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좌파와 우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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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31 00:00
요한복음 5장의 시작은 베데스다 못가에 38 년 된 병자를 치료한 이야기입니다. 많은 병자들이 있다고 했는데 이들이 이 세상 사람들이요 우리는 그 중에서도 가장 오래 되고 희망도 없어 보인 38 년 된 병자입니다. 병자들을 구체적으로 살펴 보면 소경 절뚝발이 혈기 말라 비실거리는 사람들까지 별별 종류가 많았습니다.
기독교의 우파들은 38 년 된 병을 나은 이들입니다. 주님을 본 사람들이며 주님의 치료로 구원 받아 인생의 죄병을 치료 받은 성도들입니다. 이 땅 위에 어떤 복과 비교할 수 없는 천국의 구원을 얻은 이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문제는 그 병자들 중에서도 가장 질환이 심했던 사실을 잊어 버리고, 자기의 나은 것이 주님의 은혜임도 잊어 버리고, 마치 평생을 건강하게 문제 없이 살았던 사람처럼 베데스다 못가를 활개 치며 다른 병자들을 상대로 으시대며 자랑하며 그들을 무시하며 돌아 다닌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좌파들은 38 년 된 병자가 인간병을 해결하고 활개치며 다니는 모습을 보며 부러워 죽는 이들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38 년 된 병자의 치료 과정을 살펴 예수님만 소망이며 구원임을 파악해야 합니다. 그렇게 파악이 되었다면 38 년 된 병자의 자랑과 으시대는 꼴불견은 봐 줄 틈이 없고 자기도 얼른 주님을 붙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여 자기의 인간병을 해결하고 그리고 나서 건방 진 그 환자와 달리 겸손과 긍휼을 가지고 다른 환자들을 주님께로 인도하여 자기처럼 행복한 사람을 만들면 됩니다. 그런데 좌파의 문제는 38 년 병을 나은 사람의 건방짐 교만함 으시댐을 연구하고 까발리고 욕을 함으로 제 입과 인격을 더 더립히고 그 것만 가지고는 속이 차지 못하여 38 년 병을 치료한 주님까지 묶어서 욕을 해 버립니다.
세상에는 좌파 우파가 있고, 진보와 보수가 있어 싸우지만
교회는 신앙이 어린 사람이 있고 장성한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교회는 지켜 내야 할 진리는 창세로부터 세상 끝 날까지 또 영원 무궁토록 그대로 붙들지만, 자기 속에 잘못 된 것을 고치거나 주님의 새로운 인도를 받게 되면 그 자리에서 자리를 들고 일어 서서 달려 가는 순종만 있을 뿐입니다. 바꾸거나 놓쳐서 안 되는 것은 '보수'나 '우파'의 모습으로 나타 나지만 그 것은 보수가 아니라 '신앙'입니다. 바꾸고 고쳐야 할 것은 그 것은 '진보'나 '좌파'의 모습으로 비춰 질 수는 있으나 실은 '순종'입니다.
주님 오실 때가 급하게 다가 오자 역사의 죄와 귀신이 한꺼번에 다 등장을 해서 발광입니다. 귀신 숫자를 헤아리기도 어려울 정도입니다. 귀신은 천주교 총수를 데려다가 휩쓸고, 교회 내 보수는 그 바람에 맞바람을 피우는 또 다른 종류의 죄를 짓고, 좌파는 천주교를 본받자고 앞잡이 노릇까지 합니다. '신앙'이라면 천주교 총수가 오가는 것은 세상에 늘 있어 왔던 그런 잔 바람 중에 하나입니다. 천주교 총수의 방문에 기독교가 뭉쳐서 세 과시를 하며 맞불을 놓는다는 것은 귀신의 입 속에 들어 간 꼴입니다.
이 노선은 6.25 전쟁 후의 극단적인 상황에서 유엔군 철수를 반대하는 보수 교계를 향해, 이 나라 이 교회를 지킬 수 있다면 그 것은 주님만 가능하지 유엔군을 붙들고 늘어 진다고 되는 일이 아니니 세상 사람은 몰라서 철수를 반대해도 교회는 교회 이름으로 그리 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 말이 미움을 사서 고신에서 제명 당하는 이유 중 하나가 됩니다. 또한 이 노선은 6.25 점령 치하에 인민군 치하를 벗어 나야 살 수 있다고 교계의 모든 지도자와 교인들이 피난을 갈 때 점령 치하에서 매일 예배를 드리며 평소보다 신앙 생활에 더욱 매진했습니다. 좌파가 보면 극단적 반좌고, 우파가 보면 극단적 좌파로 보이지만 우리의 내용은 신앙이었고 순종이었습니다.
교회의 이름이 세상 뉴스에서조차 이렇게 극단적인 경우는 없었습니다. 구원파가 들어서 온 나라를 전부 기독교 내부를 들여다 보게 했고, 그 이전에는 교회의 각종 사회 부조리 때문에 불신 언론이 맹타를 했으며 그 과정에서 교회 내 우파는 도적질을 했고 교회 내 좌파는 세상에게 일러 바치기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순수한 신앙인들까지 전부 좌우 한 쪽에 서서 변론을 합니다. 좌우에 속하는 순간 그들은 이미 귀신의 큰 그물 속에 들어 간 꼴입니다.
이런 넓고 큰 시야는 일반 우리로서는 가지기 어려운데 백영희 목사님께 배우다 보니 깨닫게 되고 또 성경을 다시 읽어 보니 너무 당연한 상식이며 이 도리의 기초인데도 불구하고 놓쳤을 뿐입니다. 가르친 분께 고맙고, 무지한 우리를 위해 이 시대에 한 사람을 세워 주신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고개 숙여 감사할 따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