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한국교회 초기 교역자 양성 7 원칙 (1월 24일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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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22 00:00
1. 교역자 양성 7 원칙
1912년에 해외 4 개의 장로교 소속 선교사들이 출신들이 한국 장로교 총회를 조직합니다.
그 총회 조직과 함께 그들은 한국에 맞는 교역자를 양성한다며 7 가지 원칙을 세웁니다.
<소극적>
① 선교회가 교역 후보생을 정하였을지라도 그 사람에게는 그 의도를 알리지 말 것
② 전도인에게는 할 수 있는 대로 외국 돈으로 보수를 주지 말 것
③ 미국에 보내어 교육 시키는 일을 제한 할 것
<적극적>
① 교역자의 영적 면에 치중하여 성신(성령)인이 되도록 힘쓸 것
②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히 주입 시켜 진리의 기초 위에 확립케 할 것
③ 젊은 교역 후보생을 그리스도의 군병으로 키우는 데 여하한 괴로움도 견디도록 철저히 훈련할 것
④ 교역자의 교육 정도는 너무 높이지 말고 일반 교인의 지적 수준보다 약간 높게 할 것
2. 참으로 감탄할 원칙
구구절절이 감탄할 만하고 이 노선이나 그들이나 한 성령이므로 시공을 초월한 하나입니다.
① '교역 후보' 의도
사람을 기를 때 그 목적을 알리면 선입견이 들어 가서 제대로 된 사람을 만들지 못합니다. 어중개비들을 만들 때는 목적을 알리고 소망을 줘야 도움이 됩니다. 목적 의식이라는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엄청 난 힘을 일으킵니다. 그런데 이 힘은 궁극적인 힘이 아닙니다. 목적 의식이 필요한 것은 예정과 창조와 섭리의 원인인 하나님의 영원전 예택의 목적만이 우리에게 주어 져 있고 나머지는 오로지 맡기고 따르는 것만 '믿음'이고 이 믿음만이 우리의 전부입니다.
간부로 지도자로 뭔가 남 다른 사람으로 길러 간다는 느낌을 받게 되면 그런 야욕과 야망 또는 소망이 애매하게 섞이면서 아주 엉뚱한 사람으로 자라 갑니다. 요즘은 이런 말의 뜻이 뭔지조차도 모르는 기술적 시대가 되었습니다. 근시가 되어 눈 앞에 과학 기술적 수치만 보지 더 넓은 세계를 보지 못하는 세대입니다. 아주 어린 아이들에게는 목적을 주고 치켜 주며 박수를 쳐 줘야 합니다. 그러나 청소년으로 접어 들면서는 속히 그런 목적 의식을 빼고 오로지 맡기고 따르는 길 하나만이 신앙의 길로 갖게 해야 합니다.
이런 면에서 고등학교 졸업하고 집에서 어린 아이 노릇하는 대학 입학생을 신학대학에 발을 딛게 하거나 신대원을 목표로 학부 전공을 잡게 하는 것은 그 아이를 잡고 교회를 잡을 발상입니다. 이런 점에서 이 노선은 일반 교파 교단들을 상대할 때 그 속을 들여다 볼 필요도 느끼지 못합니다. 그 동안 이런 시야가 너무 과격하고 이상스럽게 보여 마치 사이비 비판을 받기 알맞을 정도여서 발언에는 신중한 편이었는데 1912년의 제1회 장로교 총회는 이 노선과 사상이 같습니다. 그 때가 옳고 바른 시기였고 오늘이 정신 없는 총회들인가, 오늘이 건전하고 그 때가 사이비성을 가진 미개한 때였는가? 문답은 아주 간단할 것 같습니다.
② '외국 돈 금지'
참으로 무릎을 치며 감탄할 말만 나옵니다. 지금 한국의 선교가 해외에 돈으로 뒤집어 씌우고 있습니다. 선교 이름 하에 선교비 모금은 전능이며 절대성처럼 내 세웁니다. 선교 대상국에 한국의 경제력은 눈 부시게 전개 되고 있습니다. 예배당, 신학교, 각종 학교, 병원, 교육 기관, 각종 구호 복지 활동, 개인 지원 등으로 화려하게 보입니다. 그 것이 선교의 실체이며 결실이거나 최소한 그 것이 선교의 발전 단계인가? 우맹이라고 탄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령한 것이 사진에 찍힐 수 있는가, 하늘의 것이 그런 건축과 예산 집행에 비례 되거나 조장 될 수 있는가? 현지 활동 하는 이들이나 보도나 보고하는 이들이나 호응하는 분들이 믿어 본 적이 있다면 후진국 개발처럼 선교지 상황이 그렇게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1912년의 한국은 극단적으로 굶주릴 때입니다. 지금 북한과 같았고 선교사들의 경제 지원은 지금 북한에 송금 되는 달러와 같습니다. 돈이 들어 가면 즉효가 나는 시기인데 이 것을 단호하게 차단하거나 조절한다는 것은 복음의 사랑을 가진 선교사로서는 정말 죽기보다 어렵다 할 만한 결정이며 또 다른 사랑의 표현입니다.
돈이 들어 가면 복음은 썩습니다. 많아 지면 많이 썩고 적으면 덜 썩고, 적절하게 관리 되면 복음 운동의 귀한 선물입니다. 이 노선의 경제를 연구하면 너무 귀했고 모범적이었습니다. 초기 한국교회 선교 과정에서 서양 선교사들이 한국의 극단적 가난을 상대하면서 돈으로 복음 운동을 하려 하지 않고 몸으로 충성하며 그들이 가진 돈조차 극히 조심했던 것은 이 나라 교회가 바른 길로 자라 가는 아주 좋은 움이었습니다. 복음운동은 돈과 물질과 세상 것을 최소화합니다. 실제로는 무시합니다.
③ '미국 유학 절제'
어떻게 이런 것을 깨달았을까? 하기야 지금이니 이런 깨달음이 신선해 보이고 충격적이며 신령해 보이기까지 하지만 사실은 복음의 본질을 바로 안다면 공회처럼 덕유산 골짝에서 무식하게 믿고 출발하는 초기부터 목회자를 신학 공부하게 하거나 목회자가 유학을 간다거나 유학을 갔다 와야 신학과 교회를 발전 시킨다는 사고방식은 역사의 어느 시대 어느 지역에 위치한 어떤 교회라 해도 버렸을 것입니다.
감사한 것은 한국의 선교사들은 그 출신이 미국을 중심으로 합니다. 연세대를 나온 사람은 연대를, 고려대를 나온 사람은 죽어도 고대를 죽을 때까지 강조하며 자부심을 가집니다. 자기 중심이며 본토 친척 아비 집으로 엮이는 옛사람의 악성입니다. 출신 국가의 출신 학교로 보내어 교단의 인재를 길러서 훗날 신학교와 교단 지도부를 장악해야 교권과 명예와 교회 주변에서 취할 여러 이익들이 많은데, 당시 선교사들은 이런 면을 초월했다는 것이 이런 교역자 양성 원칙에서 나타 납니다.
그들에게 감사합니다. 그들을 그렇게 깨닫게 하고 이 나라 교회의 첫 돌을 바로 놓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안타깝게도 바른 돌 위에 세워 진 교회가 박형룡 박윤선 목사님들의 해외 유학을 통해 한 면으로는 한국 교회의 엄청 난 혜택이 그리고 한 면으로는 한국 교회의 엄청 난 재앙이 쏟아 집니다. 두 박 박사님들의 활동으로 자유주의를 막고 칼빈주의에 철저한 성경 중심 신앙이 강조 된 것이 엄청 난 복이었다면 그들의 '박사 위력'에 감읍한 후배들이 미국 신학 유학에 모두 미쳐 버렸으니 이 것이 한국 교회를 삼킨 재앙입니다. 6백 명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 한국인 유학생이 200 명이라! 한국의 웨신대가 아니라 필라델피아 웨신대에...
공회는 불행하고 복이 적은 사명을 받은 극소수만 해외 신학을 잠깐 견문 시킵니다. 제대로 된 사명과 복 있는 이들은 해외는 커녕 신학서 책 제목에 눈을 두는 것도 피하고 있습니다. 성경만 담고 성령으로만 살고 자기 현실에서 복음을 위해 죽기까지 달리는 것인데 오늘은 공회에서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참으로 반갑게도 1912년의 선교사들에게서 이런 심정을 찾을 수 있어 반갑기 그지 없습니다. 원래 무식했던 공회 인물이 아니라 원래 미국 출신의 정규 신학교 출신들이 모아 놓은 결의서여서 더욱 값집니다.
④ '성령의 사람'
어릴 때 또는 교인 시절에 신앙의 큰 은혜를 받는 사람 중에는 목회에 대한 사명까지 가지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 과정은 대개 성령이 그 교인을 붙들고 자라 가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그런 이들에게 목회자가 되려면 신학교를 가야 한다고 가르쳐서 그들로 하여금 신학교의 입학 절차와 100 학점을 취득하는 세상 대학교나 대학원식의 학위 과정을 뒤집어 씌워 놓습니다. 사울왕의 갑옷과 무기로 다윗을 뒤집어 씌워 놓으면 골리앗의 밥이 되는데, 주변에서는 씌우고 골리앗을 보고 달려 나가려던 열혈 교인들은 각 교단이 만들어 놓은 불신 사회의 교육 시스템에게 억눌리기도 하고 그 것에 목이 말라 스스로 뒤집어 쓰기도 합니다. 사울의 갑옷과 무기를 착용하고 나가면 내나 사울과 군장들과 그들의 군대처럼 골리앗의 조롱에 산과 바위틈에 숨어야 합니다.
이 나라가 복이 있으려고 좋은 선교사를 보내고 그들로 하여금 이 나라 목회자 선발을 위해 정말 양심적이고 신앙적이고 복음적인 결정을 주신 하나님 앞에 감사할 뿐입니다. 선교사 자신들은 고국에서 그런 교육 체계로 양성이 되었는데 그들이 그런 길을 거쳐 봤기 때문에 그 길이 길이 아님을 알았고 한국교회의 초석을 바로 세웠습니다. 공회로서는 아주 다 치워 버렸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공회 신앙까지 밝아 지지 않았던 시대임을 감안한다면 선교사들의 목회자 양성 원칙에서 신학을 배제하고 목회자를 '양성'한다는 이 원칙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⑤ '말씀과 진리 절대 원칙'
성경이 뭐라고 말씀을 했는가? 그 말씀이 가르치는 진리가 무엇인가? 오로지 선교사들이 이 나라 모든 목회자에게 주입 시키고자 원했던 것은 이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무엇을 더 더하겠으며 여기에 무엇이 아쉽겠습니까? 아멘! 할렐루야!
교인도 목회자도 오로지 이 것 하나로 전부를 삼으면 아무 문제가 없는데, 오늘의 한국 교회의 고장을 선교사들의 첫 정신으로 살피면 단번에 해결 될 일들입니다.
⑥ '어떤 괴로움도 견디는 훈련'
갈수록 감탄입니다. 사실은 이런 식으로 표현할 것도 없이 성경 그대로만 가르치면 이런 면은 다 포함이 됩니다. 그런데 그들은 자기 나라의 신학 교육을 통한 목회자 양성을 이 먼 곳에 와서 다시 돌아 보며 제대로 된 시각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신학은 특수한 환경의 사명자 몇 명만 해도 충분합니다. 안 믿는 사람을 전도하는데 무슨 신학과 학위가 필요한가? 성경 읽고 그대로 살아 보고 받은 은혜를 전하는 일에 무슨 교육 과정이 필요한가? 얼토당토 않은 일이 기독교 선진국에는 교회의 발전처럼 적용 되고 발달 되었는데 실은 그 것이 교회 파괴 운동이었습니다. 젊은 미국의 선교사들이 이 나라 선교 초기의 절박하고 위험 속에서 복음의 참 된 모습을 봤고 솔직하게 그들의 신앙을 구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떤 괴로움도 견딜 수 있도록 목회자를 양성하라! 오늘 신학교의 신학생들이 교단의 지원이 적니, 어떤 동문이 식비를 대 주었니, 그들이 갈 목회지를 마련하라느니 하는 이런 소리를 학생들의 권익차원에서 요구하고 나서는 정도면 기독교 이름을 내려 놓아야 할 상황입니다. 학생들은 철이 없고 신앙이 어려서 그렇다 쳐도 신학교마다 교수진들이 교단이나 교계를 향해 신학이 중요하니 신학교에 돈을 대라고 늘 돈 타령입니다. 신학생은 어떤 고난도 견뎌야 하고 신학 교수는 호의호식하면서 세상 불신 사회의 교수 흉내를 내면서 진리 연구를 하고 목회자를 양성하겠다? 야, 이 도둑ㄴ들아! 이런 종교 사기꾼들아! 육두문자 욕을 질러 대야 할 상황입니다. 이런 자세와 표현이 우리는 이 노선뿐인 줄 알았는데 김남식 교수님의 장로교회사에서 이런 자료를 제공해 주셔서 어찌나 감사한지!
⑦ '교역자는 한글 정도 알면 도움이 된다'
표현은 '교역자의 교육 정도는 너무 높이지 말고 일반 교인의 지적 수준보다 약간 높게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당시 한국교회 교인들의 대부분은 한글도 제대로 몰랐습니다. 그러니 한글 정도 알면 충분하다는 뜻입니다. 물론 당시에 한문에 능한 사람들은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알고 있는 한문은 유교와 중국과 동양을 아는 데나 필요하지 신앙 생활에 필요한 정도는 아닙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보통 고등학교와 대학 사이 정도가 일반적이니 대학 정도 나오면 좋다는 뜻으로도 보입니다만, 실은 그 표현 자체가 절대 규정이 아니라 그런 지적 수준이 있으면 좋고 없으면 말고, 이런 식입니다.
오늘 이 원칙을 들이 대면 공회 노선에서는 너무 쉬워 문제도 되지 않을 것이고 또 그 취지는 모두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공회 외에는 코웃음을 칠 것입니다. 우선 신학교 관계자들이 펄쩍 뛰며 반대할 것입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바로 이런 것에서 이미 그 가는 길이 서로 다른 향방을 향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