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역 기간의 집회, 늘 감사한 곳을 공회라 한다.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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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06 17:07
이 번 집회도 참 감사한 것뿐이다.
이 곳을 참고하거나 마음을 함께 하는 분들을 위해 적는다. 오시지 않은 분들이 대부분이지만 아는 것은 늘 중요할 듯하다.
연구소가 운영하는 부공3 집회는 작년 5월과 8월, 그리고 올해 5월에 이어 이 번 8월도 무사히 은혜롭게 잘 끝낼 수 있었다.
작년 5월은 코로나19 첫 위기 때문에 전국의 분위기가 심각했고, 작년 8월과 올해 5월은 돌발적 사안 때문에 또 위기였다.
그런데 그 때마다 돌아 보면 늘 양치기 소년의 급보였다. 양치기 소년은 2번 사용했고 3번째는 아무도 반응하지 않았다 한다.
공회들은 5월과 8월에 집회가 있다. 1957년부터 시작했고 50여 년을 봄 여름으로 고정했고 지난 2년에 4번 집회가 있었다.
작년과 올해 5월과 8월의 집회 직전은 정말 심각하게 진행이 되었으나 집회가 막상 시작 되는 시점에는 늘 그냥 평안했었다.
신앙은 사전에 준비한다. 그러나 내일 일은 주님이 단독 결정하고 우리는 오늘 문제로 던져 진 것만을 보며 충성할 뿐이다.
그렇다면 집회 하루 전까지는 늘 집회를 준비하는 것이 마6:34에 맞을 듯 싶다. 집회 출발 하루 전이면 모든 것이 명확하다.
이 번 집회도 막상 별 장애가 없었다. 집회 주간도 그러했다. 거창은 평온했다. 차가 다니지 못할 만큼 계곡마다 넘쳐 났다.
모든 문제는 오로지 심리적으로 쫓기거나 불안한 압박만 있었을 뿐이다. 통행을 금지한다면 전국적 집회는 어려워 보인다.
우리는 세상을 기본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과 십자군 전쟁에 나서지는 않는다. 그래서 그들의 말은 신중히 지켜 본다.
신앙에 대한 핍박이란 역사적으로 거의 전부가 위협이었다. 위협에서 끝이 났었다. 정말 상황이 벌어 진 경우는 아주 드물다.
다윗이 쫓겨 다닌 것은 실제 상황이었다. 그러나 내용적으로는 협박에 그쳤다. 다니엘의 사자굴조차 뒤에 보니 협박이었다.
아벨처럼 위협에 그치지 않고 목이 달아 난 경우는 얼마 되지 않는다. 바울은 초주검이 된 경우가 허다했다. 특수한 분이었다.
백 목사님은 스스로 늘 겁이 많아서 준비를 많이 했다고 말했다. 평생 많은 위험이 있었으나 실제 위험은 두어 번뿐이었다.
신사참배 6년 기간에 그는 매일 협박을 당했다. 그러나 위협으로 그쳤다. 점령 기간에 처형장에도 갔으나 위협에서 그쳤다.
지금은 고문하는 때가 아니다. 지금 감옥을 가도 종교 범죄로 가면 산 속에 기도실보다는 낫다고 한다. 세상이 일단 그렇다.
우리 집회는 방역 상황에 계속해서 평온하게 잘 진행이 되다 보니 공연히 두고 볼 수 없는 분들이 거창군청에 고발을 했다.
일단 고발이 되면 공무원은 공무원 역할을 한다. 그런데 공회의 산 집회란 원래 차분히 말씀을 살피는 집회니 문제가 없다.
예배실에 들어 가지 못하면 예배실 주변의 숲이 넉넉하고 각 숙소가 충분하여 산 집회의 원래 목적과 진행에 상관이 없다.
전국에서 산집회 장소까지 만반의 준비를 하고 모인 그 자체가 이미 산 집회를 참석한 것이다. 막히게 되면 막히는 것이다.
백 목사님 생전의 산 집회는 비가 적게 와서 강물이 말라도 또 강사의 건강이 걱정이 되어도 집회를 하지 않은 적이 있었다.
장소가 부족하면 스피커로 연결해서 층을 달리 했고 예배당과 멀리 떨어 진 숙소에서도 진행했다. 장소는 다를 수 있었다.
구약은 율법의 규정이 있어 이 규정을 무조건 지켰다. 그렇지만 대하30장에서는 규정을 벗어 났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했다.
예배당까지 갈 수는 있고 현관 안에 들어 갈 수가 없게 된다면? 현관까지 가는 것이 정한 시간의 정한 장소의 예배가 된다.
공회의 산 집회는 평소와 생활을 떠나 말씀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집회 장소 내의 예배실이 막히면 그 주변이 공회 집회다.
그런데 요4:20에서 위치와 장소에 주력하던 구약교회에게 주님은 24 말씀으로 신령과 진정이 예배라고 예배론을 말씀했다.
신령이란 성령의 인도이며, 진정이란 정성을 말한다. 구약은 신령과 진정을 일단 제쳐 두고 성전의 제사 모습이 중요했다.
신약은 세계 각 나라와 각 지방의 각 교회와 각 교인에게 현실과 인도와 사명을 따로 주시며 인도를 하신다. 순종을 보신다.
오늘 한국 교회는 한국의 상황이 주님 주신 1차 상황이지 미국이나 아프리카 상황은 그 곳의 교회들에게 주신 1차 상황이다.
오늘 공회 교회는 공회가 전력해 온 예배가 있고 평소의 예배를 보충하려고 산 집회를 가져 왔다. 신령한 인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한국 사회와 경남의 거창 지역의 방역 제한은 주님이 그들을 통해 만들었다. 이 상황은 공회 우리들의 환경이다.
이런 환경을 주님이 조성했을 때 어디까지가 '진정'이 될까? 우리의 정성은 어느 정도가 좋을까? 이 것은 공회 별로 다르다.
공회 집회가 공회 집회답게 진행이 된다면 산 집회의 성격이 유지 된다면 예배실 바로 앞에까지는 가는 것이 부공3 생각이다.
각 교회의 평소 예배도 원리는 같다. 예배실에 10%만 허락하며 막고 나선다면 90%는 현관 밖에서 예배를 드리면 어떨까?
현관 밖에서 예배를 드린다면 오지 않을 교인도 있다. 그들은 어리니 평소 날이 흐려도 오지 않고 바빠도 오지 않는 분이다.
오지 못한 원인은 당국의 탄압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신앙이 내면 때문이다. 주님 영접을 밤이 막았는가? 기름이 부족했다.
몇십 평의 임대 건물에서 예배를 드리는 이들은 당국이 막고 나서면 현관 문 밖이 계단인데 공용 시설이라 사용할 수 없다.
그러나 서부교회는 예배실 밖에 마당이 넓다. 골목 너머에는 또 다른 건물이 있다. 주변에는 주차 공간이 곳곳에 참 많다.
예배실 내만 예배인가? 그렇다면 요4:20 말씀처럼 이 산이냐 저 곳이냐 라는 논쟁이 필요하다. 신약은 신령과 진정 문제다.
일반 예측으로는 8월 이후에는 방역이 연말까지 가면서 끝이 날 것이고 내년 5월 집회부터는 이런 문제는 없을 듯하다.
그러나 벌써 일부 반론은 코로나19의 변형이 이어 지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 백신으로 막지 못하는 변형을 예측하고 있다.
방역 문제는 방역이 완료 되어도 계속 될 것으로 본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귀신이 교회의 약점을 파악했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그 옛날 그 옛날 여름이 되면 아폴로 눈병, 홍콩 뇌염.... 겨울이 되면 무슨 독감 무슨 독감으로 늘 들어 왔었다.
그 시절에 별별 독감으로 전국이 독감 환자로 넘쳤고 병원마다 손님이 밀어 닥쳐 매출이 올랐다. 그 때와 다른 것이 있나?
그 때는 독감 바이러스를 추적할 기술도 없었고 돌아 다니는 것을 막을 여지가 없었다. 독감이 급하지 않은 시절이었다.
지금은, 모든 질병을 다 극복하고 온 인류와 우리 나라의 일반인까지 개와 고양이 걱정에 온 나라가 시간을 소일하고 있다.
이런 때에 유행성 독감, 유행성 폐렴을 하나 가지고 천하를 뒤 흔들었다. 처음에는 전 인류가 죽을 듯이 생 난리를 다 했다.
이제 2년이 되어 가면서 죽은 통계, 고생한 사례를 전부 모아 보니 태산명동 서일필의 코메디로 밝혀 지고 있다.
지하철과 마트에는 촘촘이 사람들이 들어 가고 예배당은 10만 명 모이는 곳이 1명이나 들어 가라면서 벌벌 떨고 있다.
세상에게 세상은 그들의 전부니 만 가지 문제를 해결한 황제 폐하의 기침 한 번에 온 나라고 울고 불고 해도? 이해가 된다.
그런데 교회까지도, 이 곳 연구소에 글을 적는 분들까지... 코로나를 기치에 내세우고 세상 나라처럼 여러 말씀들을 하시다..
집회가 정상으로 작년과 올해 계속 되고 심지어 이 번 8월까지 또 진행이 되자 드디어 관할청에다 막으라고 고발을 했다.
맞은 ㄴ은 뻗고 잔다는 말이 있다.
때린 ㄴ은 옹그리고 잔다는 말이 있다.
고발한 분은 겉으로는 태연한 척해도 그 분 속에 양심은 개운치 못할 듯하다. 개운하다면 불신자다.
만일 불안하다면가룟 유다보다는 더 심각한 분이다. 가룟 유다는 복음을 고발한 후 못견뎌 배가 터졌다.
공회 내에도 서부교회, 부산공회1과 2와 대구공회 서울공회의 예배관은 예배당 현관 안에 들어 가야 예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까지 예배를 엄하게 말하던 분들은 지금 예배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 곳은 1989년부터 예배란 신령과 진정이라고 했다.
그 때 이 곳과 입장을 달리 한 분들은 이 곳을 향해 예배를 느슨하게 만들다 예배가 흐려 질 것이고 했다.
그렇게 걱정하던 분들의 예배는 방역 문제가 오기도 전에 예배당에 세상과 타 교단의 곤란한 것을 모두 가져 들어 왔다.
이 곳은 갈수록 예배당 안에 예배를 더욱 청소해 오고 있었다. 지금 부공3은 백 목사님 생전보다 더 청결하다고도 한다.
백 목사님 사후에 생전의 설교로 재독을 할 때 우상 예배가 된다고 설친 교회일수록 열린 예배로 더 일찍 속화가 되었다.
한 가지를 가지고 많은 면을 살피는 것이 공회다. 평소 잘 살피다 보면 자기 신앙의 수준에 따라서 갈 길이 따로 열린다.
여러 가지 다른 지혜와 등불도 있었다. 예전에는 최대한 이 곳에 안내하여 함께 가지도록 했다. 복음은 나누는 것이 맞다.
그 것까지 경찰에 고발하는 죄를 짓기 때문에 지금은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마7:6 말씀 때문에 따로 필요한 분들에게만 전하고 있다. 거룩한 것과 진주까지 죄악에 이용하는 죄를 막기 위해서다.
이 곳을 참고하거나 마음을 함께 하는 분들을 위해 적는다. 오시지 않은 분들이 대부분이지만 아는 것은 늘 중요할 듯하다.
연구소가 운영하는 부공3 집회는 작년 5월과 8월, 그리고 올해 5월에 이어 이 번 8월도 무사히 은혜롭게 잘 끝낼 수 있었다.
작년 5월은 코로나19 첫 위기 때문에 전국의 분위기가 심각했고, 작년 8월과 올해 5월은 돌발적 사안 때문에 또 위기였다.
그런데 그 때마다 돌아 보면 늘 양치기 소년의 급보였다. 양치기 소년은 2번 사용했고 3번째는 아무도 반응하지 않았다 한다.
공회들은 5월과 8월에 집회가 있다. 1957년부터 시작했고 50여 년을 봄 여름으로 고정했고 지난 2년에 4번 집회가 있었다.
작년과 올해 5월과 8월의 집회 직전은 정말 심각하게 진행이 되었으나 집회가 막상 시작 되는 시점에는 늘 그냥 평안했었다.
신앙은 사전에 준비한다. 그러나 내일 일은 주님이 단독 결정하고 우리는 오늘 문제로 던져 진 것만을 보며 충성할 뿐이다.
그렇다면 집회 하루 전까지는 늘 집회를 준비하는 것이 마6:34에 맞을 듯 싶다. 집회 출발 하루 전이면 모든 것이 명확하다.
이 번 집회도 막상 별 장애가 없었다. 집회 주간도 그러했다. 거창은 평온했다. 차가 다니지 못할 만큼 계곡마다 넘쳐 났다.
모든 문제는 오로지 심리적으로 쫓기거나 불안한 압박만 있었을 뿐이다. 통행을 금지한다면 전국적 집회는 어려워 보인다.
우리는 세상을 기본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과 십자군 전쟁에 나서지는 않는다. 그래서 그들의 말은 신중히 지켜 본다.
신앙에 대한 핍박이란 역사적으로 거의 전부가 위협이었다. 위협에서 끝이 났었다. 정말 상황이 벌어 진 경우는 아주 드물다.
다윗이 쫓겨 다닌 것은 실제 상황이었다. 그러나 내용적으로는 협박에 그쳤다. 다니엘의 사자굴조차 뒤에 보니 협박이었다.
아벨처럼 위협에 그치지 않고 목이 달아 난 경우는 얼마 되지 않는다. 바울은 초주검이 된 경우가 허다했다. 특수한 분이었다.
백 목사님은 스스로 늘 겁이 많아서 준비를 많이 했다고 말했다. 평생 많은 위험이 있었으나 실제 위험은 두어 번뿐이었다.
신사참배 6년 기간에 그는 매일 협박을 당했다. 그러나 위협으로 그쳤다. 점령 기간에 처형장에도 갔으나 위협에서 그쳤다.
지금은 고문하는 때가 아니다. 지금 감옥을 가도 종교 범죄로 가면 산 속에 기도실보다는 낫다고 한다. 세상이 일단 그렇다.
우리 집회는 방역 상황에 계속해서 평온하게 잘 진행이 되다 보니 공연히 두고 볼 수 없는 분들이 거창군청에 고발을 했다.
일단 고발이 되면 공무원은 공무원 역할을 한다. 그런데 공회의 산 집회란 원래 차분히 말씀을 살피는 집회니 문제가 없다.
예배실에 들어 가지 못하면 예배실 주변의 숲이 넉넉하고 각 숙소가 충분하여 산 집회의 원래 목적과 진행에 상관이 없다.
전국에서 산집회 장소까지 만반의 준비를 하고 모인 그 자체가 이미 산 집회를 참석한 것이다. 막히게 되면 막히는 것이다.
백 목사님 생전의 산 집회는 비가 적게 와서 강물이 말라도 또 강사의 건강이 걱정이 되어도 집회를 하지 않은 적이 있었다.
장소가 부족하면 스피커로 연결해서 층을 달리 했고 예배당과 멀리 떨어 진 숙소에서도 진행했다. 장소는 다를 수 있었다.
구약은 율법의 규정이 있어 이 규정을 무조건 지켰다. 그렇지만 대하30장에서는 규정을 벗어 났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했다.
예배당까지 갈 수는 있고 현관 안에 들어 갈 수가 없게 된다면? 현관까지 가는 것이 정한 시간의 정한 장소의 예배가 된다.
공회의 산 집회는 평소와 생활을 떠나 말씀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집회 장소 내의 예배실이 막히면 그 주변이 공회 집회다.
그런데 요4:20에서 위치와 장소에 주력하던 구약교회에게 주님은 24 말씀으로 신령과 진정이 예배라고 예배론을 말씀했다.
신령이란 성령의 인도이며, 진정이란 정성을 말한다. 구약은 신령과 진정을 일단 제쳐 두고 성전의 제사 모습이 중요했다.
신약은 세계 각 나라와 각 지방의 각 교회와 각 교인에게 현실과 인도와 사명을 따로 주시며 인도를 하신다. 순종을 보신다.
오늘 한국 교회는 한국의 상황이 주님 주신 1차 상황이지 미국이나 아프리카 상황은 그 곳의 교회들에게 주신 1차 상황이다.
오늘 공회 교회는 공회가 전력해 온 예배가 있고 평소의 예배를 보충하려고 산 집회를 가져 왔다. 신령한 인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한국 사회와 경남의 거창 지역의 방역 제한은 주님이 그들을 통해 만들었다. 이 상황은 공회 우리들의 환경이다.
이런 환경을 주님이 조성했을 때 어디까지가 '진정'이 될까? 우리의 정성은 어느 정도가 좋을까? 이 것은 공회 별로 다르다.
공회 집회가 공회 집회답게 진행이 된다면 산 집회의 성격이 유지 된다면 예배실 바로 앞에까지는 가는 것이 부공3 생각이다.
각 교회의 평소 예배도 원리는 같다. 예배실에 10%만 허락하며 막고 나선다면 90%는 현관 밖에서 예배를 드리면 어떨까?
현관 밖에서 예배를 드린다면 오지 않을 교인도 있다. 그들은 어리니 평소 날이 흐려도 오지 않고 바빠도 오지 않는 분이다.
오지 못한 원인은 당국의 탄압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신앙이 내면 때문이다. 주님 영접을 밤이 막았는가? 기름이 부족했다.
몇십 평의 임대 건물에서 예배를 드리는 이들은 당국이 막고 나서면 현관 문 밖이 계단인데 공용 시설이라 사용할 수 없다.
그러나 서부교회는 예배실 밖에 마당이 넓다. 골목 너머에는 또 다른 건물이 있다. 주변에는 주차 공간이 곳곳에 참 많다.
예배실 내만 예배인가? 그렇다면 요4:20 말씀처럼 이 산이냐 저 곳이냐 라는 논쟁이 필요하다. 신약은 신령과 진정 문제다.
일반 예측으로는 8월 이후에는 방역이 연말까지 가면서 끝이 날 것이고 내년 5월 집회부터는 이런 문제는 없을 듯하다.
그러나 벌써 일부 반론은 코로나19의 변형이 이어 지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 백신으로 막지 못하는 변형을 예측하고 있다.
방역 문제는 방역이 완료 되어도 계속 될 것으로 본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귀신이 교회의 약점을 파악했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그 옛날 그 옛날 여름이 되면 아폴로 눈병, 홍콩 뇌염.... 겨울이 되면 무슨 독감 무슨 독감으로 늘 들어 왔었다.
그 시절에 별별 독감으로 전국이 독감 환자로 넘쳤고 병원마다 손님이 밀어 닥쳐 매출이 올랐다. 그 때와 다른 것이 있나?
그 때는 독감 바이러스를 추적할 기술도 없었고 돌아 다니는 것을 막을 여지가 없었다. 독감이 급하지 않은 시절이었다.
지금은, 모든 질병을 다 극복하고 온 인류와 우리 나라의 일반인까지 개와 고양이 걱정에 온 나라가 시간을 소일하고 있다.
이런 때에 유행성 독감, 유행성 폐렴을 하나 가지고 천하를 뒤 흔들었다. 처음에는 전 인류가 죽을 듯이 생 난리를 다 했다.
이제 2년이 되어 가면서 죽은 통계, 고생한 사례를 전부 모아 보니 태산명동 서일필의 코메디로 밝혀 지고 있다.
지하철과 마트에는 촘촘이 사람들이 들어 가고 예배당은 10만 명 모이는 곳이 1명이나 들어 가라면서 벌벌 떨고 있다.
세상에게 세상은 그들의 전부니 만 가지 문제를 해결한 황제 폐하의 기침 한 번에 온 나라고 울고 불고 해도? 이해가 된다.
그런데 교회까지도, 이 곳 연구소에 글을 적는 분들까지... 코로나를 기치에 내세우고 세상 나라처럼 여러 말씀들을 하시다..
집회가 정상으로 작년과 올해 계속 되고 심지어 이 번 8월까지 또 진행이 되자 드디어 관할청에다 막으라고 고발을 했다.
맞은 ㄴ은 뻗고 잔다는 말이 있다.
때린 ㄴ은 옹그리고 잔다는 말이 있다.
고발한 분은 겉으로는 태연한 척해도 그 분 속에 양심은 개운치 못할 듯하다. 개운하다면 불신자다.
만일 불안하다면가룟 유다보다는 더 심각한 분이다. 가룟 유다는 복음을 고발한 후 못견뎌 배가 터졌다.
공회 내에도 서부교회, 부산공회1과 2와 대구공회 서울공회의 예배관은 예배당 현관 안에 들어 가야 예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까지 예배를 엄하게 말하던 분들은 지금 예배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 곳은 1989년부터 예배란 신령과 진정이라고 했다.
그 때 이 곳과 입장을 달리 한 분들은 이 곳을 향해 예배를 느슨하게 만들다 예배가 흐려 질 것이고 했다.
그렇게 걱정하던 분들의 예배는 방역 문제가 오기도 전에 예배당에 세상과 타 교단의 곤란한 것을 모두 가져 들어 왔다.
이 곳은 갈수록 예배당 안에 예배를 더욱 청소해 오고 있었다. 지금 부공3은 백 목사님 생전보다 더 청결하다고도 한다.
백 목사님 사후에 생전의 설교로 재독을 할 때 우상 예배가 된다고 설친 교회일수록 열린 예배로 더 일찍 속화가 되었다.
한 가지를 가지고 많은 면을 살피는 것이 공회다. 평소 잘 살피다 보면 자기 신앙의 수준에 따라서 갈 길이 따로 열린다.
여러 가지 다른 지혜와 등불도 있었다. 예전에는 최대한 이 곳에 안내하여 함께 가지도록 했다. 복음은 나누는 것이 맞다.
그 것까지 경찰에 고발하는 죄를 짓기 때문에 지금은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마7:6 말씀 때문에 따로 필요한 분들에게만 전하고 있다. 거룩한 것과 진주까지 죄악에 이용하는 죄를 막기 위해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