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양원 생애의 결산 : 성자의 헌신 - 가족의 희생 = 0

남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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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판에는 이 홈에 올려진 글 중에 이곳에서 따로 소개하고 싶은 글도 포함됩니다. 

손양원 생애의 결산 : 성자의 헌신 - 가족의 희생 = 0

담당 0 3

손양원의 충성과 헌신으로 쌓아 놓은 평생을 총평해 본다. 손양원이 이루어 놓은 것을 전부 쌓아 놓고, 여기에서 가족이 당한 원치 않는 고난을 투자 비용으로 뺀다면 얼마나 남을까? 오은해 전도사님은 1989년 3월에 내게 '0'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백 목사님도 그렇지 않느냐? 이렇게 말하면서.


오은해 전도사님은 해방 후 한국 교회의 지도자 거의 전부를 가장 많이 가장 깊이 아는 인물이다. 출옥 성도와 그 가족 거의 전부에게 막내 동생이나 딸과 같은 존재다. 애양원 기념관에 그 분의 사진이 많았다. 애양원의 기념관은 그 분의 얼굴도 이름도 모른다. 현재 애양원 사람들은 모두가 2세대라 그렇다. 오은해 전도사님은 부산의 복음병원 원목실에서 퇴직한 분이다. 고신 전부를 꿰뚫는 분이다.


나는 오은해 전도사님의 당시 손실 비용에 대한 계산이 너무 과장이라고 생각했다. 손양원은 시대적 교계적 인물이다. 이런 인물들치고 가족들이 온전한 사례가 없다. 가족 몇 명의 희생 때문에 어떻게 본전 장사에 그칠 수 있을까?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은해 전도사님은 손양원 가족의 남은 사연을 너무 잘 안다. 백 목사님 가정도 잘 안다. 박윤선 오종덕 한상동 이인재 박인순 조수옥은 물론 유재현 목사님과도 아주 특별한 분이다. 석원태까지 손을 꼽자면 해방 후 2세대며 오늘의 최고 원로들이 거의 다 그 분의 식구와 같다. 오병세 홍반식 이상근 박사처럼 고신의 학자들에 이르기까지.


손양원 목사님은 정말 위대했다. 아들 둘도 일제의 그 고난을 겪었다면 목사의 자녀로서 목회자나 십자가의 고난에 대해서는 치를 떨어야 하는데 다른 출옥성도나 순교자 가정의 자녀들이 거의 다 그러했지만 이들은 그런 수준을 초월했다. 그래서 이들의 순교는 한국 교회가 그냥 순교자 명단에 '2명 추가'로 기록하고 그칠 수가 없다. 그들처럼 10대에 고초를 그렇게 겪으면 교회 쪽을 쳐다 보지도 않게 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1950년에 손 목사님이 돌아 가시자, 사모님의 고초가 시작이 되었다. 일반적으로는 손양원의 신앙 노선을 지켜 내기 위한 투쟁으로만 알고 있다. 애양원의 조직적인 박해가 극심했고 고신은 손양원 목사님이 생전에 고신에서 떠나 반대측으로 갔다는 섭섭함 때문에 손양원 가족을 외면해다. 최근에야 손양원 목사님의 이름을 새롭게 인식하고 순교 직후에 마치 가족을 후원이나 했던 것처럼 말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유명해 지면 공로자들이 모이게 되고 별로 덕 볼 것이 없으면 주변에서 썰물처럼 사라지는데, 고신인들 별 수 있을까? 공회도 그렇고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러했는데.


백 목사님의 자녀들은 대부분 미국 생활을 했다. 그 중에 한 분이 한국으로 나간다고 할 때 미국에서 신앙의 제일 중심에 선 분이 부친에게도 평소 입 바른 말을 해버리는데 한국으로 나가는 그 분의 환원을 반대했다는 말이 목사님의 가족들 사이에 돌았다. 부친 목사님께도 분명히 반대를 하면서 그 이유까지 댔다는 것이다. 내게도 줄곧 그렇게 말했다. 실제 부친께 말씀을 드리고도 남을 분이다. '이 인물이 한국으로 들어 가면 아버지가 평생 해 놓은 것을 다 무로 만들 것'이라는 이유다. 예언이면서 사실이었다. 세계를 다 맡겼도 그 포부와 그릇에 비하면 적다 할 인물이라는 것이다. 백 목사님은 그런 사실을 더 잘 안다. 나도 안다. 몇 사람 되지 않지만 알 만한 사람은 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왜 백 목사님이 굳이 불러 들였을까? 목사님이 곧 세상을 떠난다고 말하면서, 그래서 더욱더 사후 조처에 주력을 할 때인데, 목사님이 이룬 서부교회와 총공회 그리고 이 노선에 관련 된 모든 것을 모두 묻어 버리고도 남을 인물이라는 말을 자녀 중에서 직접 하는데 목사님 본인이 더 잘 알면서 끝까지 그렇게 했을까? 아마 그 가정의 그 분은 아직도 이 말에 동의하지 않을 듯하다. 자신은 아버지가 이룬 것을 찬란히 지켜 내는 과정에 나처럼 또는 그 반대한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이 '평가의 기준'을 달리 하기 때문에 오판 왜곡이라 할 것이다.


내 말이 맞고, 당시 귀국을 반대한 분의 말이 맞고, 그리고 이런 의견에 공감하는 측의 말이 맞다는 전제로 이 글을 계속 적어 본다. 나는 서부교회와 공회를 이룬 목사님이 가족을 불러 들인 다음에 서부교회와 공회에 손해가 발생하면 어떻게 생각했을까? 그렇다면 교회와 공회가 치를 손실 비용에 대한 산계라고 생각한다. 목사님이 교회와 공회에 값을 내라는 뜻은 아니다. 그럴 분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공의의 결산을 아는 분이다. 백 목사님이 서부교회를 일으켜 세우고 공회를 만들며 전국 총공회 교회와 교인들을 기르는 과정에 가족들은 원치 않는 피해를 당했고 그 피해 중에서 서부교회와 공회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심각하게 잘못 했던 일들이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목사님은 가족을 제일 뒤로 밀어 놓고 교회와 공회를 위해 전력을 했다. 1983년, 사후를 고려해야 할 시점이 다가 오자 이 때부터 목사님은 평생에 무조건 뒤로 밀쳐 버리고 교회와 공회를 위해 가차 없이 희생만 강요한 가족들에게 서부교회나 공회의 일반 목회자나 교인을 기를 때 그 동안 배려 한 정도 안에서 가족들을 마지막 순서에 두고 신앙으로 끌어 들이기 위해 노력을 시작했다. 그런데 이미 가족들 대부분은 부친과 신앙과 교회에 대한 가치의 기준이 달라 졌다. 아버지 기준으로 그들을 끌어 들이려 하나 바뀌지 않을 수 있다.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부친 사후 부친의 영향력을 활용하게 되면 부친과 다른 신앙과 가치를 세우는 과정에 부친의 신앙과 가치는 모두 무너질 것이다. 이 것을 나는 부친을 허물었다 할 것이고 그들은 부친의 뜻을 이어 더욱 발전을 시키는데 사람들이 말을 듣지 않아서 분쟁이 생겼다고 할 듯하다.


목사님은 1984년에 한 자녀를 비롯해서, 1987년에는 막내 딸과 큰 아들 가정, 1989년에는 세째 아들에게도 간곡하게 들어 오도록 부탁을 했다. 어떤 분은 국내에 있으나 신앙의 범위를 두고 들어 오라 했고 어떤 분은 해외에 있어 국내로 들어 오라는 말이 된다. 어떤 분은 두 가지 다 해당이 될 수도 있다. 막내 아들의 경우는 설교록만 보면 그렇게 하지 않았으나 본인은 그러했다고 주장을 하는 듯하다. 내막은 알지만 구체적 표현은 피하겠다. 이미 공개 된 자료가 많으니 알아서 판단해도 충분할 것으로 본다. 둘째 딸에게는 직접 말하지 않았을 듯하다. 그래도 암시나 여러 방법으로 이야기를 했을 듯하다. 1987년 3월의 총공회 기록과 1989년 8월의 마지막 집회를 유심히 들여다 보면 목사님의 마음을 읽는 것은 어렵지 않다.


나는 손양원 가족을 읽기 위해 백 목사님 가정을 소개하고 있다.

백 목사님이 이루어 놓은 것 중에 내면적이며 신령한 면은 가족들에 의해서 더 나아질 것도 없고 더 훼손될 것도 없다. 신령한 면이기 때문에. 그러나 보이는 업적을 본다면 백 목사님이 평생을 바쳐 이루어 놓은 서부교회는 자녀들의 오판 때문에 여지 없이 내려 앉았다. 자녀들은 와해 될 서부교회를 붙들어 세웠다고 할 것이다. 현재 부산의 중간 규모에 지나지 않는다. 목사님 생전에 세계 10대 교회였다. 물론 자녀들만의 책임은 아니다. 그러나 자녀의 책임을 벗겨 드리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그렇게 할 수가 없다. 1989년부터 최근까지 서부교회가 불가피하게 당해야 할 백 목사님 사후의 손실 외에 자녀들의 오판 때문에 쪼개지고 갈라지고 흩어 진 것은 너무 명확하며 그 분량은 가장 많다. 서부교회 다음으로 총공회다. 적어도 대구공회라는 수정 혹은 진보 노선은 가족들의 책임이 없어 보인다. 그들은 체질적으로 대구공회가 맞다. 그러나 대구공회가 대구공회로 형성하는 과정에 결정적 충격은 자녀 중에 한 분이 맡았다. 그 분이 그렇게 일을 벌여 놓지 않았으면 그렇게 쪼개는 데까지 나가기는 어려웠다. 부산공회의 경우, 이들은 이 노선의 정통성을 지켜내야 했으나 부산공회만은 부공3 외에는 초토화가 되어 버렸다. 어느 한 곳도 재활을 할 여지가 없어 보일 정도다.


그리고 대구노곡동 기도원을 마침내 아주 없애 버렸고 8월의 도평 집회 장소 역시 바벨론 침공 후 버려 진 성전 정도나 될 듯하다. 30여 년 그렇게 하고도 아직 조금 남은 부분이 있으나 이 부분마저 가족 중에 한 분이 마지막으로 도모하는 듯하다. 구체적인 언행은 모두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구 노곡동의 5월 집회 장소, 거창의 8월 집회 장소, 또 하나가 부산의 대신동 양성원이다. 이미 25년을 묵혀 두어 이제는 리모델링을 하고자 해도 돈이 없어 할 수도 없을 정도라 한다. 부친이 일으켜 세운 곳을 자녀들이 모두 허물었다고 평한다면 너무 심한 말인가? 자녀들만의 잘못은 아니다. 그러나 자녀들의 역할은 확실하게 대부분이라 할 만 하다. 공회 어떤 문서에도 백 목사님 자녀의 잘못으로 서부교회와 공회의 모든 것이 무너졌다고 단정할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문서 기록 자체를 피하는 것이 공회의 불문법주의다. 내용이 중요하다. 실제가 문제다. 목사님의 자녀들이 2개 집회 장소와 1개 양성원, 총공회의 3대 유형의 모습을 다 허물었다고 말한다면 과연 아니라 할 사람이 있을까? 자녀들조차 아니라 할 수 있을까? 나와 공개 대화에 나설 사람은 적어도 없을 듯하다.


손양원 목사님의 자녀는

세째 아들이 비교적 최근에 돌아 가셨다. 내 주변에는 그 분과 어릴 때부터 함께 했던 친구들이 많다. 위에 두 형님과 달리 세째 아들은 불신적이고 입에 담기 어려운 평생을 살며 그런 흔적을 너무 많이 남겼다. 우상과 싸우고 기독교 적대 세력과 싸우다가 가신 부친, 우상 때문에 온 가족이 겪은 그 무지막지한 고난에도 불구하고 세째 아들은 그 부친의 걸음을 정확하게 반대로 살며 이방 종교인으로 평생을 살았다. 손 목사님의 자녀들의 내면 문제는 두고라도, 최소한 외면 생활은 두 따님들의 회고록을 통해 절절이 적고 있다. 그 분들의 잘못은 아니다. 그 분들은 백 목사님의 자녀들과 달리 부친이 남겨 놓은 교회에 지분을 도모하지 않았다. 너무 고초가 컸기 때문에 좌절을 했을 뿐이다. 그 좌절이 평생을 지속 되면서 신앙 생활과 멀어 진 면이 너무 많다. 그런데 이로 인해 발생한 손해를 손양원이 이룬 공로에서 빼야 하는 문제를 지적한 글은 보지를 못했다.


현대 자동차가 3천만원짜리 차량 1대를 생산할 때 2천만원이 투자 되었는지 2,900만원이 없어 졌는지 계산을 해 봐야 하지 않겠는가? 손양원은 자녀 전체를 투입했고 그 액수를 가지고 손양원이 쌓아 놓은 공적에서 빼기를 해 본다면 어느 정도가 남을까?


애양원교회가 공식적으로 발표를 한 적은 없을 듯하다. 그러나 2018년의 언론에 가족을 무참하게 만든 언행들이 있었다. 그리고 애양원 사람들이 가족과 여러 면에서 부딪히며 나오는 발표를 보면 손양원 목사님이 이룬 전부는 가족들의 희생과 손실을 빼면 남는 것이 없을 듯하다.


오은해 전도사님은 신풍으로 목회 가는 내게 말씀을 하셨다.

백영희 목사님, 손양원 목사님. 이 분들의 경건과 신앙과 순교는 참으로 귀하고 귀하다. 그러나 그 분들이 그렇게 살기 위해 자기 가족을 너무 버려 뒀고 그로 인해 가족들에게 발생한 불신적이며 부덕스런 면들은 그 분들이 이루어 놓은 것을 전부 까먹고도 남지 않느냐? 그 분들의 시대는 가족들의 뒤를 계산하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야 했던 시절이다. 그러나 당신은 젊다. 지금 시대는 그런 사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말하지 않아도, 또 누가 말려도 사명을 위해 손양원 백영희처럼 달려 갈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한 가지는 명심하라. 가족을 내버리고 사명으로만 달려 가게 되면 나중에 결산을 할 때 남는 것이 없을 것이다.


나는 손양원 백영희 이런 인물이 하늘의 별이기 때문에 쳐다나 보지 손에 닿는다고 생각해 본 저기 없다. 그러나 두 분을 가장 잘 아는 분이 나를 아끼면서도 그 분들이 두고 간 손실이 안타까워 내게 진심을 다 바쳐 했던 이 말이 평생 나를 따라 다닌다. 세상의 애국자든 사상가라 해도 가족의 희생은 기본이다. 목회자란 더욱 더 기본적인 것이다. 다만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데도 불구하고 가족을 울리고 헐벗게 만들어야 사명자라고 생각을 한다면 이 것은 흉내만 내는 사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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