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공회의 '선교관'

남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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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판에는 이 홈에 올려진 글 중에 이곳에서 따로 소개하고 싶은 글도 포함됩니다. 

(5) 공회의 '선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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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과 세계를 위한 기도)
백 목사님은 평생 세계 교회와 북한 교회를 위해 기도했다. 그의 기도는 다른 지도자들의 그런 기도와는 차원이 달랐다.
나는 그런 세계를 알고 있었지만 그릇이 되지 않아 평생에 그런 기도를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2014년부터 비로소 기도를 시작했다. 지금은 하고 있다. 이제는 기도할 여력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동안 기도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가 나의 부족 때문이다. 내가 맡은 교인들의 무게도 한 짐이고 여력이 없었다.
그러다가 2014년에 무슨 일이 있어 새벽에 4시에 교회로 나가면 오전 8시나 9시 때로는 10시까지 강단에서 무릎을 꿇었다.
공회 목회자들은 평생 이렇지만 나는 60세가 다 되어 가는 때 비로소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모든 면에서 부족하다.
그 때가 바로 북한 교회가 완전히 암흑기에 들어 간 지 70여년 되던 시점이다. 빠르면 2010년, 늦어도 2023년이 70년이다.
2010년을 잡는 것은 1940년부터 일제 신사참배의 절정기가 되어 교회를 표시 내고는 신앙의 자유가 다 없어 져 버렸고
2023년이란 1953년부터 70년이니 전쟁 후 북한은 내부에 숨어 있는 교인까지 전부 색출하여 완전히 흑암을 만들었다.

나는 기도를 할 때 나의 교인들을 위한 기도조차 부족했다. 그래서 위대한 분들과 교회에 세계와 북한 기도는 미뤄 버렸다.
생각을 해 보니 내가 부족하다 해도 빼지 말아야 했다. 그래서 늦었지만 지금은 열심히 적어 가면서 기도한다.


(원수를 위한 기도)
세상이 말하는 원수는 성경이 말하는 형제의 다른 표현이다. 나는 원수를 위한 기도는 고소를 받을 때부터 했다.
원래는 1989년 목사님 순교 때부터 그 자녀 7남매와 20명 손주들을 위해 기도했다. 지금은 고소자들을 위해 더욱 기도한다.
이 기도는 그냥 의무적 기도다. 속으로 '주님, 그 부친 지도자가 만들지 못했는데 제가 만들 수는 없습니다.'라고 투정했다.
백영희 자료에 대한 소송에 아무도 돕지 않고 전부 발을 뺄 때는 '주님, 제가 드디어 보화를 독점했습니다.'라며 감사했다.
그토록 잘 아는 이들이 그토록 손을 젓으며 마다 하니 내 혼자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주여, 다 주시니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그런데 돌아 보니 내가 할 일은 했어야 했다.
아무리 그들이 싫고 싫고 싫어서 내버려 두고 갔다 할지라도 내가 고소자를 위해 의무적 기도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최근에는 이제 의무적 기도를 넘어 서서 뜨겁게 기도한다. '주님, 대법원의 패소로 저 혼자 독점하지 말게 해 주소서'
'천 번을 반대하고 만 번을 거부해도, 이 길과 이 교훈은 그들의 죽는 날까지 그리고 주님 오실 때까지 만방에 넘치게 하소서'
요즘은 정말 마음 뜨겁게 기도하고 있다. 잠을 자려고 누울 때 마지막 눈을 감으며 이 기도의 간절함을 품고 잠에 든다.

나는 백 목사님께 배운 것이 있어 요나처럼 니느웨가 망하는 꼴을 보려고 초막을 짓고 굽어 보는 정도는 아니다.
나는 백 목사님께 배운 것이 있어 성경의 원수 사랑의 이치를 알게 되었고 나를 위해서라도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
그런데 내 속에 뜨거운 심정으로 정말 뜨겁게 고소자들이 돌아 서고 이 자료가 다시 만방에 넘치기를 기도하고 있다.



(선교와 공회 이야기)
내가 직접 맡은 교인과 업무를 넘어 서는 기도를 잘 하지 않게 된 배경은 공회의 역사와 내면 때문이다.
전남의 여수 바닷가 마을들의 교회들도 해외 선교는 몇 곳씩 한다. 어느 예배당을 들어 가 봐도 해외 선교지가 여러 곳이다. 연보봉투나 교회 주보 또는 교회 입구의 각종 공지가 한 눈에 들어 온다. 공회는 '선교'의 혜택을 그렇게 많이 받았으나 선교를 하지 않았다. 선교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는 그야말로 좌절한 분을 격려하는 극단적 경우다. 정상적으로는 사용하지 않는다.

백 목사님은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았다. 호주 선교부가 이 노선의 직접적인 모교회다. 그런데 이 노선은 자기 내부를 돌아 보기도 바빴기 때문에 선교라는 먼 곳까지 맡을 역량이 없었다. 심지어 1982년 총공회 때 송용조 목사님이 공회의 해외 교인의 연락처를 모아 개척을 하자고 결의까지 했으나 목사님은 그 제안의 내용적에는 부정적이었다. 인위적으로 만들어 가는 것은 선교라 해도 달가워 하지 않았다. 송 목사님은 당시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 후 막 귀국했을 때다. St. Louis와 LA에서 공부하면서 공회 교회를 개척해 본 경험 때문에 절박했다. 공회처럼 독특한 신앙의 체계를 가진 교회 교인들은 해외에서도 다른 교회에 적응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 해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부공3의 연구소는 선교에 대하여 총공회 중에서는 가장 유리한 여건들이 많이 있었으나 공회의 원래 방향 때문에 선교라는 표현조차 입에 담지 않는다. 얼마 전 볼리비아 고광문 목사님, 그리고 NTM 정도만 선교 단체로 인정하는 정도다. 설마 그뿐일 리는 없지만 아는 범위가 그렇다. 장영목 목사님은 공회의 분열 이후에도 필리핀 선교를 위해 부탁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 부공3에만 전화 한 통화 없었다. 이 곳의 주력 출신이기 때문에 이 곳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현재 그가 세운 필리핀의 양성원이나 선교지 운영의 가장 적합한 인재와 실력을 갖춘 곳은 우리다. LA 고영진 선생님이 필리핀의 양성원 강사로 갈 수 있다면 그야말로 최상일 것이다. 그는 LA에 있기 때문에 필리핀에 갈 수가 있다. 그런데 청하지는 않을 듯하다. 비록 복음 운동에 도움이 된다 해도 밥그릇을 양보할 리는 없을 듯하다. 내게는 여러 경로로 부탁이 들어 온 적이 있었다. 중국 쪽에서도 있었다. 송종섭 목사님의 간곡한 부탁을 거절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그 분은 모든 것을 알고 또 진실이 있는 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분과 방법론만은 차이가 많다.

이왕 할 것,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면 그 의무에 감사와 진심과 간절을 담아야만 그 의무적 행동에 생명력이 더해 진다.
의무적으로 한다면 비록 죄는 아니지만 구약의 율법적 단계에 그친다. 율법이란 우선 죄를 막고 의를 향해 나아 가게 한다.
그러나 그 율법의 단계에서 빠르게 전환하지 않고 오래 머물면 율법주의가 된다.

오늘도
또 어제 밤도 너무 뜨거운 마음이 불 타기 때문에 적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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