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에 기도한 '70년의 소망'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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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01 17:40
pkist 시절에 공회의 소망을 담아 적은 글입니다.
2018년 1월부터 시작 된 현재 남북과 미국의 극적인 상황은, 북한이 자멸을 피하는 마지막 발버둥이면 '관리'만 잘해도 저절로 오게 됩니다. 1992년의 김영삼 정권은 당시 북한을 해방 시킬 결정적인 기회를 놓쳤습니다. 이 번에도 그렇게 끝날지, 이 번에는 제대로 마무리 될지, 그 것은 그 누구의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결정입니다. 다만 현재 인간들이 하는 행동, 특히 남한의 절대 다수의 행동은 끝까지 북한의 해방이 아니라 남한을 오히려 적화로 몰아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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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pkist.net/연구실/남단2
목록: 1452번, 기술과 선용 - 국한문성경과 출력 기술을 중심으로, 2015-06-27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 되어 간 지 70년에 돌아 옵니다. 구약의 70년은 신약에서 그 숫자 그대로 적용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숫자가 공연히 그렇게 정한 것이 아니므로 늘 그 숫자의 수치가 마음에 걸립니다.
북한의 교회가 완전히 없어 진 지 몇 년이나 되었을까?
수치적으로 70년이면 신앙의 자유가 주어 진다고 할 수는 없으나 여전히 70년이라는 숫자를 잊을 수가 없어 자꾸 손을 꼽아 봅니다. 주술이나 통계나 역사의 재론이 아니라 신약에서도 지난 세월을 살피다 보면 뭔가 그 의미가 스며 나오기 때문입니다.
1939년부터 일제가 신앙을 아주 끝장 내버렸으니 그 때가 기준이면 2009년이 70년입니다.
1945년에 해방이 되고 북한은 공산주의가 되었으니 정치적 점령지 기준이면 올해가 70년입니다. 1950년 전쟁이 발생하자 북한에서는 수백 만 명이 죽는 참화 속에서 그들이 증오해 모지 않던 미국의 앞잡이로 보이는 기독교 세력은 거침 없이 없애 버립니다. 해방 후에는 시간을 두고 압박을 했지만 전시에는 남아 나지를 않았습니다. 북한의 교회가 실제로 완전히 사라 진 것은 1950년입니다.
1939년을 기점으로 잡는다면 이미 2009년을 넘겼기 때문에 이제는 포기해야 할 가능성이고
1945년을 기점으로 잡는다면 북한은 올해 내로 신앙의 완전 자유가 주어 져야 합니다.
늦다 해도 2020년이면 전쟁 후 70년이므로 그 이전까지는 북한의 자유가 주어 져야 바벨론 70년의 숫자 때문에 자꾸 되뇌이는 북한의 해방 시점을 해소할 수 있습니다.
백 목사님은 해방 전에 이미 1945년 8월의 해방과 이후 남북의 분단과 남한의 신앙자유와 북한의 신앙 박멸, 그리고 미국이 남한에게 신앙의 자유를 주지만 그 대신 미국이 남한을 세상적으로 활용하게 되고 남한의 신앙은 아주 세상적이 될 것을 봤고, 그 언젠가 남북이 중립국이 되면서 통일이 될 것으로 평생 내다 보았습니다. 구약적 예언은 아니나 그렇다고 신약적 단순 예견에 묻어 둘 수 없는 시대의 선지자가 본 이 시대적 계시입니다.
본 연구소는 이 노선 연구 과정에서 그 분의 발언 중에 반복 되면서 그 의미에 특별히 강조가 되는 부분은 이루어 지지 않은 것을 본 적이 없으므로 알 수 없는 '미래 통일'을 중립국적 모습으로 기다려 왔습니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 나라는 그 모습이 과거에 상상도 할 수 없던 불가능이 이미 거의 그렇게 되었다는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 바벨론 70년이란 구약적 수치적 70년은 아니지만 신약적 의미 있는 70년에 그렇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합니다. 그렇다면 올해 2015년에서 5년 뒤인 2020년 사이에 북한이 신앙의 완전 자유를 회복하게 되면 참으로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 또 여러 면에서 그리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시기를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계산해 보는 가장 큰 이유는 북한에 대한 전도 입장 때문입니다. 북한교회 때문에 신세 진 남한교회가 이제는 북한교회를 향해 수고할 시점입니다. 이런 시점에 타 교단은 만일 선교 기회가 주어 진다면 그야 말로 강남의 부동산 광풍 때처럼 난리가 날 것입니다. 그 때 이 노선은 어떤 모습일까? 이 노선에 손 끝으로 잡을 기회를 주지 않으면 이 노선만은 그냥 기다립니다. 우리는 주지 않는 단계를 훅 뛰어 넘어 날 뛰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뿐 아니라 복음 운동까지도 그렇습니다.
2018년 1월부터 시작 된 현재 남북과 미국의 극적인 상황은, 북한이 자멸을 피하는 마지막 발버둥이면 '관리'만 잘해도 저절로 오게 됩니다. 1992년의 김영삼 정권은 당시 북한을 해방 시킬 결정적인 기회를 놓쳤습니다. 이 번에도 그렇게 끝날지, 이 번에는 제대로 마무리 될지, 그 것은 그 누구의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결정입니다. 다만 현재 인간들이 하는 행동, 특히 남한의 절대 다수의 행동은 끝까지 북한의 해방이 아니라 남한을 오히려 적화로 몰아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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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pkist.net/연구실/남단2
목록: 1452번, 기술과 선용 - 국한문성경과 출력 기술을 중심으로, 2015-06-27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 되어 간 지 70년에 돌아 옵니다. 구약의 70년은 신약에서 그 숫자 그대로 적용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숫자가 공연히 그렇게 정한 것이 아니므로 늘 그 숫자의 수치가 마음에 걸립니다.
북한의 교회가 완전히 없어 진 지 몇 년이나 되었을까?
수치적으로 70년이면 신앙의 자유가 주어 진다고 할 수는 없으나 여전히 70년이라는 숫자를 잊을 수가 없어 자꾸 손을 꼽아 봅니다. 주술이나 통계나 역사의 재론이 아니라 신약에서도 지난 세월을 살피다 보면 뭔가 그 의미가 스며 나오기 때문입니다.
1939년부터 일제가 신앙을 아주 끝장 내버렸으니 그 때가 기준이면 2009년이 70년입니다.
1945년에 해방이 되고 북한은 공산주의가 되었으니 정치적 점령지 기준이면 올해가 70년입니다. 1950년 전쟁이 발생하자 북한에서는 수백 만 명이 죽는 참화 속에서 그들이 증오해 모지 않던 미국의 앞잡이로 보이는 기독교 세력은 거침 없이 없애 버립니다. 해방 후에는 시간을 두고 압박을 했지만 전시에는 남아 나지를 않았습니다. 북한의 교회가 실제로 완전히 사라 진 것은 1950년입니다.
1939년을 기점으로 잡는다면 이미 2009년을 넘겼기 때문에 이제는 포기해야 할 가능성이고
1945년을 기점으로 잡는다면 북한은 올해 내로 신앙의 완전 자유가 주어 져야 합니다.
늦다 해도 2020년이면 전쟁 후 70년이므로 그 이전까지는 북한의 자유가 주어 져야 바벨론 70년의 숫자 때문에 자꾸 되뇌이는 북한의 해방 시점을 해소할 수 있습니다.
백 목사님은 해방 전에 이미 1945년 8월의 해방과 이후 남북의 분단과 남한의 신앙자유와 북한의 신앙 박멸, 그리고 미국이 남한에게 신앙의 자유를 주지만 그 대신 미국이 남한을 세상적으로 활용하게 되고 남한의 신앙은 아주 세상적이 될 것을 봤고, 그 언젠가 남북이 중립국이 되면서 통일이 될 것으로 평생 내다 보았습니다. 구약적 예언은 아니나 그렇다고 신약적 단순 예견에 묻어 둘 수 없는 시대의 선지자가 본 이 시대적 계시입니다.
본 연구소는 이 노선 연구 과정에서 그 분의 발언 중에 반복 되면서 그 의미에 특별히 강조가 되는 부분은 이루어 지지 않은 것을 본 적이 없으므로 알 수 없는 '미래 통일'을 중립국적 모습으로 기다려 왔습니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 나라는 그 모습이 과거에 상상도 할 수 없던 불가능이 이미 거의 그렇게 되었다는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 바벨론 70년이란 구약적 수치적 70년은 아니지만 신약적 의미 있는 70년에 그렇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합니다. 그렇다면 올해 2015년에서 5년 뒤인 2020년 사이에 북한이 신앙의 완전 자유를 회복하게 되면 참으로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 또 여러 면에서 그리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시기를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계산해 보는 가장 큰 이유는 북한에 대한 전도 입장 때문입니다. 북한교회 때문에 신세 진 남한교회가 이제는 북한교회를 향해 수고할 시점입니다. 이런 시점에 타 교단은 만일 선교 기회가 주어 진다면 그야 말로 강남의 부동산 광풍 때처럼 난리가 날 것입니다. 그 때 이 노선은 어떤 모습일까? 이 노선에 손 끝으로 잡을 기회를 주지 않으면 이 노선만은 그냥 기다립니다. 우리는 주지 않는 단계를 훅 뛰어 넘어 날 뛰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뿐 아니라 복음 운동까지도 그렇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