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록의 출간과 전파, 그리고 그 그림자

남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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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판에는 이 홈에 올려진 글 중에 이곳에서 따로 소개하고 싶은 글도 포함됩니다. 

설교록의 출간과 전파, 그리고 그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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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록의 무제한 무조건 전파)
1964년, 우리 나라의 교육과 신학계에서 손꼽을 독보적인 인물을 통해 나는 세계 신학의 흐름과 요약을 간단하고 쉽게 전해 들을 수 있었다. 한국의 일반 목회자라도 당시에는 접할 수 없는 따끈따끈한 미국의 신학계 첨단의 이론과 역사적 내용을 어린 아이에게 가감 없이 들이 부었다. 당시 나는 그거짓말 같은 이야기들과 함께 훗날 신학의 깊은 내용있었다고 회고할 소식을 전해 주었다. 특히 평생 내가 전념할 나의 세계가 아닌, 나와 전혀 다른 세계의 이야기만 쏟아 부었다. 참으로 특이한 인물을 통해 특이한 기간을 겪게 했다. 1975년, 그 인물이 죽기 몇 달 전까지 나는 이후 펼쳐 질 혼란스런 세계 신학의 흐름을 잘 파악할 수 있었다.

그를 통해 나는 평생 전념하게 될 백영희 세계와 전혀 다르거나 그 반대되는 곳을 파악하는 데 별 불편함이 없게 되었다. 요약하면 나는 그 인물 때문에 백영희 신앙 노선은 아직까지는 역사 최고 제일의 길이라고 알게 되었다. 공회 내 다른 분들은 밖을 몰라서 우물 안에 개구리처럼 공회가 제일인 줄 아는 경우가 대부분인 듯하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나는 갈수록 이 노선의 가치를 더욱 강조한다. 최소한 공회 내에는 그런 사례를 나는 알지 못한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나는 백영희 설교와 노선을 무제한 무조건 전하려고 평생을 쏟았다.

백영희 설교와 모든 자료는1982년부터 외부에 공식적으로 전해 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주일 오전 오후 설교를 주간 설교록 형태로 스테플로 찍어 전했다. 1984년부터는 매주 11회 설교 전부를 수록한 설교록을 월간 설교록 형태로 출간했다. 이미 설교 테이프가 교계 지도자들의 손에 대거 들어 가면서 한국 교회의 강단에는 소리 없이 교리와 성경 해석과 설교의 저변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1989년 그의 장례 이후 보관하던 모든 내부용 자료까지 댐을 열어 방류하듯 무조건 무제한 전해 왔다.



(이제 돌아 본다.)
선교 초기에는 돈이 없어 성경책을 가지기 어려울 때가 있었고 성경책은 쥐어 준다 해도 글을 알지 못해 몇 자밖에 모르던 시대가 있었다. 이 때는 교파를 떠나 한 말씀만 붙들고 목숨을 던지는 신앙이 무수했다. 어느 날 성경이 넘치고 교회가 한 골목에 여러 개가 세워 지며 교인들의 수준이 목회자를 쉽게 넘어 서는 시대가 되었다. 놀랍게도 성경의 말씀을 곧이 곧대로 믿고 자기를 던지는 교인이 교파를 막론하고 멸종이 되어 버렸다. 성경은 많아 지고 신학은 평신도까지 입에 달고 다니는데 교인만 많아 지고 신자는 없어 진 것이다.

설교록이 전해 지지 않던 70년대 이야기다. 광주의 어느 교회 목회자가, 대구의 어느 통합측 목사님이 백 목사님의 설교를 필기한 기록 1장을 들고 목회자의 믿어 온 길과 방향을 바꾸게 된다. 수소문 하여 알게 된 공회 목회자를 따라 다니며 한 페이지만 더 달라고 애를 태웠고 공회 목회자들은 천기를 누설하는 듯이 값을 올리며 자료 제공을 아꼈다. 이 시기에 백영희 설교의 가치는 하늘을 찔렀다. 보수 정통 중심의 교단에서는 백영희의 전파력과 세뇌성이 현재 남한이 북한의 핵을 두려워 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손톱만한 칩 하나에 백영희 평생의 기록 전부를 120기가 분량에 담아 직접 무료로 제공했고 인터넷에서 아무나 다운을 받아 이 자료가 차고 넘치게 되자 놀랍게도 설교록의 전달만큼 설교록의 빛은 바래지고 그 그림자로 인한 어두움이 이 노선 가는 곳곳마다 짙게 드리워 져 버렸다. 한 쪽에서는 아직도 자신만 가진 기록을 혼자만 가지겠다고 30년을 버티는 인물, 그 인물이 연구소 직원 출신이다. 타인에게 전하지 않는 비공개 조건으로 100만원을 받는 인물, 이 액수와 이 장사는 80년대부터 있어 왔다. 이 자료를 제공한 연구소가 돈을 수십 억 벌었다며 고소하는 인물, 그는 공회들을 다니며 연구소를 찬양했었다.


그 것이 문제가 아니다.
설교록이 너무 많이 출간이 되자 이제는 그 가치와 필요성까지 잊은 듯하다.
남한의 자유와 번영이 차고 넘치자 평양을 닮자는 운동이 국민의 80%에 이르는 것처럼.
조선의 유교 사회가 남녀를 너무너무 띄어 놓으니 남녀가 이성을 향해 애모가 넘쳐 났으나 지금 어릴 때부터 이성과 뒹굴다 보니 이성에 대한 애모라는 개념 자체가 실종이 되어 버린 것처럼.
음식이 넘치니 지금 내 앞에 마당에 있는 닭이 파리바케트 고급 빵을 쪼아 먹고 있다. 그 집 주인은 맛이 없다며 버려서...


자유를 누릴수록, 자유에 대한 감격을 더 강하게 느끼면 어떨까? 불가능한가... 가능할 듯한데.
음식이 넘칠수록, 더욱 아끼고 더욱 감사하면 안 되나? 불가능한가.... 단식 절식을 적절히 섞어 보면 가능할 듯하다.
성경책이 이렇게 넘치고 학식은 물론 시간까지 많은 오늘, 성경에 더욱 파고 들면 안 되나? 불가능할까... 될 듯하다.
공회의 노선과 교훈의 자료가 이렇게 무제한 무조건 전해 진 시대에 공회의 사람이라면 더욱 전하기 위해 몸부림 칠 수 없을까?


(하나님의 목적)
* 더 나은, 최상의, 완전한 목표
자존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목적 대상으로 정할 때 천국만 만들어 처음부터 천국에서 살게 하지 않고 세상을 우선 주시고 세상에서 하나님 없는 그림자를 겪게 한 다음에 천국을 가지도록 순서를 정했다. 인간으로서, 당장만 생각하면 하나님 없이 살아야 하는 기간은 아쉽기 그지 없다. 인간의 모든 슬픔과 고통이 기다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배고픔을 모르는 배부름이란 배고픔을 겪어본 사람의 배부름과 차원이 다르고 세계가 전혀 다르다. 우리에게 자유성의 인격을 주시고 어두움을 겪어 보게 한 다음에 구출해 주시고 이후에 신격을 닮도록 한다면 먼지만도 못한 인간이 하나님을 닮은, 피조물인데도 불구하고 또 하나의 하나님이 되는 영광에 이르게 된다. 이 것이 하나님의 최종 목적이다. 오늘 우리의 인생에 지상至上 유일의 목표다. 하나님만 이루어 낼 수 있다.

* 이 목표를 향한 그림자의 역할
빛이 있으면 무조건 그림자가 따라 간다. 죄 짓기 전의 에덴동산에도 어두움은 있었다. 창조의 첫 날 처음 만든 것이 빛과 어두움이다. 둘은 쌍이다. 하나를 떼어 낼 수가 없다. 타락 후에는 아예 어두움의 세상이 되었다. 주님의 구원 때문에 빛이 있기는 하지만 그 어디라도 어두움만 가득하다. 믿는 우리에게는 빛과 어두움이 적절히 존재한다. 어떤 불행과 고통이 와도 믿는 우리에게는 이 그림자가 드리워 진 건너편에는 빛이 있다. 믿는 우리에게는 어떤 구원의 빛으로 산다 해도 이 빛 때문에 어두움은 한 시도 떨어 지지 않고 따라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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