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경험하지 못한 세상, 초대교회로부터 변해 본 적이 없는 교회

남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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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판에는 이 홈에 올려진 글 중에 이곳에서 따로 소개하고 싶은 글도 포함됩니다. 

역사에 경험하지 못한 세상, 초대교회로부터 변해 본 적이 없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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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상이 감당치 못한 사람들

히11장에는 아벨로부터 시작 된 구약의 인물들이 당한 고난을 기록했다. 희롱과 채찍질과 결박과 옥에 갇히는 것은 작은 것이고 돌에 맞고 톱에 켜이고 칼에 죽으며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장기간 고문과 고형으로 걸어 간 의인들의 걸음을 두고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주님이 33년 세상에 계실 때 세상에게 당한 유린을 두고 세상은 주님을 짓밟았으나 주님은 박해자가 계산한 그런 고초에 초월해 계셨음을 알 수 있다. 마치 물을 벤 칼에 물은 상처를 입지 않은 것처럼, 공중을 베어 버린 칼날에 공기는 상처를 입어 본 적이 없는 것처럼, 세상은 온갖 박해를 했으나 주님은 세상의 칼날에 당하지 않는 차원에 사셨다. 야고보서를 통해 야고보라는 제자조차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했다. 하물며 주님일까?

 

2. 역사에 한 번도 없던 시대

지금 거의 모든 면에서 '역사에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6천년의 전쟁 방식과 현대전의 방식은 일반적인 발전의 다음 단계가 아니다. 역사에 아예 상상도 못한 양상이다. 군인은 보이지 않고 적을 전부 없애 버린다. 천 리가 아니라 만 리 밖에서 날아 온 돌이 창문 안으로 들어 온다. 피하고 막고 문제가 아니다. 머리 수가 문제가 아니고 달리기 문제도 아니다. 오늘 자동소총 10자루만 가지면 임진왜란 왜적을 전멸 시킬 수 있다. 잠수함 1대면 동해 바다에 모두 수장을 시켰을 것이다. 지구 반대편 가족과 손에 올린 전화로 얼굴을 보며 이야기를 한다. 역사에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 한 없이 쌓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 유독 종교는 역사에 없는 어려운 시기를 만났다. 이제 종교란 전혀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역사에 종교가 필요 없다던 시기는 없었다. 지금 남은 종교는 기독교 하나다. 그런데 그 기독교마저도 지금 존폐의 마지막 낭떠러지에 섰다. 교회는 기본적으로 세상을 버려 천국을 구한다. 그런데 지금 가진 세상이 앞으로 가지게 될지 모르는 또는 앞으로 갈 것으로 보이는 천국보다 낫거나 그 정도 된다. 그렇다면 천국이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불편이 없다. 이렇게까지 세상이 좋아 지게 되자 교회마저도 오늘 세상이 이미 천국이 된 정도로 운영을 했다. 그래서 주일도 예배도 굳이 당장의 지상 낙원을 버리면서 지킬 정도로 고수하지 않았다. 교회가 노래방인지 사교 모임인지 복지 회합인지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다. 그래서 이 번 코로나 사태는 교회가 교회를 그렇게 취급하니 하나님께서 오늘의 교회에게 굳이 교회를 지킬 것도 없다며 세상에게 교회를 내어 줘 버리셨다. 할 말이 있을까? 교회 스스로 할 말이 없다.

 

3. 우리는 공회니 공회 신앙만 살펴 본다.

일제 신사참배로 전국이 들끓을 때 공회 교회는 신사참배를 주일학생까지 전부 하지 않았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마치 식민지 조선에 없었던 교회처럼. 6.25 점령 기간에 공회 교회는 평소보다 더 열심히 예배를 드렸다. 다른 교회는 전부 피난을 갔고 붙들린 사람들은 고초를 겪거나 순교를 했다. 공회 교회는 인민군의 보호 아래 인민군식 예배가 아니라 교회식 예배를 드렸다. 9.28 퇴각하는 인민군들이 그 날 밤 우익을 급작스럽게 처형할 때 기독교인은 처형의 대상이었으나 공회 교회는 퇴각하는 인민군들에게 전도까지 했다. 한국 교회가 겪은 일제와 6.25 전쟁의 박해 이야기는 상식이며 공통적이다. 그런데 공회 이야기를 듣다 보면 다른 세상을 살았던 것 같다. 공회의 주일학교 이야기도 그렇다. 같은 시기 같은 골목에서 같은 교회들이 있었다. 다른 교회들은 선물도 많았고 시청각 내용도 출중했다. 우리는 참으로 무작했다. 그런데 공회 교회는 예배 공간에 콩나물시루처럼 빼곡하게 앉혔다. 와서 보는 이들마다 전혀 다른 세계를 본 듯했다. 공회의 집회도 그랬다. 거의 모든 면이 그렇다.

 

4. 코로나 전염병에 교회 문을 모두 닫는다.

교회의 한 쪽에서는 교회 문을 닫아야 좋은 교회라고 한다. 가룟 유다가 오늘도 여전히 살아 역사한다. 한 쪽에서는 목숨 걸고 닫지 못한다고 한다. 그런데 그 말을 들어 보니 정치가들의 구호처럼 말만 그렇다는 뜻이다. 한 쪽은 정말 목숨을 걸었다며 행동에 나섰다. 그런데 배경을 보니 미국의 비호가 있다. 뭔가 믿는 구석이 있어 보인다. 이들의 주장은 '대면 예배만 예배'라 한다. '비대면 예배는 아예 예배가 아니라 한다.' 그들의 말은 이해를 한다. 그들의 신앙이 구약에서 아직 채 벗어 나지 못했고, 천주교에서조차 아직 제대로 탈출을 하지 못하다 보니 그런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강하게 주장하는 교회일수록 구약의 율법주의와 천주교의 형식주의는 묵과하지 못한다며 비판의 날을 더 날카롭게 세우고 있다. 그 분들은 스스로 말한 표현을 이해조차 못하는 듯하다.

 

공회 교회의 원칙만 소개하자면, 공회 교회는 원래 교회론을 두고 지금 교계의 소위 정통 교단들과 중심 교회들로부터 이단 취급을 많이 받았다. 농사 짓던 교인이 어느 날 목회자로 바로 파송을 받는다. 신학교 1과목도 들어 본 적이 없는데. 목회자가 강단을 비우면 여 반사가 주일 오전 예배도 인도 한다.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사 고시에 합격해야 의사로서 진료를 할 수 있는 것처럼 신학교를 다니고 설교 자격증을 따고 목사로 임명이 되어야 목회자를 할 수 있다는 한국 교계의 일반 상식으로 보면 공회는 평소에 설교와 강단과 목회라는 것을 아주 무시해 버린다. 불법 목사, 불법 설교, 무허가 교회라는 말을 듣기에 딱 좋다.

 

방역 문제로 국가가 교회들마다 교인을 1명도 출입 시키지 말라고 한다. 교계의 일반 교회론에 의하면 이런 상황은 교회가 용납할 수 없다. 십자군을 결성해서라도 정부와 전쟁을 해야 한다. 전원 옥사를 해도 밀고 들어 가야 한다. 교계는 평소 그렇게 교회론을 가졌다. 공회는 교회를 정의할 때 1명의 교인이 주님 모시고 앉으면 그 곳이 교회다. 목사가 있으면 좋고 없어도 상관이 없다. 장로가 있어도 되고 없어도 상관이 없다. 장로교를 비롯한 한국의 교계 대부분은 교회의 성립 요건을 교회법에 적어 두고 있다. 공회식 교회는 그들이 교회로 인정을 하지 않는다. 공회식 예배는 예배로 인정하지 않는다. 공회는 그런 형식을 처음부터 초월해 왔다. 방역 문제로 정부가 통행금지를 실시하면 함께 모이든 교회가 각 가정 단위 교회로 또는 개인 단위 교회로 모이면 된다. 달라 질 것이 없다. 함께 모이면 더 좋은데 쪼개고 나누지 않는다. 혼자 드려야 할 상황인데 여럿이 모이지 않으면 예배를 드릴 수 없다는 식을 반대한다. 찬송 인도자가 있고 4부 성악이 있어야 하거나 가운 입은 목사님이 필수라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공회의 교회론과 예배론이 이렇다면 현재 코로나 방역 문제로 전국의 예배당 문을 닫게 하든 말든 공회적 교회는 그런 조처로 교회가 입는 상처가 없다. 오히려 이런 상황 때문에 평소 개별 신앙이 독립 신앙으로 어느 정도 준비가 되어 있었는지 궁금했는데 그 실체를 검증할 기회가 되고, 이 번 기회를 통해 앞으로 각자의 신앙 실체를 제대로 갖출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뿐이다.

 

공회 외에도 공회와 같은 신앙을 가진 교회가 하나 더 있다. 지방교회가 자주 마음에 와 닿는다. 이 분들은 원래 몇 명 모여 서로가 돌아 가면서 설교한다. 교회 간판을 굳이 달려고 하지도 않는다. 공회는 함께 모일 수 있다면 함께 모인다. 그 중에 한 분이 주로 설교를 맡을 때 더욱 은혜가 된다면 우리는 그렇게도 한다. 그런데 지방교회 분들은 한 분이 도맡는 것이 우선 더 은혜스럽다 해도 굳이 더 은혜스럽지 않게 보이는 분들까지 일일이 직접 설교를 하거나 기도를 하도록 분산을 한다. 이런 노력을 두고 교계는 이단이라고 목청이 찢어 지게 비판을 했다. 그렇게 비판을 하면 비판한 자신들이 이단이 되는 성구를 모르니 그랬을 듯하다. 수준 낮은 이들과 일일이 상대할 수는 없으니 그냥 개떼처럼 짖는다고 건성으로 들어 왔다. 지방교회는 10명 이하 단위로 모이라는 코로나 방역 3단계가 발령이 되어도 설교와 기도와 예배 인도에 문제가 없다. 그 분들은 10명이 교인으로 모이면 목사가 10명이다. 그들을 이단으로 비판한 교회들은 10만명이 모여도 목사는 1명이다. 나머지 목사는 100명이라도 부목이라 절반짜리 또는 보조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신약의 교회란 중생으로 시작한 신앙의 세계가 처음부터 시공을 초월한 신령의 세계로 시작을 한다. 이 땅 위에 방법과 수단으로는 제재를 하려 해도 제재가 닿을 수 없고 베려고 해도 베어지지 않는다. 인간의 모임이라 부족은 많지만 최소한 공회나 지방교회의 교리와 신앙의 노선과 기본 방향은 그들이 신세 지며 살고 있는 주변 세상을 넘어 서고 초월하며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세상이 쥐어 박으면 그들의 두고 갈 땅에 것이나 영향을 받지 그들의 신앙은 아예 상관이 없다.

 

코로나 때문에 한국과 세계는 역사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상을 살아야 한다며 혼란스러워 한다고 한다. 교계도 꼭 같은 말을 하고 있다. 공회는 영원 불변의 진리를 신앙의 가치로 삼아 노력해 왔다. 그래서 공회식 신앙을 아는 만큼 그렇게 걸어 온 만큼 과거와 비교해서 달라 질 것은 전혀 없다. 오히려 과거 신앙이 더욱 강해 질 뿐이다. 세상은 역사에 없는 세상이 되었으나 교회는 초대 교회가 그대로 세월을 겪어 왔을 뿐이다. 초대교회가 영국에 가니 런던교회도 설립하고 백인들이 예배당을 채웠을 것이다. 그 초대교회가 2천년을 지나며 조선 반도에 들어 오니 기와집에 한국인만 빼곡하게 모여 서울교회를 개척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초대교회의 교회론과 런던교회와 서울교회의 교회론이 달라 질 것은 없고, 초대교회와 런던교회와 서울교회의 찬양 실력은 다르고 음색은 천차만별이라 해도 이들 교회들의 찬송에 담은 주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그 자세와 대속에 사무침과 주님 동행의 노력이 달라 질 것은 하등 없다. 코로나로 모든 생활을 뒤흔들고 교계의 종교성을 뿌리 뽑을 상황이라도 바로 된 신앙을 지켜 온 교회라면 코로나 전과 후가 달라 질 것이 없고 코로나 이상이 왔다 해도 달라 질 것은 없다. 역사에 경험 한 세상에서나 역사에 경험하지 못한 세상에서는 이 땅 위의 교회는 늘 그냥 그 교회 그대로일 뿐이다. 교회는 만세 반석 영원 불변의 주님과 진리를 따라 가는 길만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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