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회의 조직 원리, 법제화 체계화 배제를 중심으로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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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12 12:26
(공회의 제도화 거부)
1966년, 공회가 출발할 때 공회의 행정 3 원칙이 있었다.
제1, 전원일치로만 결정한다. 51%가 결정하는 다수결을 배제하여 단 1명도 강제하지 못하게 막았으니 신앙의 자유법이다.
제2, 성경 외의 법은 없다. 필요하여 법을 만들지만 결국은 법이 교회를 삼킨다. 신앙의 자유를 보장하는 방어선을 쳤었다.
제3, 총공회장을 두지 않는다. 교회가 대표를 두면 이 인간이 교회와 신앙을 삼킨다. 신앙의 자유를 삼키는 이리를 막았다.
공회의 이 3대 원칙은 누구에게 설명해도 '아름답다'고 한다. 그러나 한 마디를 붙인다. '천국에서나 가능하다'고 한다.
공회는 1966년부터 실제 시행했다. 그 때는 지도자가 있어 가능하다 했다. 1989년 백영희 사후 지금까지도 여전하다.
그렇다면 최고의 이론이 구현 된 것이다. 신앙의 세계에서만 가능하다고 본다. 생명의 도, 교회다운 교회면 가능하다.
(자유성을 향한 노력)
공회의 3대 원칙의 본질은 '신앙의 자유성'이다. 이론이나 선언에 그치지 않고 신앙의 현장인 교회에서 실제 적용했다.
교회가 별 일이 없는 평화시 평시에는 공회 원칙이 별 의미가 없다. 밝은 대낮에는 불빛의 필요성이 없는 것과 같다.
그런데 교회의 평화시란 얼마나 오래 갈까? 귀신이 그냥 두지를 않는다. 알고 보면 교회는 전투가 없는 수가 없다.
그렇다면 공회의 3대 원리는 교회의 출발부터 유지 발전 분쟁 그 어떤 시기 어떤 단계에도 늘 교회의 신앙을 지켜 왔다.
구약 교회는 법제화 체계화 조직이다. 신약은 신앙의 노선적 조직이다.
초대교회는 신앙의 노선으로 교회가 존재했다. 천주교는 초대교회가 법제화 제도화 체계화로 나간 결과다.
개혁신앙은 초대교회로 돌아 가자는 운동인데 이 개혁을 위한다는 법과 제도가 다시 교회를 삼켜 버렸다.
그런데, 이렇게 반문을 한다. 법과 제도 없는 체계화가 없고 체계화가 되지 않은 교회가 어떻게 존재하느냐고?
자유는 방종 방탕과 다르다. 그런데 자유를 강조하면 귀신은 그 자유를 붙들고 방종 방탕으로 끌고 간다.
생명은 유기적 체계화다. 유기적 체계화를 강조하면 귀신은 방종과 방탕을 막자면 교회를 콘크리트 구조물로 만든다.
초대교회는 자유성을 가진 유기적 생명체였다. 귀신이 천주교와 개혁교의 역사를 통해 오늘까지 좌우로 흔들고 있다.
초대교회가 자유성을 가진 유기적 생명체로 자라 가면서 귀신에게 좌우로 흔들리지 않았다면 어떤 모습일까?
공회는 바로 그런 모습이다. 공회가 어느 날 제작한 것이 아니다. 2천 년을 걸친 교회의 역사를 통해 도출 된 결과다.
공회의 법제화 배제는 법을 무시하거나 필요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무법 불법이 아니다. 생명의 법을 갖자는 것이다.
공회의 다수결 반대는 1인 독재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1인도 원하지 않는 길에 끌려 가게 하지 말자는 자유성이다.
공회가 대표를 거부하는 것은 신앙이란 그 누구에게든지 무조건 맡겨 놓고 따라 가지 말라는 신앙의 독자성 때문이다.
(조직화 된 교회, 생명의 유기적인 교회)
미개한 인간일수록 강한 것을 좋아 한다.
강한 것을 많이 겪어 보고 나면 강한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알게 된다.
때로는 강하지 않은 것이 더 강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신앙의 세계란 세상 기준으로 강한 것을 추구하지 않는다.
댐은 쌓아 올렸다.
항공모함은 용접하여 붙인 큰 그릇이다.
댐이나 항공모함은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그 규모만큼 엄청난 일을 한다.
그런데 댐에 주먹 하나 만한 돌 하나가 빠져 나가면 어느 날 댐이 내려 앉는다. 항공모함은 그리 되면 침몰한다.
만리장성을 쌓아 둔다 해도 한 곳만 뚫리면 만리장성이 독안에 든 쥐를 만들어 오히려 치명적이 된다.
뼈가 마디마디 다 끊어 지면 뱀처럼 자유자재로 돌아 다닐 수 있다. 그러나 뱀의 징그러운 모양을 떨칠 수 없다.
뼈가 통뼈가 되면 버틸 수 있고 우뚝 설 수 있다. 아름답고 웅장할 수 있다. 그러나 뻣뻣해서 융통성이 없다.
우리의 팔과 다리는 우리를 곧게 세워 준다. 우리의 등뼈는 자유롭게 움직인다. 강약이 조화롭다.
공회의 조직 원리는 법과 제도의 체계화를 배제한다.
너무 무른 듯하고 너무 약한 듯 보인다. 그러나 들여다 보면 소리 없이 강하다. 어떤 충격도 흡수한다.
그리고 얼마든지 자라 갈 수 있는 포용과 적응 적용과 소망을 담고 있다.
공회 연구에 평생을 바쳤다 할 만큼 세월을 보냈고 자료를 가지고 있다.
40년을 넘기며 '공회' 하나의 주제로만 연구해 왔다. 그리고 공회에 관한 자료는 전부 다 보관하고 있다.
이왕 전공을 했으니 이 분야가 연구에 유리하여 붙들고 있는 것일까?
지난 세월에 투자한 것이 있으니 아까와서 붙들고 있을까?
누구든 자기 것을 주장하듯이 자기 선전을 위한 것일까?
공회를 연구하며, 그 어떤 한 모퉁이조차 들여다 보면 보배였고 연구를 하면 그 보배가 더욱 보배였었다.
처음에는 좋은 것도 있고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있고 버렸으면 하는 것도 있었다.
좋은 것은 뒤져 볼수록 더 좋았고, 이해가 되지 않은 것은 세월 속에 이해가 되었다. 버렸으면 한 것은 더 보배였었다.
과연 이런 세계가 존재할까? 이런 단체를 사람이 만들 수 있을까? 어떤 것이든 뒤져 보면 볼수록 좋지 않은 것이 나온다.
그런데 진리에 맞춰 만들고 말씀에 따라 시작을 하면 진리의 말씀이 단일성 보배성이므로 갈수록 좋아 질 수 있다.
개혁주의 신학을 깊이 들여다 보며 세월 속에 전념한 회원과의 대화를 돌아 볼 기회가 있었다.
오래 전에 확정 지운 분야여서 따로 살피지 않았고 세월 속에 거의 잊었다 할 만큼 되었는데 새삼스러웠다.
그리고 오래 전에 살필 때보다 이 번에 살피니 또 다시 새롭다. 밭에 묻힌 보배를 처음 발견했을 때가 생각난다.
진리의 세계는 평생 늘 새롭다. 새로움이 점점 늘어 나고 자라 가고 온전해 진다.
1966년, 공회가 출발할 때 공회의 행정 3 원칙이 있었다.
제1, 전원일치로만 결정한다. 51%가 결정하는 다수결을 배제하여 단 1명도 강제하지 못하게 막았으니 신앙의 자유법이다.
제2, 성경 외의 법은 없다. 필요하여 법을 만들지만 결국은 법이 교회를 삼킨다. 신앙의 자유를 보장하는 방어선을 쳤었다.
제3, 총공회장을 두지 않는다. 교회가 대표를 두면 이 인간이 교회와 신앙을 삼킨다. 신앙의 자유를 삼키는 이리를 막았다.
공회의 이 3대 원칙은 누구에게 설명해도 '아름답다'고 한다. 그러나 한 마디를 붙인다. '천국에서나 가능하다'고 한다.
공회는 1966년부터 실제 시행했다. 그 때는 지도자가 있어 가능하다 했다. 1989년 백영희 사후 지금까지도 여전하다.
그렇다면 최고의 이론이 구현 된 것이다. 신앙의 세계에서만 가능하다고 본다. 생명의 도, 교회다운 교회면 가능하다.
(자유성을 향한 노력)
공회의 3대 원칙의 본질은 '신앙의 자유성'이다. 이론이나 선언에 그치지 않고 신앙의 현장인 교회에서 실제 적용했다.
교회가 별 일이 없는 평화시 평시에는 공회 원칙이 별 의미가 없다. 밝은 대낮에는 불빛의 필요성이 없는 것과 같다.
그런데 교회의 평화시란 얼마나 오래 갈까? 귀신이 그냥 두지를 않는다. 알고 보면 교회는 전투가 없는 수가 없다.
그렇다면 공회의 3대 원리는 교회의 출발부터 유지 발전 분쟁 그 어떤 시기 어떤 단계에도 늘 교회의 신앙을 지켜 왔다.
구약 교회는 법제화 체계화 조직이다. 신약은 신앙의 노선적 조직이다.
초대교회는 신앙의 노선으로 교회가 존재했다. 천주교는 초대교회가 법제화 제도화 체계화로 나간 결과다.
개혁신앙은 초대교회로 돌아 가자는 운동인데 이 개혁을 위한다는 법과 제도가 다시 교회를 삼켜 버렸다.
그런데, 이렇게 반문을 한다. 법과 제도 없는 체계화가 없고 체계화가 되지 않은 교회가 어떻게 존재하느냐고?
자유는 방종 방탕과 다르다. 그런데 자유를 강조하면 귀신은 그 자유를 붙들고 방종 방탕으로 끌고 간다.
생명은 유기적 체계화다. 유기적 체계화를 강조하면 귀신은 방종과 방탕을 막자면 교회를 콘크리트 구조물로 만든다.
초대교회는 자유성을 가진 유기적 생명체였다. 귀신이 천주교와 개혁교의 역사를 통해 오늘까지 좌우로 흔들고 있다.
초대교회가 자유성을 가진 유기적 생명체로 자라 가면서 귀신에게 좌우로 흔들리지 않았다면 어떤 모습일까?
공회는 바로 그런 모습이다. 공회가 어느 날 제작한 것이 아니다. 2천 년을 걸친 교회의 역사를 통해 도출 된 결과다.
공회의 법제화 배제는 법을 무시하거나 필요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무법 불법이 아니다. 생명의 법을 갖자는 것이다.
공회의 다수결 반대는 1인 독재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1인도 원하지 않는 길에 끌려 가게 하지 말자는 자유성이다.
공회가 대표를 거부하는 것은 신앙이란 그 누구에게든지 무조건 맡겨 놓고 따라 가지 말라는 신앙의 독자성 때문이다.
(조직화 된 교회, 생명의 유기적인 교회)
미개한 인간일수록 강한 것을 좋아 한다.
강한 것을 많이 겪어 보고 나면 강한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알게 된다.
때로는 강하지 않은 것이 더 강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신앙의 세계란 세상 기준으로 강한 것을 추구하지 않는다.
댐은 쌓아 올렸다.
항공모함은 용접하여 붙인 큰 그릇이다.
댐이나 항공모함은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그 규모만큼 엄청난 일을 한다.
그런데 댐에 주먹 하나 만한 돌 하나가 빠져 나가면 어느 날 댐이 내려 앉는다. 항공모함은 그리 되면 침몰한다.
만리장성을 쌓아 둔다 해도 한 곳만 뚫리면 만리장성이 독안에 든 쥐를 만들어 오히려 치명적이 된다.
뼈가 마디마디 다 끊어 지면 뱀처럼 자유자재로 돌아 다닐 수 있다. 그러나 뱀의 징그러운 모양을 떨칠 수 없다.
뼈가 통뼈가 되면 버틸 수 있고 우뚝 설 수 있다. 아름답고 웅장할 수 있다. 그러나 뻣뻣해서 융통성이 없다.
우리의 팔과 다리는 우리를 곧게 세워 준다. 우리의 등뼈는 자유롭게 움직인다. 강약이 조화롭다.
공회의 조직 원리는 법과 제도의 체계화를 배제한다.
너무 무른 듯하고 너무 약한 듯 보인다. 그러나 들여다 보면 소리 없이 강하다. 어떤 충격도 흡수한다.
그리고 얼마든지 자라 갈 수 있는 포용과 적응 적용과 소망을 담고 있다.
공회 연구에 평생을 바쳤다 할 만큼 세월을 보냈고 자료를 가지고 있다.
40년을 넘기며 '공회' 하나의 주제로만 연구해 왔다. 그리고 공회에 관한 자료는 전부 다 보관하고 있다.
이왕 전공을 했으니 이 분야가 연구에 유리하여 붙들고 있는 것일까?
지난 세월에 투자한 것이 있으니 아까와서 붙들고 있을까?
누구든 자기 것을 주장하듯이 자기 선전을 위한 것일까?
공회를 연구하며, 그 어떤 한 모퉁이조차 들여다 보면 보배였고 연구를 하면 그 보배가 더욱 보배였었다.
처음에는 좋은 것도 있고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있고 버렸으면 하는 것도 있었다.
좋은 것은 뒤져 볼수록 더 좋았고, 이해가 되지 않은 것은 세월 속에 이해가 되었다. 버렸으면 한 것은 더 보배였었다.
과연 이런 세계가 존재할까? 이런 단체를 사람이 만들 수 있을까? 어떤 것이든 뒤져 보면 볼수록 좋지 않은 것이 나온다.
그런데 진리에 맞춰 만들고 말씀에 따라 시작을 하면 진리의 말씀이 단일성 보배성이므로 갈수록 좋아 질 수 있다.
개혁주의 신학을 깊이 들여다 보며 세월 속에 전념한 회원과의 대화를 돌아 볼 기회가 있었다.
오래 전에 확정 지운 분야여서 따로 살피지 않았고 세월 속에 거의 잊었다 할 만큼 되었는데 새삼스러웠다.
그리고 오래 전에 살필 때보다 이 번에 살피니 또 다시 새롭다. 밭에 묻힌 보배를 처음 발견했을 때가 생각난다.
진리의 세계는 평생 늘 새롭다. 새로움이 점점 늘어 나고 자라 가고 온전해 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