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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1.20 00:00
1.'총공회'
①'총공회'라는 단어가 가지는 3가지 의미
총공회라는 단어는 3가지 차원에서 사용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백영희신앙노선'이라는 신앙 성격을 말할 때가 있고, 둘째는 교단의 명칭으로 사용되어 일반 교계에서 우리를 부르는 이름이기도 하고, 마지막으로는 소속 교회 전체가 모이는 회의를 총공회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첫째 의미로 사용되는 '총공회' 표현은 단어 그 자체를 두고는 별로 시비를 할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교단명칭으로 사용되는 '총공회'라는 단어는 꾸준히 반론이 많았습니다. 역사적으로는 '공의회' '공회' '한국공회' 등으로 사용하자는 대안도 나왔고 과거 그런 이름들이 사용되던 때도 있었으며, 심지어 정식 교단 명칭이 된 '총공회'라는 이름 자체를 폐기하자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현재 총공회 명칭 고수 측은 극소수이고, 삭제파가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회의 모임이라는 세번째 의미는 아직 그 성격을 두고 이견이 나오는 경우가 거의 없었습니다.
②총공회에 대한 향수와 복고주의 경향
백목사님 사후, 거의 모든 총공회 내부인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안타까운 점 하나는 단결된 총공회입니다. 백목사님 생전 1백여 소속 교회 가지고는 한국교계에 수없이 많은 군소교단 중 하나밖에 되지 않으므로 보잘 것 없는 단체인 줄 알았지만, 백목사님 생전 마지막 기간을 보내면서 공회의 존재 가치는 타 교단과는 소속 교회 숫자로 계산할 수 없는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모두들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 장례식을 거치면서 백목사님이 형성시킨 총공회는 겉만 화려하고 웅장한 대형교단에 비하여 정말 알짜배기 보내단지 교단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이런 실감은 외부 교단의 내부를 좀 들여다 볼 수 있는 분들이 먼저 감지하게 되었고, 백목사님 사후에는 일반 교인들까지 평소 속으로 부러워했던 거대 타 교단들을 사방으로 다니며 접촉하거나 그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되자, 과거 백목사님 생전 총공회가 얼마나 값지고 보배로운 단체였던가를 인식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미 과거 서로 갈등과 분열을 겪으며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길을 제각각 따로 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현재 200여개 교회가 다시 한번 과거처럼 하나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은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이런 고민을 털어놓는 분들에게 혹 분열과 갈등의 내면을 모르는 분들이 그냥 합하면 될 것이 아니냐고 권하지만, 과거 몸으로 겪고 목도한 분들이라면 당치도 않은 말이라고 손을 내젓고 있습니다.
③'총공회'라는 이름의 참으로 묘한 성격
일반적으로 교단이 갈등기를 거쳐 분열하고, 분열한 뒤 아쉬우면 재통합을 하는 것은 마치 아이가 나서 자라며 청년기를 거쳐 장년이 되는 과정에서 공식처럼 거치는 단계가 있듯이 꼭 교단의 분열과 재통합도 그렇습니다. 교회가 깨지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도 모르는 사람이 진리를 외친다며 고함을 질러 교회를 깨고, 막상 싸우다 보면 이렇게까지 고통스러운 줄 몰랐다고 후회하고, 그 와중에도 한 조각 얻어먹을 자리가 생겨 최종 분열을 결심하게 됩니다. 그러나 나뉜 후 곧 닥치는 추위에 떨며 다시 재혼하자고 난리를 부리게 됩니다. 이혼 재혼의 여러 과정을 지켜본 백발의 노인들은 신혼부부를 쳐다보며 ‘그만 참아라’ 하지만 그 의미를 청년이 알 수는 없습니다. 안타까운 앞날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총공회 내부인들은 연령에 상관없이 지난 15년 세월을 통해 겪어보았고 그래서 교회가 갈등과 분열 그리고 재통합으로 나가는 과정에 관한 한 모두들 그 어려움을 너무 절감하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정말 싸워야 할 일이 있어도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있으며, 이제는 정말 나뉘어야 하는데도 그 분열 이후가 두려워 엉거주춤하고 있습니다. 또 어떤 경우는 분명히 다시 합해야 하는데도 일반 교단이나 공회 내 과거 경험에 몸서리를 치면서 웅크리고 앉아서 눈만 깜빡 깜빡 하고 있는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안타까운 것은, ‘총공회’라는 명칭을 그냥 일반 교단들이 각각 제마다 사용하는 그런 이름들 중에 하나로만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생긴다는 것이 이곳의 탄식입니다. 이 글 제일 앞부분에 ‘총공회’라는 단어를 먼저 설명드렸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름이 돌출 되어 외부 교인들이 진입하는데 불편하다 해서 이름을 바꾸자 하고 없애자 하고 또 어떤 분들은 총공회라는 이름을 제각각 가지는 이름 중에 하나인 줄 알고, 이름을 계속해서 사용하기는 하는데 그 이름을 다른 교파들이 가진 그런 이름과 알파벳만 틀리지 성격이나 존재 형식은 꼭 같은 줄로 알고 있습니다.
‘총공회’라는 이름은 그냥 교파들마다 가지고 있는 이런 저런 표현 중에 하나가 아니라, 이 표현은 사실 인간이 볼 수 있는 가시거리를 훌쩍 뛰어넘는 백목사님의 밝은 영안이 ‘하나님께 받아 적은 차원’이라는 것이 이곳의 연구 결과이며 지금까지 검토한 내용입니다. ‘총공회’라는 이름은 기묘하기 이를 데가 없어, 만일 백목사님이 가르친 ‘총공회’를 조금이라도 알았다면 총공회는 분열이라는 단어가 개입될 여지가 없고, ‘총공회’는 제명조처라는 징계가 내려질 필요가 없으며, 교인끼리 목회자끼리 서로 멱살을 잡을 일이 도저히 없습니다. 또 잘 알지 못해서 일을 벌였다고 해도, 재통합이라는 회복과정에서도 ‘총공회’라는 단어만 바로 인식할 수 있다면, 총공회는 모든 교파들이 나뉘고 합하다가 세월만 보내는 그런 오류를 밟지 않을 수 있는 또한 ‘묘하고 묘한’ 신앙노선을 요약해 놓은 이름입니다.
2.지난 1989년 9월부터 시작된 공회 분열 과정을 잠시 돌아봅니다.
①총공회라는 단어를 두고 인식이 달라져 발생한 것이 첫 분열이었습니다.
당시 대구공회(현, 서울공회와 대구공회)는 ‘총공회’라는 단어를 일반 장로교교단의 총회와 꼭 같은 조직과 성격으로 파악했습니다. 만일 이 인식만 아니었다 해도 재독문제를 가지고 그렇게 처리할 필요도 없었고 그렇게 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대구공회는 과반수가 좋으면 진리도 제정하고 폐기하고 변경할 수 있다는 장로교의 의회민주주의적 결의를 옳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또한 총공회라는 조직의 근본 성격을 일반 장로교와 조직과 같다고 보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총공회 지도부는 마치 정권을 잡은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처리를 할 수 있듯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총공회를 알고 있었습니다. 비록 백목사님에 대한 인식이 다르고 재독예배에 대한 의견이 달라도 ‘총공회’라는 성격만 이해를 했다면 세월 속에 옳은 것을 찾을 수 있는 길을 확보하였을 것이고, 분열과 갈등은 전혀 발생할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총공회’라는 단어는, 성경만 가지고 따져보다가 전원의 깨달음이 같으면 한 발짝 나가고, 만일 깨달음에 차이가 있으면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깨달음이 같아질 때까지 기도하자는 단어입니다. 물론 기도하는 방법은 개인 기도도 하고 또 여러 사람이 의견을 주고받으며 참고도 하고 배우기도 하면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타 교단과 다른 것은, 일반 교단은 지도부든 대다수 회원을 확보한 다수측이든 힘이 있는 쪽에서 말하다가 안 들으면 그냥 조처를 해버리면 되는 곳입니다. 공회는 그것은 교회가 아니라고 해서 출발했고 그 반대의 길을 걷겠다고 해서 붙인 이름입니다. 그런데 제 이름도 모르고 소가 육고기를 먹어 광우병에 걸리듯 공회 목회자와 교인들이 제 이름도 모르고 지난날 엉뚱한 일만 했습니다.
②공회는 분열이 존재할 필요가 없고, 공회는 통합의 형식과 과정이 필요 없습니다.
자기 주어진 현실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자기 일만 하면 되는 것이 총공회 기본신앙노선입니다. 그래서 개교회 안에서는 어떤 종류의 친목회까지도 존재할 여지가 없습니다. 목회자들끼리도 동향 모임, 성씨 모임, 동기 모임이 존재할 틈도 없습니다. 각자 맡은 교회와 지역과 사명을 두고 하나님만 모시고 자기 갈 길만 가기 때문에 서로가 얼굴을 따로 만나 식사 한 끼 편하게 할 시간조차 없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신본주의였고 하나님 동행이었으며 모든 교회 내 폐단과 폐습이 제거되는 참 교회의 모습이었습니다.
공회의 신앙모습은 그 근본 방향이 이렇기 때문에 교회 내에도 이 파 저 파로 나뉘어 긴장할 일이 없고, 심지어 목회자들끼리도 친소를 따로 그룹을 형성하는 분파행위가 발을 딛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상대하는 대신 사람을 상대하는 것은 인본이라 생각하여 모두들 성경보고 기도하고 아니면 전도하는 일에 전력하지 이런 저런 이름을 붙여 몰려다니는 일은 극구 피하기 때문입니다. 목회자들이 먼저 이런 분위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각 교회들도 예배모임 외에는 성경보고 기도하고 아니면 각자 자기 맡은 식구들 심방하고 챙기는 일만 주력합니다. 그 외 다른 행사나 모임이나 활동은 아주 마음먹고 없애놓은 것이 공회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와 중세기에 존재했던 수도원이 시내 한복판으로 진출했다고 표현하거나 아니면 교회가 산속이나 사막 가운데로 옮겨져 수도원으로 운영된다는 표현이 적절했습니다.
따라서 공회 소속 교회는 교인들끼리 분열이라는 것이 존재할 틈이 없고 총공회 소속 목회자와 교회들은 서로 뭉쳐서 일을 내거나 사업을 하거나 몰려다닌 적이 없기 때문에 교단 분열이라는 것이 해당되지 않을 곳이었습니다.
분위기만 그런 것이 아니고, 총공회는 그 존재 형식을 개교회주의로 규정하였기 때문에, 만일 다른 사람과 다르면 같아질 때까지 ‘기도하며 생각해봅시다‘ 라는 말 외에는 필요가 없습니다. 공회의 조직도 그런 면을 고려해서 사전에 조직되었고 모든 직책도 그렇게 표현되었으며 가장 중요한 총공회 발족 원리에서조차 이 면을 분명히 했습니다. 다를 때 다르다고 해서 그 자리에서 끝장을 봐야 하는 일반 교단은 어떤 형태로든지 분열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외형으로 나뉘지 않으면 속으로는 더 크게 벌어지게 됩니다. 마치 요즘 여당 야당이 남북보다 더 멀어져 있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공회는 다른 생각과 다른 판단이 있을 때는 결정을 하지 말라고 금해 놓은 곳입니다. 그런데 분열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총공회에 소속한 사람이 제 이름이 김씨인지 박씨인지도 몰랐다는 결론입니다. 자다가 남의 다리를 긁는 모습이라 하겠습니다.
혹시, 서로가 총공회라는 단체의 존재 형식과 그 출발 노선을 알지 못하여 혹 일반 교단처럼 나누고 쪼개다 보니까 현재처럼 분열이 되어 있다면, 그 통합은 어떻게 될런지요? 마찬가지입니다. 일반교단처럼 분열하고 일반교단처럼 통합을 하려면, 분열도 말아야 했겠지만 통합이라는 것은 더욱더 막아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분열은 몰라서 했다 해도, 만일 통합을 하는 마당에는 ‘총공회’라는 단어의 의미가 원래 어떠하다는 것을 알았으면, 총공회 재통합은 다른 교파와 분명히 그 절차와 과정이 다릅니다.
서로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걸어가고 있는 부분은 그냥 그대로 두면 됩니다. 그리고 만일 같다고 생각하고 같은 행동이 있을 때는 아무 절차나 형식이나 필요 없이 그냥 같이 하면 됩니다. 그래서 그 함께하는 부분이 생긴 것만큼이 실제의 ‘총공회’입니다. 그리고 합해지지 않고 달리 생각하고 달리 걸어가는 그 모습은 원래 나뉘지 않은 상태의 총공회 내에서 각자 개교회주의로 인정하여 그냥 두고 있어야 할 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른 부분을 가지고 힘센 쪽에서 힘없는 쪽을 잘라내고 억압하여 쫓아내버린 것이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③여전히 각 공회 지도부의 인식이 문제입니다.
지금 남북이 무조건 양보하고 합하면 된다는 이상적 통일주의자들이 국내에 있는데, 그들은 우리나라 부부이혼율이 최근 세계최고기록을 경신하고 있다는 소식이 바로 자기 집안과 동지들 중에서 발생한 일인지 파악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부가 함께 살지 못해서 나뉘는 것이 세계최고 기록을 경신하고 있는데, 이 동네와 저 동네가 무조건 합하고 양보하면 된다는 말이 말로서 성립이 될 것인지? 여당과 야당이 한 나라 안에서도 합하지 못해서 저렇게 난리들인데 하물며 남과 북이 수백 만명을 죽이고도 합한다면 합해질지? 초등학교 1학년 덧셈 뺄셈에서 결론이 나올 수준의 판단을 가지고, 이 나라 최고 철학자 정치가 종교가 학자들이 잠꼬대를 하고 있습니다.
총공회 소속 각 공회들의 지도부조차 자기들이 가진 총공회라는 이름의 의미를 도저히 알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백목사님 사후 대구공회의 이런 인식 때문에 당시 부산공회 몇 명의 지도부가 모여 장탄식으로만 한 해를 거의 다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부산공회가 공회의 주요 재산을 확보하고 대구공회가 부러워할 입장에 서고 나니까 바로 한 해 전에 탄식했던 대구공회의 ‘총공회’ 인식, 즉 일반 교단의 교권 운영식을 그대로 적용해버렸습니다. 결과적으로, 한 해 전에는 쫓기는 입장이니까 ‘총공회’의 참 의미를 가지고 대항했고, 이제는 교권을 잡았다 싶으니까 바로 총공회의 참 의미를 폐기해 버렸습니다.
공회내에서 배부르고 든든한 지도부는 늘 총공회를 일반 교단처럼 보는 시각을 가지거나 아니면 그런 행태를 보이고 있는데, 그 분들이 그렇게 행동할 때마다 항상 내세우는 근거는 1970-1980년대 총공회의 운영 모습입니다. 총공회의 이런 훗날의 모습은 이미 1960년대 10여년을 통해 수도 없이 설명하고 가르쳤던 ‘총공회’의 참 의미 바탕에서 그다음 자라나간 원숙한 뒷날의 모습이었습니다.
앞에서 설명한 대로, 총공회 신앙노선은 철저히 개교회신앙자유입니다. 그런데 만일 백목사님처럼 하나님께서 그를 붙들고 움직인다는 종이 있으면 본인들이 자유로 좋아서 그 밑에 지도를 받게 되고 이렇게 형성된 관계는 일반 교단보다 더 상명하복이 철저한데도 내적으로는 조직강령이나 교권에 붙들려 그리 된 것이 아니고 본인들이 자기 속의 영감에 따라 좋아서 결정한 일입니다.
현재 우리 총공회에는 당분간 과거 백목사님을 안심하고 따라갈 때처럼 그렇게 하나님의 인도를 잘 받는 종을 만나기 어렵습니다. 혹 이런 상태로 예수님 재림 때까지 계속될지도 모릅니다. 아마 후자의 경우가 맞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뚜렷하게 한 시대를 이끌어가는 종이 없는 오늘이라 한다면, 총공회의 모습은 당연히 총공회 출발 초기에 ‘교회론’ 입장에서 밝혔던 교회의 모습과 운영 원리를 따라야만 ‘총공회’라는 단어의 의미를 아는 사람입니다.
이런 점에서 1990년 이후 총공회를 1970년대나 1980년대의 총공회 외형으로 유지하려고 한다면 이는 총공회의 원래 의미를 깨뜨릴 수밖에 없게 되고, 1990년대 이후 총공회를 1960년대 초반 총공회 출발의 외로웠던 당시로 돌아가서, 장차 백목사님 밑에 한 교단이 만들어지게 되는 때를 생각하지 않고 단순히 어느 교회들이나 어느 교인들이 모여도, 참 교회라고 한다면 하나님 한 분에게만 붙들려 나가야 하고, 인간들끼리의 조직과 모여진 힘이 다른 사람이나 다른 교회를 밀어붙이는 형태는 금해야 한다는 총공회 본래 신앙노선을 살펴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3.총공회 출발 당시의 몇 가지 중요한 노선에 관한 기록
①1966.5.26. 제1회 총공회의 ‘총공회 3대 원칙’
▪전원일치주의
단체 조직하에서 의사를 진행하려면 종다수 가결로 처사하게 되는 바니, 진리는 반드시 다수에만 있는 것이 아닌즉 진리를 수호하기 어렵게 된다.
▪성경법유일주의
수다한 종별의 사건을 처리함에 있어서 전 성경 진리에만 근거를 두지 않고 소박한 헌법으로만 처리하려 하니 바른 처리를 보지 못하고 옳은 것이 수다히 묻히게 된다.
▪비교권직주의
상존 기관을 가진 단체에서는 탐권 탐영으로 인본주의 세력이 강하여 신앙 양심을 어둡게 하고 진리의 세력이 묻히게 된다. 년조가 오랠수록 인본화 되고 속화 됨으로 이를 방지하고 진리를 보수하기 위하여 개 교회로 발족한 것이다.
②1970.8.3. 제2회 총공회의 성격 및 소집
▪총공회 소집
사건이 있을 때는 누구든지(교역자와 평신도) 소집할 수 있고 소집 절차는 공의회 소집을 발기한 자가 소집 통지서를 발부하면 된다. 소집 통지서에 안건을 명기할 수도 있고 소집자의 성명만 기록할 수도 있다. 각 회원은 소집에 응하던지 불응하던지 자유로 할 수 있다.
▪총공회 진행
정식 공의회가 성립되기까지 발기회가 모든 순서를 진행시키되 회원 등록으로 시작하여 임원(회장,서기,회계) 선출을 한 후 발기회는 없어지고 공의회가 시작되며 공의회에서 안건을 충분히 의논하여 성경대로 해결 짓고
▪총공회 성격
그 다음은 공의회는 없어진다. 회의가 끝나면 공의회도 임원도 없어지고 상설하는 어떤 기관도 두지 않는다.
③총공회의 기본 성격과 운영 모습, 그리고 발전된 형태를 비교한다면
위에서 예로 든 총공회록 일부가 바로 총공회의 초기 모습을 요약한 총공회 교회론입니다. 총공회의 기본 성격과 운영의 모습입니다. 백목사님 생전 1960년대와 1970년대 초반이 총공회를 교회론적으로 파악한다면 기본 형태입니다. 총공회의 근본 뼈대와 기초를 그대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는 백목사님의 지도로 총공회가 발전되어 뻗어나갔던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도 백목사님과 같은 지도자가 있어 모든 공회 내부인들이 그 지도력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함께 한다고 인정할 만한 분이 있으면 공회의 운영모습은 1970년대 후반 또는 1980년대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분이 없다면 공회의 모습은 1960년대와 1970년대 초반 총공회 근본성격을 가르쳐놓은 공회록에서 볼 수 있는 바로 그런 모습이 정답입니다.
어떤 분은 1960년대와 1970년대 그리고 1980년대로 진행하면서 공회가 진화가 되어 변모했으니까 앞으로도 닥쳐오는 현실에 맞추어 적절하게 변화해 나가야 한다는 주장을 합니다. 그러나 공회는 그 덩치가 커지고 그 직책을 맡은 사람의 수가 변동하여 회의 장소는 달라지고 또 사회를 보거나 직책을 맡은 사람의 명단은 여러 가지로 변화가 있었지만, 개교회주의에 기초한 근본 교회론적 입장은 전혀 바뀐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점점 더 굳어갔고 그 노선이 자라갔을 뿐입니다.
4.최근 몇일 사이에 주목할 만한 행사가 2회 있었습니다.
①백영침목사님 장례식
2004. 1. 17. 대구공회 소속 백영침목사님 장례식이 대구공회장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대구공회는 ‘총공회장’으로 치른다고 했지만 ‘대구공회’장이라고 표현해야 옳습니다. 그런데 그 장례식 순서에 부산공회(1)의 이재순목사님이 순서에 정식으로 들어갔습니다. 대구공회 장례에 타 공회 목회자를 예의상 한 순서 배정했다는 것이 그날의 실제 상황일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대구공회 현 지도부가 ‘총공회’라는 단어를 바로 알았다면, 꼭같이 ‘총공회장’이라고 이름을 붙이면서도 실제로 ‘총공회 행사’인 ‘총공회 장례’가 될 수도 있었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이러나 저러나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이재순목사님에게 한 순서를 맡기면서 이곳에서 설명한 근본 총공회 성격을 안다면, 현재 사분오열되어 있는 총공회를 아무 잡음 하나도 없이 그러면서 어떤 신앙양심을 꺾는 일도 없이 꾸준하게 회복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 대구공회 지도부가 총공회라는 단어를 알고 있는 것은 이곳과 정반대로 알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총공회 행사’를 해놓고도 '명의 도용‘ 또는 ’오용‘을 한 꼴이 되었고 또 이런 인식을 가지고 총공회를 통합하려 한다면, 일반 교계의 수십년 역사가 우리를 향해 통합은 하지 않아야 한다고 가르치게 됩니다.
총공회 소속 교인과 목회자라면, 적어도 백영침목사님의 장례 소식을 듣고 성의 표시를 최소한 하지 않을 분들이 별로 없습니다. 그가 총공회 신앙노선에서 수고했고 굶었고 갇혔고 또 땀흘려 집회를 준비했으며 공회적 많은 사안들을 백목사님 심부름으로 성실히 충성하여 오늘 각자 우리 모습이 이루어지는데 어떤 면으로든지 감사할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번 2004. 1. 17. 모임은 총공회 주요 보직 선출도 아니고, 헌법 제정이나 개정도 아니며, 찬송가 사용을 결정하거나 아니면 재독예배 정죄 건을 두고 역사적 심판을 하자는 모임도 아닙니다. 누구든지 참석해서 잠깐 예배를 드리며 은혜를 받고 가신 분의 수고를 되돌아보며 자신이 나갈 길을 각오하는 자리이며 이 모든 분들의 공통된 사안을 위해 몇 분이 예배 순서를 맡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모인 분들은 부산공회(1) (2) (3), 대구공회, 서울공회(1)과 (2)에서도 다 왔습니다. 그렇다면 모인 분들의 소속 분포나 숫자나 비중이나 또 함께 모여서 그날 1시간 동안 진행한 모든 순서는, ‘총공회’가 되기에 조금도 모자라지 않습니다. 총공회는 총공회장을 뽑기 위해 모인다는 1989년 10월의 코메디도 있었으나 이는 그냥 몰라서 그랬으므로 지금 이 순간 모든 것을 이해하고 덮을 수 있습니다.
한 교회 단독으로 진행하기 어렵거나 여러 교회가 함께 모여야 복음 운동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모이면 그것을 공회라고 합니다. 정기적으로 모여 의논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그냥 ‘총공회’라 하기도 하고 갑작스럽게 모이면 ‘임시총공회‘라고도 하는데 이 둘의 차이는 교회론으로 볼 때는 근본적인 차이는 없습니다. 다른 교단은 회기와 소집일 등이 교단 유지를 위해 엄청나게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헌법적규정으로 규율하지만 총공회는 해당사항이 없기 때문입니다.
총공회 소속 한 교회도 빠지지 않고 다 관계가 있으면 ‘총공회’라 할 수 있고 몇몇 교회들만 관계가 있어 함께 모이면 ‘소공회’ 등으로 표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범위 문제도 사실상 큰 의미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백영침목사님의 장례식이라는 사안은 각 공회가 자신들의 신앙노선이나 양심을 전혀 꺾지 않고 양보하지 않고 전체가 총공회 차원에서 한 자리에 함께 할 수 있는 사안입니다. 그리고 함께 했습니다. 그렇다면 바로 그것이 총공회 모임입니다. 그 모임에 혹 바빠서 오지는 못했다 해도 그 모임을 반대하지 않는다면 총공회가 되는 것이고, 이탈 된 대구공회의 핵심 인사를 위한 장례식이므로 그곳에 참석하지 않는 것이 양심이라는 교회가 있다면 완전한 총공회라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그 정도 여러 공회와 교회들과 목회자들이 모였다면 그냥 우리가 평범하게 부르는 정도의 총공회는 될 것 같습니다.
이렇게 모든 공회와 교회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사안을 조금씩 확대해 가되, 다만 서로의 신앙노선과 양심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부분은 전원이 일치 될 때까지 기도제목으로 넘기면 된다는 점만 함께 인식할 수 있다면, 우리 총공회는 그 인식이 완성되는 그 순간 바로 총공회 통합에 성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전투도 갈등도 양측 대표단의 사전 접촉이나 조건이나 정치역량을 발휘할 여지도 없습니다. 그냥 하나됩니다. 바로 이런 면에서 교회론 입장에서 총공회라는 의미는 정말로 특별한 깨달음이며, 이런 점 때문에 이곳은 총공회를 세계 최고라고 서슴치 않고 평가합니다.
헌법과 조직으로 존재하는 것이 일반교단입니다. 따라서 일반교단의 분열은 헌법을 달리하거나 조직편제를 분열시키면 교단 분열이 됩니다. 그러나 총공회는 헌법이 애당초 없고 간단한 몇가지 원칙만 있기 때문에 거기 대한 인식만 있으면 하나된 공회입니다. 그리고 조직은 연락을 위해 필요한 임시직 정도이므로 조직의 분열이 공회 분열로 이어진다든지 조직의 통합이 공회 통합을 위한 절차와 단계가 되는 그런 개념이 없습니다.
②중국선교공회 선교사의 목사 안수건
2004. 1. 19. 오후 2시, 부산공회(2) 소속 산본교회에서 중국선교공회 소속 김반석선교사님을 전도인에서 목사로 안수하는 모임이 있었습니다. 총공회는 목사 안수라는 사항을 개교회가 단독으로 처리할 수 없는 가장 대표적인 사안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목사 안수라는 한 가지 안건만을 가지고 총공회를 개최한 적도 있고 또 초기 총공회 때는 대개 목사 안수건이 총공회 모임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이번 중국선교공회의 목사 안수건에는 부산공회(3) 소속 목회자들도 동참했습니다. 부산공회(3)은 타 공회와 교류나 협력 기타 동석하는 일이 가장 없습니다. 이유는 타 공회의 잘못된 신앙노선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부산공회(3) 소속 교회끼리도 될 수 있으면 한 자리에 함께 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입니다. 2003년 12월 24일에 예배당을 신축하여 완공한 순천 조례교회의 경우, 자기 교회 교인들이 삼일밤예배를 첫 예배로 드림으로 입당예배를 대신했고 공회 소속 교회들과 목회자들도 가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외부 행사를 하지 않고 가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이번 중국선교공회의 목사 안수건은 그 공회에 목사님이 계시지 않기 때문에 적어도 한 분이 안수를 받아야 앞으로 중국선교 현장에서 언제든지 필요하면 중국선교공회 단독으로 안수까지도 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안수건에 동행을 했습니다. 일단 한 분이라도 안수를 받아야 하는데, 중국공회 내에 목사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총공회 소속 다른 공회 목사님들의 협조가 필요할 것입니다.
중국선교공회를 지금까지 약 3년 정도 지켜보면서, 그 홈을 통해 나타나는 언행이 이곳 부산공회(3)이 총공회 신앙노선으로 인정할 수 있고 다만 활동하는 범위만 국내와 국외로 분류되는 정도라고 판단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안수 받을 분의 양성원 통과 자격은 중국선교 현지에서 사역자들을 위해 마련하고 공부시키는 과정 자체로 충분히 증명되고, 목회 실적은 중국현지 선교활동의 지난날이 증명되고, 안수 받을 분의 신앙고백은 이 홈과 그쪽 홈에 발표한 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에, 문제는 절차뿐입니다.
중국선교공회는 이미 부산공회(2)에서 전폭적으로 지원하여 오늘에 이르렀지만, 중국선교공회는 다른 공회들과는 달리 총공회 내부 분열 당시에 상관이 없었기 때문에 중국선교공회 자체가 총공회 신앙노선에서 활동한다면 이곳은 전체 총공회 소속 총공회로 인정할 수 있고 그런 중국선교공회에 목사 안수가 필요하다고 인식을 함께 하는 총공회 소속 타 공회가 있다면, 부산공회(3)은 공회 노선의 타협이나 양보나 양심을 꺾는 일이나 아니면 구별없이 동역 동참하는 일이 아니고 오히려 총공회 소속 각 공회가 다 함께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참고로, 중국선교공회는 중국지역을 현재로는 주 활동 장소로 삼고 그 전하는 중심은 백목사님 생전 그리고 사후에 우리가 걸어왔던 바로 그 신앙중심과 같은 중심으로 전한다는 것을 확실히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부산공회(3)으로서는 백목사님 사후 15년만에 뜻밖에도 우리와 전혀 다른 범위에서 다른 차원으로 활동하는 형제 공회를 처음으로 뵙게 되었습니다. 그 외 다른 공회들과는 백영침목사님 장례식 행사처럼 함께 앉을 사안도 있지만, 집회처럼 몇 가지 사전에 의견을 맞추지 않으면 함께 하지 못할 사안도 있고, 찬송가나 양성원 운영 또는 공회 기본 성격에 대한 인식처럼 먼저 따지지 않고는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고 함께 못할 사안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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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6번, 목사 안수 신청 서약 (제 - 관) (선교공회) 04/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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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중국선교공회 안수건은 장차 원래 총공회로 회복하는 첫 발자국으로 생각했습니다.
①지금까지 공회 통합 논의는 많았고 통합한 공회들도 있었습니다.
1989년 부산공회와 1차 분리 되었던 대구공회는 그후 대구공회와 거창공회로 2차 분리 되었고, 대구공회 내부는 다시 서울공회와 대구공회로 3차 분리 됩니다. 이후로는 몇 번이나 나뉘고 합했는지 ‘총공회사학자’가 평생을 따로 연구해야 할 만큼 복잡하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통합과 분열 그리고 재통합과 재분열을 위한 논의도 많았고 회의도 많았으며 실제 그런 통폐합도 복잡하게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현재까지 있었던 그 모든 모습을 통해 이곳은 단 한번도 하나님을 먼저 생각했거나 신앙노선을 전제로 의논한 것은 없었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야합이고 나눠먹기이며 꼭 세상 정당들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중간에 여러번 통합 논의가 있어 이곳에도 제의가 들어온 적이 있었지만, 이곳은 앞에서 설명한 원칙대로의 통합이라고 한다면 통합의 절차가 이렇게 복잡하고 정치적일 필요가 없다고 하였으며, 그런 통합 논의가 있을 때마다 앞에서 설명드린 내용을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그런 주장을 잘못 알아듣는 분들은 그 주장하는 내용의 알맹이는 듣지 않고 부산공회(3)도 통합에 나설 여지가 있다고만 파악하는 안타까운 일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④백영침목사님 장례는, 주최측 대구공회가 인식 하나만 바꾸면 진정한 총공회행사였습니다.
이 점 때문에 장례식에서 아쉬운 점이 많았습니다. 비록 찬송가는 통일찬송가를 사용하고 있었으나, 만일 이 모임이 장례식 외에 다른 모임이었다면 찬송가에 대한 입장이 조율되지 않고는 참석이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장례식이므로 찬송가가 다른 것으로는 이곳이 참석 여부를 생각할 문제로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주최측이 통일찬송가를 사용했기 때문에 이번 장례식에 참석하는 이곳은 우리 찬송가를 사용하되 다른 분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심했을 뿐입니다.
대구공회가 이왕 타 공회에서도 많이 올 것이고 또 그것을 예상해서 연락도 공회별로 했으니 순서까지 타 공회에 배정할 마음이었다면, 대구공회만 ‘유일한 총공회’라 하는 인식에서 나온 총공회 모임이 아니고 전체 총공회가 함께 하는 총공회로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이 문제는 앞으로 인식만 전환되면 항상 바로 총공회 모임을 자주할 수 있고 부분적으로는 하나 될 부분을 찾아나갈 것입니다.
⑤중국선교공회 안수건은, 축소된 형태의 진정한 총공회 첫 발자국이라 하겠습니다.
안수라는 사안은 여러 교회가 함께 해야 하는데, 특히 중국선교공회처럼 목사님이 계시지 않는 공회에 안수하는 일은 타 공회까지 함께 해야 합니다. 또 안수라는 사안은 장례식과 달라서 신앙방향에 대한 성격이 같아야 하고 안수위원으로 참여한다면 예배순서에 사용될 찬송가 문제도 고려해야 합니다. 또 설교자의 설교 내용이 내 양심에 맞지 않는 면으로 나간다면 함께 안수한다고 동참할 수 없는 문제도 생깁니다.
장례식보다는 안수건이 훨씬 공회끼리 사전에 신앙노선과 함께 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지를 검토해야 하는 일이 많습니다. 일단 중국선교공회 안수건을 부산공회(2)가 주최하는 것이 아니고 중국선교공회가 주최하였고,, 그 장소와 주도 목사님은 부산공회(2)의 목회자들 중에서도 그날 함께한 두 분의 목사님들이라면 이곳도 안수위원으로 동참해도 중국선교공회의 안수건을 두고는 한 자리를 할 수 있었습니다.
과거 백도영목사님의 경우 1993. 6. 29. 11:30, 화요일에 서울강성교회가 개별공회에 소속되지 않았기 때문에 총공회 소속 타 공회 목회자들이 공동으로 안수를 했습니다. 기억으로 당시 서울공회 김영웅목사님, 대구공회 정경수목사님, 부산공회 송종섭, 이재순, 강행수목사님 등이 참여하였습니다. 이때는 각 공회가 치열하게 전쟁을 벌이던 때여서 사실 함께 할 자리가 아니었으나 안수 받을 분이 백도영목사님이셨기 때문에 백목사님 자녀 중에 목사님 한 분을 세운다는 면으로 함께 했었습니다.
지금은, 이제 각 공회들이 서로 실컷 싸워서 더 이상은 싸우라 해도 진절머리 난다 해서 싸움을 서로 회피하고 있으며 그리고 시간이 상당기간 흐르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제 조용하게 조금씩 하나 될 수 있는 것은 하나 되고 다른 부분은 기도 제목으로 돌려놓는다면 이는 비록 작은 걸음이지만 공회 앞날에 ‘총공회답고’ ‘총공회적인’ 회복의 길을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 기독교 교단들이 이런 방법으로 하나 되어 나가는 과정과 총공회가 이런 방법으로 하나 되어 나가는 것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말씀드립니다. 일반 교단들은 이권만 맞으면 합하여 나가고 있으나, 이곳은 어떤 큰 이권이 걸려도 그것은 무시하고 다만 총공회 원래 신앙노선을 기준으로 따져 나가는 걸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