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학문과 응용학문, 신앙의 선후배를 중심으로

남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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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판에는 이 홈에 올려진 글 중에 이곳에서 따로 소개하고 싶은 글도 포함됩니다. 

기초학문과 응용학문, 신앙의 선후배를 중심으로

담당 1 1
문과 대학은 인문학을 공부한다. 국어학 심리학 철학 사학 등을 말한다. 별로 돈이 되지 않는다.

법경 대학은 사회학을 공부한다. 경제 법학 행정 외교학이 여기 속한다. 돈과 권력이 따로 온다.

 

이과 대학은 기초 과학을 공부한다. 수학 물리 생물 화학을 말한다. 이 전공들도 돈 만들기는 어렵다.

공과 대학은 이과 이론을 가지고 기계를 만들고 전기 전자 컴퓨터 제품을 만들게 된다. 전부 돈이다.

 

칼빈은 성경과 교리라는 기초 학문에 출중했다. 제대로 된 신학자였다. 그의 이론은 학문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그가 연구한 그대로 교회를 운영했고 교인을 지도했다. 그리고 천주교 1천년의 세상을 바꾸어 버렸다. 그로 인해 교회는 다시 출발할 수 있었다. 훌륭한 신학자가 훌륭하게 목회를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구조적으로 그렇다. 그러나 진리의 세계는 하나였고 칼빈은 진리를 제대로 바르게 잡았기 때문에 역사에 남을 목회자로 살았다. 비록 학문의 모양을 갖추지는 않았지만 백영희는 칼빈을 넘어 서는 연구가였다. 칼빈은 연구하는 법을 체계적으로 배웠지만 백영희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비록 후시대라는 점은 있었지만 칼빈을 훨씬 넘어 서는 세계를 살폈다. 그리고 목회를 두고도 그렇다.

칼빈의 제자들은 칼빈의 연구 때문에 그들은 따로 새로운 것을 연구하지 않고 목회에만 주력해도 충분하다. 물론 칼빈의 교리가 성경처럼 정확무오한 것은 아니고 당대를 감당할 연구였으니 제자들은 그들의 시대를 맞서기 위해 칼빈의 연구를 가지고 새로운 시대에 아쉽거나 빈 부분을 찾았어야 한다. 그런데 칼빈 이후 5백여 년의 칼빈학자들은 칼빈이 살았던 그 시대를 오늘과 같다고 보는 듯하다. 칼빈의 연구물을 가지고 해석하고 암기하고 소개하는 일이 전부인 듯하다.

 

백영희 제자들은 어떤지? 백영희의 가르침이 너무 높고 깊다 보니 그 분의 집회 설교 10년치를 가지고 30년을 복습만 해 봤다. 그 자녀들이 저작권이라는 세상 불신자 논리를 가지고 막아 서지 않았으면 나는 100년을 더 산다 해도 아마 복습만 했을 듯하다. 물론 말로는 새로 주신 현실을 맞서기 위해 새로운 연구와 발전이 필요하다고 말은 했을 듯하다. 그러나 칼빈주의 학자들처럼 나도 pkist의 모습을 그들처럼 보여 주지 않았을까? 나도 그들처럼 그렇게 될까 싶어 목사님의 자녀들을 모두 모으고 나의 앞 길을 막았다. 나는 그들 중 일부는 말씀을 돈으로 바꾸었고 부친의 뜻을 알면서도 배신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들 중 일부는 형제들의 부탁을 선의로 듣고 맡기는 바람에 내용도 모르고 잘못 된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들 중 일부는 끝까지 저작권 고소를 반대했다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나에게는 모든 가족의 일치 된 행동에 막혔다고 생각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선까지는 모두 해 봤다. 내가 속한 연구소의 수입 지출 연구 과정 내용 일체를 모두 제공해 드리고 수익이 있으면 다 드린다고 했다. 그들은 오로지 자녀 허락 없이 백영희 설교와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무조건 범죄라는 말만 계속했다. 이 순간까지도.

 

백영희의 연구와 노력은 오늘 나에게, 그리고 오늘 공회 노선을 걷는 우리에게는 기초학문이라고 생각한다. 오늘을 사는 우리의 현실은 설교록에 없는 부분이 많다. 모세가 아무리 위대해도 가나안 안에 들어 간 이스라엘들이 그 곳에서 벌어 지는 새로운 사명을 감당할 때 모세의 광야 40년의 만나를 기대할 수는 없다. 만나는 다시 주어 진 일이 없다. 만나라는 양식을 잊고 살아야 하며 싸워야 하는 곳이 요단 너머 가나안 시대다.

 

역사 세계를 통해 먹고 사는 문제가 전혀 없게 되면서 신앙의 자유가 불신 세계로부터 주어 지는 시기를 그려 본 적은 없다. 이렇게 영육에 넘치는 환경 속에서 교회 스스로 예수만 믿어서는 안 된다는 측이 대세를 잡고 예수만 믿자는 측을 이단으로 괴상한 신앙으로 몰아 세우는 현상도 그려 볼 수 없었다. 그리고 시골의 유치원 아이 손바닥에 역사에 지나 간 모든 죄악과 동시대 전 인류의 죄악 전부가 한꺼번에 쏟아 지는 상황도 처음 겪는 세계다. 이런 상황을 오늘 우리는 우리의 '현실'로 겪고 있다. 그리고 지난 날에 한 없이 깊고 바르고 넓게 개척 해 놓은 백영희의 연구 세계를 감상해 본다. 감상을 하다 보면 명상에 들어 간다. 그리고 그가 그의 연구를 가지고 당대를 헤쳐 나간 모습과 자세와 대처를 헤아려 본다. 그리고 내가 걷는 오늘의 교회 안팎 모든 환경을 들여다 본다.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 덧 방향이 잡이호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 떠오른다. 나는 이런 모습을 인문학과 자연과학이라는 기초 학문을 가지고 사회과학이나 공과대학이 써먹는 상황으로 비교를 해 본다. 그리고 이 곳의 모든 이들에게 이미 더 깊이 더 높이 더 넓게 살필 수 없도록 완벽하게 짜 놓은 백영희 이론의 세계를 먼저 배우고 살피도록 소개해 본다. 그렇게 하다 보면 오늘을 사는 우리 각자의 어떤 현실도 어떻게 상대하게 될지 방법론이 저절로 나온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응용을 하면서 다시 들여다 보면 이전에 미쳐 손을 대지 않은 부분들이 나오고 또 오늘 우리에게 넘겨 놓은 분야들이 떠오른다고 생각한다. 그 몇 부분이 바로 오늘 우리가 새로 연구하고 밝혀야 할 오늘 우리의 기초학문 분야라고 생각한다. 백영희는 생전에 '성령론' 다음은 무엇일까? 라고 해 놓고 갔다. 초대교회가 '성경론' '신론' '기독론'을 남겨 줬다. 중세를 거쳐 루터와 칼빈은 '구원론'을 시작했고, 백영희는 구원론을 정리했다. 그리고 성령론은 평생을 가르쳤으나 조직신학의 체계적 성령론으로 구성하지는 않았다. 성령에 붙들려 살았던 경험을 이야기 했고 그렇게 살아 가는 방법론을 가르쳤다. 그래도 성령론은 나올 만큼 나온 듯하다. 지금 성령론을 제대로 요약한다면 백영희 교안의 정리에 해당 할 듯하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 정도가 아니라 '성령론'의 다음 단계가 있을까? 무엇일까? 라는 질문이다. 하나가 더 밝혀 지면 거기에 따른 현실이 펼쳐 진다. 세상의 기초학문과 달리 하나님의 세계는 진리를 열어 줄 때는 이미 그 진리가 아니면 대처를 할 수 없는 현실을 마련해 두고 계신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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