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백영희의 '실질주의'

남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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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판에는 이 홈에 올려진 글 중에 이곳에서 따로 소개하고 싶은 글도 포함됩니다. 

(48) 백영희의 '실질주의'

담당 0 13
1. 백영희와 실질주의

70년대에는 백영희 입에서는 나는 실질주의라고 자주 말을 했다. 80년대 초반에도 그렇다. 백영희와 공회를 이해할 때 가장 중요하면서도 근본적인 관점 몇 중에 하나다. '하나님 중심주의' '일원론' '구원 목적론' '자기 십자가' '현실주의' '실질주의' 등이 그런 사례다. 이 중에 하나만 가지고 살펴도 백영희와 공회를 잘 알 수 있다. 이 중에 2~3가지를 가지고 살피면 백영희와 공회의 좌표는 2차원 3차원을 높여 가며 정밀 분석해 낼 수 있다.

이런 것이 필요한 이유는, 오늘의 나를 살피기 위해서다. 그리고 성경을 읽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된다. 만일 4~5가지를 파악하게 된다면 백영희 앞에 서서 백영희의 설교나 행정 처리를 직접 틀렸다고 대꾸할 수 있고, 그런 이의를 듣는다면 백영희는 그 자리에서 맞다! 하면서 바로 시행한다. 서부교회 주교의 출발이 그러했다. 그런 경우는 많다. 이 연구소가 백영희 하나의 주제로 집중하는 이유가 그냥 잘 알기 때문이거나 남들이 손을 대지 않은 괜찮은 주제를 하나 골라 잡은 차원이 아니다. 내심으로, 이 연구소보다 더 유리한 주제를 잡는다는 것은 어렵다는 판단이 있었다. 백영희는 실질, 실제, 실행, 실학파다.

 

2. 영미법의 실질주의

공회는 규정을 세우고 현실을 규정에 맞춰 가는 대륙법계의 형식주의가 아니라, 원칙만을 세우고 매 현실을 그 원칙에 따라 합리적으로 처리하는 영미법계의 실질주의로 보면 빠르다. 양 체계는 장단점이 있다. 2차세계 대전 때 프랑스와 독일이 대표적인 대륙법계 철학과 인생관으로 전쟁을 했다면 영국과 미국은 실질주의의 대표적인 사례다. 세상적으로는 각 민족과 단체가 자기 상황에 따라 형식주의와 실질주의를 바꿔 가면 된다. 그러나 신앙의 세계란 단호하게 실질주의다. 신앙이란 '생명성'을 본질로 하기 때문이다. 기계와 기계적 인간은 형식주의가 좋다. 인간과 인간적인 인간은 당연히 생명성을 희생하면서 해서 될 일은 없고, 더 좋다 해도 생명성을 포기할 수는 없다.

연구소 직원이 1984년 미국에서 생활을 하면서 주변에서 흔하게 들었던 말이 'You're so Americanized!'였다. 영어도 서툴고, 한국에서도 문화 혜택을 별로 접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유학생과 비교하면 이 말은 참 파격적이다. 송용조 목사님을 LA에서 겪어 본 교계 인물이 연구소 직원을 St. Louis에서 5분을 대화하면서 바로 '송용조 목사님과 꼭 같습니다.' 라며 감탄을 했었는데 송 목사님과 직원 사이는 연령으로는 부모 자녀 정도의 차이가 나고, 신앙으로는 실제 스승과 제자 관계였다. 이 표현을 인용하는 것은 공회적인 체질과 흐름을 말한다. 백영희처럼 골수 조선 체질도 없다. 그러나 그처럼 미국화가 된 인물도 없다. 미국의 장점을 두고 보면 백영희는 미국인보다 더 미국적이다. 그 것이 그의 교리, 행정, 목회, 생애로 나타 났다.

 

3. 백영희의 학위

앞에서 '학위'에 대한 기본 글을 적었다. 여기서는 백영희 평생에 단 1회, 유학생을 선발하고 파견했으며 일일이 지도 관리하고 백영희 사후까지 맡기는 과정을 소개한다. 그 1명의 사례는 백영희 식으로 보면 그 1명에 해당 된 것이 아니라 이 노선의 학위관이고 인물 관리론이기 때문이다. 그 1명 유학생이 백영희식 학위관 인물론에 맞으면 그는 백영희 노선이 만든 인물이 된다. 그 1명이 백영희식 학위관과 인물론에서 벗어 났다면? 대륙법계의 형식주의에서는 벗어났던 말았던 그는 혼자 자격증을 보유했기 때문에 그가 백영희 노선이 인정한 유일의 신학자며 후계자다. 그런데 공회는 실질주의기 때문에 그 1명이 아니라도 백영희식 학위관과 인물론을 알고 그 길을 유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1명이든 몇 명이든 그들은 전부 백영희 노선의 백영희식 학위와 인물적인 사람이 된다. 그 1명에게 백영희는 생전에 백영희 사후의 교리 체계화를 맡겼다. 1989년 5월 집회 때는 공석에서 공개 거론까지 했다. 그런데 우리는 실질주의기 때문에 그 사람이 공회 교리를 적지 않았다면, 그리고 다른 사람이 그렇게 했다면? 그렇게 실제 요약한 인물이 백영희 생전에 백영희에게 직접 부탁 받은 사람이 된다.

현재까지 그 인물은 '백영희조직신학'을 출간했다. 그 책의 내용을 두고 단순 오자 외에 교리적으로 15년이 지나지만 어느 누구도 비판하거나 반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는 1984년에 유학을 보낼 때부터 부탁한 백영희의 뜻에 맞는 사람이 되었다. 그에게 부탁했다고 해서 다른 사람은 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오늘이라도 더 낫게 더 좋은 백영희 교리를 체계화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백영희 생전에 언급한 그 1명, 그 1명이 된다. 백영희 평생의 설교가 이런 식이다. 그런데 우리 나라의 역사와 우리의 체질은 형식주의 중에서도 극단적인 형식주의다. 그래서 백영희 입에서 000 이름이 나가면 그가 불교를 말하고 천주교로 가자 해도 무조건 따라 가야 한다는 것이 총공회 교인들의 슬프고도 슬픈 사고방식이다. 물론 그들의 입은 그렇지 않다고 말을 한다. 그런데 그들이 걸어 온 지난 30년을 보면 아주 정확하게 그러하다. 서부교회 2층 강단에 올라 간 사람! 그 사람은 그 사람 스스로 백영희 후계자로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을 한다. 백영희는 그의 사후에 그의 생전의 신앙의 길을 걷는 사람이 있다면 전라도 바닷가에 혼자 있다 해도 그를 사후의 후계자로 본다. 서부교회 2층 강단에 서서 큰 소리를 아무리 쳐도 생전의 길에서 벗어 났다면 백영희는 그를 가만히 들어 온 이리로 본다. 이 기준에서 본다면 현재 서부교회 교인 전부는 서부교인들이 아니다.

 

*진행

유학의 과정은 '글3'에서 잇는다.

 

백영희 생전에 전무후무하게 단 1명을 유학 시켰다. 그가 공부한 과정은 오늘 우리에게 참고할 공회의 노선이다. 그 1명 그 자체가 노선이 아니라, 백영희는 어떤 방향 어떤 이유 어떤 과정을 거쳐 그렇게 했는가 라는 것이 노선이다. 이 것이 '공회는 명문의 별도 법을 가지지 않고 성경 하나만 법이며, 성경으로 지난 날 어떻게 처리했는지를 참고하며 새로 주시는 현실에서 모든 것을 처리한다'는 것이 '관례법'이다. 각 공회가 지금은 '관례'법을 그렇게 많이 입에 담는다. 1980년대, 심지어 1990년대까지도 이 단어에 대한 기본 이해도 없었다. 지금은 기본적으로 모두 인식이 같다고 본다. 문제는 아직도 각 공회의 행정 처리 과정을 보면 관례의 의미를 모르는 듯하다. 만일 안다면 '사례 모음'에 나서지 않을 수가 없다. 연구소만 사례 모음에 32년을 주력하고 있다. 목사님 생전부터 시작을 했으니 39년째다. 그런데 아직도 각 공회들은 타 공회 교회의 주소조차 없애 버려서 외부에서 보면 '총공회' 주소록에 자기 소속 공회 몇 교회만 '총공회'로 내놓고 있다. 그렇다면 다른 공회의 다른 교회는 '총공회 본적'에서조차 전부 제명을 해 버렸다는 뜻이다. 읍면동사무소에 가면 제명 된 인물이라 해도 '제적등본'에는 이름을 남긴다. 각 공회에는 제적의 흔적조차 없앴다.

 

너무 살벌하지 않은가?

너무 평양처럼 흔적조차 없애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그런 공회들이 입에는 꼭 '사랑'을 담고, '사람을 아껴야 한다'는 말을 한다. 이 곳을 향해.

이 곳은 자신들을 제명한 교회 이름도 꼬박꼬박 담아 30년 넘게 외부에 소개해 주고 있는데...

각 공회들이 이 곳을 향해 '머리는 똑똑한데 사람을 아끼지 않어... 말은 잘 하는데 사랑이 없어....'라는 말을 몰래 숨어 자기들끼리 한다. 그 말을 가지고 잔인한 자기들을 인정스럽게 만들고, 이 곳의 사랑과 생명 운동을 묻고 있다. 그들의 그 말이 그들을 정죄하고 있다. 그 말 자체가 그들의 양심이 그들을 찌르고 있다. 가시채를 뒷발질하는데 고생이 참 많다. 그냥 툴툴 털면서 '저희가 어떨 때는 좀 부족할 때도 있습니다.'라고 하면 족쇄를 풀고 풀풀 하늘을 자유롭게 날 분들이고, 원래 유능하니 더 높게 날 수 있는 분들인데... 그들의 2세들 그들의 후배들조차 그렇다. 그들은 선배나 1세대와 다르다는데...

이 곳의 글에 이런 푸념을 적는 실제 이유는,

고신이 공회를 향해 꼭 그러하기 때문이다.

합동이 고신을 향해 꼭 그러하기 때문이다.

 

합동이 고신보다 모든 면에서 역량이 탁월하다. 그런데 신사참배 한 사건을 덮다가 오늘까지 저렇게 죄의식 속에 산다. 고신이 공회보다 모든 면에서 탁월하다. 그런데 백영희 제명 하나를 덮느라고 저런 우습고 요상한 상태다. 총공회 내부도 그렇다. 그렇게 위대한 인물이 다 모였다 하는 대구공회와 부산공회2가 질 이유도 필요도 없는 멍에를 스스로 걸머지고 오르지 못할 곳을 등산하고 있다. 알고 보면 우리의 평생이 자기와의 싸움이다. 자기 속에 꺾어야 할 자기 하나를 우리 모두 이런 식으로 털어 내지 못해 그렇다. 나를 돌아 보며 적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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