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당이 아니라 예배를 고수한다면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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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9 08:06
(예배당인가, 예배인가?)
예배당을 고수하는가? 천주교다.
예배를 고수하는가? 기독교다.
예배를 고수하기 위해 예배당이 필요하면 예배당도 고수한다. 남들은 무엇을 고수하는지 모를 수 있다.
예배를 고수하기 위해 예배당은 필요할 수 있다. 필요한 때가 많다. 거의 다 필요하다. 필수는 아니다.
(서부교회는 예배가 아니라 예배당 고수였다.)
백 목사님 생전의 서부교회는 예배 고수를 위해 예배당을 고수해 왔다. 막혀 본 적이 없었다.
오랜 세월 그렇게 해 오다 보니 백 목사님이 돌아 가실 때 즈음부터는 서부교인에게 예배와 예배당은 같아 져 버렸다.
1989년 백 목사님 사후의 수십 년 내부 분쟁을 통해 양측은 예배가 지장 있고 막혀도 예배당을 가지려고 치열하게 버텼다.
30여 년의 세월을 거치며 현재 서부교회 측은 예배당을 확보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 예배의 본질이라고 하든 성찬조차 없앴다.
어쨌든 현재 서부교회의 담임 목사님만은 신앙과 신학의 기본이 예배와 예배당을 잘 구별하는 인물이다.
교인들은 평화 시에도 예배와 예배당을 구별하지 못했다. 교인의 이런 점을 담임이 활용했는지 단정하기는 어렵다.
현재 방역 상황에서 당국이 예배당을 폐쇄하라는데도 예배당을 계속 사용하고 있는 현 상황에 대하여
우리는 서부교회에 공회적으로 감사한 일이고 한국 교회에 크나 큰 빛이 된 것이 자랑스럽다. 이 것은 맞다. 여기까지는 맞다.
이 과정에 연구 과제를 하나 갖게 되었다. 예배당 고수인가, 예배 고수인가?
1989년 이후 서부교회는 최근까지 예배를 포기하면서 예배당 확보를 위해 전력을 다해 싸워 온 것을 되돌아 봐야 한다.
당국에서 방역 문제로 예배를 막고 나서는 것은 막히지 않겠다면 외부 문제가 없을 때 서부교회는 왜 예배를 희생 시켜 왔는가?
예배당만 양보하면 예배 자유는 가질 수 있었을 때, 예배당을 양보하지 않으면 평생 예배를 정상적으로 드릴 수 없을 때,
그 때 서부교회는 어떻게 했던가? 예배는 포기하고 손해 보고, 또 오는 교인은 아무리 잃을지라도 예배당만은 고수해 왔다.
(예배 참석자를 통제하는 것도 예배 고수인가)
그리고 이 번 방역을 두고 원래 서부교회를 출석하던 교인은 당국이 출입을 금지해도 예배를 위해 출입을 하고 있다.
그러나 원래 서부교회 교인이 아닌 교인이 예배를 드리러 오는 것은 막고 있다. 그렇다면 예배당과 예배를 구별한 이유가 없다.
물론 어느 선까지 어떻게 대처하느냐는 그 문제는 모든 교회의 자기 결정이다.
당국에서 예배당 안에 외부인의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이 것은 서부교회가 수용을 한다.
당국에서 원래 교인도 출입을 금지하는 조처를 내렸다. 이 것은 서부교회가 거부했다.
각 교회의 선택과 별도로 우리가 연구해 볼 문제다.
(예배의 좌석 거리도 공회는 문제가 된다.)
예배당 고수가 아니라 예배 고수라는 원칙을 지킨다 해도 마스크 착용은 예배에 상관이 없을 듯하다. 그러나 이 글에서 말했듯이 외부인 출입을 금지하라는 지침을 지킨다면 예배 고수라고 하기 어려워 보인다. 예배의 본질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한 가지 덧붙여 1~2미터를 띄어 앉으라는 지침은 현재 서부교회처럼 예배당 공간이 넘쳐 나는 경우는 별 문제가 없다. 그러나 공회의 예배당 원칙은 역사적으로 교인이 가득 찬 예배당만 예배당이라고 한다. 타 교단의 예배당은 예배의 공간도 넉넉하지만 예배당에 부대 시설이 많을수록 좋은 예배당으로 친다. 공회는 예배 외의 시설을 최소화 한다. 아예 없애는 것이 원칙이다. 예배당의 예배 공간도 어느 정도 차야 정상이다.
공회의 예배당 원칙이 예배 공간을 채우는 규모로 건축을 하고 예배 외의 시설은 없애거나 최소화를 한다고 전제한다면, 방역 지침이 1-2미터를 띄우게 하는 규정이 공회 예배를 부분적으로 막는 것이 된다. 당국의 방역 지침에 상관 없이 예배 고수를 하려면 거리를 띄울 수 있으면 띄우되 거리를 띄울 수 없다면 거리 규정도 지키지 않아야 한다. 외부 손님의 방문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이 것은 예배당이 아니라 교회의 본질이다. 예배의 전제가 된다.
예배당을 고수하는가? 천주교다.
예배를 고수하는가? 기독교다.
예배를 고수하기 위해 예배당이 필요하면 예배당도 고수한다. 남들은 무엇을 고수하는지 모를 수 있다.
예배를 고수하기 위해 예배당은 필요할 수 있다. 필요한 때가 많다. 거의 다 필요하다. 필수는 아니다.
(서부교회는 예배가 아니라 예배당 고수였다.)
백 목사님 생전의 서부교회는 예배 고수를 위해 예배당을 고수해 왔다. 막혀 본 적이 없었다.
오랜 세월 그렇게 해 오다 보니 백 목사님이 돌아 가실 때 즈음부터는 서부교인에게 예배와 예배당은 같아 져 버렸다.
1989년 백 목사님 사후의 수십 년 내부 분쟁을 통해 양측은 예배가 지장 있고 막혀도 예배당을 가지려고 치열하게 버텼다.
30여 년의 세월을 거치며 현재 서부교회 측은 예배당을 확보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 예배의 본질이라고 하든 성찬조차 없앴다.
어쨌든 현재 서부교회의 담임 목사님만은 신앙과 신학의 기본이 예배와 예배당을 잘 구별하는 인물이다.
교인들은 평화 시에도 예배와 예배당을 구별하지 못했다. 교인의 이런 점을 담임이 활용했는지 단정하기는 어렵다.
현재 방역 상황에서 당국이 예배당을 폐쇄하라는데도 예배당을 계속 사용하고 있는 현 상황에 대하여
우리는 서부교회에 공회적으로 감사한 일이고 한국 교회에 크나 큰 빛이 된 것이 자랑스럽다. 이 것은 맞다. 여기까지는 맞다.
이 과정에 연구 과제를 하나 갖게 되었다. 예배당 고수인가, 예배 고수인가?
1989년 이후 서부교회는 최근까지 예배를 포기하면서 예배당 확보를 위해 전력을 다해 싸워 온 것을 되돌아 봐야 한다.
당국에서 방역 문제로 예배를 막고 나서는 것은 막히지 않겠다면 외부 문제가 없을 때 서부교회는 왜 예배를 희생 시켜 왔는가?
예배당만 양보하면 예배 자유는 가질 수 있었을 때, 예배당을 양보하지 않으면 평생 예배를 정상적으로 드릴 수 없을 때,
그 때 서부교회는 어떻게 했던가? 예배는 포기하고 손해 보고, 또 오는 교인은 아무리 잃을지라도 예배당만은 고수해 왔다.
(예배 참석자를 통제하는 것도 예배 고수인가)
그리고 이 번 방역을 두고 원래 서부교회를 출석하던 교인은 당국이 출입을 금지해도 예배를 위해 출입을 하고 있다.
그러나 원래 서부교회 교인이 아닌 교인이 예배를 드리러 오는 것은 막고 있다. 그렇다면 예배당과 예배를 구별한 이유가 없다.
물론 어느 선까지 어떻게 대처하느냐는 그 문제는 모든 교회의 자기 결정이다.
당국에서 예배당 안에 외부인의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이 것은 서부교회가 수용을 한다.
당국에서 원래 교인도 출입을 금지하는 조처를 내렸다. 이 것은 서부교회가 거부했다.
각 교회의 선택과 별도로 우리가 연구해 볼 문제다.
(예배의 좌석 거리도 공회는 문제가 된다.)
예배당 고수가 아니라 예배 고수라는 원칙을 지킨다 해도 마스크 착용은 예배에 상관이 없을 듯하다. 그러나 이 글에서 말했듯이 외부인 출입을 금지하라는 지침을 지킨다면 예배 고수라고 하기 어려워 보인다. 예배의 본질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한 가지 덧붙여 1~2미터를 띄어 앉으라는 지침은 현재 서부교회처럼 예배당 공간이 넘쳐 나는 경우는 별 문제가 없다. 그러나 공회의 예배당 원칙은 역사적으로 교인이 가득 찬 예배당만 예배당이라고 한다. 타 교단의 예배당은 예배의 공간도 넉넉하지만 예배당에 부대 시설이 많을수록 좋은 예배당으로 친다. 공회는 예배 외의 시설을 최소화 한다. 아예 없애는 것이 원칙이다. 예배당의 예배 공간도 어느 정도 차야 정상이다.
공회의 예배당 원칙이 예배 공간을 채우는 규모로 건축을 하고 예배 외의 시설은 없애거나 최소화를 한다고 전제한다면, 방역 지침이 1-2미터를 띄우게 하는 규정이 공회 예배를 부분적으로 막는 것이 된다. 당국의 방역 지침에 상관 없이 예배 고수를 하려면 거리를 띄울 수 있으면 띄우되 거리를 띄울 수 없다면 거리 규정도 지키지 않아야 한다. 외부 손님의 방문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이 것은 예배당이 아니라 교회의 본질이다. 예배의 전제가 된다.

이제 어쩌지.. 싶어서 알아보다가
서부 교회에 전화를 했을때에
아가씨가 주일날 예배 한다고 해서
예배보러 가니까 이름과 전화번호 적고
예배보러 보내주던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