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신앙의 내부 배신 - 백영희 생애를 중심으로

남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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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판에는 이 홈에 올려진 글 중에 이곳에서 따로 소개하고 싶은 글도 포함됩니다. 

교회와 신앙의 내부 배신 - 백영희 생애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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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의 적은 어떻게 해 볼 여지가 있다. 외부에서 공격하려면 2배는 넘어야 하고 3배가 넘어야 안정적이라고 한다.
내부의 적이 안에서 허물어 버리면 손 대지 않아도 주저 앉고 흩어 진다. 외부의 적이 온다는 말만 들어도 끝 난다.

백영희의 경우를 종종 본다. 볼 때는 그냥 보지 않는다. 그럴 만한 일이 있을 때 참고한다. 이 곳에는 제일 가까운 참고 자료다.
백영희의 경우 우선 가족들의 반발이 평생 계속 되었다. 설교록에서 아주 가끔 말을 했다. 이 글은 가족을 제외하고 살펴 본다.

1936년에 신앙을 출발한 백영희는 1939년 1월 1일에 개명교회를 시작한다. 개명에 제일 우수한 청년들이 지방좌익이었다.
1949년에 이웃 면의 위천교회로 이동했다. 이 곳 핵심들도 1년 뒤 6.25 점령 기간에 지방 좌익의 핵심들과 친분이 깊었다.
더러는 포섭 되어 핵심으로 활동했고 더러는 알고만 지내나 양쪽을 기웃거렸다. 목사님은 알지만 끝까지 표시 내지 않았다.

1952년에 부산 서부교회로 부임한 목사님에게 고려파의 지도부가 목사님 제거에 나설 때 서부교회 내에 반란 세력이 있었다.
물론 그들은 목사님이 탈선했기 때문에 교회를 살리려 했을 것이고 나는 목사님을 기준으로 배신이나 반란을 표시하고 있다.
오신 직후, 백 목사님을 서부교회로 모시려고 가장 앞 장에 서고 가장 충실했던 분이 교회 내에서 가장 반대에 앞 장을 섰다.
그런데 거창부터 목사님을 따르던 교인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 가장 심복으로 알려 진 분이 결정적일 때 입장을 바꾸었다.
당할 때마다 받는 일반적인 타격은 고려파의 지도부들이나 심지어 교회 내의 다른 분들과 비교해도 그 정도가 심했었다.

1959년 목사님은 제명된다. 고려파로부터 목사님을 지켜 낸 서부교회 제일 실력가 4명은 종신토록 충신으로 알려 져 있다.
이 분들이 서부교회가 제명 후 제대로 재출발을 하려는 첫 순간에 목사님의 사례를 끊고 교역자 교체 작업에 들어 가게 된다.
목사님 평생에 일반적 교회 상황에서 보면 가장 큰 위기였다. 사택 식구들은 전부 교회 밖으로 이사를 갔고 자립에 들어 간다.
그 중에 한 가정 자녀에게 감당 못할 사건이 터지자 갑자기 모두가 돌아 섰다. 백 목사님은 이 때 일을 평생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목사님의 자녀는 교회에 대하여 섭섭할 때마다 이 때를 거론하고 목사님은 만류한다. 이런 경험은 평생을 가게 된다.

이 사건 직후 교계적으로 백 목사님의 선배이면서도 목사님을 가장 따르고 교계의 외풍을 막아 주던 동지 2명이 돌아 선다.
한국 교회사에서 빠질 수 없는 분, 한국 교계 최고의 지성과 스승이라는 분, 이 분들이 돌아 서자 백영희는 바로 이단이 된다.
그 분들 때문에 지난 20여년 혜택을 본 것과 비교도 하지 못할 만큼 매장이 되었다. 공회와 백영희의 상처는 지금도 계속이다.
1980년대 초반 또 한 번 내부의 최고 핵심들이 반발을 했고 이 때는 건강 문제까지 겹쳐 공회의 앞 날은 바로 끝 날 줄 알았다.
1987년부터 88년, 다시 내부 반란이 계속 되었고 1989년 돌아 가시던 해 마지막 총공회는 공회 석상에서 반란이 일어 났다.

백영희 생애 중 내부 반란만 살펴 보고 있다. 교회나 교단 내부의 가장 측근에서부터 일어 난 사건들을 중심으로 이어 봤다.
백영희는 그들의 반발을 상대할 때마다 교회사나 세상의 역사에서 집권 지도권을 가지고 상대하는 유형과 아주 달랐다.
반발하는 이들이 사용하는 방법으로 상대하면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조처 할 수가 있다. 백영희는 일체 맡겨 놓는 식이다.
위로 하나님이 지켜 보실 것이고, 아래로 인간으로 계산을 한다 해도 교회와 신앙을 두고는 다른 방법은 인본이 된다.
신본이란, 신앙의 기본이란, 누가 욕하고 대 들고 비판하면 우선 자기를 돌아 보며 잘못 된 것이 있는지 찾아서 고치면 된다.
사람이니 그 어떤 문제든 고칠 것이 없을 리는 없다. 그 비판만 보면 잘못이 없다 해도 그 주변 다른 것이라도 찾아서 고친다.
나머지는 하나님께 맡겨 두고 그들에게 맡겨 둔다. 때리면 맞고, 밟으면 밟힌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모든 것은 밝혀 진다.

오늘도 마찬 가지다. 백영희 노선을 간판에 붙인 이 곳이 만일 그런 식이 아니라면 간판이 차명이거나 사기에 해당 될 것이다.
백영희 신앙 노선이 의미가 있느냐고 묻고 싶다. 의미가 있다면 내부의 반발은 치명적이다.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신본, 하나님을 근본으로 삼는, 신앙의 기본이라는 것은 단순하기 짝이 없다. 얼마나 단순한지 한 길이다. 하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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