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과 선물 - 세상법과 성경법의 차이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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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9 09:44
19년 5월 집회의 주제는 '이스라엘의 생활법'이었고 본문은 출애굽기 21 ~23장이었다. 교재에는 출23:8에 '뇌물'이 나온다. 잠깐 살펴 봤다.
성경의 뇌물은
① 어둡게, 출23:8
② 틀리게, 신16:19
③ 해하게, 시15:5
성경의 선물은
① 노를 쉬게, 잠21:14
② 친구를 만들어, 잠19:6
③ 형통케, 잠17:8
이렇게 각각 3가지를 기준으로 살필 수 있다. 이 성경의 기준에 따라 만일 교회가 신학대학교의 설립과 대학병원의 설립을 위해 관련 기관에 몇십 억 돈을 갖다 줬다면 어떻게 될까? 성경법에는 선물이나 우리 나라 법에는 뇌물죄로 바로 처벌 받는다. 이 문제를 두고 몇 사람이 '성경의 뇌물과 선물'을 공부하던 중에 '성경의 뇌물 선물을 세상 사람이 알면 오해를 많이 하겠다'는 지적이 나왔고 이런 안내가 있었다.
1. 성경과 세상의 '죄' 기준
세상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종교가 발생한다. 세상이 그냥 마음에 들지 않으면 도덕과 철학까지만 생긴다. 세상이 다 틀렸을 때 종교라는 것이 생긴다. 세상의 법은 세상의 도덕과 철학을 많이 반영한다. 반대로 종교라는 것은 그 사회 거의 전부를 다 부정한다. 그래서 종교는 그 나라의 법에 반영되는 경우가 희귀하다.
종교가 주민등록을 하고 살아 가는 주변의 자기 세상과 뇌물과 선물의 기준이 다르면, 그 종교는 종교다운 것이고 정상이다. 요즘 우리 사회처럼 기독교와 불교와 세상의 윤리가 같아서 함께 존경을 하고 함께 비판을 쏟아 내면 종교는 이미 종교이기를 포기한 상태다. 목사와 중과 신부가 모여서 기독교 대형 교회를 비판하고 나선다? 이런 모임은 보지 않아도 종교의 본질조차 모르는 이들이다. 세상 언론에 나와 기독교 정화 운동을 펼치는 이들은 불신자들이지 종교인은 아니다. 그런데 그 종교의 대표? 세상 간판이 좋아 세상이 보는 종교인의 대표지, 그 종교의 내면에서 보면 파문을 시킬 인간들일 것이다.
자본주의가 틀렸기 때문에 사회주의가 발생했고, 자본주의가 다 틀렸기 때문에 공산주의가 출현한다. 선물과 뇌물의 기준이 같다면 '聖'과 '俗'은 처음부터 구별 되지 않았다.
2. 세상이 오해할 사안
세상이 뇌물이라 하는데 성경이 선물이라 할 때, 세상이 오해를 할 수 있다. 이 때는 성경의 법이 '뇌물 선물의 구별법'만이 전부가 아니다. 벧후1:5에 '믿음에 덕'을 붙이게 해 놓았다. 죽어도 해야 할 일이면 하지만,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일이나 돈으로 손익을 계산할 수 있을 때, 선물인데도 불신자에게 끼치는 영향을 고려하는 것은 별개 문제다.
더하여 믿음의 기업이라고 기치를 내 건 '벽산그룹?' '고려은단?' '신영? 의복' 등은 고속도로에 'God loves you - 00기업'이라고 적어 놓는다. 그런데 이런 기업에서 10억원의 돈을 주고 100억의 세금을 아낀다면 이 것은 우리 사회의 뇌물죄가 되지 성경의 뇌물죄는 아니다. 그런데 이런 행위가 덕이 되지 않으니 이 죄에 걸린다. 성경의 죄는 궁극적으로 모두 같은 죄다. 뇌물죄는 크고 부덕스러운 것은 작은 죄라고 생각하는 것이 세상이다. 성경은 같은 죄로 본다. 교회가 세상이 되고 보니 이제 세상과 교회가 교회를 비판하고 칭찬할 때 기준이 같아 져 버렸다. 그런 목사들을 우리 사회는 기독교의 양심이라 한다. 양심은 종류가 많다. 그 양심은 이 사회의 양심이지 성경 양심은 아니다.
또 하나 문제가 있다. 이 모든 것을 다 고려해도 자기 능력 범위 내에서 하는 것이다. 다윗이 만왕의 왕으로 오실 주님을 표상했으나 미친 척도 했고 얻어 먹고 거지 노릇도 했다. 덕을 지킬 능력과 실력과 형편이 되지 않으면 덕스럽게 살고 싶어도 덕스럽게 살 수 없다. 건축 연보를 하고 싶어도, 믿음 없으면 못하는 것이고 내 믿음은 있다 해도 가족 중에 반대가 생기면 이혼해 가면서 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부부가 믿음이 좋아도 죽을 부모 모실 돈조차 없으면 연보를 못하는 것이다.
이 문제를 두고 현재 백도영 이신영 목사는 크게 오해를 한 것으로 보인다.
성경으로 따지면 연구소는 어떤 죄도 없다. 세상 법으로 따지면 불법 묘지 때문에 또 교인 돈을 손해 보인 목사 친인척에 대해 비판한 표현이 명예훼손에 걸려 있다. 또 백영희 목사님의 필생의 부탁을 받고 설교를 전했지만 저작권에 도적이 되어 있다. 모두 세상 법에서는 문제를 삼을 수 있다. 문제가 되면 당연히 처벌을 받는다. 문제는 목사들이, 그 것도 백영희 신앙 노선에 제일 앞섰고 제일 잘 알고 제일의 후계자라는 이들이 교회 법으로는 칭찬과 존귀와 영광만 받아야 할 대상에게 세상 법으로 가져 가서 유무죄를 살피고 있다. 덕도 되지 않는다. 이 죄도 크다. 능력 문제는? 아예 그들은 스스로 평생에 설교록을 출간하거나 공회 교리와 교훈을 발표한 흔적을 발견할 수가 없다. 이 글을 적으며 다시 검색을 해 봐도 없다.
뇌물과 선물을 공부하면서도 이렇게 문제들이 나온다. 성경공부의 이론에서는 중국의 선교사도 송파의 전문가도 한 없이 잘 알고 잘 전파한다. 그런데 막상 현실 신앙에 적용을 시키면 실체가 나온다. 수영을 잘하는지 못하는지, 물에 던져 보면 안다.
성경의 뇌물은
① 어둡게, 출23:8
② 틀리게, 신16:19
③ 해하게, 시15:5
성경의 선물은
① 노를 쉬게, 잠21:14
② 친구를 만들어, 잠19:6
③ 형통케, 잠17:8
이렇게 각각 3가지를 기준으로 살필 수 있다. 이 성경의 기준에 따라 만일 교회가 신학대학교의 설립과 대학병원의 설립을 위해 관련 기관에 몇십 억 돈을 갖다 줬다면 어떻게 될까? 성경법에는 선물이나 우리 나라 법에는 뇌물죄로 바로 처벌 받는다. 이 문제를 두고 몇 사람이 '성경의 뇌물과 선물'을 공부하던 중에 '성경의 뇌물 선물을 세상 사람이 알면 오해를 많이 하겠다'는 지적이 나왔고 이런 안내가 있었다.
1. 성경과 세상의 '죄' 기준
세상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종교가 발생한다. 세상이 그냥 마음에 들지 않으면 도덕과 철학까지만 생긴다. 세상이 다 틀렸을 때 종교라는 것이 생긴다. 세상의 법은 세상의 도덕과 철학을 많이 반영한다. 반대로 종교라는 것은 그 사회 거의 전부를 다 부정한다. 그래서 종교는 그 나라의 법에 반영되는 경우가 희귀하다.
종교가 주민등록을 하고 살아 가는 주변의 자기 세상과 뇌물과 선물의 기준이 다르면, 그 종교는 종교다운 것이고 정상이다. 요즘 우리 사회처럼 기독교와 불교와 세상의 윤리가 같아서 함께 존경을 하고 함께 비판을 쏟아 내면 종교는 이미 종교이기를 포기한 상태다. 목사와 중과 신부가 모여서 기독교 대형 교회를 비판하고 나선다? 이런 모임은 보지 않아도 종교의 본질조차 모르는 이들이다. 세상 언론에 나와 기독교 정화 운동을 펼치는 이들은 불신자들이지 종교인은 아니다. 그런데 그 종교의 대표? 세상 간판이 좋아 세상이 보는 종교인의 대표지, 그 종교의 내면에서 보면 파문을 시킬 인간들일 것이다.
자본주의가 틀렸기 때문에 사회주의가 발생했고, 자본주의가 다 틀렸기 때문에 공산주의가 출현한다. 선물과 뇌물의 기준이 같다면 '聖'과 '俗'은 처음부터 구별 되지 않았다.
2. 세상이 오해할 사안
세상이 뇌물이라 하는데 성경이 선물이라 할 때, 세상이 오해를 할 수 있다. 이 때는 성경의 법이 '뇌물 선물의 구별법'만이 전부가 아니다. 벧후1:5에 '믿음에 덕'을 붙이게 해 놓았다. 죽어도 해야 할 일이면 하지만,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일이나 돈으로 손익을 계산할 수 있을 때, 선물인데도 불신자에게 끼치는 영향을 고려하는 것은 별개 문제다.
더하여 믿음의 기업이라고 기치를 내 건 '벽산그룹?' '고려은단?' '신영? 의복' 등은 고속도로에 'God loves you - 00기업'이라고 적어 놓는다. 그런데 이런 기업에서 10억원의 돈을 주고 100억의 세금을 아낀다면 이 것은 우리 사회의 뇌물죄가 되지 성경의 뇌물죄는 아니다. 그런데 이런 행위가 덕이 되지 않으니 이 죄에 걸린다. 성경의 죄는 궁극적으로 모두 같은 죄다. 뇌물죄는 크고 부덕스러운 것은 작은 죄라고 생각하는 것이 세상이다. 성경은 같은 죄로 본다. 교회가 세상이 되고 보니 이제 세상과 교회가 교회를 비판하고 칭찬할 때 기준이 같아 져 버렸다. 그런 목사들을 우리 사회는 기독교의 양심이라 한다. 양심은 종류가 많다. 그 양심은 이 사회의 양심이지 성경 양심은 아니다.
또 하나 문제가 있다. 이 모든 것을 다 고려해도 자기 능력 범위 내에서 하는 것이다. 다윗이 만왕의 왕으로 오실 주님을 표상했으나 미친 척도 했고 얻어 먹고 거지 노릇도 했다. 덕을 지킬 능력과 실력과 형편이 되지 않으면 덕스럽게 살고 싶어도 덕스럽게 살 수 없다. 건축 연보를 하고 싶어도, 믿음 없으면 못하는 것이고 내 믿음은 있다 해도 가족 중에 반대가 생기면 이혼해 가면서 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부부가 믿음이 좋아도 죽을 부모 모실 돈조차 없으면 연보를 못하는 것이다.
이 문제를 두고 현재 백도영 이신영 목사는 크게 오해를 한 것으로 보인다.
성경으로 따지면 연구소는 어떤 죄도 없다. 세상 법으로 따지면 불법 묘지 때문에 또 교인 돈을 손해 보인 목사 친인척에 대해 비판한 표현이 명예훼손에 걸려 있다. 또 백영희 목사님의 필생의 부탁을 받고 설교를 전했지만 저작권에 도적이 되어 있다. 모두 세상 법에서는 문제를 삼을 수 있다. 문제가 되면 당연히 처벌을 받는다. 문제는 목사들이, 그 것도 백영희 신앙 노선에 제일 앞섰고 제일 잘 알고 제일의 후계자라는 이들이 교회 법으로는 칭찬과 존귀와 영광만 받아야 할 대상에게 세상 법으로 가져 가서 유무죄를 살피고 있다. 덕도 되지 않는다. 이 죄도 크다. 능력 문제는? 아예 그들은 스스로 평생에 설교록을 출간하거나 공회 교리와 교훈을 발표한 흔적을 발견할 수가 없다. 이 글을 적으며 다시 검색을 해 봐도 없다.
뇌물과 선물을 공부하면서도 이렇게 문제들이 나온다. 성경공부의 이론에서는 중국의 선교사도 송파의 전문가도 한 없이 잘 알고 잘 전파한다. 그런데 막상 현실 신앙에 적용을 시키면 실체가 나온다. 수영을 잘하는지 못하는지, 물에 던져 보면 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