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하나로 시대를 바꾼다. 옳든 그르든 - 시대와 함께 공회를 읽어 본다.

남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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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판에는 이 홈에 올려진 글 중에 이곳에서 따로 소개하고 싶은 글도 포함됩니다. 

말 하나로 시대를 바꾼다. 옳든 그르든 - 시대와 함께 공회를 읽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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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시설에 반일 표시를)

애양원교회 입구에 보훈처가 '신사참배 거부운동지'라며 국가 현충시설로 지정을 했다. '관리번호 55-1-46'까지 적혀 있다.

상식이 있다면 아닌 줄 모두가 알 듯하다. 손양원 가족은 역사 왜곡이라고 펄펄 뛰지만 단체와 지역과 국가의 힘은 강하다.

안내판 밑에는 '손양원 목사가 1939년부터 신사참배 거부운동을 전개한 곳이다'라고 적었다. 적반하장이다. 사실과 반대다.

설명을 하지 않으면 보훈처가 인정하는 이 표시를 이의할 사람은 없을 듯하다. 애양원교회는 신사참배 반대자를 탄압했다.

따라서 '신사참배 거부운동지'가 아니라 '애양원교회는 신사참배를 위해 거부자를 척결한 친일 시설'이라고 적어야 맞다.


(신사참배를 했던 애양원교회, 거부했던 손양원 목사)

손 목사님은 신사참배를 거부했다고 잡혀 갔다. 애양원교회는 신사참배를 거부한 손 목사님을 처리하고 후임을 바꿨다.

그리고 신사참배를 거부한 손 목사님을 따르는 교인은 내쫓았다. 그들은 바로 전부 애양원을 떠나 전국을 떠돌며 살았다.

그렇다면 애양원교회는 신사참배를 했던 교회고, 목사가 신사참배를 거부하자 그 목사를 내쫓은 신사참배 박해 교회다.

주남선 목사님의 거창읍교회도 마찬 가지였다. 그래서 해방 후 자녀들은 출옥한 아버지에게 다른 교회로 가자고 했었다.

일제가 손양원을 감옥에 보낸 것은 이해를 한다. 미신 국가인데 점령한 식민지에 무슨 자비를 베풀겠는가? 상식 아닌가?


문제는 애양원교회다. 애양원교회는 신사참배를 했고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손 목사님의 가족을 내쫓았다. 교회 결정이다.

손 목사님은 감옥에서 자기 걱정은 없었다. 가족을 걱정했다. 그 가족은 일제가 아니라 애양원교회로부터 박해를 당했다.

손 목사님이 신사참배를 거부할 때 교회는 가족을 돌 보지 못하고 오히려 쫓아 냈으니 박해를 한 것이다. 미안해야 한다.

그런데 애양원교회가 마치 일제 때 신사참배를 거부한 교회처럼 위장을 한다는 것은 너무 심각한 역사 왜곡이 아닌가?


(통합교단, 순천노회, 애양원교회로 내려 오는 친일파들의 노련한 처세술)

통합 교단의 지도부는 일제가 신사참배를 요구하자 신사참배는 죄가 아니니 떳떳하고 자랑스럽게 한다며 앞장 서서 했다.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몇몇 목사를 이상한 인물로 사이비처럼 왕따를 시켜 버렸다. 그리고 그 가족을 조직적으로 박해했다.

그런데 해방이 되자 놀랍게도 이들은 자신들의 행동을 변호했다. 목자가 감옥에 들어 가면 양떼는 누가 돌보느냐는 것이다.

양떼를 돌보기 위해 죄를 짓는 양심의 고통까지 느껴 가며 친일파라는 오해를 받으면서까지 고생을 했다며 큰 소리였다.

감옥에 간 이들이나 해외로 망명한 사람은 자기 하나의 명예를 위해 가족과 교인을 이리 떼에게 넘겼으니 더 나쁘다 했다.


이 논리 때문에 해방 직후 한국 교회는 철 없는 신사참배 거부자들의 희망과 달리 신사참배 찬성자들이 교계를 주도했다.

거부한 사람은 다시 제명 당하고 일제 때를 이어 해방 후 다시 박해를 당했다. 박해 하는 쪽은 늘 당당했고 힘을 가졌다.

그리고 교파가 서로 나뉘게 되면서 일반 교인은 자기가 출석하는 교회 말만 듣고 서로 각자 교파에 자부심으로 지내 왔다.

세월이 많이 지나고 그 때 일이 잊혀 지면서 한국의 교계가 단합을 해야 세상에 명예와 힘을 가지게 되자 합하게 되었다.

과거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일제에게 또 해방 조국의 교회에게 제명 당한 이들이 소수다 보니 통합에 먼저 앞 장을 섰다.

용서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통합을 추진했으나 이들을 박해한 교회는 역사란 세월이 약이라며 쾌재를 불렀고 호응했다.


세월이 충분히 지나며 신사참배 문제로 직접 참배를 했거나 거부했던 1세대들이 모두 죽게 되자 새로운 논리가 등장한다.

일본이 원래 나쁜 ㄴ들이니 그들 때문에 한국 사회 전부가 고생을 했고 한국의 교회도 모두 함께 고생을 당했다는 것이다.

신앙의 논점은 원래 죄와 싸워 이겨야 하는 것인데 고생하기 싫어 죄를 짓는다면 배신이며 배교라는 가장 큰 죄가 된다.

그런데 가장 큰 죄를 지은 이들이 죄와 싸워 이긴 이들과 자신들을 한꺼번에 묶어 그 당시 함께 고생했다며 포장을 했다.

하기야,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앞에 가장 고통을 많이 받은 이는 가룟 유다다. 그는 견딜 수 없어 배가 터져 죽은 정도다.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과 교인들은 죄송해서 눈물을 흘린 정도다. 가룟 유다만큼 십자가 사건에 고통 받은 사람이 있을까?

가룟 유다 묘소가 있다면, 나는 그 묘소 앞에 '통합' 교단 이름으로 '예수님 십자가에 고난에 동참한 수난자'라고 적고 싶다.


(이쯤 해서, 우리는 세상을 한 번 견줘 봐야 하지 않을까?)

성경은 특별 계시다. 이 계시는 모세 때 주셨으나 자연 계시는 그 전부터 있었다. 자연 계시가 특별 계시보다 앞에 있다.

왜 둘을 나란히 주셨을까? 우리가 덜 어두웠을 때는 성경 없이도 신앙 생활에 불편이 없었다. 둘을 나란히 비교하면 쉽다.

한국의 교회는 해방 전까지 북쪽은 왕성했고 남쪽은 엉성했다. 오죽하면 전국에 하나뿐인 신학교를 평양에 세웠을까..

북한에 그 많고 왕성했던 교회를 단 1개도 남기지 않고 완전히 없애 버린 것이 이 나라의 공산세력이며 좌파의 모습이다.

그 좌파가 남한까지 다 삼키기 위해서는 무조건 미국을 밀어 내야 한다. 남한은 미국 때문에 오늘 세계 최고 나라가 됐다.

북한의 세계적이던 교회들을 모두 삼킨 좌파가 남쪽까지 삼키기 위해 첫 번째 내 건 구호가 '미제국주의 타도'였다.


6.25의 기습으로도 미국 때문에 남쪽을 먹지 못했다. 하여 미제 앞잡이, 미제국주의 타도가 그들의 노래에 늘 중심이었다.

그런데, 왜 지금은 미제 앞잡이 미제국주의 타도라는 말을 들을 수 없을까? 해방 후 지금이 가장 좌익의 전성기인데...

운동권 학생, 좌파 시민 단체, 이 나라의 좌익 성향의 모든 언론들... 얼마나 반미 운동 미제국주의 척결 운동을 벌였던가?

70년대부터 80년대 90년대까지 반미투쟁을 해야 좌익 부근에 얼씬 거릴 정도였다. 그런데 왜 2000년대부터 사라졌는가?

좌익으로 지목 받는 정권이 5년씩 2번이나 집권을 했었다. 그들은 한반도에 미국을 완전히 몰아 낼 줄 알았다. 철도 없이...


90년대말 집권한 세력이 집권 전에는 미국을 그토록 욕했는데 막상 집권하고 보니 미국을 몰아 내기는 커녕 앞잡이였다.

그 뒤에 화끈하게 해치우는 소장파들이 다시 집권을 했는데 이들은 그럴 줄 알았으나 이들도 미국과 타협하며 끝을 냈다.

알고 보니 최소한 집권 세력은 좌익처럼 보였을 뿐이지 내적으로는 극단적인 좌익은 아니었다. 그냥 좌익인 척 한 것이다.

그들의 본심은 아무도 모른다. 극좌인데 막상 집권을 하고 나니 상황을 파악했고 그들의 사상을 바꾸면서 조절한 것인지

아니면 아직은 충분히 때가 되지 않아서 연막 전술로 대충 나가자는 것인지, 본래 우익인데 집권을 위해 그랬던 것인지..


수십 년을 반미 논리로 집권까지 하게 된 이 나라의 좌파들, 현재 상황에서 보면 좌와 우 중간 어디쯤에서 헤매는 듯하다.

그런데 반미로 집권까지 하게 된 이 재미 있는 구호를 그냥 놓칠 수는 없다. 바로 그 자리를 '친일파'로 급격하게 채웠다.

구호라는 것이 2가지가 되면 무식한 대중이 명쾌하게 알아 듣고 행동에 나설 때 불리하다. 일단 하나에 집중을 해야 한다.

집권을 하면서 '반미' 자리에 '친일파'를 채웠다. 동학혁명까지 불러 내며 난리다. 앞으로 임진왜란도 불러 낼 상황이다.

이 바람에 맨 정신을 가진 사람은 반미도 반일도 이해하나 먹고 살자니 누구와도 장사는 해야 하는 것이니 고민이다.


(교계의 귀신 운동)

세상 일에 발 맞춰 교회까지도 반일 운동에 혈안이다. 교회를 탄압한 것으로만 말하면 공산당은 일제보다 백 배 심했다.

그렇다면 교회만은 일제보다 북한 비판에 100배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교회 중에도 좌파 교회들은 오로지 일제만 친다.

이 점만 봐도 좌파 교회는 교회가 아니라 세상의 좌익 세력이 교회까지 좌익 운동에 써 먹으려고 양의 탈을 쓴 것이다.

한국 교회를 반일 단체화 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손양원이라는 최고 상품을 반일 운동에 앞잡이로 불러 내는 것이다.

함안의 손양원기념관은 정확하게 '애국지사 손양원'이 주제다. 이 이름으로 보훈처로부터 국고를 지원 받는 단체가 됐다.


손양원이 애국지사인가, 순교지사인가? 손양원은 애국지사가 아니라 신앙지사로서 순교를 했던 순수한 신앙인일 뿐이다.

그런데 손양원을 애국지사로 만들면서 항일운동의 표상으로 만들고 반일 운동에 마음껏 써먹고 있으니 개탄할 일이다.

가족들조차 '손양원 선친을 높이자'는 말이 들어 오면 일단 접수부터 하고 본다. 어떻게 활용이 되는지도 계산해 보지 않고.

본 연구소는 가족들에게 꾸준히 손양원은 애국지사가 아니라 오로지 신앙 일념인데 어떻게 자녀들이 이러냐고 설명했다.

1세대 자녀들은 이런 설명을 하면 바로 알아 듣는다. 2세들은 대화도 어렵지만 일부는 좌파 논리에 동조하는 이도 있다.


손양원 목사님의 옥중 판결문에 일부만 소개한다. 이 정도면 현재 정권과 현재 좌파가 볼 때 친일파가 아닌가?

일본이 중국을 침략한 것은 '동양 평화'를 위한 것이라 하며, 전쟁에 필요하여 재산을 징발하면 목숨까지 바치겠다고 한다.

천황의 통치도 괜찮은 정도라 하면서 안 믿으면 세상 나라는 어느 나라나 별 차이가 없다고 말한다. 한국도 포함이 된다.


* 일제의 검찰신문조서 1941.5.25.


질문: 그대는 현재 우리 나라의 천황 통치 제도 및 사회 제도에 대하여 여하하게 생각하는가?

답변: 천황 통치 제도에 대해서는 별로 나쁘다고는 생각지 않으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여서 천년간 이상왕국을 건설하실

때에는 그 이상왕국이 천황제도의 일본 국가보다는 훌륭한 것이니 그 때는 일본국가는 멸망하고 천황 통치 제도는

인정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나라 사회 제도에 대해서도 역시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질문: 그대는 이번 지나사변(註 중국 침략전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답변: 모든 사변이나 전쟁은 여호와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인데 역시 여호와 하나님이 일본국으로 하여금 동양

평화를 위해서 일으킨 사변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질문: 하나님이 전쟁을 시킨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반대되는 것이 아닐까?

답변: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이 일본을 들어서 악한 지나를 벌하는 것이니 하나님의 뜻에 반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질문: 조선통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답변: 별로 불만하게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기독교도로서 여러 가지 고난을 받고 있으나 이것도 이 때에 오히려 내 신앙상

으로 말하면 가령 어떠한 고난이 몸에 닥쳐도 더욱 신앙을 두텁게 하여 시련을 받을 것이라고 믿고 있는 고로 나로서

는 신앙상 조금도 괴롭지는 않습니다.


검찰의 피의자 신문조서(제4회)

1941.9.30.

질문: 그대는 소유권에 대해서는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답변: 물건은 일면으로는 하나님의 소유이고 또 일면으로는 국가의 소유이고 또 다른 일면으로는 개인의 소유인데, 그 것을

함부로 소비하는 것은 하나님에게 대해서 국가에 대해서 자기에게 대해서도 좋지 않은 일입니다. 나는 국가가 자기

물건을 내라고 하면 내 몸까지라도 내놓을 생각입니다.


(소유권에 대한 질문은)

공산주의자인지를 확인하고 있는 대목이다.

일제도 손 목사님도 공통적으로 공산주의를 두고는 동맹이 되는 것이다.


미제를 욕하다 써 먹지 못하게 되니까 일제를 욕하며 다시 온 나라를 이 문제로 생 소란을 다 일으킨다.

신사참배를 앞 서서 해 놓고 해방이 되니 물 타기를 하고 이제는 그들이 손 목사님과 함께 고난을 당했다는 정도다.

공회는 어떤가? 백 목사님 사후에 재독은 신사참배와 같은 우상이라고 그렇게 난리난리를 다 했었다. 지금은?

자파 세력의 확보를 위해 상대방을 치는 좌파식의 투쟁 방향에 대한 선점이었다. 정치를 했던 것이다. 교인들은 발광했고.

목사님 사후 '죽은 자의 영상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나'라는 말은 1960년대 초반 한국의 정치계를 주물던 분의 정치였다.

그 분의 정치에 백태영 이하 대구공회 지도부는 그렇게 시대적 사명감에 젖어 순교 자세로 투쟁을 했다. 코메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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