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 책임, 처신,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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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31 00:00
저는 위치도 모르고 무책임하고 날뛰며 인사처럼 기본적인 처신에 문제가 많다는 비판을 수 없이 받아 왔습니다. 마치 저와 반대 입장에 계신 분들은 모두가 예의 바르고 온화하며 위치에 따라 분수와 책임을 진다는 인식을 가진 듯합니다. 사실 20대를 돌아 보면 제게 대한 비판은 거의 다 옳다고 인정을 합니다. 그러나 30대에 들면서부터 이런 비판을 받을 때 한 편으로는 저를 돌아 보며 더 고치려 노력했으나 다른 한 편으로는 그런 비판을 하는 분치고 저보다 나은 분은 거의 보지 못했고 모두 그 반대였다는 기억입니다.
백 목사님은 주남선 목사님의 딸을 친딸처럼 아꼈습니다. 그 가족에 대한 애정도 남 달랐습니다. 목사님께는 주남선이라는 이름을 스스로 스승으로 삼고 은사 기관으로 대했기 때문입니다. 주경순 권사님의 장례식에 공회인을 한 사람도 뵙지 못했습니다. 주남선 가정의 실제 장남 역할을 했던 주경효 장로님의 장례식에도 마찬 가지였습니다. 저는 백 목사님이 생존했더라면 이 정도의 부조를 하지 않았을까 하는 금액을 계산하고 실제 그렇게 되어 지게 했습니다.
어제 이경형 장로님의 장례식이 있었습니다. 이 장로님에 대한 비판은 주변에서 적지 않습니다. 저는 그 분을 1994년 백 목사님 전기 자료를 모을 때 처음 만났습니다. 부모님들로부터도 그 분에 대한 아쉬운 이야기만 들었습니다. 그렇다 해도 그 분은 이 노선의 제1의 제자라 할 수 있는 백계순 집사님의 외아들입니다. 백계순 집사님의 공회적 공로와 위치를 생각한다면 공회든 연구소든 장례 인사는 있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어제 장례식에 많은 공회 형제들을 뵐 것이라는 기대 속에 갔습니다. 저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이백원 백계순 부부의 공회 충성은 지극했습니다. 공로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 분들의 수고 위에 오늘의 이 노선을 걷고 있습니다.
앞으로 백태영 목사님의 장례 소식을 듣는다면? 그 때는 수 많은 공회인들이 가 볼 것이나 제 생각으로 백태영 목사님의 공회에 대한 공은 극히 적고 과는 너무 많기 때문에 제가 가 볼 자리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미워도, 하나님께서 주신 입장이라는 것이 있고 그 위치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우리는 이 것을 '겸손'이나 '현실'이라는 제목으로 많이 배웠습니다. 인간적으로는 보고 싶지 않다 해도 하나님께서 주신 위치가 있고 책임이 따른다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은 해야 합니다. 공이 있고 사가 있습니다. 인천의 이재순 목사님의 임종이 가깝다는 말을 저는 지난 2월에 들었습니다. 정말 얼굴 보고 싶지 않은 분입니다. 1990년 8월까지 공회의 가장 어려운 시기를 가장 가깝게 만사와 매사를 함께 머리를 맞대었으나 그 해 9월부터는 그 분을 다시 찾지 않았습니다. 여러 차례 간곡하게 전화하며 함께 하자 했으나 이미 그 분을 위해 제가 협조할 수 있는 일은 없도록 만드셨기 때문에 하고 싶어도 그리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 해도 그 분이 돌아 가시게 되면 부산공회 전체 식구들 기준으로 본다면 서부교회가 어려울 때 담임으로 수고하셨다는 면 때문에 장례가 있다면 참석하는 것은 맞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분이 부산공회의 총공회장으로서 한 일은 저는 거의 전부 부정하고 비판적입니다. 그러나 서부교회 재임의 15개 월을 두고 말한다면 그 분은 고생을 했습니다. 부산공회가 그래도 오늘의 모습으로 조금이라도 과거 장점을 견지하게 될 때 초석이 되었습니다.
이 노선은 원래 일반 사람들이 보는 관점에서는 처신과 인사가 없다 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이 노선은 이 노선 자체 기준으로 처신을 살피고 인사의 책임까지도 하는 곳입니다. 백계순 집사님의 수고에 대한 공회의 기억과 인사를 아쉽게 생각하며 글을 적어 보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