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회 목회자의 '경제' 요건

남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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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판에는 이 홈에 올려진 글 중에 이곳에서 따로 소개하고 싶은 글도 포함됩니다. 

공회 목회자의 '경제' 요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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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8월 27일의 장례식 후
공회는 순서만 남았지 북쪽 이스라엘과 남쪽 유다로 나뉠 일을 피할 수는 없었다. 교회가 살아 있으면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공회는 목사님 생전에 이미 일반 교회의 운영안을 좀 받아 들여야 한다는 분들이 확실히 있었고 이를 반대하는 쪽이 있었다.
리브가 뱃속에 사람이 둘이니 둘로 출생하는 것을 분리라고 비판하면 우습다. 필연이다. 신앙의 두 노선은 성경과 역사다.
이 말이 듣기 싫은 사람은 좁은 길, 옳은 길에 서면 된다. 넓은 길, 곁 길로 가면서 함께 갈 수 없다는 쪽을 분열로 몰면 좌파다.



교리 노선은 별로 다르지 않다.
개인적으로 일치하기는 어렵지만 공회의 중요 교리는 같았다. 문제는 교회 운영에 대한 사고방식과 실제 교회 모습이 달랐다.
고신과 합동은 교회 운영의 방법 때문에 나뉘었지 교리가 달라 나뉜 것은 아니다. 해외 신학교에 가면 나란히 앉아 배운다.
대체로 부산공회는 백 목사님 생전 모습을 고수하자는 쪽이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 보면 감성적 답습이어서 오래 가지 못했다.
1989년 이후 첫 분열의 대구공회는 수정 진보 노선이었고 부산공회는 보수 정통 노선이었다. 그 때는 아니라며 펄펄 뛰었었다.
그렇지 않다 말은 쉬우나 세월을 통해 열매는 드러 났고 지금 대구공회 소속 교회들은 부산 공회에 비해 교계화가 되어 있다.
문제는 부산공회들은 일시 감성적으로 보수를 주장했기 때문에 세월과 사건들이 흔들어 버리자 지금은 딴 모습이 되었다.



교역자에 대한 몇 가지만 짚는다.
교회가 모이면 공회가 된다. 공회가 아무리 공회 노선을 천명해도 소속 교회들이 교계화가 되면 결국 허울만 남게 된다.
교회의 모습은 교역자의 모습에 따라 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교역자 모습만에 집중하여 이 곳과 타 공회들을 구별해 본다.

1. 경제 문제
부공3, 이 곳만 교역자들의 월급을 80만원에서 99만원으로 현재까지 묶어 두고 있다. 경제는 신앙 세계에서 가장 초보다.
백 목사님은 평생 자신과 가족을 위해 사용한 돈은 생존 최저 비용이 원칙이었다. 그리고 개인 재산을 따로 모으지 않았다.
부공3만은 정식으로 목회를 출발하는 사람은 단 1원도 빼지 않고 전액을 공회에 연보한다. 월급은 99만원 이하로 맞춘다.
이 문제를 두고 1998년에 서울의 부자 교인들이 모두 불가능하다 했고 그들에게 일반 교인들의 생활비 계산을 요구했다.
결국 그들은 공회가 제시한 돈이면 이해가 된다 하여 월급 인상을 두고 재론하지 못했다. 전국의 교인들도 마찬 가지였다.

공회는 목회자에게 사택과 차량을 제공한다. 이 2 가지를 목회자 월급에 환산하면 목회자 월급은 50% 이상으로 오른다.
두 번째, 공회 목회자는 법은 아니나 자녀에게 초등학교 공부 이상을 시키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나갈 돈이 거의 없다.
초등학교란 과거 의무교육 대상이다. 지금은 고교까지 확대 되었다. 그렇다면 사교육 없이 고등학교로 제한하면 된다.
세 번째, 공회 목회자는 법적 의무 외에 보험을 넣지 않는다. 적금도 넣지 않는다. 그렇다면 더 이상 어떤 돈이 필요할까?


2. 시무 투표
부공3, 이 곳은 목회자가 2년간 소신 있게 목회하지만 매2년마다 전체 교인의 찬성이 75% 이상이 아니면 무조건 사직한다.
다른 공회들은 목회자가 불신임을 당하면 교회에게 퇴직금을 요구하거나 자파 교인을 부추겨 싸움에 나서도록 하고 있다.
부공3은 아예 그러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시작했다. 이 조건이 있으면 목회자는 거의 정상대로 충성하고 깨끗할 수밖에 없다.





2013년, 백 목사님의 자녀들이 부공3이 운영하던 연구소에 부친 설교가 자녀들의 사유 재산이라며 소송을 시작했었다.
그 소송을 위해서 그 분들은 부친이 공회 목사는 어떤 개인 재산도 없다고 가르쳤다는 내용을 전면 부인하고 나섰다.
결국 부친의 설교가 지적재산권인데 부친의 소유이며 그 재산을 연보했을 리도 없고 한 적도 없다는 주장을 관철했다.
불신 세상이 아는 최근 한국의 종교계, 그 중에서도 기독교의 목사들은 종교 직업인이다. 그런 인식으로 판결을 냈다.

바로 이 과정에서 부공3, 이 연구소의 주력이던 분들이 일제히 백 목사님 자녀들의 주장이 옳다며 호응을 하고 나섰다.
양파 껍질은 까도 까도 껍질이 나온다. 마지막을 다 까고 나면 남는 것이 없다. 목회자의 경제욕은 양파 속과 같았다.
왜 백 목사님 자녀들의 말도 되지 않는 주장을 이 곳의 지도부들까지 지지하고 나섰는지, 그 배경은 아주 쉽게 드러 났다.
뒤로 보유하고 있던 재산들이 있었다. 수천 평 토지를 몰래 감춰 두고 있었던 분, 공회 몰래 월급을 2배나 올린 분 등이다.

부공3, 이 곳은 1998년 사이트를 통해 공개 운영을 하면서 사이트에서도 늘 부공3 목회자의 경제 원칙을 천명해 왔다.
시무투표도 그렇게 설명해 왔다. 집회 때마다 각 교회의 개척 예배 때나 순회 때도 공회 대표가 수시로 천명해 왔었다.
바로 그런 면 때문에 부공3에 오기 어려운 인재들 신앙가들 총공회 유력한 분들이 모여 들었었다. 알고 보니 아니었다.
심지어 부공3의 경제 청결을 찬성하고 들어 온 분들조차 뒤에 다른 건으로 문제가 생기자 교역자 재산 형성을 돕고 있다.


교회의 탈선을 두고 흔히들 목회자들을 지탄한다. 그러나 그런 목회자가 있는 교회들에는 반드시 뒤를 봐 준 교인이 있다.
그 교인들이 처음에는 몰랐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 모를 수가 없다. 그 때는 차마 말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방조범이다.
현재 부공3의 목회자들은 2013년 이후 수백 건의 고소 고발을 당하는 바람에 모든 계좌까지 전부 조사를 당했다.
연구소 회비를 국가에 신고한 뒤에 받지 않았다는 점으로 2명이 전과를 받았다. 개인 재산과 불법은 1원도 없었다.



최근 공회의 각종 재산과 교회별 회계를 살펴 보면서
부공3, 이 연구소에 관련 된 분들에게 다른 부족이 많고 죄가 많아도 최소한 돈에 대해서는 1원의 부정도 없어 감사하다.
부공3, 이 연구소가 출발할 때 처음부터 천명한 것이 있었다. 다른 것은 부족해도 돈에 대해서만은 깨끗하겠다고 했다.
부공3, 이 연구소 관련 목회자들은 자녀들을 모두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독학으로 이후 알아서 독학으로 공부하게 했다.
중학교 고등학교 졸업장이 거의 없는 공회, 부공3이 모든 공회들과 비교하면 형편 없이 못났지만 이 것이 저력이다.
일단 돈에게 붙들리지 않으면 비록 오늘 같은 말세라 해도 세상과 맞서 볼 만하다. 돈에게 자유하지 못하면 시작도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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