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적 사명, 시대적 사명
(사명의 좁은 면과 넓은 면)
자기 가정에 대한 사명은 그 범위가 좁다. 자기가 출석하는 교회에 대한 사명은 많은 사람을 위한 것이니 넓은 사명이다.
공회 목회자는 자기가 맡은 교회에 대한 사명이 있다. 동시에 이 노선과 교훈은 한 교회만 사용할 수 있는 정도를 넘어 선다.
공회의 목회자라면 공회의 기본적인 노선과 교훈의 가치를 안다 할 것이고 이를 알았다면 맡은 교회 밖에 대한 사명도 있다.
다른 목회자가 알면 희소성의 가치가 떨어 질까 싶어 이 노선의 자료를 접하면 감추기에 급급한 사람은 작은 사명밖에 모른다.
이 노선과 교훈이 맡고 있는 시대적 사명을 안다면 맡은 교회와 동시에 외부 교계에 대한 사명은 떨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넓은 외부적 사명에 치우쳐 자기가 맡은 교회의 교인을 무시한다면 이는 초절이 된다. 불신자도 수신제가평천하는 안다.
반대로 눈에 보이는 사명에 치우쳐 더 넓은 자기, 더 넓은 범위의 자기 사명을 모른다면 하나를 얻고 열을 잃는 실수가 된다.
공회의 노선과 교훈이 워낙 특이하기 때문에 제대로 접하는 이들은 지난 날 믿어 온 방향과 내용을 모두 바꾸는 경우가 많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공회의 특별한 자료를 접하면 모든 공회들은 일체 극비에 붙여 버리고 같은 공회 내부에서도 차단한다.
하늘 나라를 세상처럼 상대하는 것이니 참 어리석고 불쌍하지만 아는 것이 그 뿐이니 어떻게 할까? 30년 버틴 사람도 있다.
(백 목사님은 생전에)
설교를 하던 중에 '내가 왜 이런 설교를 하고 있나..'라는 푸념 섞인 의문을 표시한 적이 많다. 왜 이런 설교를 여기서 하는가?
서부교회는 세계 10대 규모에 들었다. 부산의 빈민층 중심으로 교인이 형성이 되었다. 그래도 규모가 있어 다 바보는 아니다.
곳곳에 세상 어디에 가도 인재라 할 사람도 있었고 또 교계에 아주 핵심으로 활동하던 인물들도 있었다. 인재들도 있었다.
그런 분들을 앉혀 놓고 강단에서 설교하던 분이 '왜 이런 설교를 여기서 이렇게 하고 있는가'라는 이 대목은 예사롭지 않았다.
훗날 교회 교리사를 알게 되면서 나는 그 대목이 뜨겁게 와 닿았다. 그렇다 나도 몰랐다. 그리고 아무도 몰랐다고 해야 맞다.
목사님은 외부 신학과 교계 정보나 교류를 일체 원치 않았다. 인간끼리 몰려 다니고 주고 받다 보면 하나님을 잊기 때문이다.
이 원칙은 지금도 마찬 가지다.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과 대화하고 동행하는 사람이라면 그 눈빛이 어디를 향하겠는가!
사람을 무시해서가 아니고, 하나님 말씀으로 또 내 마음에 성령의 감화를 가지고 하나님과 동행하다 보면 시간이 없게 된다.
연애에 미치면 부모도 공부도 인생도 보이지 않는 것과 같다. 역사에 좀 믿어 본 사람들은 대개 사람 없는 곳에 묻혀 버린다.
공회는 수도원처럼 하자는 것은 아니다. 주신 현실 안에서 살지만 우리의 주력과 시선은 최대한 하나님을 향하자는 정도다.
교계를 잘 알지 못하고, 문서로 내려 오는 교회와 교리의 역사를 잘 모르다 보니 서부교인은 서부교회의 의미를 잘 모른다.
서부교회 안에는 서부교회를 너무 잘 안다는 사람이 많다. 나는 그들에게 서부교회를 모른다고 말한다. 내 말이 맞을 것이다.
백 목사님은 세상 공부를 하지 않았으나 신학교를 다니며 최소한 신학의 흐름과 그림자는 알아 본 분이다. 무식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성경으로 깨닫고 평생을 걸어 오며 형성된 서부교회와 공회의 노선과 교훈은 시대적이며 역사적인 것인 줄 안다.
공회 양성원에는 수준급 신학자들도 있었고 정상급 신학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송종섭 목사님 외에는 공회를 모르는 듯하다.
1979년에 조갑제 기자가 서부교회의 주교가 역사 최대며 세계 최대라 했을 때 서부교인들은 비로소 대략 짐작을 했었다.
나도 반사를 했다. 그냥 학생이 많다고 생각했다. 주변보다 엄청 많다고만 생각했다. 아무도 세계적 규모를 생각하지 않았다.
이 것이 공회요 서부교회의 자연스러운 내면이다. 주일학교의 규모처럼 이 노선과 교훈의 역사적 의미도 실감하지 못했다.
주변에서 개혁주의 칼빈주의를 최고로 말하는데 너무 허술하기 때문에 공회는 개혁 칼빈주의의 발전 정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초대교회사를 교양 강좌 수준에서 들어 보니 이는 신약의 교회사에 한 중심에 선 의미였다. 한 걸음 발전이 아니었다.
나는 이런 취지를 양성원에서 답안에 적었고 내 점수는 양성원 교회사 교수님이 아마 60점 정도 매겼던 기억이 있다.
그 분이야 불신이나 일반 신학교의 교양 강좌를 수강하는 정도니 그랬을 듯하다. 그 가정을 두고 불신이라 했던 기억이 있다.
그 분이 지금 대구공회 부산공회2의 최고라고 인정을 받는 모습이다. 그래서 이 노선에 대해 늘 희망이 없다고 생각해 왔다.
두목이 누군지는 알아야 줄을 설 것이고 그 줄을 제대로 서야 앞 날이 있지 않을까? 그런 이를 중심으로 모인 곳이 그들이다.
나는 세상 학교도 신학교 과정도 어중간하다. 세상 졸업장은 있으나 신학 관련 졸업장은 아예 하나도 없다. 양성원에도 없다.
(그 분은 생전 마지막 순간)
1989년 1월, 그 분의 생애 마지막 해 나는 서부교회 초청 사경회 강사를 맡아 그 분이 말했던 '왜 이런 설교를'에 답을 했다.
성경의 교회사에서 이어 지는 신약의 교회사, 그 2천년의 교회사의 궤적을 짚어 보면 이 노선은 세계 교회사적 중심에 있다.
이 노선 이 교훈을 위해 세계 교회사는 흘러 왔다. 백 목사님도 이 대목까지는 잘 모르신 듯했다. 마지막 날 5층으로 불렀다.
어디서 배웠느냐고 강사인 내게 물어 보셨다. 망설일 것도 없었다. '목사님께 배웠습니다.' 아무 말씀도 덧붙이지 않았다.
이런 대목에서 목사님께 야단을 맞지 않으면 칭찬이다. 그 분이 칭찬을 표시할 때는 상대방을 불신자 정도로 상대할 때다.
나는 목사님이 칼빈주의 개혁 신학의 '성화' 부분에 빈 곳만 채운 줄 알고 계셨다고 파악할 수 있었다. 그 분도 거기까지였다.
연구소가 새 것을 발명했을 때 그 것이 상용화가 되면 얼마짜리가 되는지 연구원은 모를 수 있다. 장사치는 그런 것을 안다.
백 목사님 설교를 직접 듣고 있던 서부교회 교인들, 그들은 나를 포함해서 전부가 그 당시 그 설교의 가치를 모두가 몰랐다.
나는 그 분 생존 마지막 순간에야 알았다. 이 것이 공회에서는 아마 제일 빠른 시점이었을 듯하다. 강의 내용은 파급이 컸다.
강의가 끝나자 이진헌 목사님은 바로 동조했다. 교계를 두루 잘 아는 분이다. 공회의 의미를 비로소 더 넓게 알게 됐다 했다.
(왜 이 곳에서 오늘도..)
나는 개인적으로 맡은 교회가 있다. 나는 그 교회 바깥을 향하여 더 넓은 사명을 가지고 있다. 나만 그런가. 우리가 다 그렇다.
우리가 가진 이 노선과 이 교훈. 이 것은 한 사람이나 한 교회만 사용하기에는 너무 엄청난 분량이며 내용이며 그런 규모이다.
부공1 부공2 부공4 대구공회가 모두 다 그렇게 말을 한다. 서울공회는 더 일찍 그렇다고 떠들었다. 지금은 다 덮어 버렸다.
우리가 아는 것. 우리가 걸어 온 길. 우리가 특별하다고 가져 온 것이 실제 그렇다면 우리는 외부에 전할 의무와 사명이 있다.
그런데 혼자 알기 위해 남들이 볼 수 없도록 수원에 감춰 버렸다. 수십 년을 수 없는 사람을 통해 부탁을 해도 청와대 같다.
청와대? 정권을 잡기 전까지는 공개하라고 1백만명을 동원해서 온 나라를 뒤 흔들었다. 정권을 잡은 뒤는 무참하게 버틴다.
버티기만 하면 된다. 남 쪽 바다 끝에 출신은 모두가 그런가? 그래야 대양을 상대하며 큰 물에서 크게 놀겠지. 그럴 수 있다.
한 마디만 하면 바로 낚여 꼼짝도 하지 못한다. 처음에는 해독이 안 된다고 했다. 해독을 전부 다 해대니까 입을 닫아 버렸다.
그 주변 사람들은 1명이 버티니 전원일치 제도 때문에 공개하지 못한다고 했다. 이런 죄를 두고 모이지 않으니 원수라 했다.
이 연구소에서는 1998년부터 이 노선과 이 교훈에 관련 된 자료는 무제한 무조건 제공해 왔다. 몇몇 분들은 연락해 주셨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거의 모든 분들은 이 곳의 자료를 받아만 가지 내놓는 것은 목숨을 걸고 버틴다. 아예 없다고 해 버린다.
이런 분들을 위해 자료를 제공했어야 했나? 요약하고 정리하고 제공해 왔어야 했나? 처음에는 그런 이들 때문에 고민했다.
그러다 1994년부터 그들에게 막히면 그들과 같다고 생각했고 나는 전하는 것까지만 사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전했다.
2018년에는 백 목사님 가족들까지 전부 단합해서 자료를 막고 나섰다. 이 분들 때문에 나는 그 동안 열지 않은 것을 열었다.
백 목사님의 자료, 이 노선과 이 교훈의 자료를 들여다 보고 있으면 그 다음 단계가 떠오르게 되어 있다. 열기를 주저 했었다.
오랜 세월 조심했고 내딛지 않고 있었다. 그 기간이 너무 길어 지니 라반을 동원하여 야곱을 쫓아 버리듯 내몰리게 됐다.
2018년 이후 백 목사님의 자료에 비워 둔 부분을 계속해서 열고 있다. 열면서 자꾸 이런 생각이 든다. 왜 이런 설교를 하지..
내가 강단에서 전하는 내용은 그 능력이나 그 은혜는 일반 공회 강단과 비교하면 중간쯤 갈 듯하다. 그러나 내용은 다르다.
이런 내용을 들을 사람이 없어 보인다. 이 내용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왜 자꾸 내가 전하고 있을까?
그 분이 생전에 자주한 표현이 새삼스럽다. 몰라도 전해야 하니 전했다. 그리고 그 생명은 오늘도 이 시대를 초월하고 있다.
그 분이 전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이런 변화 된 현실에서 어떻게 판단하며 어떻게 헤쳐 나갈 수 있었을까? 참 감사한 일이다.
오늘 내가 전하는 것도 직접 듣는 이들에게 은혜가 되면 1차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다음 사명도 있다.
우리가 다 부족하므로 서로 자료와 깨달음을 놓고 비교해 봐야 한다. 공회 목회자들이 그리 한다면 완성도 높은 것이 나온다.
나는 오늘도 내가 아는 것은 모두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극소수 한두 분 외에는 다른 분에게 받는 것이 거의거의 없다.
나는 드렸으니 하늘 나라에서도 영원히 전하는 사람이 된다. 자기 것을 절대 감춘 사람은 하늘 나라의 활동 기회는 박탈된다.
그 날, 그들은 홍포 입은 부자처럼 말을 하고 싶으나 물 한 모금이 없어 애가 탈 것이다. 목이 타서 말이 나오지 않을 듯하다.
그 때 나는 생전에 그들보다 모든 면에서 부족했으나 오늘 전할 것이 있을 때 전했다는 사실 때문에 할 말을 하게 될 것 같다.
그들은 말도 지식도 근본 출신도 목회에 탁월한 면까지 갖췄다는 점에서 오늘 내게 비교하면 홍포 입은 목회자들이 아닐까?
부공2의 간부, 부공2 지도부, 부공2의 일반 목회자인 척하면서 뒤로 전화 한두 통화 돌리면 공회 결정을 움직이는 실력자..
오늘 그 몇 되지 않는 작은 교회들을 상대로 청와대 집권자들처럼 마음껏 오늘을 즐기라. 오늘은 즐기나 내일은 아닐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