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욱 감사하게 하는 방법, 끊없이 감사라면 - 3

남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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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판에는 이 홈에 올려진 글 중에 이곳에서 따로 소개하고 싶은 글도 포함됩니다. 

더욱 감사하게 하는 방법, 끊없이 감사라면 - 3

담당 0 2
돌아 가신 이재순 목사님, 백 목사님의 조카이며 거창의 개명 출신이다. 안양에서 목회하다 돌아 가셨다.
그 분은 내가 몰랐던 내 가정에 좋은 역사를 돌아 가시기 전에 이해가 되도록 설명해 주신 적이 있다. 무형의 유산이 되었다.
그 분은 내가 있는 마을에 내 평생에 다시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나쁜 말을 하고 가셨다. 일부는 맞고 일부는 거짓말이다.
그렇게 덧 씌운 것도 내가 당할 만큼 했기 때문이니 할 말은 없다. 결과적으로 그런 나쁜 말은 내게 오늘도 유익이 되고 있다.

그 분을 두고 한 가지 별도로 기억하는 것이 있다. 그 분은 유교를 마지막으로 배운 세대다. 밥을 먹을 때 한 술을 빼고 드신다.
옛 어른들 중 좀 배운 분들, 유교적 처신이 제대로 된 분들은 생활 속에 실천 중 밥 그릇을 다 비우지 않고 한 숟가락을 남긴다.
욕심을 다 채우게 되면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가난하던 그 옛날로 돌아 간다면 그 한 숟가락 밥은 처자식이 좀 먹어야 한다.
밥도 명예도 관직도 그 어떤 것도 꽉 채우는 것은 자기를 위해 좋지 않다는 경험과 통계, 이 것이 유학의 자기 절제에도 있다.



요즘 먹을 것이 넘치니 먹는 분들에게 꼭 부탁을 한다. 더 먹고 또 채우고 또 먹으면 체중이 한계를 넘어 서고 재앙이 된다.
입을 것이 넘치는 찢어진 것을 없고, 아예 찢어서도 입는다. 극단적인 노출과 모양을 낸다. 어느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좋다.
온 나라 청년들이 공무원 시험에 대기업 입사에만 돌진하고 있다. 되면 좋으나 너무 무리가 되면 한 급을 낮추면 참 좋은데..
결혼에 상대방을 선택할 때도 그렇다. 내가 생각하는 최소한의 기준, 그 기준 자체가 너무 높다. 그 기준도 조금 낮췄으면..

목회자에 대한 교인의 바람도 많다. 목회자가 보기에 좋고 설교도 은혜롭고 생활도 깨끗하며 이해하는 넉넉함도 원한다.
그 누군들 다 좋은 사람이 있을까? 정말 다 좋아 보인다면 손양원 백영희처럼 남들이 모르는 가정 내에 큰 십자가가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땅 위에 생활이란 그 어떤 것이든 공평을 가지고 조절하신다. 너무 넘치게 그냥 두지 않는다.
결혼을 두고, 자기 마음 다하여 좋아 할 수 있는 사람을 찾을 듯하다. 사회의 분위기가 그렇고 또 본능적으로 다 그럴 듯하다.

문제는 자기가 원하는 그릇, 그 그릇을 다 먹으면 만족이 된다. 만족이 되면 그 다음에는 그로 인해 발생하는 추락이 있다.
한 숟가락을 빼 버리면? 마음에 들지 않는 결혼은 추진도 어렵지만 별 마음 없이 결혼이 시작 되면 가정이 깨질 수 있다.
가정이 깨질 정도가 되지 않으려 하다 보니 결혼 자체가 늦어 진다. 시대적으로 모두의 눈 높이가 다 상향이어서 그렇다.
한두 가지 좀 아쉬워도 그 아쉬운 부분을 한 그릇의 밥에 한 술을 뺀 것으로 생각하고 다 준다 해도 하나를 빼면 좋은데..


그 한 술을 빼고 먹은 뒤 늘 아쉬움이 남지 않을까? 바로 그 아쉬움이 들어서 묘한 입맛을 만들어 낸다. 이 것이 비밀이다.
가득 찬 밥과 반찬에서 밥 한 술을 빼고 반찬 하나를 포기를 하게 되면 우선은 아쉬운데 이 것이 입맛을 확실하게 돋운다.
먹을 수 있는데 먹지 못한 상실감, 잡을 수 있는 먹이를 놓친 아쉬움, 가질 수 있는 기쁨을 조금 줄이고 자제를 하게 되면,
우리의 인체는 보복감이든 보충의 과다한 심리가 작용을 한다. 배고픔보다 더 맛 있는 반찬은 없다는 말을 생각해 봤으면.

마음껏 먹고, 맛 있는 것을 먹고, 안 먹어 본 것을 먹고, 이제는 먹는 것이 아니라 향까지 또 보기에도 좋도록 계속 따라 가면
좋은 건강식과 평범한 음식이 아주 시시하게 보인다. 이 것은 그 사람의 수준이 올라 가서가 아니라 내려 와서 생긴 문제다.
옷도 그렇다. 음식도 그렇다. 집도 그렇다. 차도 그렇다. 직장도 그렇다. 중요한 것은 사람도 그렇다. 부부도 서로 그리 된다.
더 좋게, 더 만족을 하자며 상대방을 보채다 보면 그 사람이 무한이 아니므로 한계는 오고 그 한계가 오면 눈을 돌리게 된다.

교회 운영도 예배도 말씀도 그렇다. 더 쉽게 더 낫게 더 편하게 더 아늑하게 더 좋게... 어느 정도에서 스스로 그쳐야 한다.
더 좋아 질 수 있다고 더 좋게 만들다 보면 나사를 조이다 최종을 넘기고 망가진 모습이 된다. 그 때부터는 늘 헛 돌게 된다.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뎌 보려고 한다면 이 것은 마음 먹고 시작한 훈련이고 연단이다. 그럴 사람은 아예 차원이 다르다.
이 글은 그냥 일반 교인을 향해 적는다. 자기가 속한 교회에서 자기의 현실에서 신앙과 생활의 전반을 두고 부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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