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 운동으로 죽으면 '순교자'일까, '애국자'일까?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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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16 08:36
최근 몇 년 동안 한국 기독교의 주류가 되는 보수 정통 교회들의 속 마음을 전광훈 목사님이 있는 그대로 밖에다 뿜어 냈다.
남북과 국제 관계를 볼 때 막 선진국이 된 이 나라의 미래와 함께 마침내 교회의 신앙 자유가 박탈 될 위기를 느꼈을 것이다.
70년 전, 1945년 해방 이후 5년 간 진행 된 국내 상황도 당시 교회로서는 위기감을 느꼈다. 그 절정이 1948년 반란사건이다.
손양원 목사님의 두 아들은 일제 말기를 극단적으로 고통 받고 해방을 맞았다. 그런데 일제보다 더 악랄한 좌익이 기다렸다.
두 아들은 훌륭한 분들이면서 신앙은 우리가 아다시피 순교할 분들이었다. 순천 지역의 우익 학생을 대표할 수밖에 없었다.
1948년 10월에 발생한 반란사건은 두 달 전이었던 8월 15일에 대한민국의 정부가 수립이 되자 막판에 몰린 좌익의 항거다.
한국 땅의 공산당은 38선 이북을 점령한 소련군 덕분에 이북에서는 그냥 시간표에 따라 움직일 뿐이지 이미 공산국가였다.
남한은 미군이 관할하였기 때문에 남쪽의 박헌영이 이끄는 공산당은 늘 쫒기며 기회를 보고 소란을 일으키며 때를 보았다.
1948년 8월 15일에 선거를 통해 국회가 구성되고 대통령이 선출 되며 드디어 해방 후 대한민국 처음으로 출발을 하게 되자
남로당은 전국 조직을 통해 일제히 반국가 활동을 격화했다. 순천 지역은 전남 전체에서 학문의 도시로 원래 유명한 곳이다.
전남 각지에서 모여 든 학생들이 좌우 대결을 벌였고 공산당은 좌익 세력을 동원하였고 이에 맞서 동인 동신은 우익이었다.
서로의 감정은 당연히 극에 달했다. 동인은 순천의 기독학생회 대표였고, 곧 미국으로 유학을 가기로 되어 있었다. 우익이다.
좌익으로서는 말로도 또 일제를 향한 항일 경력에서도 심지어 인물과 인기로서도 넘어 설 수가 없었다. 이 것이 배경이었다.
1948년 10월 19일, 여수에서 좌익이 장악한 14연대가 여수를 점령하고 20일에 순천까지 점령하자 21일에 처형이 되었다.
미국과 소련, 좌익과 우익, 공산 사상과 자본주의, 독재주의와 민주주의... 들추지 않아도 당시의 논쟁 주제는 훤히 보인다.
여기에 기독교와 무신론의 주제도 당연히 들어 갔다. 정치 사회 종교가 얽혀 있었지 오로지 종교적 입장의 처형은 아니다.
그렇다면 순국인가 순교인가? 한국의 기독교로서는 당연히 순교라고 한다. 그런데 좌익 쪽에서는 반동에 대한 처형이란다.
냉정하게 역사적 사실로 접근하면 순교인가, 순국인가? 당시 반란 후 처형된 좌익들은 북한에 의하여 순국자들이 될 것이다.
순국이란, 나라를 위해 죽는다는 뜻이니 현재처럼 이 나라가 좌우익을 초월한 상태에서는 우익 순국과 좌익 순국이나 같다.
현재 국회 법사위를 통과한 '여순사건 피해자 특별법'은 우익보다는 좌익으로 활동하다 죽은 사람들에 대한 보상이 핵심이다.
이들은 이 나라에 의해서 애국자가 된 것이다. 앞으로 더 발전하면 피해 보상을 넘어 훈장을 주고 국가 유공자가 될 상황이다.
현지 정서는 이들은 민주화 운동의 공로자쯤 되어 있다. 이런 운동이 맹렬히 진행 될수록 동인과 동신은 순교인가 순국인가?
전광훈 목사님이 오늘 광화문에서 연설을 하다 좌익 쪽에서 저격을 해서 죽는다면 나는 순교가 아니라 순국으로 보겠다.
그 분이 교도소에 갔다 왔다면 이는 신사참배 때문에 옥고를 치른 분들과는 다르다. 이 나라를 위해 고생한 애국자인 것이다.
손동인 손동신, 이 분들은 기독교의 신앙 때문에만 죽었다면 순교자다. 좌우익 대결이 포함이 되었다면 규정하기 애매하다.
만일 좌우익 정치 대결이 중심이 되거나 무게가 더 나가고, 기독교 신앙은 우익 처결을 하면서 하나 추가했다면 순국이 된다.
순천의 점령 당시 좌익들은 순천 지역의 우익이자 기독교인의 본부처럼 되어 있는 남장로교 선교부와 그 주변의 매산학교에
좌익의 반대파들이 몰려 있다며 이 곳을 쓸고 다녔고 이 주변에서 처형이 그렇게 많이 이루어 졌다. 순교인가 순국인가?
그렇게 쉽게 결정하기는 어렵다. 심지어 순천노회는 일제 말 1939년에 15인이 집단으로 구속 되어 옥고를 치른 기록이 있다.
당시 순천노회는 오늘 통합 교단이 그 숫자나 주도권이 주인처럼 되어 있다. 통합은 이 사건은 신사참배 저항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당시 항일 운동이었는지 신사참배 반대 때문에 옥고를 치렀는지 지금 고신측과 통합측은 맹렬히 논쟁 중이다.
통합 측에 던지는 나의 질문은 이 것이다. 1945년 직후에 순천 지역에서 15인의 옥고가 신사참배였다고 말한 적이 있는가?
왜 2000년대에 들어 와서 이제야 해방 전에 그 때 그 구속이 신사참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애국 운동이지 않았던가?
순천노회는 신사참배 문제가 나오자 죄가 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이 바람에 애양원 원장 선교사는 손양원을 불러 들였다.
손양원은 경남노회 사람이다. 신사참배를 결의한 순천 노회에 영향을 받지 않고 개인적으로도 거부할 분이기 때문이었다.
손양원의 전기는 1948년의 반란 사건 때문에 1950년의 6.25 때문에 한국 교계의 제일 유명한 책이다. 모두 알려 진 사실이다.
지금 코로나 사태가 이제 끝이 보인다. 정부에서 교회 예배 문제를 걸고 나오지 않는다. 작년 1년 내내 그렇게 난리였었다.
이제 돌아 보니 교회가 미워 코로나를 핑계로 실컷 패 버렸다. 문제는 한국 교회의 자세였다. 대부분 자진해서 문을 닫았다.
거의 대부분은 교회가 자진해서 문을 닫으며 다른 교회도 문을 닫으라고 떠들었다. 신사참배 때도 분위기가 딱 그러했다.
일부는 버텼다. 그러나 강하게 나오자 줄줄이 닫았다. 끝까지 닫지 않은 교회는 결국 언론에 계속 나왔다. 불과 몇 교회다.
그런데 그 몇 교회인 부산의 세계로교회와 공회의 서부교회조차 마지막에 보니까 정부와 타협하고 있었다. 우리와 다르다.
내년에 코로나 사태에 대한 교회의 대처를 두고 토론이 벌어 진다면 문 닫은 교회가 문 닫은 적 없다 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런데 50년이 지난 다음에는 작년에 자진해서 문을 닫은 교회가 코로나로 문을 닫게 된 것은 교회의 수난이었다 하겠고
돌아 서서는 그 수난이란 교회를 박해하여 당시 교회는 핍박을 받았으므로 일제 말기나 6.25 점령 때와 같다 할 듯하다.
지금 6.25 전쟁에 피난 가다 잡혀 죽은 사람조차 줄줄이 순교자가 되고 있다. 그냥 처형을 당했다 하는데도 순교가 된다.
일제 말기의 일이니 둔갑을 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다. 역사가 흘러 가고 나면 살아 남은 자가 역사를 다시 만들어 버린다.
남북과 국제 관계를 볼 때 막 선진국이 된 이 나라의 미래와 함께 마침내 교회의 신앙 자유가 박탈 될 위기를 느꼈을 것이다.
70년 전, 1945년 해방 이후 5년 간 진행 된 국내 상황도 당시 교회로서는 위기감을 느꼈다. 그 절정이 1948년 반란사건이다.
손양원 목사님의 두 아들은 일제 말기를 극단적으로 고통 받고 해방을 맞았다. 그런데 일제보다 더 악랄한 좌익이 기다렸다.
두 아들은 훌륭한 분들이면서 신앙은 우리가 아다시피 순교할 분들이었다. 순천 지역의 우익 학생을 대표할 수밖에 없었다.
1948년 10월에 발생한 반란사건은 두 달 전이었던 8월 15일에 대한민국의 정부가 수립이 되자 막판에 몰린 좌익의 항거다.
한국 땅의 공산당은 38선 이북을 점령한 소련군 덕분에 이북에서는 그냥 시간표에 따라 움직일 뿐이지 이미 공산국가였다.
남한은 미군이 관할하였기 때문에 남쪽의 박헌영이 이끄는 공산당은 늘 쫒기며 기회를 보고 소란을 일으키며 때를 보았다.
1948년 8월 15일에 선거를 통해 국회가 구성되고 대통령이 선출 되며 드디어 해방 후 대한민국 처음으로 출발을 하게 되자
남로당은 전국 조직을 통해 일제히 반국가 활동을 격화했다. 순천 지역은 전남 전체에서 학문의 도시로 원래 유명한 곳이다.
전남 각지에서 모여 든 학생들이 좌우 대결을 벌였고 공산당은 좌익 세력을 동원하였고 이에 맞서 동인 동신은 우익이었다.
서로의 감정은 당연히 극에 달했다. 동인은 순천의 기독학생회 대표였고, 곧 미국으로 유학을 가기로 되어 있었다. 우익이다.
좌익으로서는 말로도 또 일제를 향한 항일 경력에서도 심지어 인물과 인기로서도 넘어 설 수가 없었다. 이 것이 배경이었다.
1948년 10월 19일, 여수에서 좌익이 장악한 14연대가 여수를 점령하고 20일에 순천까지 점령하자 21일에 처형이 되었다.
미국과 소련, 좌익과 우익, 공산 사상과 자본주의, 독재주의와 민주주의... 들추지 않아도 당시의 논쟁 주제는 훤히 보인다.
여기에 기독교와 무신론의 주제도 당연히 들어 갔다. 정치 사회 종교가 얽혀 있었지 오로지 종교적 입장의 처형은 아니다.
그렇다면 순국인가 순교인가? 한국의 기독교로서는 당연히 순교라고 한다. 그런데 좌익 쪽에서는 반동에 대한 처형이란다.
냉정하게 역사적 사실로 접근하면 순교인가, 순국인가? 당시 반란 후 처형된 좌익들은 북한에 의하여 순국자들이 될 것이다.
순국이란, 나라를 위해 죽는다는 뜻이니 현재처럼 이 나라가 좌우익을 초월한 상태에서는 우익 순국과 좌익 순국이나 같다.
현재 국회 법사위를 통과한 '여순사건 피해자 특별법'은 우익보다는 좌익으로 활동하다 죽은 사람들에 대한 보상이 핵심이다.
이들은 이 나라에 의해서 애국자가 된 것이다. 앞으로 더 발전하면 피해 보상을 넘어 훈장을 주고 국가 유공자가 될 상황이다.
현지 정서는 이들은 민주화 운동의 공로자쯤 되어 있다. 이런 운동이 맹렬히 진행 될수록 동인과 동신은 순교인가 순국인가?
전광훈 목사님이 오늘 광화문에서 연설을 하다 좌익 쪽에서 저격을 해서 죽는다면 나는 순교가 아니라 순국으로 보겠다.
그 분이 교도소에 갔다 왔다면 이는 신사참배 때문에 옥고를 치른 분들과는 다르다. 이 나라를 위해 고생한 애국자인 것이다.
손동인 손동신, 이 분들은 기독교의 신앙 때문에만 죽었다면 순교자다. 좌우익 대결이 포함이 되었다면 규정하기 애매하다.
만일 좌우익 정치 대결이 중심이 되거나 무게가 더 나가고, 기독교 신앙은 우익 처결을 하면서 하나 추가했다면 순국이 된다.
순천의 점령 당시 좌익들은 순천 지역의 우익이자 기독교인의 본부처럼 되어 있는 남장로교 선교부와 그 주변의 매산학교에
좌익의 반대파들이 몰려 있다며 이 곳을 쓸고 다녔고 이 주변에서 처형이 그렇게 많이 이루어 졌다. 순교인가 순국인가?
그렇게 쉽게 결정하기는 어렵다. 심지어 순천노회는 일제 말 1939년에 15인이 집단으로 구속 되어 옥고를 치른 기록이 있다.
당시 순천노회는 오늘 통합 교단이 그 숫자나 주도권이 주인처럼 되어 있다. 통합은 이 사건은 신사참배 저항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당시 항일 운동이었는지 신사참배 반대 때문에 옥고를 치렀는지 지금 고신측과 통합측은 맹렬히 논쟁 중이다.
통합 측에 던지는 나의 질문은 이 것이다. 1945년 직후에 순천 지역에서 15인의 옥고가 신사참배였다고 말한 적이 있는가?
왜 2000년대에 들어 와서 이제야 해방 전에 그 때 그 구속이 신사참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애국 운동이지 않았던가?
순천노회는 신사참배 문제가 나오자 죄가 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이 바람에 애양원 원장 선교사는 손양원을 불러 들였다.
손양원은 경남노회 사람이다. 신사참배를 결의한 순천 노회에 영향을 받지 않고 개인적으로도 거부할 분이기 때문이었다.
손양원의 전기는 1948년의 반란 사건 때문에 1950년의 6.25 때문에 한국 교계의 제일 유명한 책이다. 모두 알려 진 사실이다.
지금 코로나 사태가 이제 끝이 보인다. 정부에서 교회 예배 문제를 걸고 나오지 않는다. 작년 1년 내내 그렇게 난리였었다.
이제 돌아 보니 교회가 미워 코로나를 핑계로 실컷 패 버렸다. 문제는 한국 교회의 자세였다. 대부분 자진해서 문을 닫았다.
거의 대부분은 교회가 자진해서 문을 닫으며 다른 교회도 문을 닫으라고 떠들었다. 신사참배 때도 분위기가 딱 그러했다.
일부는 버텼다. 그러나 강하게 나오자 줄줄이 닫았다. 끝까지 닫지 않은 교회는 결국 언론에 계속 나왔다. 불과 몇 교회다.
그런데 그 몇 교회인 부산의 세계로교회와 공회의 서부교회조차 마지막에 보니까 정부와 타협하고 있었다. 우리와 다르다.
내년에 코로나 사태에 대한 교회의 대처를 두고 토론이 벌어 진다면 문 닫은 교회가 문 닫은 적 없다 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런데 50년이 지난 다음에는 작년에 자진해서 문을 닫은 교회가 코로나로 문을 닫게 된 것은 교회의 수난이었다 하겠고
돌아 서서는 그 수난이란 교회를 박해하여 당시 교회는 핍박을 받았으므로 일제 말기나 6.25 점령 때와 같다 할 듯하다.
지금 6.25 전쟁에 피난 가다 잡혀 죽은 사람조차 줄줄이 순교자가 되고 있다. 그냥 처형을 당했다 하는데도 순교가 된다.
일제 말기의 일이니 둔갑을 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다. 역사가 흘러 가고 나면 살아 남은 자가 역사를 다시 만들어 버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