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회의 '자기 십자가' - 2가지를 중심으로
담당
0
0
2021.07.02 17:56
십자가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이 표현을 빼고는 교회라 할 수 없다. 표현이 좋아 보였는지 기독교를 비판하는 이들이 요즘 교회는 십자가의 희생을 모른다며 옆구리를 찔러 세상의 죄를 짓는데 예배당을 팔거나 교회의 예배 조직을 변질 시키라고 한다. 어쨌든 귀신은 불한당이다. 땀은 흘리지 않고 말 한두 마디로 집어 삼킨다. 말 장난이다. 하와에게 선악과를 먹일 때 사용한 간교다. 이런 말이 나올 때마다 공회는 '십자가란, 자기 십자가만 십자가'라는 말로 막는다. 펑크 난 타이어에 약품 하나면 요즘 그냥 해결된다. 역사적으로 그 많든 별별 병원균을 항생제 하나로 다 잡아 버린 그런 즉효약이다. 난, 공회 출신이라 공회를 좋아 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옳고 좋은 것이 실제 있기 때문에 공회가 좋다. 그런 사례를 들려면 한도 없다.
어제 공회에는 갑자기 날아 든 소식이 하나 있었다. 세상의 불신자라면 불행이라 할 것이고 건설구원을 모르는 수백 년 전의 개혁주의 교리만 가지고 본다면 지옥을 갔다고 오판할 일이다. 우리는 주권, 예정, 기본구원, 건설구원까지를 잘 알기 때문에 '비록 아쉬우나, 한 생명으로 많은 생명을 건질 감사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공회의 노선과 교리 체계와 공회의 실행이 아니고는 입에 담지 못할 말이다. 세상이 감당치 못할 이런 세계를 겪을 때마다 감사할 뿐이다. 그리고 이 곳에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자기 십자가, 공회의 십자가다.)
성경의 십자가는
나를 위해 네가 죽으라! 이런 십자가가 아니다.
교인을 위해 목사가 희생하라! 이런 교인의 표현은 성경의 십자가가 아니다.
목사를 위해 교인들이 십자가를 지고 가라! 이런 목사의 설교도 잘못 된 십자가다.
십자가란,
다른 사람의 신앙에 유익을 위해 정말 내가 희생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면, 내가 손해를 보는 십자가만 성경의 십자가다.
대형 교회에게 교인을 양보하라거나 대형 건축물을 포기하라는 소형 교회 목사님의 표현은 자기 십자가가 아니다.
대형 교회가 소형 교회를 위해 대형 교회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 있다면, 그리고 그 포기가 소형 교회의 교세가 아니라 소형 교회의 복음 운동을 위해 정말 필요하다면, 대형 교회가 스스로 포기할 때 대형 교회의 십자가가 된다. 대형 교회가 져야 할 십자가를 소형 교회가 요구를 하면 소형 교회는 십자가의 원수다. 십자가란 자기 십자가만 십자가다. 복음을 위해 내가 손해 볼 나의 희생만 나의 십자가다. 남이야 십자가를 지든 말든 그 것은 그 사람의 십자가이며 남에게 십자가를 요구하는 것은 잘못이다.
(나의 부끄러운 실패를 남들이 반복하지 않도록 '표시'를 한다면, 공회 신앙이다.)
세상은 자기 명예를 위해 다른 사람이 희생해야 하고 감수를 해야 한다.
공회는 이 땅 위에서의 모든 것은 하늘 나라 준비를 위해 아낌 없이 버리자는 취지를 가지고 있다.
바로 이 때문에 목회자는 자진해서 교인들에게 목회자의 잘못을 먼저 지적하고 척결하라고 부탁을 해 왔다. 시무투표제도다.
이런 자세 때문에 공회는 자기나 자기 가족에게 문제가 발생하여 잘못 된 일이 생기면 자기가 알아서 표시를 하도록 해 왔다.
목회자는 교인보다 앞 서서 걸어 가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먼저 그렇게 해 왔다. 뒤를 따르는 교인들은 각자 자기 선택이다.
목회자나 목회자 가정에 문제가 있으면 '여기에서 빠져 다쳤다. 이 함정에 빠져 죽었다' 이렇게 위험 표시를 커다랗게 했다.
그렇게 해 놓으면 뒤에 오는 교인들과 다른 사람들이 그 곳을 피해 갈 수가 있다. 그런데 이렇게 하려면 창피해 진다.
공회 목회자 중에서도 정말 교회를 위해 자기를 바칠 자세가 되어 있는지 고문과 고형이 오기 전에 이 문제로 표시가 난다.
목사와 사택의 부끄러운 일은 철저하게 묻어 버리고 감춰 버리고 심지어 공회와 동역자에게 덮어 달라는 분들이 있다.
이런 분들은 그 능력과 그 수고에 불구하고 이 노선, 특히 부공3의 이 연구소 운영에 동행하지를 못한다. 언젠가는 돌아 선다.
자기의 수고조차 남들이 수고한다고 알아 주는 것을 기대하는 분들은 이런 조처를 부탁할 때 단호히 거부한다.
교인들이 줄줄이 빠져 죽을 함정에 목회자 가족이 먼저 빠진 경우, 목회자의 행동은 두 가지로 나타 난다. 교인도 마찬 가지다.
얼른 덮어 집안 창피에 목회자 위신 문제가 될까 싶어 모른 척하는 경우가 첫째다. 뒷 사람들은 줄줄이 빠져 죽으라는 뜻이다.
자녀를 이렇게 기르니 이렇게 나쁜 결과가 나왔다. 목사 가정도 이러니 교인들은 더 위험할 것이다. 모두 이 함정을 피하라!
이렇게 외칠 수 있을까? 이렇게 표시를 해놓을 수 있을까? 애매하게 둘러서 말하면 알아 듣지 못한다. 먼 나라의 일이 된다.
함께 보고 사는 한 교회 한 공회 내의 일을 두고, 어느 교회 누구의 어떤 일이 있었다고 밝혀 버리면 모두에게 경종이 된다.
산 교훈이 되고, 실감 있게 전파 되며 많은 생명을 구하는 일이 될 수 있다.
목회자 가정이 이런 일에 앞 장을 서서 본을 보이고, 교회에 중진이거나 신앙이 있는 가정들이 뒤를 따라 그렇게 하면 참 좋다.
공회란, 이런 표시로 자기의 창피를 공개하여 다른 사람 다른 교인의 실수나 위험을 막을 때 하늘의 위신, 참 위신이라고 한다.
교황이 얼마나 죄가 많고 흠이 많은지, 누가 제일 잘 알고 가장 많이 알까? 교황 자신이다. 그 다음이 측근이다.
그런데 교황의 죄와 허물은 교황이 제일 잘 감추고 그 다음은 교황 옆에 살며 교황 때문에 덕 볼 측근들이 두 번째로 감춘다.
이 것을 바꾸면 개혁주의다. 목사가 자기 잘못을 먼저 제일 크게 광고를 하고, 사택을 그 다음에 하고 교인들이 따르면 좋다.
바로 이 원리 때문에 1970년부터 목회자만 시무투표를 먼저 시행했고, 1988년에 이르러서야 장로 권사를 포함했다.
이 제도가 50년이 지나고 있기 때문에 나는 최근 교인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각 가정에 부모도 자녀에게 투표를 받아 보시라!'
자기 지도자에 대해서는 투표를 통해 가혹하게 평가를 하고 집에 가서 자기 가족들에게는 자기 평가를 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교인들은 시무투표 제도를 모르는 이들이다. 공회의 시무투표를 할 자격도 없다. 그래도 투표권을 주고 있다.
이 정도를 고려해 본다면 공회는 어떤 흠도 점도 많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방향과 진행은 좋다고 생각한다.
(도로 변의 사고 차량 전시)
1990년대, 자가용 시대가 급격히 다가 오면서 전국의 교통 사고가 너무 참혹했고 1년에 1만명이 교통사고로 죽는 정도였다.
내가 무조건 사용해야 하는 도로에 처참하게 일그러진 자가용을 높게 전시를 해 뒀다. 사고를 조심하라는 뜻으로 보였다.
그런데 혐오스럽다는 이유로 비판이 제기 되고 결국 그 사고 차량은 없어 졌다. 지금도 아마 그런 전시물은 없을 듯하다.
공회는 이런 전시를 좋아 한다. 한 번의 실수, 그 어떤 죄든 실수든 인간은 피하지 못한다. 그런데 두 번이 문제다.
한 번의 실수를 한 후에 그 죄를 커다랗게 표시를 해놓고 늘 자기를 챙기게 된다면 다음 실수는 이길 수 있을 듯하다.
그러나 귀신은 덮고 싶어 한다. 남에게 표시를 내지 않으려 한다. 마23장에 회칠한 무덤이다. 단장한다고 묘가 어디 가는가?
부공3이 총공회를 대표하며 운영해 온 이 연구소는 작은 실수라도 이 곳의 실수는 커다랗게 표시해 왔다.
외부에서 비판을 하면 초기화면에 대대적으로 공지를 해서 들어 오는 모든 분이 피해 갈 수 없도록 표시를 했다.
그런데, 그렇게 하고 나면 이 곳을 먼저 비판했던 이들이 당장에 글을 치우라며 심지어 고소를 하거나 법원에 탄원을 했다.
자기는 억울하고, 우리는 가해자라면서? 우리는 혹시라도 우리가 정말 고칠 것이 있는지 알려 달라고 우리가 광고를 하는데..
어떤 사람은 수백 가지로 고소를 해 놓고 고소했다는 사실이 알려 질까 봐 우리가 그런 표시도 하지 말라고 각서를 받고...
어떤 사람은 주일을 지키지 않아야 한다고 글을 적으면서 '비공개'를 조건을 달았다. 어린 교인들이 시험들까 싶다 한다.
그럴까? 다른 사람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옛 사람, 자기 속에 죽일 사람이 죽을까 싶어 보호막을 요구한 것이 아닐까?
(사고가 너무 많다.)
사람으로서 그 누구도 피할 수가 없도록 함정과 덪과 위험물이 넘쳐 난다.
프랑스를 방문하고 번화가를 걷던 인도의 성자 선다씽이 그 호와찬란함에 잠깐 죄를 지었다는 말이 있다.
그가 오늘을 산다면 컴퓨터 게임방에 가서 도를 닦고 있거나 휴대폰에 머리를 박고 아주 동상이 되지 않았을까?
우리가 사는 오늘이 이런 때다. 주님 오실 때가 임박한 지금은 역사에 한 번씩 나타 난 귀신들이 전부 다 쏟아 져 나와 있다.
누구든 실수할 수 있고 함정에 빠질 수 있다. 자기가 아니면 가족이 그럴 수 있다. 그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러했을 것이다.
이럴 때, 자기와 가족이 빠진 함정에 표시판을 커다랗게 해 놓으면 다른 사람을 막을 수 있다. 최소한 도울 수가 있다.
문제는 자기의 위신이 문제다. 자기 체면이 걸릴 것이다.
내가 백 목사님과 이 노선을 좋아 하는 이유는 처음부터 이런 문제를 두고는 확실히 초월하고 살아 왔기 때문이다.
백 목사님의 평생 설교 10만 쪽의 모든 분량은 늘 기본 자세와 노력이 이러했다. 배웠지만 어느 정도 하는지는 각자 선택이다.
부공3, 이 연구소의 운영은 1998년 첫 해부터 전면 무제한 글쓰기를 허용했다. 우리를 고쳐 달라는 부탁이었다.
함께 시작했고 제일 중심에 선 분들도 처음에는 논리적으로 맞기 때문에 함께 시작했으나 개인 문제가 나오면 바로 돌아 섰다.
입에는 달지만 배에는 쓰게 되는 것이 계시록 10장의 작은 책이다. 말은 쉽고 좋다. 실행은 어렵다. 쓰다. 쉽지 않다.
(그러나, 또 노리는 귀신이 있다.)
이렇게 노력하면 거의 모든 귀신을 다 이길 수가 있다. 귀신도 그 것을 안다. 그래서 귀신은 또 다른 논리로 막아 나선다.
고치려는 사람의 고치는 노력과 결과와 다른 사람의 피해를 막기 위해 표시를 하겠다는 것인데, 아무 것이나 다 표시하란다.
죄악의 낙을 누리기 위해, 다른 사람 지은 죄를 배워 따라 하기 위해, 한 사람의 죄를 바이러스로 만들어 유포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공회는 이 바이러스를 잡는 백신으로 막고 있다. 회개를 광고에 써 먹거나 일반화 하거나 악용하는 경우는 배제한다.
공개하고 싶은 사람만 공개하라.
공개하는 사람만 손해 보는 내용만 공개하라.
다른 사람의 죄를 막는 데 필요한 것만 공개하라.
지난 죄와 회개를 가지고 자기를 고차원적 의인 만들지 말라.
회개 하나가 많은 회개를 시킬 때, 귀신은 회개하는 간증을 노리고 있다 순식간에 죄의 간증을 신나게 자랑스럽게 만든다.
바로 이 위험성 때문에 공회는 간증을 거의 하지 않는다. 피치 못할 때는 자기를 특정하지 않고 3자처럼 소개하게 한다.
그래서 이 사이트에서도 자주 그렇게 했다. 그렇게 하니까 이 번에는 귀신이 3차처럼 만들며 조작을 한다고 또 비판한다.
이런 귀신과 끝 없이 싸우는 곳이 세상이다.
어제 공회에는 갑자기 날아 든 소식이 하나 있었다. 세상의 불신자라면 불행이라 할 것이고 건설구원을 모르는 수백 년 전의 개혁주의 교리만 가지고 본다면 지옥을 갔다고 오판할 일이다. 우리는 주권, 예정, 기본구원, 건설구원까지를 잘 알기 때문에 '비록 아쉬우나, 한 생명으로 많은 생명을 건질 감사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공회의 노선과 교리 체계와 공회의 실행이 아니고는 입에 담지 못할 말이다. 세상이 감당치 못할 이런 세계를 겪을 때마다 감사할 뿐이다. 그리고 이 곳에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자기 십자가, 공회의 십자가다.)
성경의 십자가는
나를 위해 네가 죽으라! 이런 십자가가 아니다.
교인을 위해 목사가 희생하라! 이런 교인의 표현은 성경의 십자가가 아니다.
목사를 위해 교인들이 십자가를 지고 가라! 이런 목사의 설교도 잘못 된 십자가다.
십자가란,
다른 사람의 신앙에 유익을 위해 정말 내가 희생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면, 내가 손해를 보는 십자가만 성경의 십자가다.
대형 교회에게 교인을 양보하라거나 대형 건축물을 포기하라는 소형 교회 목사님의 표현은 자기 십자가가 아니다.
대형 교회가 소형 교회를 위해 대형 교회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 있다면, 그리고 그 포기가 소형 교회의 교세가 아니라 소형 교회의 복음 운동을 위해 정말 필요하다면, 대형 교회가 스스로 포기할 때 대형 교회의 십자가가 된다. 대형 교회가 져야 할 십자가를 소형 교회가 요구를 하면 소형 교회는 십자가의 원수다. 십자가란 자기 십자가만 십자가다. 복음을 위해 내가 손해 볼 나의 희생만 나의 십자가다. 남이야 십자가를 지든 말든 그 것은 그 사람의 십자가이며 남에게 십자가를 요구하는 것은 잘못이다.
(나의 부끄러운 실패를 남들이 반복하지 않도록 '표시'를 한다면, 공회 신앙이다.)
세상은 자기 명예를 위해 다른 사람이 희생해야 하고 감수를 해야 한다.
공회는 이 땅 위에서의 모든 것은 하늘 나라 준비를 위해 아낌 없이 버리자는 취지를 가지고 있다.
바로 이 때문에 목회자는 자진해서 교인들에게 목회자의 잘못을 먼저 지적하고 척결하라고 부탁을 해 왔다. 시무투표제도다.
이런 자세 때문에 공회는 자기나 자기 가족에게 문제가 발생하여 잘못 된 일이 생기면 자기가 알아서 표시를 하도록 해 왔다.
목회자는 교인보다 앞 서서 걸어 가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먼저 그렇게 해 왔다. 뒤를 따르는 교인들은 각자 자기 선택이다.
목회자나 목회자 가정에 문제가 있으면 '여기에서 빠져 다쳤다. 이 함정에 빠져 죽었다' 이렇게 위험 표시를 커다랗게 했다.
그렇게 해 놓으면 뒤에 오는 교인들과 다른 사람들이 그 곳을 피해 갈 수가 있다. 그런데 이렇게 하려면 창피해 진다.
공회 목회자 중에서도 정말 교회를 위해 자기를 바칠 자세가 되어 있는지 고문과 고형이 오기 전에 이 문제로 표시가 난다.
목사와 사택의 부끄러운 일은 철저하게 묻어 버리고 감춰 버리고 심지어 공회와 동역자에게 덮어 달라는 분들이 있다.
이런 분들은 그 능력과 그 수고에 불구하고 이 노선, 특히 부공3의 이 연구소 운영에 동행하지를 못한다. 언젠가는 돌아 선다.
자기의 수고조차 남들이 수고한다고 알아 주는 것을 기대하는 분들은 이런 조처를 부탁할 때 단호히 거부한다.
교인들이 줄줄이 빠져 죽을 함정에 목회자 가족이 먼저 빠진 경우, 목회자의 행동은 두 가지로 나타 난다. 교인도 마찬 가지다.
얼른 덮어 집안 창피에 목회자 위신 문제가 될까 싶어 모른 척하는 경우가 첫째다. 뒷 사람들은 줄줄이 빠져 죽으라는 뜻이다.
자녀를 이렇게 기르니 이렇게 나쁜 결과가 나왔다. 목사 가정도 이러니 교인들은 더 위험할 것이다. 모두 이 함정을 피하라!
이렇게 외칠 수 있을까? 이렇게 표시를 해놓을 수 있을까? 애매하게 둘러서 말하면 알아 듣지 못한다. 먼 나라의 일이 된다.
함께 보고 사는 한 교회 한 공회 내의 일을 두고, 어느 교회 누구의 어떤 일이 있었다고 밝혀 버리면 모두에게 경종이 된다.
산 교훈이 되고, 실감 있게 전파 되며 많은 생명을 구하는 일이 될 수 있다.
목회자 가정이 이런 일에 앞 장을 서서 본을 보이고, 교회에 중진이거나 신앙이 있는 가정들이 뒤를 따라 그렇게 하면 참 좋다.
공회란, 이런 표시로 자기의 창피를 공개하여 다른 사람 다른 교인의 실수나 위험을 막을 때 하늘의 위신, 참 위신이라고 한다.
교황이 얼마나 죄가 많고 흠이 많은지, 누가 제일 잘 알고 가장 많이 알까? 교황 자신이다. 그 다음이 측근이다.
그런데 교황의 죄와 허물은 교황이 제일 잘 감추고 그 다음은 교황 옆에 살며 교황 때문에 덕 볼 측근들이 두 번째로 감춘다.
이 것을 바꾸면 개혁주의다. 목사가 자기 잘못을 먼저 제일 크게 광고를 하고, 사택을 그 다음에 하고 교인들이 따르면 좋다.
바로 이 원리 때문에 1970년부터 목회자만 시무투표를 먼저 시행했고, 1988년에 이르러서야 장로 권사를 포함했다.
이 제도가 50년이 지나고 있기 때문에 나는 최근 교인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각 가정에 부모도 자녀에게 투표를 받아 보시라!'
자기 지도자에 대해서는 투표를 통해 가혹하게 평가를 하고 집에 가서 자기 가족들에게는 자기 평가를 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교인들은 시무투표 제도를 모르는 이들이다. 공회의 시무투표를 할 자격도 없다. 그래도 투표권을 주고 있다.
이 정도를 고려해 본다면 공회는 어떤 흠도 점도 많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방향과 진행은 좋다고 생각한다.
(도로 변의 사고 차량 전시)
1990년대, 자가용 시대가 급격히 다가 오면서 전국의 교통 사고가 너무 참혹했고 1년에 1만명이 교통사고로 죽는 정도였다.
내가 무조건 사용해야 하는 도로에 처참하게 일그러진 자가용을 높게 전시를 해 뒀다. 사고를 조심하라는 뜻으로 보였다.
그런데 혐오스럽다는 이유로 비판이 제기 되고 결국 그 사고 차량은 없어 졌다. 지금도 아마 그런 전시물은 없을 듯하다.
공회는 이런 전시를 좋아 한다. 한 번의 실수, 그 어떤 죄든 실수든 인간은 피하지 못한다. 그런데 두 번이 문제다.
한 번의 실수를 한 후에 그 죄를 커다랗게 표시를 해놓고 늘 자기를 챙기게 된다면 다음 실수는 이길 수 있을 듯하다.
그러나 귀신은 덮고 싶어 한다. 남에게 표시를 내지 않으려 한다. 마23장에 회칠한 무덤이다. 단장한다고 묘가 어디 가는가?
부공3이 총공회를 대표하며 운영해 온 이 연구소는 작은 실수라도 이 곳의 실수는 커다랗게 표시해 왔다.
외부에서 비판을 하면 초기화면에 대대적으로 공지를 해서 들어 오는 모든 분이 피해 갈 수 없도록 표시를 했다.
그런데, 그렇게 하고 나면 이 곳을 먼저 비판했던 이들이 당장에 글을 치우라며 심지어 고소를 하거나 법원에 탄원을 했다.
자기는 억울하고, 우리는 가해자라면서? 우리는 혹시라도 우리가 정말 고칠 것이 있는지 알려 달라고 우리가 광고를 하는데..
어떤 사람은 수백 가지로 고소를 해 놓고 고소했다는 사실이 알려 질까 봐 우리가 그런 표시도 하지 말라고 각서를 받고...
어떤 사람은 주일을 지키지 않아야 한다고 글을 적으면서 '비공개'를 조건을 달았다. 어린 교인들이 시험들까 싶다 한다.
그럴까? 다른 사람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옛 사람, 자기 속에 죽일 사람이 죽을까 싶어 보호막을 요구한 것이 아닐까?
(사고가 너무 많다.)
사람으로서 그 누구도 피할 수가 없도록 함정과 덪과 위험물이 넘쳐 난다.
프랑스를 방문하고 번화가를 걷던 인도의 성자 선다씽이 그 호와찬란함에 잠깐 죄를 지었다는 말이 있다.
그가 오늘을 산다면 컴퓨터 게임방에 가서 도를 닦고 있거나 휴대폰에 머리를 박고 아주 동상이 되지 않았을까?
우리가 사는 오늘이 이런 때다. 주님 오실 때가 임박한 지금은 역사에 한 번씩 나타 난 귀신들이 전부 다 쏟아 져 나와 있다.
누구든 실수할 수 있고 함정에 빠질 수 있다. 자기가 아니면 가족이 그럴 수 있다. 그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러했을 것이다.
이럴 때, 자기와 가족이 빠진 함정에 표시판을 커다랗게 해 놓으면 다른 사람을 막을 수 있다. 최소한 도울 수가 있다.
문제는 자기의 위신이 문제다. 자기 체면이 걸릴 것이다.
내가 백 목사님과 이 노선을 좋아 하는 이유는 처음부터 이런 문제를 두고는 확실히 초월하고 살아 왔기 때문이다.
백 목사님의 평생 설교 10만 쪽의 모든 분량은 늘 기본 자세와 노력이 이러했다. 배웠지만 어느 정도 하는지는 각자 선택이다.
부공3, 이 연구소의 운영은 1998년 첫 해부터 전면 무제한 글쓰기를 허용했다. 우리를 고쳐 달라는 부탁이었다.
함께 시작했고 제일 중심에 선 분들도 처음에는 논리적으로 맞기 때문에 함께 시작했으나 개인 문제가 나오면 바로 돌아 섰다.
입에는 달지만 배에는 쓰게 되는 것이 계시록 10장의 작은 책이다. 말은 쉽고 좋다. 실행은 어렵다. 쓰다. 쉽지 않다.
(그러나, 또 노리는 귀신이 있다.)
이렇게 노력하면 거의 모든 귀신을 다 이길 수가 있다. 귀신도 그 것을 안다. 그래서 귀신은 또 다른 논리로 막아 나선다.
고치려는 사람의 고치는 노력과 결과와 다른 사람의 피해를 막기 위해 표시를 하겠다는 것인데, 아무 것이나 다 표시하란다.
죄악의 낙을 누리기 위해, 다른 사람 지은 죄를 배워 따라 하기 위해, 한 사람의 죄를 바이러스로 만들어 유포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공회는 이 바이러스를 잡는 백신으로 막고 있다. 회개를 광고에 써 먹거나 일반화 하거나 악용하는 경우는 배제한다.
공개하고 싶은 사람만 공개하라.
공개하는 사람만 손해 보는 내용만 공개하라.
다른 사람의 죄를 막는 데 필요한 것만 공개하라.
지난 죄와 회개를 가지고 자기를 고차원적 의인 만들지 말라.
회개 하나가 많은 회개를 시킬 때, 귀신은 회개하는 간증을 노리고 있다 순식간에 죄의 간증을 신나게 자랑스럽게 만든다.
바로 이 위험성 때문에 공회는 간증을 거의 하지 않는다. 피치 못할 때는 자기를 특정하지 않고 3자처럼 소개하게 한다.
그래서 이 사이트에서도 자주 그렇게 했다. 그렇게 하니까 이 번에는 귀신이 3차처럼 만들며 조작을 한다고 또 비판한다.
이런 귀신과 끝 없이 싸우는 곳이 세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