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이 된 오해들, 그 사실과 진실
(공회의 자료화)
이 노선은 교인에게 성경만 읽고 기도하고 그리고 자기 생활에 충실하라 한다. 목회자는 전도와 심방을 더한다.
이 노선은 주변에 전도는 열심히 해도 무슨 단체나 모임이나 행사에는 아예 나가지 않는다. 아예 모르고 산다.
이 노선은 덕유산 깊은 속에서 시작하여 사람 만날 기회도 없고 또 이렇게 믿는 것이 좋아서 그렇게 되어 졌다.
이 노선이 이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살아온 지난 날들'은 있지만 자료화는 몰랐다. 매 현실을 살아 갈 뿐이었다.
이 노선이 1936년에 시작 되어 1979년이 되자 어느 날 세상에 너무 알려 졌다. 그리고 정리할 필요가 생겼다.
이 노선이란 뭔가? 1979년부터 이리 묻는 이들이 몰려 왔다. 모르는 공회 교인은 없으나 설명할 사람이 없었다.
학생을 많이 데려 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디는? 말씀에 은혜가 너무 크다! 그렇다면 역사에 그 많은 설교가는?
강단에 꽃 장식을 하지 않는다! 한국 교회 초기에 꽃 단장이 있었던가? 모두가 코끼리 한 쪽만 붙들고 있었다.
1984년에 백 목사님은 평생에 단 1명에게 해외 유학을 보내며 역사와 세계의 교회와 이 노선 비교를 부탁했다.
공회 내 신학자들은 그들이 모르는 것을 배우러 갔고 배운 세계 신학을 가르치려 했다. 목사님의 중심은 달랐다.
(교계와의 대화)
백 목사님 생전에 목사님의 노선의 정리화 때문에 나는 총공회와 서부교회와 목사님 개인 자료를 전부 가졌다.
공회와 서부교회와 목사님 가족 전부가 나의 위치와 사명을 알기 때문에 자료를 몰아 줬고 나는 쓸어 담았다.
1989년 목사님 사후 공회와 서부교회와 백 목사님에 대하여 '규정'을 할 때마다 나는 정의를 내릴 수 있었다.
아직까지도 내가 내린 정의가 달라 진 기억이 없다. 나와 맞섰던 공회들과 인물들과 발표들은 뒤에 바뀐 듯하다.
1989년 장례 후 최선을 다해 가진 모든 자료를 주변에 전했다. 1998년부터는 인터넷을 통해 무제한 제공했다.
이 문제 때문에 최근 전과 4범이 되는 훈장도 받게 되어 기쁜 마음이다. 이 문제 때문에 교계와 대화를 트게 됐다.
공회는 외부 접촉을 하지 않는다. 찾아 오는 분을 피하지는 않는다. 목사님 사후 생각치 않게 교계 연결이 되었다.
공회와 백영희와 서부교회를 객관적으로 그리고 철저히 알고자 하는 학자들은 어떻게든 연결 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거의 모든 유명 교단들의 핵심 인사들과 바로 전화 할 정도가 되었고 공회 기준으로서는 탈선일 정도다.
외부의 관심은 공회와 서부교회와 백영희의 외부가 아니라 드러 내지 않은 내면이다. 그래서 대화는 깊어 진다.
(상식이 된 오해들)
불신자들은 대뜸 '교회는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 하지 않느냐!' 이렇게 호통을 친다. 예전 불신자는 그러지 않았다.
어떤 종교든 종교라는 것은 굶는 것을 권장한다. 그런데 종교에게 먹이라고 한다면 종교의 본질도 모르는 이다.
정치가들은 대뜸 '교회는 사회 통합에 앞장을 서야지 어떻게 분열을 주장하냐!' 난리들이다. 역사를 몰라 그렇다.
신앙인이 되는 순간 가족과 주변과 사상 분쟁이 시작 되고, 한 나라와 사회에 선교가 시작 되는 순간 피를 흘린다.
교회가 사람들에게 밥을 먹이고 여야와 남북을 다독인다면 교회를 오해했다. 그런데 이 오해가 지금은 상식이다.
그런데 이 오해가 된 '상식'을 조금만 생각해 보면 교회의 본질을 왜곡한 것이 '사실'이다. 왜 굶고 분란을 일으키나?
흑암 속에 빛이 비취니 흑암이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이 것이 '진실'이다. 이 진실이 사실의 배경이고 본질이다.
공회 안부를 물으며 '많이 갈라 져 몇 남지 않았지요?' 질문은 빠지지 않는다. 서부교회와 총공회의 와해를 말한다.
모든 교단들은 교회법에 의한 조직으로 유지 된다. 그들의 기준으로 회원수의 감소와 분열은 와해요 약화가 된다.
공회는 그 이름부터 조직화를 반대했다. 노선이 공회다. 교회와 교인의 회원 규모가 아니라 무형의 노선이 공회다.
사실 모든 교단은 교회론에서 '교회'의 정의를 그렇게 알고 있다. 그런데 그들의 교회론 교리에 어긋난 질문을 한다.
재래식 무기는 무기의 숫자와 성능과 그 운용으로 무력을 평가한다. 핵무기는 그 존재만으로 절대 무기라고 한다.
핵은 물량과 운용과 성능에 문제가 아니다. 작으니 갯수도 알 수가 없지만 제 정신 아닌 인간이 가지면 더 문제다.
모든 교회와 교단들은 규모가 먼저다. 그렇게 치면 아직도 천주교가 1,500여 년 절대적으로 우세하다. 최고 교회다.
천주교가 몇십 억 회원에다 세계의 성당들과 교황 조직으로 자랑을 해도 우리 눈에 천주교는 공원 묘지로 보인다.
수만 명, 수십 만 명이 있다 해도 묘소의 숫자라면 잔디만 깎아 주면 된다. 그 잔디 깎는 1명은 살아 있는 사람이다.
공원 묘지를에 계신 분들에게는 죄송하지만 수십 만이 모인 그 곳에서 우리는 일하는 사람만 사람으로 상대한다.
공회는 노선으로 존재한다는 이 한 마디 때문에 목사님 장례 때부터 부산공회 내부에서도 오해와 갈등이 많았다.
대구공회가 총공회 3분의 2를 확보했고 부산공회는 3분의 1만 확보했다. 부산공회도 이 1/3을 공회로 보고 있었다.
나는 대구공회 내에도 이 노선의 가치를 가진 분들은 공회 사람이고 부산공회에도 공회 사람 아닌 이가 많다고 했다.
대구공회도 1990년 이후의 수 많은 분열과 분쟁이 바로 이 이유 때문이고 이 이유 때문에 지금도 고통은 계속 된다.
부산공회도 1990년 이후의 수 많은 분열과 분쟁이 바로 이 이유 때문이다. 서영호 목사님은 공회 노선이 아니다.
이렇게 한 마디 하면 간단하다. 대구공회 내에도 문석표 김병춘 이런 분들은 역사적 대구공회일 수가 없는 분이다.
닭들은 수풀을 헤집고 다니면 행복하고 오리들은 연못으로 가야 행복하다. 위치가 잘못 되면 자타가 함께 고통이다.
(계신 측은 선하다?)
이병규 목사님은 양보하지 빼앗거나 충돌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 분을 뵌 교인들은 그래서 그 분을 존경한다.
이병규 목사님의 내면을 들여다 본 일이 있었던 분들은 전혀 다르게 말을 한다. 상식과 사실과 진실은 무엇일까?
백 목사님은 왜 호전적이고 쟁탈적일까? 공회 교회들과 부딪혀 본 이들은 한결 같이 직접 겪은 사실로 그리 본다.
나는 그들이 왜 그렇게 보는지 이해를 한다. 그들의 말은 맞다. 그런데 그들은 오해를 했다. 사실도 진실도 모른다.
마5:39에 오른 뺨을 맞으면 왼편을 돌려 대라고 했다. 그래서 공회 교인의 오른 뺨을 때린 다음에 반응으로 살핀다.
왼 편을 맞지 않으려고 노력하면 공회 교인이다. 무조건 왼 편 뺨을 때리라고 돌려 대면 공회를 오해한 사람들이다.
공회는 타 교회와 달리 일점일획까지 지키려고 신사참배나 6.25나 고신의 소송 문제 등에서 고난을 겪지 않았던가?
이 것이 그 흔하고 흔한 불신자들의 자기 식 성경 해석이다. 그렇게 해석해야 기독교인을 착취하는 데 유리하겠지.
그들의 자식 중 믿는 아이가 그 말씀대로 살려 한다면 불신 부모라도 단번에 아이에게 '그 뜻을 잘 살펴라'고 한다.
공회는 소송한 적이 없다. 그런데 공회의 소송 역사는 많다. 공회는 소송을 노선으로 금지한다. 그런데 수없이 했다.
어떤 사람은 말로는 하지 말라 하고 실제로는 소송을 해 온 것이 공회라고 주장한다. 백 박사님이 그런 부류이다.
어떤 사람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은 하되 할 수 없으면 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 것이 대구공회의 주류 흐름이다.
어떤 사람은 이 노선을 위한 소송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한다. 나는 되고 남은 안 된다는 식이다. 부공1이 그렇다.
이 곳은? 어떤 소송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법원의 기록을 떼 보면 실제로는 하는 수가 있던데?
이런 것을 두고, 좀 생각을 해 보고 따져 보고 연구하고 모순처럼 보이는 것을 해결한 다음에라야 신앙의 노선이 있다.
이 정도만 적어 본다. 더 적으면 찾아 와서 만난 분들에게 실례가 될 듯하다. 찾아 와서 공회를 비판한 분들에게 권한다.
자기가 본 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왼편을 돌려 대라 한 주님이 성전을 뒤엎어 버렸다. 간디의 무저항이 아니다.
그렇다면 언제는 되고 언제는 안 되는 것인가? 살펴 봐야 한다. 그리고 모든 것을 전부 조사하고 샅샅이 살핀 다음에
이 노선이 옳으면 이 노선은 세계 기독교사가 만들어 놓은 마지막 걸작이다.
이 노선에 몰래 덮어 놓은 정화조가 있다면 이 노선은 또 하나의 사기극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