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회의 교역자회 - 교인의 눈을 빌려 목사를 살펴 본다.

남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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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판에는 이 홈에 올려진 글 중에 이곳에서 따로 소개하고 싶은 글도 포함됩니다. 

공회의 교역자회 - 교인의 눈을 빌려 목사를 살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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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자도 타산지석이라며 남을 보고 자기를 고치자고 한다. 물론 잘 되지 않는다. 물론 잘 하지를 않기 때문이다.
들켜도 끝까지 버티는 것이 처세술이며 상술이며 자기 보호의 본능이다. 나를 위해 살지 왜 남을 위해 살겠는가?
천주교가 끝장을 향해 달려 간 것은 교황무오설 때문이다. 아무리 틀려도 지적하고 돌아 보면 그리 되지 않는다.

백영희의 공회사를 연구하려면 끝이 없다. 그 중에 교역자가 먼저 교인들에게 교역자를 평가를 부탁한 것도 있다.
요즘 이야기가 아니다. 1970년이었다. 매 2년 시무투표를 통해 교인이 본 교역자를 인사에 그대로 반영 시켜 왔다.
짝수해, 매 2년 11월 마지막 주일에 강단을 바꾸면서 투표를 진행했었다. 4분의 1만 반대하며 조건 없는 사직이다.

주일 강단을 바꾸게 되자 서로 치켜 세우며 좋은 점수 받으려 노력도 했다. 역효과와 비교하면 효력은 없어 보였다.
서부교회처럼 해임을 30년을 버티고 현재 80대 중반이 되도록 장기 집권한 경우도 있다. 온갖 모순도 있어 왔었다.
그런데 공회 전체를 보고 50년을 계속 시행해 온 세월을 보면 그래도 참 대견한 제도다. 교계는 꿈도 꾸지 못한다.



백 목사님 사후, 각 공회들이 분화 되면서 서울공회와 부산공회는 바로 폐지했으나 부산공회 계열은 계속 시행한다.
부산공회들은 백 목사님 생전인 1988년 마지막 공문을 지금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대세다. 부공3은 좀 달리 한다.
백 목사님 생전의 그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지금은 글 쓰기가 자유롭기 때문에 교인의 설문을 추가해서 살핀다.

일단 매 2년의 11월 마지막 주간에 참석한 중학교 1년생부터 무조건 비밀 투표권을 가진다. 그 날 손님이라도 된다.
목회자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불신자를 데려 와서 불신임을 조장해도 막지 않는다. 오죽하면 그렇게 하게 되었을까?
교인 속에 억눌려 있는 그런 분함을 누른다고 눌려 지지 않는다. 전체를 표출해서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공회다.

그렇다면 한 교회와 공회 전체와 교회의 재산까지 문제가 되지 않을까? 공회가 그렇게 순진하거나 바보일까? 아니다.
그런 극단의 경우는 따로 대처할 수 있도록 공회의 신앙 노선을 지킬 수 있는 법이 있다. 그래서 이 노선이 보배롭다.
부공3의 경우는 1970년에 시작된 목회자 찬반 투표를 오늘 환경에서 돌아 보면 찬반과 함께 왜 찬반인지 살피고 있다.



공회 교회는 주일과 예배에 다른 종류의 행사를 아예 하지 않는다. 제도가 시작 된 1970년에는 찬반 표시만 할 정도나
지금은 찬반 표시에 더하여 교회의 문제점을 얼마든지 표시할 방법이 많다. 교회와 예배의 안정을 흐트리지 않으면서.
부공3은 집회 때나 각 교회 별로 꾸준히 교회의 세부 사항에 대해 교인들의 의견을 최대한 들어 오고 이를 반영했었다.
휴대폰으로 인터넷으로 익명을 보장하면서 원하는 글을 얼마든지 적을 수 있다. 많은 의견을 듣게 되었고 늘 반영했다.
원래 공회 교인은 교인이 교회에서 발언할 분위기가 아니어서 직접 비판을 해 달라고 요청을 해도 사실 잘 되지 않았다.

2007년, 부공3은 백 목사님 생전의 공회도 잘 알고 다른 공회를 거쳐 봤으며 서슴치 않고 발언할 교인을 알게 되었다.
김정수 장로님, 백 목사님 생전에 사직동교회 사건의 중심이었다. 5공 때는 해직 교수였다. 거침 없이 발언하는 분이다.
정형인 집사님, 집안 내력으로부터 공회 시작 집안이며 세상적으로는 온 나라가 알고 있는 소신 있고 거침 없는 분이다.
이 두 분이 부공3의 교회를 출석하며 집회까지 참석하면서 한 분은 10여 년, 한 분은 20여 년 이 공회를 알고 있었었다.
이 두 분에게 2007년 부공3 교역자들을 상대로 내용도 표현도 범위도 시간도 무제한으로 내 드리며 비판을 부탁했다.
그리고 두 분의 발언은 연구소 사이트에 실명으로 공개했다. 공회는 그 분들의 눈으로 크게 고치고 더 발전하게 됐다.

늘 이렇게 지적을 받으며 반영을 노력하다 보니 이제는 어떤 제안이나 지적을 받아 봐도 문고리를 고쳐 달라는 정도다.
부공3, 우리가 우리를 알지만 우리의 부족이 너무 많은데도 불구하고 왜 더 따갑게 더 아픈 지적이 잘 나오지 않을까?
혼자 짐작을 해 보면 함께 신앙 생활을 하다 보면 정작 더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할 수 있다. 동화가 되어 같아진 것이다.
이미 공회 생활을 해 오신 분들에게는 더 이상 설문을 부탁하는 것도 미안할 정도다. 그냥 시설 문제에 대부분 그친다.



공회의 더 심각한 문제를 구조적으로 발언해 주는 분이 없을까? 늘 아쉬움을 가지던 중에 이 번에 좋은 기회를 가졌다.
공회 생활을 많이 하면 공회가 익어져 문제를 지적하지 못하고 공회를 처음 출석하면 공회를 몰라서 지적을 못하는데
공회 생활을 이제 막 시작을 하면서도 공회와 비교할 때 공회보다 더 엄하게 신앙 생활을 해 온 분들을 모실 수 있었다.
말하자면 백 목사님 생전에 서부교회 중간반 반사들의 일상 생활이 가장 엄했다. 이 분들은 10여 년 안팎으로 그러했다.
또 백 목사님 생전에 경제 면으로는 연구소 직원들이 가장 어려웠다. 이 분들은 경제에 대하여도 우리를 넘어 설 정도다.

이런 분들도 공회 교인으로 세월을 보내면 또 우리가 된 만큼 우리를 보지 못하게 될 수가 있어, 그러기 전에 부탁을 했다.
이제 온 지 두세 달 정도, 보통 교인으로 두세 달이 아니라 집회와 양성원까지 다 참석을 해 본 분들이다. 또 숫자도 많다.
다양한 분들의 다양한 눈, 그런데 공회 이상으로 엄격하게 살아 온 분들, 공회의 역사적 뿌리가 되는 개혁신앙에 투철하다.
이 분들이 지적한 내용이라면 그 지적이 비록 간단해 보여도 우리는 암 초기에 발견하고 조기 대응을 하듯 하면 좋겠다.
이런 뜻을 담아 오늘 그 분들이 적어 주신 사안들을 가지고 교역자들만 먼저 모여 교역자들 내면의 문제를 먼저 살펴 본다.
공회와 교회가 함께 고치거나 반영하자고 말하기 전에, 교회의 모든 문제는 항상 교역자가 책임자이며 실제 원인이 된다.

찾아도 찾지 못하는 문제는 훗날에 맡기고 주님의 은혜를 구하며 우리의 눈이 더 밝아 진 다음에 고치면 된다.
원인은 찾았다 해도 교역자 자신들이 고치면 되는 일이 아니라 교인의 구조적 문제일 때는 쉽게 손 댈 수 없다.
내게는 혹독해도 남에게는 시간을 드리고 과정을 거쳐야 하며 본을 보임으로 세월 속에 해결하게 되어야 한다.
세상 정권처럼 사정기관을 통해 휘두르면 빠르고 쉽다. 그런데 그리 되면 교회가 세상이 된다. 교회는 가정이다.
교역자만 먼저 모이는 또 하나의 이유는, 교역자는 교역자이기 때문에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틀린 것은 고친다.
안면 때문에, 체면 때문에, 위신 때문에, 교인을 의식한 권위 문제 때문에 주저한다면 교역자를 포기해야 한다.
교역자가 알면서도 자기를 고치지 못한다면 교인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은 목사도 그러니 그냥 넘어 가라 해야 한다.



현재 지적된 문제는 일단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냥 공회 우리들의 평소 부족한 점. 우리의 배려 우리의 자세다.
따뜻하지 못한 점, 잘 살피고 함께 돌아 보지 못하는 그런 점이다. 그런데 이 것을 쉽게 생각하려면 아주 쉽지만,
이 문제가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엉뚱한 사건을 만들고 심지어 한 사람 또는 한 가정 또는 한 교회를 주저 앉힌다.
공회는 늘 인사성이 문제다. 인품도 그렇다. 배려도 그렇다. 그런데 이런 문제는 한 번에 뚝딱 고칠 사안이 아니다.
그래서 쉬워 보이고 그래서 더욱 어렵다. 각 사람마다 하나님이 주시는 과제가 다르다. 공회는 이 것이 고질병이다.
이 번에 마음 먹고 또 노력해 보려 한다. 그렇다고 평생 살아 온 성격과 행동을 하루 아침에 바꾸는 것은 더 어렵다.
타 교단처럼, 요즘 회사처럼, 개그를 섞고 그런 전문가를 통해 훈련을 해 버린다면 되지만 그 것은 하지 않는다.
어려워도 공회는 공회식으로만 고친다. 각자 문제점을 돌아 보고, 각자 자기가 알아서 고치도록 교회는 고민을 한다.

하루 아침에 조선 사람이 미국 사람 되겠는가? 하루 아침에 경상도 사투리가 서울 말투로 바뀌겠는가?
그렇다 해도 사투리가 거슬린다는 말을 듣는다면 노력은 해야 한다. 결국 백 목사님도 거의 고치고 갔다.
일제 때 청춘을 보낸 분도 교인들이 불편해 할 때 평생을 노력해서 바꿨다면 그 노력은 보통이 아니다.
뭐든지 그렇게 해 봐야 하겠는데, 과제가 너무 어려워 이 글을 적어 본다. 성격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다.
특히 나는 잘 한다고 했는데 상대방이 화를 내더라고 할 때, 상대방 기준에도 좋게 보이는 것은 더 어렵다.
그래도 이런 것 하나까지 바꾸는 것이 말씀으로 순종하는 길이라는 것이 공회의 설교며 교리의 중심이다.

교계에 이런 이야기를 하면 그 것도 고민이냐고 할 듯하다. 크리스찬이 사교적인 문제 때문에 지적을 받느냐 할 듯하다.
공회는 공회만의 장점이 많고 특별한 만큼 바로 이런 면이 그렇게 어렵다. 어려운 점을 또 지적을 받았다. 그래서 고민이다.
이 곳을 들어 오는 분들은 소속을 부공3이나 총공회에 두고 있지 않다 해도 이 글이 고민하는 단점을 적잖게 가졌을 듯하다.
그런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그런 사람들이 이런 신앙을 좋아하고 이런 곳에 이런 자료를 참고한다. 아니라 해도 그렇다.
한 사람의 경험으로 많은 사람이 함께 실수를 줄이자는 뜻이다. 이 곳 우리의 단점을 읽으며 자신을 돌아 보셨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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