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양원의 '방역 위반' 행위 - 사랑의 표상인가, 지탄 받을 반사회적 행위인가?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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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2 13:52
연초에 불어 닥친 중국폐렴, 어떤 이들은 코로나19라고 한다.
전염이 되는 질환은 국가가 방역법과 체계로 막는다. 올해 갑자기 전 국민이 방역 때문에 실생활을 통해 출퇴근과 등하교와 일상생활을 어느 지경까지 통제를 당하는지 느끼고 있다. 교회조차 문을 닫으라고 난리다. 손양원을 문득 떠올려 본다. 이 분은 전염병 중에 가장 무서워 하는 한센병의 방역법을 평생 어기고 살았다. 지금은 소록도와 애양원을 아무나 제한 없이 드나 든다. 원래 이 곳은 강제수용소처럼 철책이 있고 외부 출입은 법으로 통제를 했다. 애양원의 운영에 필요한 목사, 의료 및 운영 직원만 들어 갈 수 있다. 그 가족도 출입 금지다.
손 목사님은 일제 때 신사참배 때문으로만 총독부에 맞선 것이 아니다. 일제 때 방역법이 있었으나 애양원을 손 목사님은 목사로서 예배 때만 출입한 것이 아니다. 집집마다 마음대로 다녔다. 밤낮 없이 시도 때도 없었다. 환자를 접촉할 때도 원칙이 있으나 손 목사님은 얼싸 안고 비비는 분이다. 출입이 허용 된다 해도 금지 되는 행위다. 심지어 사택 가족들도 그렇게 출입을 했다. 심지어 일반 마을 분들까지 애양원 내의 예배에 참석을 시켰다. 모두 불법이었다. 방역법 위반이다. 국가가 가장 많은 예산을 쏟아 부으며 대처하고 있었지만 손 목사님은 평생 방역법을 어겼다. 그런데 국가는 손양원의 이런 행위에 대하여 국가적으로 예산을 투입하고 손양원 이름으로 기념공원까지 만들며 칭송하고 있다. 여수에 130억원의 국고, 경남 함안에 수십억원의 국고를 투입해서 1인의 기념관을 2곳에 운영한다.
동일 목적의 동일 사업은 동일 법인 인가를 거부한다. 손양원 기념사업의 법인은 현재 전국에 몇개인지 모른다. 정확히 아는 것은 최하 3개가 넘는다. 손양원 이름이 붙으면 무더기로 문화재가 된다. 불신 사회까지도 환호를 한다. 손 목사님이 방역법을 철저하게 지켰더라면 이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이 글은 최근 코로나19 때문에 사상 유례 없이 교회의 문을 닫고 교인들의 소모임을 모두 금지 시키며, 이를 어길 때는 무한 책임을 지우고 언론에 도배를 해 버려 종교 단체로서 사실상 치명상을 입게 만든다. 한센병, 나환자라는 더 무서운 전염병을 막는 방역법을 평생 어기고 집단으로 정기적으로 또한 몰래 개인적으로 소모임을 가지며 뒤엉켜 붙어 다닌 것은 국가가 자자손손 기리며 칭송하며 비기독교인들까지 본을 받으라 한다. 코로나19란, 매년 수천 명씩 죽는 흔하고 흔한 독감에 폐렴에 비교하면 그보다 그리 무서워 보이지도 않는다. 선진국 스웨덴 같은 선진국은 전 국민이 코로나를 한 번 접해 버리면 약 없이도 해결이 된다며 맞서고 있다. 지금은 오로지 코로나19만이 죽음의 사자로 모두가 겁을 낸다. 교통사고 사망이 한 해에 수천 명이 넘고, 암으로 죽는 사람은 부지기수며, 심혈관 등등으로 사망과 위험을 따지자면 한도 없다.
그러나 한센병의 역사를 아는 사람은 이런 코로나부터 교통사고나 무슨 병 무슨 병이라 해도 한센병에 비교하지는 않는다. 그 전염은 사람들을 거의 공포에 몰아 넣었다. 그래서 이 나라 건국 이후에 최초의 복지제도는 장애인이 아니고 노인도 아니며 한센병 시설이었다. 그 역사가 그렇게 오래인 이유가 바로 그 전염의 치명적인 문제 때문이다. 손양원의 한센병에 대한 언행을 가지고 오늘 우리 사회와 우리 신앙의 사람들에게 한 번 생각해 볼 기회를 가져 보도록 발언을 하고 싶다. 손양원이 그렇게 악하고 나쁜 사람이었던가? 손양원이 그렇게 아름답고 훌륭한 사람이었던가? 오늘 코로나19 현실에 그 분이 목회를 하고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얼마나 오늘을 두고 웃었을까, 코로나19는 나병이라는 한센병보다 훨씬 극심하니 전부 꼼짝 말라고 했을까....
이 글을 위해 몇 가지 통계를 제시한다.
온 나라와 세계가 난리다. 이유는 '전파성' 때문이다. 감염이 될 수 있으니 교육부가 개학을 미루고 전국 학교를 휴학 조처하면서 교회도 전부 문을 닫으라고 난리다. 얼마나 전파가 무서운가? 1000명이 걸리면 2명이 죽는다며 치사율 0.2%라고 한다. 998명은 그냥 독감에 고생하는 정도다. 8월 12일, 방금 나온 정부 보고를 보니 '확진 14,714명' '사망 305명'이다. 이 중에 교회 출석 때문에 전파 된 것은 7월 기준으로 0.0051%라 한다.
교회를 작정하고 탄압하려는 바람에 초교파적으로 단결해서 정부를 성토하고 있다. 명백한 기독교 탄압이라 한다. 정부는 정말 감염 때문에 그런 것이라며 방역 지침을 위반하면 반사회적 반국가적 반민족적 행위로 처벌하겠다면서 특단의 조처를 발표하고 있다.
연구소는 손양원 목사님이 순교하신 가족들이 애양원 대문 앞에 개척을 한 신풍교회가 1989년부터 운영했다. 2015년부터는 새 예배당을 만들며 구 예배당을 연구소로 내 주었다. 감사하다. 역사를 짚는 이유는 1924년에 신풍 마을에 신풍교인 할아버지들이 신풍 교회를 시작했는데 1년이 지난 1925년에 민주 인권의 세계적 성지 광주의 시민들이 광주에 있던 애양원만은 허용할 수가 없다고 감염 위험 때문에 총독부와 싸워 가며 광주에서 밀어 냈다. 그렇게 밀려 온 곳이 신풍이다. 그리고 신풍은 이후로 소리 없이 가정마다 한센병자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런 질환은 시골의 그 가문 전체가 결혼까지 막힐 수 있어 그런 가족을 소리 없이 멀리 보냈고 주변에 극비에 붙였다. 그런데 세월이 많이 지났고 이제는 대략 그런 사례들이 드러 나고 있다. 지금 와서 되돌아 보니 광주시민들은 일제 그 때부터 이 감염의 위험을 잘 알았던 것이다. 이 나라 전부와 신풍은 지금이야 감염에 대해 알게 되었지만 당시는 몰랐다. 그래서 그런 시설이 신풍에 올 때 신풍은 단 1명도 반대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세계 제일의 인권과 민주의 성지 광주보다 신풍은 훨씬 인권과 민주의 성지가 되어야 할 듯하다. 광주는 왜 신풍으로 그들이 싫어 하는 시설을 보냈을까? 지금까지 풀지 못한 과제다.
1939년에 손양원 가족이 애양원에 부임을 했다. 신풍 교회로 온 것이다. 경남에서 교회를 맡을 때도 전도인으로 다닐 때도 손양원 조사님은 나환자를 가족처럼 대한 분이다. 애양원에 부임하면서 손 목사님이 생활 속에서 보인 행동은 인류 사랑도 아니고, 누구에게 선전하기 위해서도 아니며, 광주시민들처럼 민주화나 인권 운동도 아니었다. 주님 날 위해 죽으신 그 대속의 사활에 감사하여 환자들을 극진히 돌아 봤다. 목격자가 없어 논란이 제기 되고 있지만 환자의 고름을 입으로 빨아 냈다는 분이다. 분명한 것은 손 목사님은 그럴 기회가 있다면 그렇게 하는 분이다. 그 이상도 하는 분이다. 나는, 같은 환자들을 평생 돌보던 분에게 60여년 전부터 들어 온 이야기가 있다. 그 쪽 시설은 그들 내부의 정통한 이야기들이 있다. 일반 사회는 잘 모른다. 손 목사님은 환자가 되지 않으니 환자들이 쌓는 마음의 벽을 넘지 못하겠다며 환자가 되었으면 했다는 분이다. 그리고도 남을 분이다.
역사와 비교하고, 다른 말씀과 비교하고, 다른 사람과 다른 사건과 비교를 하다 보면
이해와 대처의 역량이 넓어 진다고 본다. 그래서 공회는 역사를 2번째로 강조한다. 또 만사 따져 보라고 가르친다. 여기서 나온 것이 법학이다. 따져 비교해서 더 나은 것을 1번으로 강조한다.
전염이 되는 질환은 국가가 방역법과 체계로 막는다. 올해 갑자기 전 국민이 방역 때문에 실생활을 통해 출퇴근과 등하교와 일상생활을 어느 지경까지 통제를 당하는지 느끼고 있다. 교회조차 문을 닫으라고 난리다. 손양원을 문득 떠올려 본다. 이 분은 전염병 중에 가장 무서워 하는 한센병의 방역법을 평생 어기고 살았다. 지금은 소록도와 애양원을 아무나 제한 없이 드나 든다. 원래 이 곳은 강제수용소처럼 철책이 있고 외부 출입은 법으로 통제를 했다. 애양원의 운영에 필요한 목사, 의료 및 운영 직원만 들어 갈 수 있다. 그 가족도 출입 금지다.
손 목사님은 일제 때 신사참배 때문으로만 총독부에 맞선 것이 아니다. 일제 때 방역법이 있었으나 애양원을 손 목사님은 목사로서 예배 때만 출입한 것이 아니다. 집집마다 마음대로 다녔다. 밤낮 없이 시도 때도 없었다. 환자를 접촉할 때도 원칙이 있으나 손 목사님은 얼싸 안고 비비는 분이다. 출입이 허용 된다 해도 금지 되는 행위다. 심지어 사택 가족들도 그렇게 출입을 했다. 심지어 일반 마을 분들까지 애양원 내의 예배에 참석을 시켰다. 모두 불법이었다. 방역법 위반이다. 국가가 가장 많은 예산을 쏟아 부으며 대처하고 있었지만 손 목사님은 평생 방역법을 어겼다. 그런데 국가는 손양원의 이런 행위에 대하여 국가적으로 예산을 투입하고 손양원 이름으로 기념공원까지 만들며 칭송하고 있다. 여수에 130억원의 국고, 경남 함안에 수십억원의 국고를 투입해서 1인의 기념관을 2곳에 운영한다.
동일 목적의 동일 사업은 동일 법인 인가를 거부한다. 손양원 기념사업의 법인은 현재 전국에 몇개인지 모른다. 정확히 아는 것은 최하 3개가 넘는다. 손양원 이름이 붙으면 무더기로 문화재가 된다. 불신 사회까지도 환호를 한다. 손 목사님이 방역법을 철저하게 지켰더라면 이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이 글은 최근 코로나19 때문에 사상 유례 없이 교회의 문을 닫고 교인들의 소모임을 모두 금지 시키며, 이를 어길 때는 무한 책임을 지우고 언론에 도배를 해 버려 종교 단체로서 사실상 치명상을 입게 만든다. 한센병, 나환자라는 더 무서운 전염병을 막는 방역법을 평생 어기고 집단으로 정기적으로 또한 몰래 개인적으로 소모임을 가지며 뒤엉켜 붙어 다닌 것은 국가가 자자손손 기리며 칭송하며 비기독교인들까지 본을 받으라 한다. 코로나19란, 매년 수천 명씩 죽는 흔하고 흔한 독감에 폐렴에 비교하면 그보다 그리 무서워 보이지도 않는다. 선진국 스웨덴 같은 선진국은 전 국민이 코로나를 한 번 접해 버리면 약 없이도 해결이 된다며 맞서고 있다. 지금은 오로지 코로나19만이 죽음의 사자로 모두가 겁을 낸다. 교통사고 사망이 한 해에 수천 명이 넘고, 암으로 죽는 사람은 부지기수며, 심혈관 등등으로 사망과 위험을 따지자면 한도 없다.
그러나 한센병의 역사를 아는 사람은 이런 코로나부터 교통사고나 무슨 병 무슨 병이라 해도 한센병에 비교하지는 않는다. 그 전염은 사람들을 거의 공포에 몰아 넣었다. 그래서 이 나라 건국 이후에 최초의 복지제도는 장애인이 아니고 노인도 아니며 한센병 시설이었다. 그 역사가 그렇게 오래인 이유가 바로 그 전염의 치명적인 문제 때문이다. 손양원의 한센병에 대한 언행을 가지고 오늘 우리 사회와 우리 신앙의 사람들에게 한 번 생각해 볼 기회를 가져 보도록 발언을 하고 싶다. 손양원이 그렇게 악하고 나쁜 사람이었던가? 손양원이 그렇게 아름답고 훌륭한 사람이었던가? 오늘 코로나19 현실에 그 분이 목회를 하고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얼마나 오늘을 두고 웃었을까, 코로나19는 나병이라는 한센병보다 훨씬 극심하니 전부 꼼짝 말라고 했을까....
이 글을 위해 몇 가지 통계를 제시한다.
온 나라와 세계가 난리다. 이유는 '전파성' 때문이다. 감염이 될 수 있으니 교육부가 개학을 미루고 전국 학교를 휴학 조처하면서 교회도 전부 문을 닫으라고 난리다. 얼마나 전파가 무서운가? 1000명이 걸리면 2명이 죽는다며 치사율 0.2%라고 한다. 998명은 그냥 독감에 고생하는 정도다. 8월 12일, 방금 나온 정부 보고를 보니 '확진 14,714명' '사망 305명'이다. 이 중에 교회 출석 때문에 전파 된 것은 7월 기준으로 0.0051%라 한다.
교회를 작정하고 탄압하려는 바람에 초교파적으로 단결해서 정부를 성토하고 있다. 명백한 기독교 탄압이라 한다. 정부는 정말 감염 때문에 그런 것이라며 방역 지침을 위반하면 반사회적 반국가적 반민족적 행위로 처벌하겠다면서 특단의 조처를 발표하고 있다.
연구소는 손양원 목사님이 순교하신 가족들이 애양원 대문 앞에 개척을 한 신풍교회가 1989년부터 운영했다. 2015년부터는 새 예배당을 만들며 구 예배당을 연구소로 내 주었다. 감사하다. 역사를 짚는 이유는 1924년에 신풍 마을에 신풍교인 할아버지들이 신풍 교회를 시작했는데 1년이 지난 1925년에 민주 인권의 세계적 성지 광주의 시민들이 광주에 있던 애양원만은 허용할 수가 없다고 감염 위험 때문에 총독부와 싸워 가며 광주에서 밀어 냈다. 그렇게 밀려 온 곳이 신풍이다. 그리고 신풍은 이후로 소리 없이 가정마다 한센병자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런 질환은 시골의 그 가문 전체가 결혼까지 막힐 수 있어 그런 가족을 소리 없이 멀리 보냈고 주변에 극비에 붙였다. 그런데 세월이 많이 지났고 이제는 대략 그런 사례들이 드러 나고 있다. 지금 와서 되돌아 보니 광주시민들은 일제 그 때부터 이 감염의 위험을 잘 알았던 것이다. 이 나라 전부와 신풍은 지금이야 감염에 대해 알게 되었지만 당시는 몰랐다. 그래서 그런 시설이 신풍에 올 때 신풍은 단 1명도 반대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세계 제일의 인권과 민주의 성지 광주보다 신풍은 훨씬 인권과 민주의 성지가 되어야 할 듯하다. 광주는 왜 신풍으로 그들이 싫어 하는 시설을 보냈을까? 지금까지 풀지 못한 과제다.
1939년에 손양원 가족이 애양원에 부임을 했다. 신풍 교회로 온 것이다. 경남에서 교회를 맡을 때도 전도인으로 다닐 때도 손양원 조사님은 나환자를 가족처럼 대한 분이다. 애양원에 부임하면서 손 목사님이 생활 속에서 보인 행동은 인류 사랑도 아니고, 누구에게 선전하기 위해서도 아니며, 광주시민들처럼 민주화나 인권 운동도 아니었다. 주님 날 위해 죽으신 그 대속의 사활에 감사하여 환자들을 극진히 돌아 봤다. 목격자가 없어 논란이 제기 되고 있지만 환자의 고름을 입으로 빨아 냈다는 분이다. 분명한 것은 손 목사님은 그럴 기회가 있다면 그렇게 하는 분이다. 그 이상도 하는 분이다. 나는, 같은 환자들을 평생 돌보던 분에게 60여년 전부터 들어 온 이야기가 있다. 그 쪽 시설은 그들 내부의 정통한 이야기들이 있다. 일반 사회는 잘 모른다. 손 목사님은 환자가 되지 않으니 환자들이 쌓는 마음의 벽을 넘지 못하겠다며 환자가 되었으면 했다는 분이다. 그리고도 남을 분이다.
역사와 비교하고, 다른 말씀과 비교하고, 다른 사람과 다른 사건과 비교를 하다 보면
이해와 대처의 역량이 넓어 진다고 본다. 그래서 공회는 역사를 2번째로 강조한다. 또 만사 따져 보라고 가르친다. 여기서 나온 것이 법학이다. 따져 비교해서 더 나은 것을 1번으로 강조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