 이라는 이름은 늘 뉴스의 중심이었다. 최근 몇주 동안은 온 나라가 그 뉴스로 난리다. 그 이름을 듣지 않을 수 없고 각종 뉴스 화면에서 시선을 피할 길이 없다. 휴대폰에도 인터넷 화면에도 쉴새 없이 지나간다. 한국의 근현대사에 한국 사회가 모두 아는 정도, 그 것도 뉴스의 중심에 서는 사건이나 인물을 두고 공회는 혼자 아는 이야기들이 있다.
다른 교단들은 유명인들을 유치하려 노력한다. 또 내부 교인을 유명인으로 만드려고 신앙과 세상으로 후원을 한다. 그런 인물들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알린다. 그래서 실제 알려 진 그 인물과 그 교단의 사이는 의외로 별 것이 아닌 경우가 많다. 공회는 유치도, 양성도, 광고도 하지 않는다. 조금 괜찮은 사람들은 무시를 당했다며 가 버린다. 우리는 죄송한 마음이다. 그 대신 그들이 원하는 '땅에 복음'을 주는 교회를 찾아 가서 안정을 찾기를 소원한다.
조국 - 청와대 민정수석, 법무부 장관 지명
이런 뉴스를 볼 때 대충 감이 오면 공회의 핵심 중에 핵심이다. '변영태 총리'는 본 연구소가 역사 기록을 하다 보니 이제는 아는 분들이 좀 많을 듯하다. 연구소 직원들조차 거의 알지 못했다. 손양원 가정, 대림건설, 제2공화국 때 30세에 법무부 장관을 제안 받은 서부교회 핵심 청년은 당시 여야 정쟁을 조율하던 막후로 언론에 늘 등장했고, 1979년 12.12 사태 때 전두환은 보안사령관일 때 정부의 핵심 정보를 다 가지고 있던 경찰 총수는 중앙정보부가 무력화 된 상황에서 소리 없이 활동한 굉장한 인물인데 개인적으로 백 목사님을 아버지처럼 대했다. 김영삼 부부와 관계는 너무 많아서 다 적을 수도 없고, 그 최측근으로 한보사태 등을 거치며 정권의 전부를 안고 감옥에 간 당시 최측근 등은 공회 목회자들이 골목에서 만나면 '야! 교회 좀 나와.' '좀 바빠서...' 이런 관계다.
이 모든 인물들은 언론에서 모든 것의 모든 것을 다 밝혔고 없는 사실은 소설 차원으로 만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공회는 공회만이 가진 우리의 경험과 느낌으로 온 세상과 온 교계가 읽는 면과 다른 면을 좀 읽어 본다. 그렇게 읽어 보면 마치 우리만 그를 알고, 우리만 그를 다 아는 그런 느낌을 갖는다.
이순신을 모두가 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순신을 죽이라는 국문장의 200여명 만조백관 가운데 끝까지 살려야 한다고 버틴 이원익, 그는 이순신과 서사돈이다. 이런 사실을 아는 이들은 거의 없는 듯하다. 이원익은 첨령성 공정성 우수성에 있어서 조선 최고의 정승으로 인정을 받기 때문에 서사돈이라는 애매하고 가녀린 끈에 좌우 될 사람은 아니라 모두 굳이 외면을 했을까? 그런데 그 사실을 알고, 그리고 다시 당시를 연상해 보면 그 사실을 모르는 주변 사람과는 아주 다른 또 하나의 장면을 보게 된다고 생각한다.
한국사회, 한국의 좌파와 기독교 자유주의자들이 잡아 먹지 못해 난리를 하는 1호의 공적이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다. 그에게 한 번이라도 관심을 가진 사람은 인터넷을 5분만 살펴도 거의 안다 할 만큼 자료가 넘친다. 거의 같은 식의 자료들이다. 그런데 공회는 그가 초등학교를 대신동에서 보낸 사실을 안다. 그리고 개금 분교와 그의 중고교 시절 출석한 부친의 교회가 겹치고, 그리고 그가 서울로 간 이후에 주 활동지가 되는 내수동교회를 서부교회가 전후에 개척했고 그가 한국 대학생 사회의 지도자로 떠오를 때 공회는 같은 골목 안에서 사직동교회 신도범 목사 시절을 겹쳤다. 그래서 우리는 일반인들이 보는 오정현과 전혀 다른 우리만이 느끼는 그 분의 심리, 그 분의 다른 면을 읽게 된다.
조국,
그는 서부교회의 주일학교와 중간반이 전성기였던 시절에 대신동 지역이라고 말하면 쉬운 곳에서 살았다. 구체적으로 그는 '동대신동'을 거쳐 갔다. 그의 고교는 중구 보수동이나 동대신동 경계에 있다. 혜광고교? 우리는 그 곳 출신을 서부교회 최고 핵심의 수 많은 가정을 통해 알고 있다. 조국, 그가 비록 서부교회를 다니지 않았다고 해도 그가 눈과 귀를 통해 서부교회를 접하지 않을 수가 없다.
더 이상 기록하면 복잡해 지니 그냥 이 정도 적는다. 김영삼이라는 인물이 한국 현대사에 그처럼 중요하고 또 수도 없는 사건의 중심에 섰지만, 그가 바로 서부교회가 있는 부산의 서구가 지역구이며 여기서 고교를 다녔고 서부교회를 출석했고 그 부인이 서부교회 밤 예배를 참석하고 철야를 했다. 더 적으려면 한도 없다. 그런데 우리는 그와 원수나 된 것처럼 외면한다고 그가 오해할 정도였다. 그런데 공회의 신앙 전념을 알기 때문에 다른 보복을 하지 않았다. 공회는 그렇다.
공회의 교인들은 거의 전부 사회의 바닥 출신이다. 그런데 이 노선을 관리하는 주님의 섭리가 좀 특별한 듯하다. 그래서 공회는 노력하지 않았지만 역사적으로 한국교회의 숨겨진 보석이라 생각한다. 찬란하게 드러 난 보석은 더러 있다. 고신, 합동, 통합... 사랑의교회 순복음교회 충현교회...
우리는 등경 위에 올려다 놓으면 피하지 못하나
우리의 노력과 중심은 늘 주님만 만나 단 둘이 속삭이고자 한다. 이용도처럼.
다른 교단들은 유명인들을 유치하려 노력한다. 또 내부 교인을 유명인으로 만드려고 신앙과 세상으로 후원을 한다. 그런 인물들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알린다. 그래서 실제 알려 진 그 인물과 그 교단의 사이는 의외로 별 것이 아닌 경우가 많다. 공회는 유치도, 양성도, 광고도 하지 않는다. 조금 괜찮은 사람들은 무시를 당했다며 가 버린다. 우리는 죄송한 마음이다. 그 대신 그들이 원하는 '땅에 복음'을 주는 교회를 찾아 가서 안정을 찾기를 소원한다.
조국 - 청와대 민정수석, 법무부 장관 지명
이런 뉴스를 볼 때 대충 감이 오면 공회의 핵심 중에 핵심이다. '변영태 총리'는 본 연구소가 역사 기록을 하다 보니 이제는 아는 분들이 좀 많을 듯하다. 연구소 직원들조차 거의 알지 못했다. 손양원 가정, 대림건설, 제2공화국 때 30세에 법무부 장관을 제안 받은 서부교회 핵심 청년은 당시 여야 정쟁을 조율하던 막후로 언론에 늘 등장했고, 1979년 12.12 사태 때 전두환은 보안사령관일 때 정부의 핵심 정보를 다 가지고 있던 경찰 총수는 중앙정보부가 무력화 된 상황에서 소리 없이 활동한 굉장한 인물인데 개인적으로 백 목사님을 아버지처럼 대했다. 김영삼 부부와 관계는 너무 많아서 다 적을 수도 없고, 그 최측근으로 한보사태 등을 거치며 정권의 전부를 안고 감옥에 간 당시 최측근 등은 공회 목회자들이 골목에서 만나면 '야! 교회 좀 나와.' '좀 바빠서...' 이런 관계다.
이 모든 인물들은 언론에서 모든 것의 모든 것을 다 밝혔고 없는 사실은 소설 차원으로 만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공회는 공회만이 가진 우리의 경험과 느낌으로 온 세상과 온 교계가 읽는 면과 다른 면을 좀 읽어 본다. 그렇게 읽어 보면 마치 우리만 그를 알고, 우리만 그를 다 아는 그런 느낌을 갖는다.
이순신을 모두가 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순신을 죽이라는 국문장의 200여명 만조백관 가운데 끝까지 살려야 한다고 버틴 이원익, 그는 이순신과 서사돈이다. 이런 사실을 아는 이들은 거의 없는 듯하다. 이원익은 첨령성 공정성 우수성에 있어서 조선 최고의 정승으로 인정을 받기 때문에 서사돈이라는 애매하고 가녀린 끈에 좌우 될 사람은 아니라 모두 굳이 외면을 했을까? 그런데 그 사실을 알고, 그리고 다시 당시를 연상해 보면 그 사실을 모르는 주변 사람과는 아주 다른 또 하나의 장면을 보게 된다고 생각한다.
한국사회, 한국의 좌파와 기독교 자유주의자들이 잡아 먹지 못해 난리를 하는 1호의 공적이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다. 그에게 한 번이라도 관심을 가진 사람은 인터넷을 5분만 살펴도 거의 안다 할 만큼 자료가 넘친다. 거의 같은 식의 자료들이다. 그런데 공회는 그가 초등학교를 대신동에서 보낸 사실을 안다. 그리고 개금 분교와 그의 중고교 시절 출석한 부친의 교회가 겹치고, 그리고 그가 서울로 간 이후에 주 활동지가 되는 내수동교회를 서부교회가 전후에 개척했고 그가 한국 대학생 사회의 지도자로 떠오를 때 공회는 같은 골목 안에서 사직동교회 신도범 목사 시절을 겹쳤다. 그래서 우리는 일반인들이 보는 오정현과 전혀 다른 우리만이 느끼는 그 분의 심리, 그 분의 다른 면을 읽게 된다.
조국,
그는 서부교회의 주일학교와 중간반이 전성기였던 시절에 대신동 지역이라고 말하면 쉬운 곳에서 살았다. 구체적으로 그는 '동대신동'을 거쳐 갔다. 그의 고교는 중구 보수동이나 동대신동 경계에 있다. 혜광고교? 우리는 그 곳 출신을 서부교회 최고 핵심의 수 많은 가정을 통해 알고 있다. 조국, 그가 비록 서부교회를 다니지 않았다고 해도 그가 눈과 귀를 통해 서부교회를 접하지 않을 수가 없다.
더 이상 기록하면 복잡해 지니 그냥 이 정도 적는다. 김영삼이라는 인물이 한국 현대사에 그처럼 중요하고 또 수도 없는 사건의 중심에 섰지만, 그가 바로 서부교회가 있는 부산의 서구가 지역구이며 여기서 고교를 다녔고 서부교회를 출석했고 그 부인이 서부교회 밤 예배를 참석하고 철야를 했다. 더 적으려면 한도 없다. 그런데 우리는 그와 원수나 된 것처럼 외면한다고 그가 오해할 정도였다. 그런데 공회의 신앙 전념을 알기 때문에 다른 보복을 하지 않았다. 공회는 그렇다.
공회의 교인들은 거의 전부 사회의 바닥 출신이다. 그런데 이 노선을 관리하는 주님의 섭리가 좀 특별한 듯하다. 그래서 공회는 노력하지 않았지만 역사적으로 한국교회의 숨겨진 보석이라 생각한다. 찬란하게 드러 난 보석은 더러 있다. 고신, 합동, 통합... 사랑의교회 순복음교회 충현교회...
우리는 등경 위에 올려다 놓으면 피하지 못하나
우리의 노력과 중심은 늘 주님만 만나 단 둘이 속삭이고자 한다. 이용도처럼.

그리고 이용도라는 분은 누구인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