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선인가, 개인 신앙인가 - 공회 인물들을 비교할 때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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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14 10:32
나는 평생 소속과 노선을 제일의 가치로 두고 말을 했고 행동을 해왔다.
가족이든 친구든 총공회 밖에 있는 사람은 내게 지인일 뿐이었고 만난 일은 없다. 그런 분과 연락을 했다면 이 노선에 필요한 자료나 업무 때문이었다. 호적에 친형으로 표시 된 분과 모친 장례 때 얼굴을 본 후 30년 본 적이 없었다. 그 집에 결혼 때문에 연락이 왔을 때 내가 왜 이 연락을 받아야 하느냐며 바로 끊었다. 내 주변 모두와 이런 관계이니 그들이 먼저 알고 있다. 이런 나를 향해 형제가 모여 공회나 집회를 함께 한다고 평을 하면 백 목사님의 '기인 其人 기언 其言'을 떠올린다. '그런 사람이면 그렇게 말을 한다'는 뜻이다.
나는 우리 교회 교인이 동네 옆 집과 분쟁이 생기면 가서 대신 싸워도 준다.
살아 가며 생기는 분쟁에는 진리가 없다. 이해 관계뿐이다. 그 교인은 소속과 노선이 같기 때문에 내 편이다. 내 편을 위해 당당하게 나선다. 최근에 교인과 나의 형제 사이에 사업 상 이해 관계가 발생했다. 사실 관계도 교인이 옳았으나 목회자니 당연히 교인을 위해 전과를 2개나 받으며 교인이 할 말과 행동을 다 해 버렸다. 고소를 받을 때 나는 회피하지 않았다. 목사가 교인 편을 드는 것은 목사 선서에도 들어 있다. 당당하게 그렇게 말을 했고 행동을 했다. 그래서 그 전과는 내게 무공훈장과도 같다. 최소한 나는 밥값은 한다.
나는 만사에 노선과 소속을 앞 세우다 보니 종종 이런 반론과 오해를 받는다.
부공3 교회는 다른 공회 교회들보다 다 나은가? 다른 공회 교회에도 목회자나 교인들 중에 부공3 소속보다 좋은 목회자와 교인들이 얼마나 많은데 부공3 교인들만 옳은 것처럼 말하는 것은 성급하고 옳지 않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들은 내 말의 뜻을 몰랐다. 나는 '부공3'이라는 이 공회만을 다른 공회보다 낫다고 하지 이 공회에 있는 목회자나 사람을 더 낫다고 말한 적은 없다. 오히려 부공3에 목회자와 교인은 대개 수준도 신앙도 다른 공회보다 못하다고 해 왔다. 공회와 교계를 비교할 때도 나는 이런 표현을 거의 유지해 왔다.
서울 송파교회가 예배당을 구입하고 이전을 했다는 소식이 게시판에 올려 졌다.
주변에서 이의가 있었다. 송파교회 옆에 강동교회가 부공3이고 송파교회는 부공3 우리를 비판하는데 어떻게 우호적으로 소개하고 평가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전임자는 우리를 많이 비판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 분의 비판에는 단 1 가지만 빼놓고는 나는 대부분 인정한다. 그 1가지조차 잠실동교회 출신에게 전해 들었기 때문에 단정하지도 않는다. 김효순 구역에서 불러다 교육을 시켰다는 내용인데 그 때 내게 대해 거짓말을 해서 부공2로 만들었다는 내용이다. 그 분이 내게 직접 와서 했던 말 때문에 대충 분위기는 짐작을 한다.
최근에 현재 송파를 맡고 계신 분도 비판했다고 전해 진다. 나는 다르게 해석한다.
신중한 분이어서 본인이 잘 모르는 말을 3자에게 쉽게 전할 분도 아니지만 그런 분이 그렇게 전달을 했다면 그 분이 가진 장점이 아니라 원래 그 분이 가졌던 약점에 관련 된 내용이어서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호랑이가 수영을 못한다고 장애라 할 것인가? 독수리가 걸어 다니지 못한다고 웃을 것인가? 그 분이 가신 위치와 사명은 대구 기도원에 대한 복잡한 내용을 파악하고 처리하는 쪽이 아니다. 그렇다면 궁금할 수 있고 주변에 물을 수 있고 또 확인을 하려는 뜻을 담고 여러 표현을 할 수 있는 분이다. 나는 그 분을 평소 존경해 왔다.
소속과 노선은 생명보다 중하다. 그런데 노선과 소속 안에는 별별 사람이 있다.
요나단은 사울에게 속했고 사울의 노선에서 전사했다. 그러나 삼상18:1에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연락되어 요나단이 그를 자기 생명 같이 사랑'했다. 겉은 사울이나, 그의 속은 다윗이었다. 삼하15:37에 후새는 압살롬을 따랐으나 내심은 다윗뿐이었다. 요압은 평생 다윗을 따랐으나 다윗의 원수였다. 왕상14:13에서 아비야는 북조 이스라엘을 시작한 여로보암의 아들이었지만 여호와를 향하여 선한 뜻을 품었다. 부공3에 속했으나 신앙은 거의 전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른 공회에 속했으나 부공3의 신앙도 분명히 있다.
그렇다면 소속과 노선이 왜 중요할까? 당장에는 각자가 중요하나 미래가 문제다.
해방 후 남북이 나뉠 때 어쩌다 보니 북쪽에 남게 된 이들이 있다. 또 오판을 해서 북쪽을 지지한 쪽도 있다. 그런데 그들의 진심이 바른 사람은 세월 속에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겉 보기에 북쪽이나 그 속은 더더욱 남쪽이다. 반대로 남쪽에 살다 보니 살았고 남쪽에 살며 남쪽의 건국과 지난 역사 전체를 증오하며 내전을 일으키는 이들이 많다. 지금 집권층의 지도부가 그렇다. 이들의 마음은 북이다. 남한에 살며 남한의 발전이 주는 혜택은 모두 받아 가지면서 죽어도 남한을 욕하는 사람, 그 불행은 적지 않고 참담하게 된다.
소속이란 북한이냐 남한이냐를 말한다. 노선이란 자유민주주의냐 그 반대냐이다.
남한에 국민이 자유민주주의를 진심으로 좋아 한다면 이 사람은 흐르는 물에 몸을 맡기는 것처럼 수영을 할 수 있다. 남한에 속했으나 북쪽을 마음에 담은 사람은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올라 간다고 노를 젓는 사람이다. 수영을 하는 사람이다. 간다고는 하지만 떠내려 간다. 이 것이 그들의 슬픔이며 불행이다. 그래서 소속과 노선이 중요하다. 처음에 잘 모를 수 있다. 세월이 지나 가면 자기는 어디 소속하고 어느 노선이 맞는지 알 수 있다. 알게 되었을 때 바로 돌아 서면 발전이다. 알면서 돌아 서지 않으면 성령 훼방죄가 된다. 희망이 없다.
공회들이 나뉜 지 30년이다. 가깝게 살핀다 해도 10년이 지났다. 이제는 모두가 안다.
솔로몬 사후에 여로보암과 르호보암이 남북으로 나뉠 때, 소속과 노선은 남쪽의 르호보암이 맞지만 르호보암의 처신과 눈에 보이는 만 가지를 보면 누군들 북 쪽에 서고 싶지 않았을까? 그래서 모두가 여로보암을 따랐다. 유다 지파는 집안이니 남았고, 베냐민 지파는 예루살람이라는 고향 때문에 남았다. 양 쪽을 알아서 선택할 지파는 10개였고 그 모두가 여로보암을 따랐다. 그런데 막상 나뉜 뒤에 본색이 들어 나면서 남북은 비교가 되었고 남쪽에 문제는 많다 해도 양심과 사실과 역사는 모두가 남쪽이 옳다고 가르치고 있었다.
그러나 자존심이 문제였다. 이권도 문제였다. 더 큰 문제는 이제 몸이 굳어 져 버렸다.
그 때도 교회사 전부도 고신도 그리고 오늘의 공회도 그렇다. 그냥 조금 버티면 모든 것이 편하다.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안면 체면 이권까지 줄줄이 다 불편해 진다. 이렇게 굳어 간 것이 구약 교회였다. 주님 오셨을 때 바리새인이었다. 천주교가 그러했다. 공회 내에서도 마찬 가지다. 동맥경화에 성인병이 다 그런 것을 가르친다. 송파교회는 부공2지만 전임자들이 지나 가며 이제 부공2의 단점까지 벗었다.
그렇다면 과거 대구공회의 문 목사님을 늘 소개 해 드렸듯이 송파교회를 소개해야 한다.
총공회는 처음부터 제도와 형식과 법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내용과 실제와 신앙 내면으로 존재했다. 부공3 안에서도 부공3의 잘못 된 것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부공3의 옳은 것을 비판하는 교회보다, 부공3과 관계도 없는데 부공3보다 더 노선을 잘 지키고 있다면 그들은 보이는 소속은 부공2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부공3이다. 부공3은 현재 모이는 부공3뿐 아니라 부공3의 신앙과 내면을 가진 이들의 보이지 않는 부공3이 진정한 부공3이다. 강동교회는 서울 강남에 살면서도 개척할 때 연보한 교인이 단 1명도 없다. 그렇다면 공회가 아니다.
세월이 지나며 곳곳에 소속은 달라도 내용이 같은 목회자, 교회, 교인들의 소식을 듣는다.
그들이 잘 되면 그 주변에 그 좋은 분위기로 인하여 부공3적인 복음운동이 흥왕하게 된다. 부공3적인 분위기란 무엇일까? 총공회의 원래 모습이다. 5개 공회들이 모두 '총공회'를 줄기차게 붙들고 써붙이고 있지만 내용이 문제다. 소속 공회와 상관 없이 이 노선의 원래를 지켜 내는 곳, 그 곳이 과거에는 총공회였고 지금은 총공회 간판 아래 비총공회 반총공회가 많기 때문에 부공3이라는 이름이 과거 총공회를 대신하고 있다. 각 공회에, 심지어 공회 외부에도 그런 분들 그런 교회들은 내 마음에 늘 부공3이라고 생각하면서 반가운 마음을 가진다.
가족이든 친구든 총공회 밖에 있는 사람은 내게 지인일 뿐이었고 만난 일은 없다. 그런 분과 연락을 했다면 이 노선에 필요한 자료나 업무 때문이었다. 호적에 친형으로 표시 된 분과 모친 장례 때 얼굴을 본 후 30년 본 적이 없었다. 그 집에 결혼 때문에 연락이 왔을 때 내가 왜 이 연락을 받아야 하느냐며 바로 끊었다. 내 주변 모두와 이런 관계이니 그들이 먼저 알고 있다. 이런 나를 향해 형제가 모여 공회나 집회를 함께 한다고 평을 하면 백 목사님의 '기인 其人 기언 其言'을 떠올린다. '그런 사람이면 그렇게 말을 한다'는 뜻이다.
나는 우리 교회 교인이 동네 옆 집과 분쟁이 생기면 가서 대신 싸워도 준다.
살아 가며 생기는 분쟁에는 진리가 없다. 이해 관계뿐이다. 그 교인은 소속과 노선이 같기 때문에 내 편이다. 내 편을 위해 당당하게 나선다. 최근에 교인과 나의 형제 사이에 사업 상 이해 관계가 발생했다. 사실 관계도 교인이 옳았으나 목회자니 당연히 교인을 위해 전과를 2개나 받으며 교인이 할 말과 행동을 다 해 버렸다. 고소를 받을 때 나는 회피하지 않았다. 목사가 교인 편을 드는 것은 목사 선서에도 들어 있다. 당당하게 그렇게 말을 했고 행동을 했다. 그래서 그 전과는 내게 무공훈장과도 같다. 최소한 나는 밥값은 한다.
나는 만사에 노선과 소속을 앞 세우다 보니 종종 이런 반론과 오해를 받는다.
부공3 교회는 다른 공회 교회들보다 다 나은가? 다른 공회 교회에도 목회자나 교인들 중에 부공3 소속보다 좋은 목회자와 교인들이 얼마나 많은데 부공3 교인들만 옳은 것처럼 말하는 것은 성급하고 옳지 않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들은 내 말의 뜻을 몰랐다. 나는 '부공3'이라는 이 공회만을 다른 공회보다 낫다고 하지 이 공회에 있는 목회자나 사람을 더 낫다고 말한 적은 없다. 오히려 부공3에 목회자와 교인은 대개 수준도 신앙도 다른 공회보다 못하다고 해 왔다. 공회와 교계를 비교할 때도 나는 이런 표현을 거의 유지해 왔다.
서울 송파교회가 예배당을 구입하고 이전을 했다는 소식이 게시판에 올려 졌다.
주변에서 이의가 있었다. 송파교회 옆에 강동교회가 부공3이고 송파교회는 부공3 우리를 비판하는데 어떻게 우호적으로 소개하고 평가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전임자는 우리를 많이 비판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 분의 비판에는 단 1 가지만 빼놓고는 나는 대부분 인정한다. 그 1가지조차 잠실동교회 출신에게 전해 들었기 때문에 단정하지도 않는다. 김효순 구역에서 불러다 교육을 시켰다는 내용인데 그 때 내게 대해 거짓말을 해서 부공2로 만들었다는 내용이다. 그 분이 내게 직접 와서 했던 말 때문에 대충 분위기는 짐작을 한다.
최근에 현재 송파를 맡고 계신 분도 비판했다고 전해 진다. 나는 다르게 해석한다.
신중한 분이어서 본인이 잘 모르는 말을 3자에게 쉽게 전할 분도 아니지만 그런 분이 그렇게 전달을 했다면 그 분이 가진 장점이 아니라 원래 그 분이 가졌던 약점에 관련 된 내용이어서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호랑이가 수영을 못한다고 장애라 할 것인가? 독수리가 걸어 다니지 못한다고 웃을 것인가? 그 분이 가신 위치와 사명은 대구 기도원에 대한 복잡한 내용을 파악하고 처리하는 쪽이 아니다. 그렇다면 궁금할 수 있고 주변에 물을 수 있고 또 확인을 하려는 뜻을 담고 여러 표현을 할 수 있는 분이다. 나는 그 분을 평소 존경해 왔다.
소속과 노선은 생명보다 중하다. 그런데 노선과 소속 안에는 별별 사람이 있다.
요나단은 사울에게 속했고 사울의 노선에서 전사했다. 그러나 삼상18:1에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연락되어 요나단이 그를 자기 생명 같이 사랑'했다. 겉은 사울이나, 그의 속은 다윗이었다. 삼하15:37에 후새는 압살롬을 따랐으나 내심은 다윗뿐이었다. 요압은 평생 다윗을 따랐으나 다윗의 원수였다. 왕상14:13에서 아비야는 북조 이스라엘을 시작한 여로보암의 아들이었지만 여호와를 향하여 선한 뜻을 품었다. 부공3에 속했으나 신앙은 거의 전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른 공회에 속했으나 부공3의 신앙도 분명히 있다.
그렇다면 소속과 노선이 왜 중요할까? 당장에는 각자가 중요하나 미래가 문제다.
해방 후 남북이 나뉠 때 어쩌다 보니 북쪽에 남게 된 이들이 있다. 또 오판을 해서 북쪽을 지지한 쪽도 있다. 그런데 그들의 진심이 바른 사람은 세월 속에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겉 보기에 북쪽이나 그 속은 더더욱 남쪽이다. 반대로 남쪽에 살다 보니 살았고 남쪽에 살며 남쪽의 건국과 지난 역사 전체를 증오하며 내전을 일으키는 이들이 많다. 지금 집권층의 지도부가 그렇다. 이들의 마음은 북이다. 남한에 살며 남한의 발전이 주는 혜택은 모두 받아 가지면서 죽어도 남한을 욕하는 사람, 그 불행은 적지 않고 참담하게 된다.
소속이란 북한이냐 남한이냐를 말한다. 노선이란 자유민주주의냐 그 반대냐이다.
남한에 국민이 자유민주주의를 진심으로 좋아 한다면 이 사람은 흐르는 물에 몸을 맡기는 것처럼 수영을 할 수 있다. 남한에 속했으나 북쪽을 마음에 담은 사람은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올라 간다고 노를 젓는 사람이다. 수영을 하는 사람이다. 간다고는 하지만 떠내려 간다. 이 것이 그들의 슬픔이며 불행이다. 그래서 소속과 노선이 중요하다. 처음에 잘 모를 수 있다. 세월이 지나 가면 자기는 어디 소속하고 어느 노선이 맞는지 알 수 있다. 알게 되었을 때 바로 돌아 서면 발전이다. 알면서 돌아 서지 않으면 성령 훼방죄가 된다. 희망이 없다.
공회들이 나뉜 지 30년이다. 가깝게 살핀다 해도 10년이 지났다. 이제는 모두가 안다.
솔로몬 사후에 여로보암과 르호보암이 남북으로 나뉠 때, 소속과 노선은 남쪽의 르호보암이 맞지만 르호보암의 처신과 눈에 보이는 만 가지를 보면 누군들 북 쪽에 서고 싶지 않았을까? 그래서 모두가 여로보암을 따랐다. 유다 지파는 집안이니 남았고, 베냐민 지파는 예루살람이라는 고향 때문에 남았다. 양 쪽을 알아서 선택할 지파는 10개였고 그 모두가 여로보암을 따랐다. 그런데 막상 나뉜 뒤에 본색이 들어 나면서 남북은 비교가 되었고 남쪽에 문제는 많다 해도 양심과 사실과 역사는 모두가 남쪽이 옳다고 가르치고 있었다.
그러나 자존심이 문제였다. 이권도 문제였다. 더 큰 문제는 이제 몸이 굳어 져 버렸다.
그 때도 교회사 전부도 고신도 그리고 오늘의 공회도 그렇다. 그냥 조금 버티면 모든 것이 편하다.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안면 체면 이권까지 줄줄이 다 불편해 진다. 이렇게 굳어 간 것이 구약 교회였다. 주님 오셨을 때 바리새인이었다. 천주교가 그러했다. 공회 내에서도 마찬 가지다. 동맥경화에 성인병이 다 그런 것을 가르친다. 송파교회는 부공2지만 전임자들이 지나 가며 이제 부공2의 단점까지 벗었다.
그렇다면 과거 대구공회의 문 목사님을 늘 소개 해 드렸듯이 송파교회를 소개해야 한다.
총공회는 처음부터 제도와 형식과 법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내용과 실제와 신앙 내면으로 존재했다. 부공3 안에서도 부공3의 잘못 된 것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부공3의 옳은 것을 비판하는 교회보다, 부공3과 관계도 없는데 부공3보다 더 노선을 잘 지키고 있다면 그들은 보이는 소속은 부공2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부공3이다. 부공3은 현재 모이는 부공3뿐 아니라 부공3의 신앙과 내면을 가진 이들의 보이지 않는 부공3이 진정한 부공3이다. 강동교회는 서울 강남에 살면서도 개척할 때 연보한 교인이 단 1명도 없다. 그렇다면 공회가 아니다.
세월이 지나며 곳곳에 소속은 달라도 내용이 같은 목회자, 교회, 교인들의 소식을 듣는다.
그들이 잘 되면 그 주변에 그 좋은 분위기로 인하여 부공3적인 복음운동이 흥왕하게 된다. 부공3적인 분위기란 무엇일까? 총공회의 원래 모습이다. 5개 공회들이 모두 '총공회'를 줄기차게 붙들고 써붙이고 있지만 내용이 문제다. 소속 공회와 상관 없이 이 노선의 원래를 지켜 내는 곳, 그 곳이 과거에는 총공회였고 지금은 총공회 간판 아래 비총공회 반총공회가 많기 때문에 부공3이라는 이름이 과거 총공회를 대신하고 있다. 각 공회에, 심지어 공회 외부에도 그런 분들 그런 교회들은 내 마음에 늘 부공3이라고 생각하면서 반가운 마음을 가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