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형제'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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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29 00:00
초대교회는 어느 교회에게나 늘 이상향입니다. 천주교 시기를 거치며 교회는 극단적으로 머리 되는 주님을 떼 내버리고 교회의 제도나 지도부나 어느 성직자를 그 자리에 앉혔습니다. 천주교는 제도적으로 그렇고 기독교는 말은 아니라 하는데 실은 그렇습니다. 그리고 어느 곳이나 마찬 가지지만 세월이 가면 이런 현상은 더해 집니다.
그런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으려고 지방교회나 침례교는 '형제'라는 이름에 대한 집착이 유별합니다. 침례교는 목사 이름을 사용하기는 하고 지방교회는 그런 이름조차 사용하지 않습니다. 단어만 사용하지 않으면 목적이 달성 되는가? '동무'의 세상을 꿈꾸며 만든 공산 국가들에게는 계급을 인정하는 자본주의 국가보다 계급은 더 심각합니다. 그들의 동무는 그들끼리 이해관계를 함께 할 수 있는 동업자 사이의 표현입니다. 그 동업자들끼리도 분석해 보면 동무는 없습니다. 자본주의는 오히려 상하가 바뀔 수도 있고 또 어느 정도 보상이라도 있습니다.
'형제'를 목표로 삼은 교회 중에 지방교회가 가장 파격적으로 실행에 나서 본 듯합니다. 그들이 성직 체계의 부패와 탈선에 격분하고 사무친 마음으로 '형제'로 출발했으니 그 분들의 이후 모습은 어떠할까? 공산주의가 말은 동무라 하고 실제는 동무가 없듯이, 지방교회에는 형제만 있으나 형제 사이에 관계가 과연 형제에 머물 수 있을까? 지방교회를 시작한 워치만 니, 그 자신이 함께 모인 이들에게 형제였을까? 그렇지 않았습니다. 침례교 목사 정도였을까? 아닙니다. 장로교 목사 정도였을까, 감리교 감독 정도였을까? 목사 감독 등 어떤 성직보다 훨씬 넘어 서고 있습니다. 구약은 표현이 바로 되면 그 것으로 일단 고비는 넘깁니다만 신약은 내용이 문제입니다. 신령한 이스라엘이며 중심을 보시는 주님을 전면 그대로 상대합니다.
여기서 이 홈은 백영희 신앙 연구소이니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공회는 무엇이나 신앙 세계에 틀린 것이 있을 때는 교회의 성직 체계의 문제점의 예에서 보듯이 그 문제점만 최대한 제거하고 그 틀 자체는 될 수 있으면 버리지 않습니다. 목사 이름 그 자체가 죄 되지 않는다면 이미 사용하고 있는 단어는 사용하면서 그 목사 이름에서 시작한 모순과 잘못 된 점을 최대한 제거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 것이 오늘 공회 제도의 목사 또는 목회자입니다. 공회의 목사는 일반 교회의 목사와 전혀 다릅니다.
침례교회는 이 곳을 거의 알고 있을 것이므로 그냥 두고, 지방교회로서는 공회의 목회자 제도를 한 번 대안으로 연구해 보셨으면 합니다. 지방교회의 장점과 일반 교회의 장점을 합한 개념입니다. 지방교회가 형제 체제로 내려 올 때 봤음직한 단점과 일반 교회의 단점을 배제한 개념입니다. 성경 교리적으로도 맞고 실제적으로도 가능하고 역사적으로도 증명이 되어 있습니다. 마치 주일학교나 성경과 교리에 대한 연구 등 여러 면에서 증명이 된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이 곳을 이용하시는 지방교회 교인들께 앞으로 몇 가지 또는 여러 가지 간접 대화를 싶어 그 중에 하나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공회는 기본적 사상으로는 '형제'의 개념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모든 교인은 전부가 나의 선생님으로 지도자로 상대합니다. 그러나 교회의 실제 신앙 발전을 지켜 보면 모든 믿는 사람은 한 면으로는 다른 사람의 선생이 되어야 하고 다른 면으로는 다른 사람의 지도를 받아야 하는 수직 관계의 계통으로 길러 감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주일학교 반사가 자기 학생들을 상대할 때도 이들 중에도 내가 배울 다윗이 있을 수 있고 그들을 통해 반사가 배울 것을 찾는 동시에 오늘 가르칠 것은 가르칩니다. 그리고 먼저 배운 학생은 그 다음 학생을 인도하고 그 다음 학생은 또 다른 학생을 그렇게 합니다.
지방교회가 교인의 관계를 수평에 중점을 뒀다면
공회는 그 수평은 말하지 않아도 기본이 되어야 하고 실제 노력은 수직 관계인데
그 수직은 천주교나 일반 교회가 말하는 일방통행의 체제식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길러 가는 역사 면은 사람을 통해 사람을 기르기도 하나 대부분의 경우는 우리 안에 배울 여러 면 중에 어떤 면은 내가 선생이 되고 어떤 면은 내가 제자가 되며 서로 배우고 서로 가르치며 나가는 면으로 교회의 구역과 주일학교 반사 직을 운용하고 있고, 교회와 목회자도 다 그렇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