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면, 주변에 피해를 끼친다.

남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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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판에는 이 홈에 올려진 글 중에 이곳에서 따로 소개하고 싶은 글도 포함됩니다. 

가난하면, 주변에 피해를 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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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부에 따른 표시)
가난하면 못난 짓을 한다. 정도 이상으로 비겁해 지거나, 정도 이상으로 반발을 한다. 없어 그런 것이고 못 나서 그런 것이다.
넉넉하면 배부른 짓을 한다. 정도 이상으로 교만해 지고, 정도 이상으로 과시를 한다. 있다는 표시는 그렇게 해서 나오게 된다.

가난한데 비겁하지 않고 비굴하지 않으며, 가난한데도 겸손하고 정중하며 예절까지 갖추는 사람들이 있다. 백영희가 그렇다.
넉넉한데 교만하지 않고 남의 사정을 무시하지 않으며, 만사에 소탈하며 사람의 마음까지 끄는 이도 있다. 송종섭이 그렇다.

1984년에 나는 치아와 입 때문에 7cm 정도? 껌 1개를 10개로 나누어 반 나절을 사용하던 때가 있었다. 그렇게 아껴야 했다.
원래 검소는 집안 체질로 어릴 때부터 배어 있었지만 20세에 고향을 떠난 후 아껴야 했고 노동과 함께 교회 월급이 그러했다.
집안은 가난하지 않았다. 어릴 때는 읍내 그 수준에서는 잘 살았다. 10대 후반이 되면서는 그냥 불편 없이 사는 정도였다.
대학은 빌려서라도 들어 갔지만 이 때는 철도 들고 신앙도 들었다. 백 목사님께 배우게 되면서 극단적으로 내핍을 하게 된다.
주변 다른 사람과 비교할 때 거의 유례가 없을 정도로 확실하게 일을 했고 공부를 했고 내핍을 했다. 기록으로는 우수했다.



(부자 속에서 가난하게 살면)
1984년에는 집에도 돈이 아예 없고, 나는 교회 직원 중에서도 경제가 가장 혹독했던 편집실 직원이었고, 나 역시 내핍이었다.
이런 상태에서 백 목사님이 교회 돈에서 유학비용을 지출하니 더욱 내핍을 했다. 문제는 그 나라는 나의 사정을 알 수 없다.
부자 동네에 거지가 가서 함께 살고 함께 공부를 하게 된 것이다. 한국에서는 내가 아낀다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았다.
부자들 틈에서 내가 한국에서처럼 사니 나는 부자들에게 뚜껑 열린 쓰레기통이고 나의 행동은 돌아 다니는 쓰레기가 되었다.
당시 그런 피해가 발생 되는 줄 상알았더라면 백 목사님께 조금 더 청구했을 터인데 나는 몰랐다. 목사님은 청구하라 하셨다.

20명이 조금 더 되는 기숙사는 아주 가족 분위기였다. 그 정도의 핵심 교인으로 이루어 진 세인트루이스교회도 가족 교회다.
한 방을 사용하며 서로 평생에 더 이상 가까울 사람이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을 룸메이트는 서부교회 제일 부자집 공자다.
이 세 종류의 분들에게 오늘까지 나는 고개를 들 수 없는 마음이다. 그 때는 몰랐다. 우리 사회가 잘 살게 되면서 알게 되었다.
기숙사 모든 학생들은 차가 있다. 나만 없다. 신학생들이 나를 그냥 두고 가는 것은 어렵다. 그들의 일정에 큰 짐이 되었다.
나는 차 구입비와 유지비를 아꼈다. 신학생들이 마트를 가면서 내게 차비 받기는 어렵다. 주기도 어렵다. 빚을 지는 것이다.

한 학기 뒤에 서부교회 장로님 아들이 왔다. 부자였지만 아끼는 것은 나와 같다. 집안 체질이 검소하다. 그러나 쓸 때는 쓴다.
정말 써야 할 때가 있는데 서부교회 반사로 함께 있었고 여기 와서 룸 메이트인데 나를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아침에 샌드위치 1개, 점심에 2개, 저녁에 3개로만 처음부터 올 때까지 먹었다. 사람마다 먹는 취향이 같을 수가 없다.
그는 서부교회의 신앙과 백 목사님의 교훈 방향을 안다. 거지든 내핍이든 나처럼 사는 것이 맞다. 그는 피곤할 수밖에 없다.
주일에 교회 가면 점심과 저녁을 식구들과 함께 먹는다. 나는 이 때 1주일치 영양을 채운다. 그들의 눈에 어떻게 보였을까?


경쟁이 치열한 미주 사회에서 한 주간을 열심히 살고, 주일에 모두가 마음 편히 행복하게 가족 중심으로 교회에 모였다.
그들의 문화가 있고 그들의 음식이 있고 그들의 생활이 어울어 진다. 여기에 1원을 아끼는 사람이 초라하게 끼어 있다.
모두가 한국의 백 목사님과 그 설교의 내용을 안다. 나는 한국 기준에 정상이다. 그들은 나 때문에 이래저래 바늘방석이다.
문제는 나는 그 때 그들의 불편한 마음을 알아 차리지 못했다.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 갈 뿐이었다. 오늘까지 그 때가 후회다.
아무리 교회 돈을 아낀다 해도 내가 불편하고 끝이 나야 하는데 학교와 주변 학생들과 룸메이트와 교인들을 불편하게 했다.

교인들이 가끔 한 마디씩 했다. 그 때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다. 오늘은 우리 나라가 그 때 그 나라보다 나은 상황이다.
지금 나처럼 열심히 살면서 내핍하는 사람들이 보면 나는 그 때의 나를 말하며 나 때문에 주변 사람을 피해 주지 말라 한다.
공회가 공회로 유지하면 교계에 폐해를 끼친다. 목사님이 부산에서 제일 큰 교회인데 그리 사니 다른 목회자들은 어찌 사나.
제일 큰 예배당이 창고 같고, 제일 큰 교회 목사님이 거지처럼 사니 부산 시내 다른 교단 목회자들은 전부 도둑처럼 된다.
그러다 보니 그들은 서부교회를 이단이라 그렇다고 비판하는 것이 자신들이 피해 가는 방법이나 양심에 얼마나 괴로웠을까?



(그렇다고 돈을 쓸 수는 없고)
다른 교단 목회자들이 돈을 쓰고 싶은 대로 쓸 수 있도록 공회가 목회자의 월급을 올릴까? 그 것은 교인 돈이라 곤란하다.
다만 피해 갈 수 있다면, 넉넉하게 쓰고 사는 사람을 공연히 바늘 방석으로 만드는 일은 피하며 아끼는 것이 좋을 듯 하다.

더하여, 가난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어려운 표시가 자꾸 나게 된다. 가난할수록 최선을 다해 표시를 내지 않아야 한다.
가난하지만 당당하게, 가난하지만 자연스럽게, 가난하지만 검소하게만 보이고 추하게 보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다.
오늘 우리 사회가 극단적으로 잘 살다 보니 이 노선의 교인이 이 노선의 경제 원칙으로 살 때 부탁하고 싶은 말이다.

백 목사님의 가난은, 누가 봐도 검소하게 보였지 추하게 보이지 않았다. 없어 보이지 않고 단순하게 보였다. 참 좋았다.
백 목사님 표현은, 무식하여 영어 단어 하나를 사용하지 못했으나 품위가 있었다. 천하지 않았다. 우리는 천하게 보이는데..
돈을 아끼려다 보면 남에게 야비하게 보일 수 있다. 미국으로 떠날 때 한 마디 부탁을 하셨다. '야비하게 보이지 말라'고..
40여년이 가까운 지금 그 때를 돌아 본다. 나는 내 돈을 아끼는 것만 주력했지 주변 모두에게는 야비하게 보였을 듯하다.

이런 기억 때문에 연구소와 공회와 교회를 운영하면서 늘 조심을 했다. 그런데 타고 난 수준이 그러니 한계가 있었다.
그 기억이 없었다면 지금도 휴지 한 토막 코를 풀고 말려 가며 10번을 사용했을 것이다. 지금은 혼자 있을 때만 그렇게 한다.
그 때를 바로 알지 못했을 때는 양말을 기워 었다. 지금은 속옷은 그렇게 해도 외부 옷이 떨어 지면 바로 교체를 해 버린다.
남이 나를 보는 것그자체가 남에게 피해가 된다는 것, 나와 내부인이 할 말인데 듣기 싫어 하는 외부인에게 할 때를 조심한다.

부공1 측 사람들이 남들에게 꼬박꼬박 '순교하신 목사님'이라고 이름을 갖다 붙인다. 북한의 '경외하는' 수령님식이다.
그들은 경외하지 않기 때문에 꼬박꼬박 붙인다. 나는 순교하신 목사님의 순교를 잘 알기 때문에 순교 표시를 잘 하지 않는다.
나는 공회 노선 그대로 오늘도 살고 있기 때문에 목사님 사후 부공1 분들이 '그대로' 라는 표현을 할 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정말 사랑하는 부부는 이혼할 리가 없기 때문에 상대에게 '사랑한다'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요즘은 넘치도록 모두 많이 한다.
그래서 오늘 이혼부부가 그렇게 급증하고 있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끼리는 사랑한다는 말이 필요가 없다.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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