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다 그렇다? 손양원은! - '역항신앙'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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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23 13:00
백 목사님의 '역경'에 대한 가르침은 크게 2가지다. 하나는 '준비'고 하나는 '역항'이다.
평생의 설교는 늘 준비를 담았다. 기름 준비, 미리 준비하면 아무리 못나도 환란을 넘어 설 수 있게 해 주신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역항'이니 환란 때 잠시 피한다는 생각을 경계 시켰다. 이는 환란을 넘는 지혜가 아니라 함정이라는 것이다.
손양원 목사님의 '역항' 설교도 유명하다. 어려움이 닥칠 때 평소보다 더욱 힘 있게 맞서지 않으면 꺾인다는 경험담이다.
시대가 그러니...
세상이 다 그러니...
요즘 사람들은 아예 생각이....
요즘 교인들은 예전과 달라서 ....
요즘 교회는 이렇게 하지 않고는....
공회의 역사는 그 시작부터 1989년 백 목사님 장례 때까지 세상과 교계가 어떻게 바뀌어도 상관치 않고 내려 왔다.
19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교계와 공회는 그 모습이 거의 같았다. 지금은 너무 달라서 동서양의 차이만큼 다르다.
세월도 충분히 지나 갔고 세상을 따라 바뀌어 온 교회는 바꾸기 전과 후의 결과를 비교할 만큼 결과들이 많이 있다.
바꾼 것보다 바뀌지 않은 것이 확실히 낫다는 말은 수 없이 듣고 있다. 그런데도 이제는 바꿔 보자는 말이 끝이 없다.
이럴 때마다 기억 나는 분이 하나 있다. 1972년 미국 LA 오렌지카운티 수정교회 로버트 슐러 박사가 친구 이야기다.
그 교회의 지원을 받아 덕유산 골짝에 보일러가 설치 된 학교 건물을 마련했던 학교장이 학생들에게 교육을 말했다.
그 건물에는 층마다 중앙에 화장실이 있었다. 수세식 화장실이다. 당시 그 산골에서는 참 파격이었고 구경거리였다.
지금은 교장으로 은퇴한 친구, 수세식을 처음 봤고 쉬는 시간에 학생들이 몰리자, 세면대에 쉬를 했다. 같이 보였다.
학교 입학 후 연탄을 처음 봤다는 친구도 있었다. 친구들 자취집을 다니며 버리는 음식으로 돼지 기른 친구도 있다.
덕유산 골짝에 현대식 건물이라 파격적이었지만 도시 기준으로 보면 그냥 새로 지은 건물일 뿐이다. 충격은 참 컸다.
건물을 짓고 화장실의 냄새가 문제였다. 전부가 재래식만 사용하던 10대 후반의 시골 학생들. 위생 관념이 없었다.
전체 조례를 통해 일갈을 했다. 이 건물을 짓기 위해 서울의 이화여고를 방문했고 화장실만은 외부라야 한다고 했다.
교장은 '내가 교육자입니다. 교육자가 화장실 사용 하나를 바로 잡지 못한다면 무슨 학교며 무슨 교장이라 하겠는가?'
이화여고 교장은 서울에서도 수준 높은 여학생들인데 실내 화장실의 냄새는 해결을 하지 못했다며 만류했다고 한다.
교장은 '교육'을 입에 담았다. 화장실을 사용하는 이 하나를 바꾸지 못하고야 무슨 학교인가? 백 번 옳다. 그렇게 했다.
공회의 신앙 노선이 신앙을 지켜 내기 위해 우리의 주변과 세상과 다른 불편 때문에 지적이 나올 때마다 기억이 난다.
교회가 교인을 가르치지 못한다면 어떻게 교회인가? 학교야 교육사업이 중요하지 학생이 중요할까?
교회만은 세상과 신앙이 다를 때 신앙을 가르치는 것이 교회가 아닐까? 그 것이 소위 종교가 아닐까?
공회란 천하 교회가 다 세상을 따라 가도 우리는 따라 가지 말자는 뜻으로 출발했다. 따라 가야 할까?
교회는 그냥 모이는 곳이 아니라 가르치는 곳이다. 바른 것을 가르쳐 맞설 수 있어야 교회가 아닐까?
평생의 설교는 늘 준비를 담았다. 기름 준비, 미리 준비하면 아무리 못나도 환란을 넘어 설 수 있게 해 주신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역항'이니 환란 때 잠시 피한다는 생각을 경계 시켰다. 이는 환란을 넘는 지혜가 아니라 함정이라는 것이다.
손양원 목사님의 '역항' 설교도 유명하다. 어려움이 닥칠 때 평소보다 더욱 힘 있게 맞서지 않으면 꺾인다는 경험담이다.
시대가 그러니...
세상이 다 그러니...
요즘 사람들은 아예 생각이....
요즘 교인들은 예전과 달라서 ....
요즘 교회는 이렇게 하지 않고는....
공회의 역사는 그 시작부터 1989년 백 목사님 장례 때까지 세상과 교계가 어떻게 바뀌어도 상관치 않고 내려 왔다.
19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교계와 공회는 그 모습이 거의 같았다. 지금은 너무 달라서 동서양의 차이만큼 다르다.
세월도 충분히 지나 갔고 세상을 따라 바뀌어 온 교회는 바꾸기 전과 후의 결과를 비교할 만큼 결과들이 많이 있다.
바꾼 것보다 바뀌지 않은 것이 확실히 낫다는 말은 수 없이 듣고 있다. 그런데도 이제는 바꿔 보자는 말이 끝이 없다.
이럴 때마다 기억 나는 분이 하나 있다. 1972년 미국 LA 오렌지카운티 수정교회 로버트 슐러 박사가 친구 이야기다.
그 교회의 지원을 받아 덕유산 골짝에 보일러가 설치 된 학교 건물을 마련했던 학교장이 학생들에게 교육을 말했다.
그 건물에는 층마다 중앙에 화장실이 있었다. 수세식 화장실이다. 당시 그 산골에서는 참 파격이었고 구경거리였다.
지금은 교장으로 은퇴한 친구, 수세식을 처음 봤고 쉬는 시간에 학생들이 몰리자, 세면대에 쉬를 했다. 같이 보였다.
학교 입학 후 연탄을 처음 봤다는 친구도 있었다. 친구들 자취집을 다니며 버리는 음식으로 돼지 기른 친구도 있다.
덕유산 골짝에 현대식 건물이라 파격적이었지만 도시 기준으로 보면 그냥 새로 지은 건물일 뿐이다. 충격은 참 컸다.
건물을 짓고 화장실의 냄새가 문제였다. 전부가 재래식만 사용하던 10대 후반의 시골 학생들. 위생 관념이 없었다.
전체 조례를 통해 일갈을 했다. 이 건물을 짓기 위해 서울의 이화여고를 방문했고 화장실만은 외부라야 한다고 했다.
교장은 '내가 교육자입니다. 교육자가 화장실 사용 하나를 바로 잡지 못한다면 무슨 학교며 무슨 교장이라 하겠는가?'
이화여고 교장은 서울에서도 수준 높은 여학생들인데 실내 화장실의 냄새는 해결을 하지 못했다며 만류했다고 한다.
교장은 '교육'을 입에 담았다. 화장실을 사용하는 이 하나를 바꾸지 못하고야 무슨 학교인가? 백 번 옳다. 그렇게 했다.
공회의 신앙 노선이 신앙을 지켜 내기 위해 우리의 주변과 세상과 다른 불편 때문에 지적이 나올 때마다 기억이 난다.
교회가 교인을 가르치지 못한다면 어떻게 교회인가? 학교야 교육사업이 중요하지 학생이 중요할까?
교회만은 세상과 신앙이 다를 때 신앙을 가르치는 것이 교회가 아닐까? 그 것이 소위 종교가 아닐까?
공회란 천하 교회가 다 세상을 따라 가도 우리는 따라 가지 말자는 뜻으로 출발했다. 따라 가야 할까?
교회는 그냥 모이는 곳이 아니라 가르치는 곳이다. 바른 것을 가르쳐 맞설 수 있어야 교회가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