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당 폐쇄 - 정부인가, 교회의 책임인가?

남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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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판에는 이 홈에 올려진 글 중에 이곳에서 따로 소개하고 싶은 글도 포함됩니다. 

예배당 폐쇄 - 정부인가, 교회의 책임인가?

담당C 0 0
* 평소에 주일이 나에게 주일이었던가?

나는 주일을 두고 평소 내 목숨을 걸었던가? 내 생명처럼 소중한 가족과 직장과 진로와 주택 구입을 포기해 왔던가?
아니면, 교회의 분위기를 따라 주일다운 주일을 버렸고 예배다운 예배를 버렸던가?

구약 이스라엘이 성전 생활을 바르게 하면 성전 침략은 하나님이 막아 주셨고 성전 생활을 버리고 우상을 갖다 놓으면 하나님께서 주변 세상을 동원해서 성전을 직접 치워 버렸다는 것이 성경이다. 교회와 우리가 주일과 예배를 버렸으므로 하나님도 한국 교회와 우리의 주일과 우리의 예배를 버리신 것이 아닐까? 방역 당국이 교회만 찍어서 폐쇄하는 것은 세상의 결정이나 우리는 그 세상의 결정 속에 하나님의 조처를 봐야 하지 않을까?

* 현재 전국의 교회를 폐쇄하는 조처는 시대적 환란이다.

주님이 눈으로 볼 수 있게 오시면 역사 최후의 대심판이다. 현재 우리 나라에 진행 되는 상황은 시대적 환란이다. 선교 140여년을 통해 일제도 인민군도 전국의 교회를 전부 폐쇄 시킨 적은 없다. 그렇다면 현재 전국의 교회를 폐쇄 시키는 조처는 교회에게 시대적 환란이다. 시대적 심판이 된다. 전국의 식당과 시청과 별별 장소에는 사람들이 마음대로 출입을 하지만 교회만 출입을 전면 금지 시켰다.

그런데 우리는 교회 내부를 돌아 본다. 평소 한국의 교회는 지난 50여 년 역사를 통해 정부나 우리 사회가 교회를 폐쇄하고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한 적이 없는데도 교회가 스스로 주일을 버렸고, 교회 문을 닫고 다른 곳에서 행사를 했으며, 예배는 노래방을 만들거나 밤 무대처럼 만들어 버렸다. 세상이 교회를 막기 전에 교회가 주일과 예배를 먼저 버렸다.

세상은 교회를 50여 년 주시를 해 왔다. 세상이 볼 때 교회는 사교 모임이거나 복지 구제 활동이거나 문화 예술 단체였다. 그리고 교회의 예배란 무당 굿풀이를 하거나 노래방으로 운영이 되었다. 세상이 교회를 들여다 보니 교회가 말하는 주일과 예배란 교회 스스로가 목숨 걸고 지켜야 할 대상이 아니었다. 그렇게 지난 50여년이 흘러 가면서 매 주일에 모든 교회에게 예배의 내용과 모습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두고 작은 심판이 지나갔다. 그리고 세상은 대심판을 교회에게 던졌다. 한국의 기독교가 말하는 교회는 종교 단체가 아니며, 교회의 주일과 예배는 해도 되고 말아도 되는 것이더라고. 그러니 생사가 걸린 비상 시국 때문에 한국의 교회는 모든 예배를 폐쇄해도 되며 이 것은 종교 박해가 아니라 종교인들의 유흥과 놀이 문화와 구제 사교 모임을 막은 것이라는 것이다. 코로나19라는 전염병과 세상의 방역 조처와 현 우리 사회의 좌파 성향의 정권을 준비한 주님은 한국의 교회들에게 시험을 치르게 했다. 평소 준비 상태를 볼 때 시험을 따로 칠 것도 없다. 안 봐도 낙제다.

* 매 현실은 지난 날 준비한 신앙에 대한 시험이다.

모든 현실은 지난 날 믿어온 준비에 대한 결산이다. 그래서 매 현실은 심판이다. 매 현실의 작은 심판이 쌓이면 두 가지 대 심판으로 나타난다. 첫째는 인류 역사를 정리하는 최후 대 심판이다. 둘째는 신사참배와 6.25와 같은 시대적 심판이다. 시대적 심판은 각 시대별로 요구하는 한 가지에 대한 특별시험이지만 전반적 상황도 스며 있어 종합시험의 성격도 있다. 두 가지 큰 심판은 모두가 느낀다. 그러나 매일의 현실도 비록 규모는 적지만 종합심판의 성격이 깔리면서 이미 준비 해 온 것을 심판하는 특별심판의 성격이 있다.

매일 꾸준하게 준비했다면 충분히 대처할 수 있는 현실을 맞닥뜨렸는데 평소 방심을 했다가 실패를 했다면 이 새로운 현실은 나에게 지난 날의 게으름과 충성을 시험하는 현실이다. 작지만 심판이다. 평소 미움과 사랑을 잘 구별하고 철저히 잘 준비를 했다면 갑자기 만난 현실에서 미워하는 6 계명을 잘 지킬 수 있을 터인데 어떤 순간 사람을 미워한 죄를 지었다면 나는 지난 날 6 계명에 대한 준비는 실패로 심판이 내려 진 것이다. 4 계명 주일을 두고 갑자기 목숨을 걸어야 지킬 수 있는 현실이 닥쳤는데 두려워 주일을 포기했다면 이 현실이라는 것은 지난 날 4 계명을 준비한 상황을 시험쳤고 실패한 것이다. 이렇게 우리의 매일 현실은 뭔가 지난 날에 준비한 것을 시험 치는 현실이면서 또 오늘의 현실은 다음에 제출 될 시험을 준비하는 현실이 된다. 최후 대심판은 종합 심판이고, 시대적 큰 사건은 종합 심판의 성격도 있지만 어느 한 주제에 대한 특별 심판이다. 우리의 매 현실은 주로 거의 특별 심판의 성격이다.


기독교 역사를 통해 심판이란 세분하지 않고 최후의 대 심판만 주로 가르쳤다. 그 바람에 평소 지나 가는 많은 현실에 담은 작은 심판은 알지도 못하고 넘어 갔으니 거의 실패였을 것이고, 신사참배나 6.25 전쟁과 같이 한 시대를 결산하는 시대적 심판의 경우에는 그 심판을 최후 대심판으로 생각하고 목숨을 걸고 지킨 이들이 더러 있다. 신사참배 출옥성도와 6.25 전쟁을 승리한 이들이 이런 경우다. 그들의 역사적 기록을 보면 최후 대심판인 줄 알고 맞섰다. 일단 승리한 것은 우리가 흠모할 위대한 신앙이다. 우리는 그런 상황에 그들처럼 승리할 실력이 되지 못한다. 문제는 최후 대 심판인 줄 알고 시대적 심판을 이긴 이들이 최후 대 심판이 아니었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 되자 모두가 존경하는 위인이 되었고 그후 그들의 남은 생애는 대부분 매 현실마다 다시 찾아 오는 작은 심판을 쉽게 생각하다가 작은 심판을 대부분 실패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출옥성도 중 6.25 이후에 신앙을 바르게 지켜 낸 경우는 거의 없다.

대 심판에는 종합시험의 성격이 있다. 그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평소 순간순간 자신을 상대로 생사의 싸움 벌여 자기를 꺽고 틀어쥐고 매일 각 종목별 특별시험을 준비한 사람은 대 심판에 승패를 두고 제대로 이길 기회가 허용된다. 평소 멋 모르고 살다가 남 따라서 시험장에 나선 이들은 모두 실패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모든 대 심판은 대개 한 두 명, 몇 명만을 위한 시험이고 나머지는 구경꾼 된 것이 역사다. 이런 시대적 심판을 준비할 때 비록 매일의 작은 심판에서 이긴다 하여도 마지막에는 이길지 질지 확신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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