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글자 - 성경 기록의 방향에 대하여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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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09 11:36
1. 성경은 왜 그림 없이 주셨을까?
아이들이 그림을 먼저 알고 그릴까, 문자를 먼저 알고 사용할까? 그림이다.
문명 발전사로 볼 때 고대인 미개인 원시인들이 문자를 먼저 사용했을까, 그림을 먼저 사용했을까? 그림이다.
그렇다면 신학의 성경론 상식에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성경은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언어로 기록해 주셨다는 것이 '계시론'의 성경의 특성 '보편성'이다. 성경 기록의 보편성이란 구약에 히브리어는 구약의 하나님 백성들이 가장 쉽게 사용했고, 신약의 헬라어도 당시 가장 쉽고 보편적인 언어였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또 전문가처럼 특별한 교육이 없어도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해 주셨다는 내용이다. 이 것이 성경 기록의 보편성 원칙이라면 그림은 왜 사용하지 않았을까? 그림은 더 보편적이며 더 쉽다. 성막이라든지 에덴동산의 모습은 글로는 어렵다. 그림이면 아주 간단하다. 문자로 성경을 기록하면서 문자보다 쉬운 그림을 곳곳에 사용했다면 보편성 원칙에 더 낫다. 물론 그림을 아예 남기지 않은 것은 무슨 뜻이 있을 것이다.
2. 자연에 담아 놓은 자연은총
글과 그림은 신불신에 상관 없이 세상에 주신 것이니 이런 것은 넓은 의미로 자연은총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방인에게까지 주신 글로 기록한 성경을 받았으니 자연 중에도 문자는 신앙의 자연은총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림은 포함하지 않았을까? 글은 전달 되며 정보 자체는 바뀌지 않으나 그림은 사본으로 배끼는 순간 무조건 달라 지게 된다. 문자로 된 성경은 필체는 바뀌어도 내용은 바뀌지 않는다. 그림은 채색과 선이 그림의 기본 정보인데 이 것은 배끼는 순간 무조건 그 정보 자체가 바뀐다. 따라서 더 어렵지만 변형을 피하려면 성경은 그림이 아니라 글이라야 한다.
문제는 그림은 배우지 않아도 보면 아는데 글은 배워야 비로소 안다. 배우지 못한 이들은 성경에 관한 한 기본적으로 불리해 진다. 글을 깨치기 어려운 사람은 의외로 많다. 이 면에 부족한 사람은 글자 속에 역사하시는 성령이 각자에게 직접 채우든지 조절을 하시든지 해결을 하신다. 글자를 읽지 못하는 사람은 읽는 사람을 통해 전해 듣거나, 그럴 기회가 없으면 그 마음에 성령이 감화와 감동으로 상대해 주신다. 그래서 성경은 그림이 아니라 문자로 적어 주신 이상, 성경의 내용을 그림화 하는 것은 극단적으로 피하는 것이 맞다. 대략의 그림으로 잠깐 설교의 설명처럼 하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성경책에 삽화를 포함하거나 성경의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한 뒤 다른 설명 없이 그냥 두면 성경의 내용과 그림은 거의 같은 차원이 된다.
세상 것은 시청각 교육을 발전 된 좋은 것을 안다. 신앙의 세계는 시청각이란 최소화에 그치고 거의 막아 버려야 한다. 갈수록 신앙이 시청각화 된다. 심지어 성경 기록까지. 현재 성경책의 인쇄에 끼어 든 그림은, 이단이라 해야 할 정도인데 이런 면을 비판하는 경우는 본 기억이 없다.
아이들이 그림을 먼저 알고 그릴까, 문자를 먼저 알고 사용할까? 그림이다.
문명 발전사로 볼 때 고대인 미개인 원시인들이 문자를 먼저 사용했을까, 그림을 먼저 사용했을까? 그림이다.
그렇다면 신학의 성경론 상식에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성경은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언어로 기록해 주셨다는 것이 '계시론'의 성경의 특성 '보편성'이다. 성경 기록의 보편성이란 구약에 히브리어는 구약의 하나님 백성들이 가장 쉽게 사용했고, 신약의 헬라어도 당시 가장 쉽고 보편적인 언어였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또 전문가처럼 특별한 교육이 없어도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해 주셨다는 내용이다. 이 것이 성경 기록의 보편성 원칙이라면 그림은 왜 사용하지 않았을까? 그림은 더 보편적이며 더 쉽다. 성막이라든지 에덴동산의 모습은 글로는 어렵다. 그림이면 아주 간단하다. 문자로 성경을 기록하면서 문자보다 쉬운 그림을 곳곳에 사용했다면 보편성 원칙에 더 낫다. 물론 그림을 아예 남기지 않은 것은 무슨 뜻이 있을 것이다.
2. 자연에 담아 놓은 자연은총
글과 그림은 신불신에 상관 없이 세상에 주신 것이니 이런 것은 넓은 의미로 자연은총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방인에게까지 주신 글로 기록한 성경을 받았으니 자연 중에도 문자는 신앙의 자연은총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림은 포함하지 않았을까? 글은 전달 되며 정보 자체는 바뀌지 않으나 그림은 사본으로 배끼는 순간 무조건 달라 지게 된다. 문자로 된 성경은 필체는 바뀌어도 내용은 바뀌지 않는다. 그림은 채색과 선이 그림의 기본 정보인데 이 것은 배끼는 순간 무조건 그 정보 자체가 바뀐다. 따라서 더 어렵지만 변형을 피하려면 성경은 그림이 아니라 글이라야 한다.
문제는 그림은 배우지 않아도 보면 아는데 글은 배워야 비로소 안다. 배우지 못한 이들은 성경에 관한 한 기본적으로 불리해 진다. 글을 깨치기 어려운 사람은 의외로 많다. 이 면에 부족한 사람은 글자 속에 역사하시는 성령이 각자에게 직접 채우든지 조절을 하시든지 해결을 하신다. 글자를 읽지 못하는 사람은 읽는 사람을 통해 전해 듣거나, 그럴 기회가 없으면 그 마음에 성령이 감화와 감동으로 상대해 주신다. 그래서 성경은 그림이 아니라 문자로 적어 주신 이상, 성경의 내용을 그림화 하는 것은 극단적으로 피하는 것이 맞다. 대략의 그림으로 잠깐 설교의 설명처럼 하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성경책에 삽화를 포함하거나 성경의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한 뒤 다른 설명 없이 그냥 두면 성경의 내용과 그림은 거의 같은 차원이 된다.
세상 것은 시청각 교육을 발전 된 좋은 것을 안다. 신앙의 세계는 시청각이란 최소화에 그치고 거의 막아 버려야 한다. 갈수록 신앙이 시청각화 된다. 심지어 성경 기록까지. 현재 성경책의 인쇄에 끼어 든 그림은, 이단이라 해야 할 정도인데 이런 면을 비판하는 경우는 본 기억이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