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어진 성탄절, 못박은 예배당 대문 - 교회가 세상을 불러 들인 결과
담당
4
1
2020.12.24 16:23
공회는 성탄절 행사를 하지 않는다. 불신 가정의 주일학생 전도를 위해 주교 행사를 간단히 한다. 다른 교회와 비교하면 행사라 할 것도 없다. 장년반의 경우 특송을 가끔 하는 경우가 있다. 오히려 성탄절에는 전도지를 들고 골목마다 문을 두드린다. 외부에서 성탄절 행사가 없다고 이단이라는 무식한 비판이 쌓이면 우리도 가끔 한다는 표시를 내어 그들이 비판하는 죄를 추가하지 못하게 성의 표시를 할 때는 있었다.
정통 교회 중에서는 성탄 행사를 불교계의 사월 초파일처럼 하지 않는 경우가 없을 듯하다. 그들의 교리는 5백 년 전에 새 출발을 하면서 행사 위주의 천주교를 뜯어 고치자고 말했으나 시류에 거스리지 못하여 결국 천주교가 간 길을 가고 있다. 신앙 어린 사람들이 좋아 하고, 이 것은 시장에서 손님이 몰리면 장사꾼은 물건을 공급하게 되는 것과 같은 원리다.
성탄절의 절정은 이브라고 말하는 24일이다. 서울시와 전방 초소와 전국 곳곳을 12월 내내 밝혔던 성탄절 장식등, 그 것도 코로나에 문제가 되나? 올해는 아예 찾아 보기가 그렇게 어렵다. 교회는 연말 연시가 되면 송구영신 예배에 일제히 돌입한다. 올해 첫 주일인 1월 3일까지 전국 교회는 연중 최고 바쁠 때다. 정부는 바로 이 시기를 통째로 막고 나섰다. 전국의 성탄절과 송구영신 예배와 모든 교회 행사를 막으면서 대형 마트에는 손님들이 넘쳐도 된다고 한다. 거리 두기를 조사하지도 않는다. 명확하게 기독교에 대한 탄압이다.
우파는 좌파 정부의 본색이라고 난리다. 그런데 좌파 정부는 누가 품어 길렀던가? 우파 교회들이 70년대에 양심적이고 민주적이며 희망 있는 청년들이라고 기르지 않았던가? 조삼모사란 변덕이라는 단어인데 한 편으로는 조금 지나면 다 잊어 버린다는 뜻도 가지고 있다. 공회 외에 거의 모든, 거의 전부라 할 수 있는 현재 국내의 보수 성향의 교단들은 오늘의 이 사회가 이렇게 교회를 철저히 탄압하고 신앙을 유린하게 만든 그들의 지난 날을 돌아 봐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를 달구어 대는 보수 지도자들, 그들의 교단과 그들 자신의 70년대와 80년대 언행을 오늘과 나란히 비교해 보면 사돈 남 말처럼 들린다. 기억하는 사람조차 있을까? 박윤선과 같은 인물까지도 여기에 포함이 될 정도라면 한국 보수 교계 전부는 같은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호랑이 새끼를 귀엽다고 길렀다. 어릴 때는 강아지와 같다. 나중에 호랑이에게 물려 죽을 때 뒷말을 한다면 무책임하다. 물려 죽을 줄 알고 길렀으니 물려 죽어도 마땅하다. 심한 말인가, 지극히 당연한 말인가?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던 구약 이스라엘이 그 죄를 자기들과 자기 후손에게 돌려 달라고 했다. 그리고 주님은 2천년 그렇게 했다. 유대인의 박해 역사만큼 끔찍한 사례는 없다. 그들이 십자가에 주님을 못 박으며 했던 말, 그들이 장난 삼아 했던가? 얼마나 심각한 훗날이 닥칠지 알았다면 그리 하지 않았을 듯하다.
귀신은 교회를 밀고 당기고 몇 번을 하다 보며 교회가 방향 감각을 잃어 버린다. 기독교 탄압에 나섰다가 한 발 빼고 다시 밀다가 다시 빠지면서 슬금슬금 먹고 들어 온다. 올해 2월 코로나 문제가 생길 때부터 교회만을 타깃으로 삼아 그렇게그렇게 온 난리를 다 동원하며 교회를 마음껏 유린했다. 지금은 거의 죽여 놓았으니 이제는 굳이 거론하지도 않는다. 더 했다가는 미국에서 종교 탄압을 거론하게 될 수 있다. 문제는 줄을 당겼다 풀었다 몇 번을 하면서 결과적으로 교회는 방향 감각을 잊어 버린다. 그리고 사단의 깊은 곳에 빠진다. 성경은 침륜이라고 한다.
70년대와 80년대, 한국의 보수 교계는 인권과 민주화라는 말을 한 마디 걸쳐야 멋 있어 보인다며 세상 기준의 인권과 민주화를 거들었다. 그 소리 뒤에 따라 올 오늘을 보지 못한 것이다. 어느 덧 뱀의 이빨 속에 들어 왔다. 뱀의 이빨은 옹니다. 안으로 굽어 져 있다. 한 번 물리면 발버둥을 쳐도 계속 안으로만 들어 간다. 이 보수 교계가 코로나 초기에 예배를 보면 안 된다고 설쳤다. 안 믿는 정부로서야 무엇이 아쉬워 예배는 드리시라 했을까? 반갑게 잘 받아 챙겼다. 그 교계 지도자들이 이제야 뭣을 좀 느끼는 눈치다. 이미 때는 늦었는데.
정통 교회 중에서는 성탄 행사를 불교계의 사월 초파일처럼 하지 않는 경우가 없을 듯하다. 그들의 교리는 5백 년 전에 새 출발을 하면서 행사 위주의 천주교를 뜯어 고치자고 말했으나 시류에 거스리지 못하여 결국 천주교가 간 길을 가고 있다. 신앙 어린 사람들이 좋아 하고, 이 것은 시장에서 손님이 몰리면 장사꾼은 물건을 공급하게 되는 것과 같은 원리다.
성탄절의 절정은 이브라고 말하는 24일이다. 서울시와 전방 초소와 전국 곳곳을 12월 내내 밝혔던 성탄절 장식등, 그 것도 코로나에 문제가 되나? 올해는 아예 찾아 보기가 그렇게 어렵다. 교회는 연말 연시가 되면 송구영신 예배에 일제히 돌입한다. 올해 첫 주일인 1월 3일까지 전국 교회는 연중 최고 바쁠 때다. 정부는 바로 이 시기를 통째로 막고 나섰다. 전국의 성탄절과 송구영신 예배와 모든 교회 행사를 막으면서 대형 마트에는 손님들이 넘쳐도 된다고 한다. 거리 두기를 조사하지도 않는다. 명확하게 기독교에 대한 탄압이다.
우파는 좌파 정부의 본색이라고 난리다. 그런데 좌파 정부는 누가 품어 길렀던가? 우파 교회들이 70년대에 양심적이고 민주적이며 희망 있는 청년들이라고 기르지 않았던가? 조삼모사란 변덕이라는 단어인데 한 편으로는 조금 지나면 다 잊어 버린다는 뜻도 가지고 있다. 공회 외에 거의 모든, 거의 전부라 할 수 있는 현재 국내의 보수 성향의 교단들은 오늘의 이 사회가 이렇게 교회를 철저히 탄압하고 신앙을 유린하게 만든 그들의 지난 날을 돌아 봐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를 달구어 대는 보수 지도자들, 그들의 교단과 그들 자신의 70년대와 80년대 언행을 오늘과 나란히 비교해 보면 사돈 남 말처럼 들린다. 기억하는 사람조차 있을까? 박윤선과 같은 인물까지도 여기에 포함이 될 정도라면 한국 보수 교계 전부는 같은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호랑이 새끼를 귀엽다고 길렀다. 어릴 때는 강아지와 같다. 나중에 호랑이에게 물려 죽을 때 뒷말을 한다면 무책임하다. 물려 죽을 줄 알고 길렀으니 물려 죽어도 마땅하다. 심한 말인가, 지극히 당연한 말인가?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던 구약 이스라엘이 그 죄를 자기들과 자기 후손에게 돌려 달라고 했다. 그리고 주님은 2천년 그렇게 했다. 유대인의 박해 역사만큼 끔찍한 사례는 없다. 그들이 십자가에 주님을 못 박으며 했던 말, 그들이 장난 삼아 했던가? 얼마나 심각한 훗날이 닥칠지 알았다면 그리 하지 않았을 듯하다.
귀신은 교회를 밀고 당기고 몇 번을 하다 보며 교회가 방향 감각을 잃어 버린다. 기독교 탄압에 나섰다가 한 발 빼고 다시 밀다가 다시 빠지면서 슬금슬금 먹고 들어 온다. 올해 2월 코로나 문제가 생길 때부터 교회만을 타깃으로 삼아 그렇게그렇게 온 난리를 다 동원하며 교회를 마음껏 유린했다. 지금은 거의 죽여 놓았으니 이제는 굳이 거론하지도 않는다. 더 했다가는 미국에서 종교 탄압을 거론하게 될 수 있다. 문제는 줄을 당겼다 풀었다 몇 번을 하면서 결과적으로 교회는 방향 감각을 잊어 버린다. 그리고 사단의 깊은 곳에 빠진다. 성경은 침륜이라고 한다.
70년대와 80년대, 한국의 보수 교계는 인권과 민주화라는 말을 한 마디 걸쳐야 멋 있어 보인다며 세상 기준의 인권과 민주화를 거들었다. 그 소리 뒤에 따라 올 오늘을 보지 못한 것이다. 어느 덧 뱀의 이빨 속에 들어 왔다. 뱀의 이빨은 옹니다. 안으로 굽어 져 있다. 한 번 물리면 발버둥을 쳐도 계속 안으로만 들어 간다. 이 보수 교계가 코로나 초기에 예배를 보면 안 된다고 설쳤다. 안 믿는 정부로서야 무엇이 아쉬워 예배는 드리시라 했을까? 반갑게 잘 받아 챙겼다. 그 교계 지도자들이 이제야 뭣을 좀 느끼는 눈치다. 이미 때는 늦었는데.

좌우익 정치 문제가 나오는 순간 좌측에 있는 분들은 천국과 예수님과 구원과 교회와 신앙까지도 일단 좌측에 불리하면 걷어 내 버리거나 최소한 잊어 버리려 합니다. 총공회 최고의 학자, 최고의 양심가, 이 연구소를 이 땅 위에 최고의 단체로 극찬하던 분이 좌측 비판만 나오면 순식간에 총공회 탈퇴를 거론합니다. 그런데 그 분이 이 곳에서 우측을 비판하고 자본주의 비판한 것은 아예 기억조차 못합니다. 이 정도가 되면 맹신입니다.
그 코쟁이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을 알았고, 그 빨갱이들이 남한보다 더 교회가 많았던 북한에 교인 1명도 남기지 않고 죽였습니다. 이 사실 하나 때문에 우리는 평소 미국을 코쟁이라 할 수가 없고, 북한이 지상낙원이 된다 해도 우리는 그 곳을 생지옥이라고 해야 합니다. 신앙이란 자기의 세상 어떤 가치관과 가족과 어떤 정체성에 앞서기 때문입니다.
저희 애가 어제 서부교회에
갔는데..
1층에서
어느 선생님 반이냐
물어보니 애가 말이 없으니까
중간반 학생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다해서..
그래서 도로 돌아 왔다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괜히 갔다
그러더라고요..
버스타고
가는데 한시간반 오는데 한시간 반..
보통 성탄절 되면 한 학생이라도
더 데려 오려고 그럴건데..
코로나 시국이라 해도..
자기 발로 성탄절이라고
찾아간 학생을
그냥 돌려 보낸다는것이..
융통성 이라고는 없고
유도리라고는 없다.
싶었습니다.
교회는, 국가가 예배 중단과 교인 참석을 막으라 지시해도 예배와 출석 교인을 막지 않아야 업무입니다.
스탈린 히틀러 소화 김일성이 처형을 한다 해도, 교회는 예배를 중단하지 않고 오는 교인을 막지 않습니다.
정부가 교회 가지 말라 한다고 안 오는 교인을 오라 하는 것은 밤중에는 각자 결정의 공회 신앙이 아닙니다.
교회는, 비가 오든 전쟁이 나든 정부나 적국이 교회와 예배를 막아도 막히는 그 저지선까지 진행을 합니다.
교인은, 정부나 다른 교인이나 동네 불량배가 막는다 해도 막히는 저지선까지는 예배를 향해 걸어 갑니다.
정부는 교회를 박해하고 싶어 핑계를 대든, 사회 전체를 위한 충정이든, 정부의 교회 박해는 정부 업무입니다.
교회는 안에서 막든 귀신이 막든 우리 편이 막든 상부가 막든 목사가 막든 정한 시간에 예배당에서 예배합니다.
교인은 국가가 막든 교회가 막든 목사가 막든 같은 교인이 막든 막히는 그 자리 그 저지선까지는 가야 합니다.
간다면 좋은 신앙이고, 못 간다면 좀 모자라는 신앙입니다. 다만 자기 현실에 따라 자기 신앙으로 결정합니다.
막기 때문에 미리 가지 않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100점으로 기뻐할 수도 있는 그런 사람의 그런 형편도 있고
막는다고 미리 가지 않는 사람을 향해 하나님께서 0점으로 낙제를 시키는 그런 사람의 그런 형편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현재 국가가 예배당을 막고 나서는 이 상황은 마25장의 밤중입니다. 각자가 결정할 상황입니다.
교회에 50% 출석만 허락한다. 20%만 허락한다, 20명만 허락한다, 1명만 허락한다... 국가는 그럴 수 있습니다.
교회는 국가 지시를 교인들에게 국가가 이렇게 말을 한다고 알릴 수 있습니다. 알리는 것이 더욱 교회답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교인들에게 전하면서 이런 제한을 찬성한다며 전할 수도 있고 반대한다고 전할 수도 있습니다.
국가가 교회에게 전달하라면 교회는 교인에게 그 내용을 전달은 하지만 밤중의 교인 행동은 각자 자유입니다.
교회가 국가 전달을 빼먹고 감추는 것보다 오히려 정확히 알리고 제재 내용과 심각성을 전하는 것이 맞습니다.
교인은 모든 위험과 내용을 모두 다 듣고 각자 결정합니다. 저지선까지 가는 것이 기독교며 공회며 신앙입니다.
교회 문만 콕 집어 못을 박는 정책가들이 동창이라고 집안이라고 동향이라고 믿는 사람이 지지를 한다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성탄에 초대형 마트는 인파가 몰리는데 성탄의 주인인 교회 문을 못 박는 정치가를 좋아하는 교인이 있다면?
그가 바로 가룟 유다!
주님을 비판한다면 내 새끼가 비판을 해도, 내 아내 내 남편이 맞선다 해도, 내 동생 내 동지가 맞선다 해도...
교인이라면 부모 동지 친구 어떤 관계보다 주님과 관계가 선약이고 선재이니 맞서는 이들을 정죄해야 한다.
이 것이 기독교 아닌가?
이 것이 기독교를 말하기 전에 종교인이 아닌가?
이 것이 기독교와 종교인을 입에 담기 전에 인간의 상식이며 사리며 논리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