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선교 역사의 양면 (3) : 왜 흑인 선교사는 단 1명도 없었는가?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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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30 18:42
이 곳의 글은 연속으로 적히니 오해 소지가 없을 터이나, 글을 목록 별로 따로 인용하면 왜곡이 될 수 있어 반복이 일부 된다 해도 필요한 내용은 다시 적는다. 선교사에 대한 한국 교회의 감사는 끝없는 찬양으로 나가는 것이 맞다. 다만 그 때 그들의 몇몇 약점을 살펴 오늘 우리가 다른 나라를 선교할 때 참고하고 또 반복이 되는 역사를 통해 오늘 우리를 돌아 보자는 뜻이다.
(한국의 선교사와 미국의 노예 해방 전쟁)
해방 이전에 한국에 온 선교사는 총 1,500여명에 이른다는 통계가 있다. 장로교가 690명, 감리교가 430명, 구세준이 125명 정도로 집계 된다고 한다. 내 기억에 이들 중 흑인은 1명도 없다. 구한 말과 일제 때 선교사들은 그들의 부모가 대부분 남북 전쟁을 겪었다. 초기 선교사들의 출생이 1860년대에서 1870년대에 걸쳐 있다. 노예 해방 전쟁은 1861-65년이다. 이들의 부모는 총을 들고 싸웠다는 뜻이 된다. 남장로교 측은 노예 해방을 반대하여 목숨을 걸고 싸웠다. 당시 양측의 감정은 많은 기록을 통해 극단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북장로교 측은 노예 해방을 하자며 총을 들고 남 장로교 목사의 가정들을 향해 전쟁을 했다.
5년의 미국 내전 기간 통계는 대략 이렇다.
북부 인구 2,200만명, 남부 인구 900만명
북부는 군인 212만명, 남부 군인 108만명
북부 총 전사 36만명, 남부 전사자 25만명으로 전사자만 618,222명으로 집계 되고 있다.
전쟁이 너무 치열했고 서로 민간인까지 학살하면서 감정은 극단적으로 치달아 남북이 한 나라가 되는데 약 100년이 걸렸다고 한다. 적어도 전쟁 후 불과 20년 후부터 한국의 선교가 시작 되었으니 남장로교와 북장로교가 감정적으로 하나 될 상황은 아니라 보인다. 특히 신앙적으로 남부는 정통 보수 신앙이고 북쪽은 신앙이 넓은 자유주의다. 그런 신앙적인 분위기 때문에 미국의 내전은 골이 깊을 수밖에 없었다.
(북장로교회에 질문한다.)
한국에 온 선교사들은 할아버지나 아버지로 내려 오는 미국의 기독교 가정의 분위기에 젖은 이들이다. 노예를 해방해야 한다고 총을 들었던 북장로교 선교사들의 부모들과 그 부모들이 목회자나 교인으로 활동했던 교회가 남북 전쟁이 끝난 뒤 20여년이 지나자 한국에 선교사들을 파견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왜 북장로교회는 흑인 목사님을 1명도 한국에 파견하지 않았을까? 한국은 미국과 달리 흑인을 이상하게 볼 지언정 미국 처럼 차별하는 곳이 아니다. 한국의 선교는 1884년부터 시작 되었고 미국의 내전이 끝난 지 50년이 지났을 1910년대에도 일본 총독부는 미국 출신 선교사들에게는 온갖 혜택을 제공했다. 미국과 일본이 동맹이었기 때문이고 일본은 아직도 미국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고 있었다.
미국의 남북전쟁이 끝난 지 70년이 지나던 1930년대 중반까지도 한국에 나온 미국 선교사들은 선교활동에 불편이 없었다. 그런데 왜 노예 해방을 위해 전쟁을 치르고 수 많은 미국인들이 죽었는데 노예 해방을 그토록 주장했던 미국의 북장로교회가 흑인을 차별하지 않는 한국에 왜 단 1명의 흑인 선교사도 파견하지 않았을까? 20세기 초반까지도 미국 내 흑인들이 복음을 받지 않고 버텨서 그랬을까? 그렇다면 미국의 북장로교회는 한국까지 선교사를 내보내기 전에 미국 내 흑인들에게 선교를 하기 위해 더욱 주력해야 하지 않았을까?
(남장로교회에 질문한다.)
미국 내에서 북장로교가 자유주의 신학으로 타락을 했기 때문에 함께 교회를 유지할 수 없어 남장로교는 결별했다. 그들은 한국에 선교사를 보낼 때 북장로교와 협력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선교부를 파송했다. 한국에 온 미남장로교회는 그들의 선교 역사를 기록하며 오늘까지 소개할 때 그들은 일본의 신사참배에 대하여 가장 강하게 반대했다는 점을 늘 강조한다. 오늘 그들의 후예들이 순천노회가 중심이 되어 있고 통합 교단의 주류가 되어 미국 남장로교회의 당시 입장을 강조하는 중이다.
한국에 나온 미국 남장로교회 선교사들은 그들의 부모가 남북전쟁 때 노예를 해방하지 말아야 한다고 총을 든 남부에 속한 이들이다. 그들은 남부 안에서 남부군의 노예 유지 정책과 이를 위해 링컨에게 총을 들고 싸울 때 반대를 했을까, 아니면 남부군의 입장을 지지했고 참전까지 했을까? 일단 한국에 나온 남장로교 선교부의 선교사들을 소개하는 글들은 많아도 그들의 가정 내력이나 부모의 신앙 내력에서 남북전쟁 때 남부 안에서 노예 해방을 부르짖다가 박해를 받았다는 글을 아직 접해 본 적이 없다. 만일 그렇게 했다면 남북전쟁이 끝난 뒤에는 적어도 그런 행적이 알려 지지 않을 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미국 안에서 그렇게 하던 분들이 한국에 와서 한국 교회에게 양반과 상민의 차별을 철폐하자고 말을 했다면 이해가 된다. 여자와 거지와 백정을 차별하지 말라고 가르쳤다면 그 것은 이해가 된다. 만일 미국 내에서 노예제를 지지하고 노예제에 익숙했던 생활을 하다가 한국에 와서 한국 사람들에게 백정이나 상민을 차별하지 말라고 가르쳤다면,
우리는 바른 복음을 가르쳐 준 것은 감사하되 그들의 미국 내 언행에 대해서는 고민해 보지 않을 수가 없다. 그 누구도 자기와 자기 과거를 완벽하게 만들고 나서 남을 위해 전도에 나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를 끝없이 고쳐 가면서 남을 고친다. 나의 지난 날이 부족하고 이 것이 억울하기 때문에 선교지에 와서 한국 교회의 오늘에 부족함을 최대한 고쳐서 한국 교회의 미래는 부족한 과거를 한탄하지 않게 한다면 이해가 된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백정보다 더 흑인을 천대하는 생활을 하면서 한국에 와서 한국 사람에게는 서로 차별하지 말라 한다면 심각한 내부 모순이 된다.
미국 남장로교의 순천 선교부는 손양원 가족들과 고려파 신앙인들에게 신사참배 문제 때문에 한국 교회가 분열 되면 안 된다고 그토록 교회 통합을 요구했다. 손양원 가족들이 진리 문제기 때문에 함께 갈 수 없다고 하자 애양원 조직을 통해 손양원 가족을 일제 때보다 더 매몰차게 몰아 세웠다. 마치 미국의 남부에서 백인 주인이 흑인을 상대할 때 기본적으로 억압적이고 무조건적이었던 그런 분위기를 느낀다. 애양원 직원들도 그런 증언을 남기고 있다. 손양원 가족의 개척에 교인으로 합류했던 분들은 물론 애양원 내에서 선교부 편에 섰던 이들도 당시 분위기에 대해서는 모두 일치한다. 왜 미국에서는 남장로교회가 북장로교회와 분리하고, 왜 한국 교회에게는 분리를 극구 막고 나섰을까? 모국의 분리가 틀렸으나 모국의 장로교 총회를 통합하는 데 역량은 없어 한탄하던 선교사들이 한국의 교회를 길러 놓고 이 한국의 교회가 미국의 모국 교회가 잘못 된 분열을 답습할까 부모 된 입장으로 비통하게 그리고 전심을 다해 막은 것일까?
만일 그렇다면 한국의 선교부는 미국의 모 교단의 잘못 된 분열에 대하여 어떤 단체 행동을 했거나 의견이라도 표시를 했을까? 아직 그런 글을 접한 적이 없다. 이 부분은 따로 깊이 살펴 보지 않았다. 누가 이 분야를 살피고 자료를 준다면 잘 배우겠다. 아무리 살펴 봐도 내가 대충 짐작한 이런 우려가 사실이라면 우리는 미국의 선교를 지극히 감사하면서도 미국의 선교사들이 한국 교회를 향해 보였던 문제점을 살펴, 우리가 세계를 선교할 때 또는 우리가 다른 사람을 지도할 때, 최소한 미국의 선교사들이 우리를 위해 수고하던 때보다는 나아 져야 하지 않을까?
최근 좌파 정권의 본질적인 모습들이 연일 드러 나고 있다.
좌파의 주장은 우파 보수 정권이 나라에 돈과 발전을 이룬 장점과 함께 부정 부패의 죄인들이라고 비판을 했다.
좌파는 가난하고 실력은 없으나 양심과 양식이 있다고 주장해 왔는데 알고 보니 이들은 그 때부터 도적들이었다.
그리고 3번째 정권을 잡는 과정에 이제 그들이 정권을 잡았을 때의 내면까지 다 드러나고 있다. 이들은 실력도 없고 돈은 쓸 줄만 알고, 그런데 도덕적으로 법적으로 인간적으로 부정과 부패와 불법과 부당은 더 심하다. 그렇다 해도 교회는 세상의 좌우에 발을 담그지 않는다. 그냥 물 건너 불 구경을 하는 정도다. 문제는 이런 일들을 보며 우리는 세상에게 천국을 소개한다고 말해 왔는데 실제로는 우리 속에 세상만 그득하지 천국은 처음부터 관심도 없었던 것이 아닐까?
한국에 복음을 전하러 왔고 그들은 우리에게 차별 없는 사랑을 전한다고 했는데 그들은 고향에서 백인 우월주의를 부정하지 않고, 천민의 한국에 와서 불쌍한 사람에게 베풀고 간 고귀한 사람의 신분을 유지한 것은 아닐까? 한부선 선교사처럼 한국 사람보다 더 한국 사람으로 살다간 선교사도 있다. 그의 사위도 한국 사람이다. 그런데 높은 곳을 유지하면서 자기가 낮은 곳에 와서 두루 살피고 가면서 끝끝내 높은 사람의 자부심을 버리지는 못하고 간 분들은 얼마나 될까? 많지는 않을까? 오늘 한국의 선교사들이 해외에 갈 때 나는 그들의 심리 바탕을 늘 생각해 본다. 나는 지원조차 하지 못했고 나에게는 기회조차 주어 지지 않은 성역을 향해 자기 몸을 던지는 이들, 그들의 이름이 선교사다. 그런데 그들이 100년 전에 미국 선교사들이 우리에게 올 때보다는 오늘 우리가 해외에 나가는 자세나 기본이 조금은 더 나아 져야 하지 않을까?
해외 무역에 나서는 이들이 현지의 사업을 위해 현지화만큼 중요한 전략은 없다고 한다. 그들은 돈을 위해 그렇다. 세계 제2위 선교국이라는 한국, 실제 내용으로 보면 세계 제1의 선교국이 된 우리 한국 교회, 그들의 국내 상황과 선교지에서의 언행은 어떤가, 그리고 선교지에 나가 본 적도 없이 사는 대부분의 우리들, 우리 공회 교인들은, 내가 남에게 강조하는 것이 있을 때 그 것을 나는 어떻게 속으로 대하는지 먼저 살펴 봐야 하지 않을까...
(한국의 선교사와 미국의 노예 해방 전쟁)
해방 이전에 한국에 온 선교사는 총 1,500여명에 이른다는 통계가 있다. 장로교가 690명, 감리교가 430명, 구세준이 125명 정도로 집계 된다고 한다. 내 기억에 이들 중 흑인은 1명도 없다. 구한 말과 일제 때 선교사들은 그들의 부모가 대부분 남북 전쟁을 겪었다. 초기 선교사들의 출생이 1860년대에서 1870년대에 걸쳐 있다. 노예 해방 전쟁은 1861-65년이다. 이들의 부모는 총을 들고 싸웠다는 뜻이 된다. 남장로교 측은 노예 해방을 반대하여 목숨을 걸고 싸웠다. 당시 양측의 감정은 많은 기록을 통해 극단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북장로교 측은 노예 해방을 하자며 총을 들고 남 장로교 목사의 가정들을 향해 전쟁을 했다.
5년의 미국 내전 기간 통계는 대략 이렇다.
북부 인구 2,200만명, 남부 인구 900만명
북부는 군인 212만명, 남부 군인 108만명
북부 총 전사 36만명, 남부 전사자 25만명으로 전사자만 618,222명으로 집계 되고 있다.
전쟁이 너무 치열했고 서로 민간인까지 학살하면서 감정은 극단적으로 치달아 남북이 한 나라가 되는데 약 100년이 걸렸다고 한다. 적어도 전쟁 후 불과 20년 후부터 한국의 선교가 시작 되었으니 남장로교와 북장로교가 감정적으로 하나 될 상황은 아니라 보인다. 특히 신앙적으로 남부는 정통 보수 신앙이고 북쪽은 신앙이 넓은 자유주의다. 그런 신앙적인 분위기 때문에 미국의 내전은 골이 깊을 수밖에 없었다.
(북장로교회에 질문한다.)
한국에 온 선교사들은 할아버지나 아버지로 내려 오는 미국의 기독교 가정의 분위기에 젖은 이들이다. 노예를 해방해야 한다고 총을 들었던 북장로교 선교사들의 부모들과 그 부모들이 목회자나 교인으로 활동했던 교회가 남북 전쟁이 끝난 뒤 20여년이 지나자 한국에 선교사들을 파견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왜 북장로교회는 흑인 목사님을 1명도 한국에 파견하지 않았을까? 한국은 미국과 달리 흑인을 이상하게 볼 지언정 미국 처럼 차별하는 곳이 아니다. 한국의 선교는 1884년부터 시작 되었고 미국의 내전이 끝난 지 50년이 지났을 1910년대에도 일본 총독부는 미국 출신 선교사들에게는 온갖 혜택을 제공했다. 미국과 일본이 동맹이었기 때문이고 일본은 아직도 미국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고 있었다.
미국의 남북전쟁이 끝난 지 70년이 지나던 1930년대 중반까지도 한국에 나온 미국 선교사들은 선교활동에 불편이 없었다. 그런데 왜 노예 해방을 위해 전쟁을 치르고 수 많은 미국인들이 죽었는데 노예 해방을 그토록 주장했던 미국의 북장로교회가 흑인을 차별하지 않는 한국에 왜 단 1명의 흑인 선교사도 파견하지 않았을까? 20세기 초반까지도 미국 내 흑인들이 복음을 받지 않고 버텨서 그랬을까? 그렇다면 미국의 북장로교회는 한국까지 선교사를 내보내기 전에 미국 내 흑인들에게 선교를 하기 위해 더욱 주력해야 하지 않았을까?
(남장로교회에 질문한다.)
미국 내에서 북장로교가 자유주의 신학으로 타락을 했기 때문에 함께 교회를 유지할 수 없어 남장로교는 결별했다. 그들은 한국에 선교사를 보낼 때 북장로교와 협력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선교부를 파송했다. 한국에 온 미남장로교회는 그들의 선교 역사를 기록하며 오늘까지 소개할 때 그들은 일본의 신사참배에 대하여 가장 강하게 반대했다는 점을 늘 강조한다. 오늘 그들의 후예들이 순천노회가 중심이 되어 있고 통합 교단의 주류가 되어 미국 남장로교회의 당시 입장을 강조하는 중이다.
한국에 나온 미국 남장로교회 선교사들은 그들의 부모가 남북전쟁 때 노예를 해방하지 말아야 한다고 총을 든 남부에 속한 이들이다. 그들은 남부 안에서 남부군의 노예 유지 정책과 이를 위해 링컨에게 총을 들고 싸울 때 반대를 했을까, 아니면 남부군의 입장을 지지했고 참전까지 했을까? 일단 한국에 나온 남장로교 선교부의 선교사들을 소개하는 글들은 많아도 그들의 가정 내력이나 부모의 신앙 내력에서 남북전쟁 때 남부 안에서 노예 해방을 부르짖다가 박해를 받았다는 글을 아직 접해 본 적이 없다. 만일 그렇게 했다면 남북전쟁이 끝난 뒤에는 적어도 그런 행적이 알려 지지 않을 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미국 안에서 그렇게 하던 분들이 한국에 와서 한국 교회에게 양반과 상민의 차별을 철폐하자고 말을 했다면 이해가 된다. 여자와 거지와 백정을 차별하지 말라고 가르쳤다면 그 것은 이해가 된다. 만일 미국 내에서 노예제를 지지하고 노예제에 익숙했던 생활을 하다가 한국에 와서 한국 사람들에게 백정이나 상민을 차별하지 말라고 가르쳤다면,
우리는 바른 복음을 가르쳐 준 것은 감사하되 그들의 미국 내 언행에 대해서는 고민해 보지 않을 수가 없다. 그 누구도 자기와 자기 과거를 완벽하게 만들고 나서 남을 위해 전도에 나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를 끝없이 고쳐 가면서 남을 고친다. 나의 지난 날이 부족하고 이 것이 억울하기 때문에 선교지에 와서 한국 교회의 오늘에 부족함을 최대한 고쳐서 한국 교회의 미래는 부족한 과거를 한탄하지 않게 한다면 이해가 된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백정보다 더 흑인을 천대하는 생활을 하면서 한국에 와서 한국 사람에게는 서로 차별하지 말라 한다면 심각한 내부 모순이 된다.
미국 남장로교의 순천 선교부는 손양원 가족들과 고려파 신앙인들에게 신사참배 문제 때문에 한국 교회가 분열 되면 안 된다고 그토록 교회 통합을 요구했다. 손양원 가족들이 진리 문제기 때문에 함께 갈 수 없다고 하자 애양원 조직을 통해 손양원 가족을 일제 때보다 더 매몰차게 몰아 세웠다. 마치 미국의 남부에서 백인 주인이 흑인을 상대할 때 기본적으로 억압적이고 무조건적이었던 그런 분위기를 느낀다. 애양원 직원들도 그런 증언을 남기고 있다. 손양원 가족의 개척에 교인으로 합류했던 분들은 물론 애양원 내에서 선교부 편에 섰던 이들도 당시 분위기에 대해서는 모두 일치한다. 왜 미국에서는 남장로교회가 북장로교회와 분리하고, 왜 한국 교회에게는 분리를 극구 막고 나섰을까? 모국의 분리가 틀렸으나 모국의 장로교 총회를 통합하는 데 역량은 없어 한탄하던 선교사들이 한국의 교회를 길러 놓고 이 한국의 교회가 미국의 모국 교회가 잘못 된 분열을 답습할까 부모 된 입장으로 비통하게 그리고 전심을 다해 막은 것일까?
만일 그렇다면 한국의 선교부는 미국의 모 교단의 잘못 된 분열에 대하여 어떤 단체 행동을 했거나 의견이라도 표시를 했을까? 아직 그런 글을 접한 적이 없다. 이 부분은 따로 깊이 살펴 보지 않았다. 누가 이 분야를 살피고 자료를 준다면 잘 배우겠다. 아무리 살펴 봐도 내가 대충 짐작한 이런 우려가 사실이라면 우리는 미국의 선교를 지극히 감사하면서도 미국의 선교사들이 한국 교회를 향해 보였던 문제점을 살펴, 우리가 세계를 선교할 때 또는 우리가 다른 사람을 지도할 때, 최소한 미국의 선교사들이 우리를 위해 수고하던 때보다는 나아 져야 하지 않을까?
최근 좌파 정권의 본질적인 모습들이 연일 드러 나고 있다.
좌파의 주장은 우파 보수 정권이 나라에 돈과 발전을 이룬 장점과 함께 부정 부패의 죄인들이라고 비판을 했다.
좌파는 가난하고 실력은 없으나 양심과 양식이 있다고 주장해 왔는데 알고 보니 이들은 그 때부터 도적들이었다.
그리고 3번째 정권을 잡는 과정에 이제 그들이 정권을 잡았을 때의 내면까지 다 드러나고 있다. 이들은 실력도 없고 돈은 쓸 줄만 알고, 그런데 도덕적으로 법적으로 인간적으로 부정과 부패와 불법과 부당은 더 심하다. 그렇다 해도 교회는 세상의 좌우에 발을 담그지 않는다. 그냥 물 건너 불 구경을 하는 정도다. 문제는 이런 일들을 보며 우리는 세상에게 천국을 소개한다고 말해 왔는데 실제로는 우리 속에 세상만 그득하지 천국은 처음부터 관심도 없었던 것이 아닐까?
한국에 복음을 전하러 왔고 그들은 우리에게 차별 없는 사랑을 전한다고 했는데 그들은 고향에서 백인 우월주의를 부정하지 않고, 천민의 한국에 와서 불쌍한 사람에게 베풀고 간 고귀한 사람의 신분을 유지한 것은 아닐까? 한부선 선교사처럼 한국 사람보다 더 한국 사람으로 살다간 선교사도 있다. 그의 사위도 한국 사람이다. 그런데 높은 곳을 유지하면서 자기가 낮은 곳에 와서 두루 살피고 가면서 끝끝내 높은 사람의 자부심을 버리지는 못하고 간 분들은 얼마나 될까? 많지는 않을까? 오늘 한국의 선교사들이 해외에 갈 때 나는 그들의 심리 바탕을 늘 생각해 본다. 나는 지원조차 하지 못했고 나에게는 기회조차 주어 지지 않은 성역을 향해 자기 몸을 던지는 이들, 그들의 이름이 선교사다. 그런데 그들이 100년 전에 미국 선교사들이 우리에게 올 때보다는 오늘 우리가 해외에 나가는 자세나 기본이 조금은 더 나아 져야 하지 않을까?
해외 무역에 나서는 이들이 현지의 사업을 위해 현지화만큼 중요한 전략은 없다고 한다. 그들은 돈을 위해 그렇다. 세계 제2위 선교국이라는 한국, 실제 내용으로 보면 세계 제1의 선교국이 된 우리 한국 교회, 그들의 국내 상황과 선교지에서의 언행은 어떤가, 그리고 선교지에 나가 본 적도 없이 사는 대부분의 우리들, 우리 공회 교인들은, 내가 남에게 강조하는 것이 있을 때 그 것을 나는 어떻게 속으로 대하는지 먼저 살펴 봐야 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