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신학 1위국, 선교 2위국
"
0
1
2013.09.19 00:00
한국 교회에 따라 붙는 수식어는 많습니다. 역사적 발전에 따른 경이적 현상들을 표현하는 경우입니다. 그 중에서 제 눈을 늘 소망 차게 하는 것 2가지를 소개합니다. 하나는 해외 신학 1위국입니다. 이 통계는 아직 들어 본 적은 없으나 정황으로 볼 때 아마 그럴 것입니다. 또 하나는 세계적으로 통계가 나와 있는 선교사 파견국입니다. 미국에 이어 2위이나 심층 분석한다면 사실 선교 1위국일 것입니다.
1. 한국 교회 지도자는 왜 미국에서 신학을 해야 하는가!
1985년 5월에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할 때 세관 직원이 제 짐에 성경들이 있는 것을 보며 대뜸 미국에서 신학을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질문에는 비난과 불만을 담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분과 같은 생각이었지만 워낙 기다리는 줄이 길고 바쁜 곳이어서 그렇다고 간단히 답을 했습니다. 바로 이어 꼭 미국으로 가야 하느냐는 질문을 했고 저는 미국까지 갈 필요는 당연히 없다며 화답을 해 드렸습니다. 이 번에는 그 분이 당황했고 이런 답변은 처음인지 이어 진 질문은 없었고 저는 어정쩡한 분위기에서 짐을 싸고 통과를 했습니다. 다른 이들은 꼼꼼하게 살피고 있었으나 이런 대화 때문인지 바로 통과를 시켰습니다.
1980년대까지 한국 교회 목회자나 신학자들은 죽어도 미국을 향했습니다. 당시 유럽으로 방향을 돌린 분들은 거의 전부 미 대사관에서 신학 비자를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유럽으로 가는 분들을 향해서는 더욱 할 말이 많습니다. '박사'라는 이름에 기가 죽고, '해외 박사'에 더욱 기가 죽고, 그 해외 박사 학위가 미국이나 유럽이 되면 더욱 그렇게 되는 한국 교회에게 무슨 신앙과 성경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창피할 일이고 공연한 시비일 것입니다. 공회는 이런 인식이 철저한 곳입니다.
그렇지만 만일 백영희 신앙노선의 건설구원이 교리사적 의미가 확실하고 오늘이 말세가 확실하다면 해외 신학을 이렇게 무차별적으로 감행한 한국교회의 사대주의 지식사모주의 몰아 치기 행태는 우리의 잘못 된 동기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한국에서 출발 시킨 이 노선을 해외에 소개하는 데 사용하려고 미리 준비하신 것입니다. 만일 건설구원을 비롯하여 백영희 신앙 노선의 교훈과 교리와 성경 해석의 내용들이 세계 교회로 향해야 한다면 한국사회의 세계 진출, 한류 문화의 세계화, 인터넷과 영어 등의 세계 공용화라는 세상적 요소와 함께 교계적으로는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의 전 교파와 교회와 지도자와 인재들이 미친 듯이 해외로 신학을 공부하러 나간 이유가 긍정적 측면에서 해석 될 수 있습니다.
2. 세계 선교대국이라는 불가사의한 현상
공회는 선교와 담을 쌓은 듯이 보일 정도로 처신하여 왔습니다. 최근 공회 내에도 타 교단의 수십 년 현상을 답습하는 상황이 있으나 여전히 그런 현상이 공회의 기본적이고 발전적인 상황은 아닙니다. 그런데 한국교회의 단기간 발전과 함께 그 발전의 역량이 해외로 향하면서 세계 선교계에 2번째 대국이 되었습니다. 통계로는 미국이 1위를 지키고 있으나 내용적으로 볼 때는 한국이 단연 돋보이며 선교 주도국이라 하겠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생겼을까? 미국을 중심으로 해외에서 외국어로 신학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특이한 이들에게나 필요한데도 불구하고 왠 만한 교파와 교회는 그들이 인재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해외 유학은 기본적으로 요구하며 이런 현상이 더욱 신학생들의 마음에 해외 유학을 모두가 꿈 꾸게 만들었습니다. 해야 할 때 꼭 필요한 것은 처참하리 만큼 방치하는 우리 민족성, 그러다가 어느 한 순간에 벼락 치기로 싹쓸이를 해 버리는 이 습성이 신학과 함께 선교 분야에도 경이롭게 나타 났습니다.
신학처럼 해외 선교에 대해서도 이 노선은 대단히 비판적인데 실제로 주님의 인도를 따라 자기 생활 범위를 넘어 서서 가야 했던가? 대개는 우리 민족성이 감성적이고 충동적이어서 울컥 벌컥 왈칵식으로 몰려 가며 여기에 교회의 선교 역사와 선교사의 미화가 불을 붙여 놓은 것 같습니다. 어쨌든 한국교회가 한국 교인을 세계에 내보낸 것은 사회적 문제가 될 정도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막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순수한 신앙 열정과 선교의 필요성 때문인 것 같지도 않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생겼을까? 오늘이 말세가 맞다면 그리고 공회 신앙의 내용이 한 교회 내를 유지하는 차원에서 그치지 않고 만일 교회사적 교리사적 세계 교회적 의미가 있다면 신학의 해외 파견 현상에 이어 한국교회의 선교 과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이 노선 전달에 필요하여 많은 이들이 해외 각국에 신학 공부를 시키고 그보다 더 많은 이들을 세계 각지를 향해 선교로 내 보내시는 것입니다.
3. 이왕이면 소망이 좋고, 소망의 교리는 영원하니
오늘의 잘못 된 것을 비판하여 우리가 걸어 가는 길도 바로 세워야 하겠으니 신학과 선교를 두고 이 노선의 비판적 시각은 갈수록 혹독해 지지 무뎌 질 상황이 아닙니다. 동시에 이 노선이 찾아 나선 교리의 깊은 세계는 '소망'이라는 단계에 이르러 그 끝을 가늠할 수도 없어 우두커니 서 있는 상황인데 바로 이 '소망'이라는 우리 교리의 제일 높은 차원에서 볼 때 신학과 선교 분야의 한국 교회 병폐는 말세를 위한 또 하나의 큰 준비물로 생각 됩니다. 형 10명 때문에 요셉이 애굽에 국비 유학을 했듯이, 이방 아람 나라에 복음이 차고 넘치도록 하시려고 어린 아이 하나를 포로 되게 하고 나아만 대장 집에 계집종으로 살게 하는 모순의 구도를 준비하신 일을 기억합니다.
------------------------------------------------------
/초기화면/연구실/일반자료에 이 글과 관련 있는 자료들
3323번, [사회] 한반도 중립국화를 향한 구체적 징조들, 2013-09-24
3324번, [사회] 한국인의 세계 175개국 이민 - 선교 자료, 2013-09-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