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죄송한 날들, 오늘을 좀 낫게 만든다. - 2

남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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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판에는 이 홈에 올려진 글 중에 이곳에서 따로 소개하고 싶은 글도 포함됩니다. 

참 죄송한 날들, 오늘을 좀 낫게 만든다. - 2

담당 0 1
(수준이 낮으면 죄송함을 피할 수 없다.)
86년 1월 말, 미국의 대학원은 봄 학기가 시작된다. 기숙사 식당에서 함께 식사하며 TV로 우주왕복선의 발사를 지켜 봤다.
1차 우주 왕복선은 귀환 중 탑승 7명이 다 사망했고 이 번에는 오래 준비했던 2차 발사 순간이었다.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나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돈 벌러 다니느라고 정신이 없었고 마지막 학기를 잘 마치고 돌아 가는 목표만 있을 뿐이다.

발사의 굉음과 함께 화면을 가득 채운 연기 사이로 우주선이 서서히 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공중으로 서서히 속도를 냈다.
그 짧은 순간만은 주변의 분위기가 너무 심각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화면에 주목을 했다. 아무런 감동도 긴장도 없었다.
아주 잠깐이 지났고 우주선은 아직도 속도는 느린데 확실히 공중에 올라 선 상태에서 폭발을 해 버렸다. 실시간 중계였다.

폭발과 함께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웃었다. 남의 일이다. 남의 나라 일이다. 화면으로 봤으니 먼 나라의 뉴스처럼 보였다.
나의 얼굴과 아무렇지도 않은 말 한 마디가 나가자 식당에 모든 학생들은 그 순간 나를 돌아 봤다. 표정이 무척 무거웠다.
그 순간 나는 2년을 함께 지내며 24시간 먹고 자고 함께 공부하며 내게 온갖 배려를 다 해 주던 그들의 표정만은 잘 안다.
그렇게 친절하고 마음 따뜻히 만사를 이해하고 배려하던 이들인데 그들의 얼굴에 배어 나오는 냉기는 너무 심각했었다.

그제서야 정신이 들었다. 이들에게는 세계를 향한 미국의 자존심과 지도력이며 이들이 나를 돕고 세계를 돕는 의미가 있다.
그들에게 그 화면의 7명 사망자는 그들의 형제며 그들이 체감적으로 존경하는 이들이다. 더구나 기독교 나라니 교인들이다.
폭발하는 장면을 보는 환경은 그 사회를 지도할 목회자들이 신학 공부를 하는 곳이다. 우리 나라 신학교와는 수준이 다르다.



(나는 전투적 신앙에만 주력해 왔다.)
공회 설교는 일제 때 고문 고형을 겪고 순교를 목표로 싸웠다는 내용이다. 6.25 전쟁 중에도 기쁨으로 순교했다는 내용이다.
가정 사회 직장 학교가 어떻게 박해를 해도 지지 말고 이겨야 하며 그러기 위해 매도 고문도 죽음도 넘어 서자는 내용이다.
말하자면 사관학교처럼 또는 적지에 들어 가는 특수 사명의 요원들처럼 늘 그런 신앙을 들었고 그런 느낌으로 나는 살았다.

미국의 유학 생활에서도 늘 그러했다. 공부도 전투였고, 식사도 전쟁이었고, 교회 가는 시간과 돌아 오는 마음도 그러했다.
서부교회와 공회의 정상적 교인이라면 신앙이 없어도 늘 그렇게 들었고 신앙이 있으면 마음에 이런 각오는 특별한 법이다.
그런데 미국의 당시 그 신학교와 학생들의 환경은 우리와 달랐다. 말 하나 행동 하나도 남에게 부담 되지 않도록 조심했다.

참으로 신사였고, 신사 되려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신사적인 마음과 행동과 배려가 잘 배어 져 있었다. 극진한 사람들이다.
나는 부산에서 막 가는 노동을 했었다. 국제 시장 자갈치 시장을 훑고 영도 바닥을 태종대까지 행상하며 걸어서 다녔었다.
한 푼 더 벌 수 있다면 가리지 않고 몸을 내 던졌다. 그러면서 주일학생 하나를 위해 예배 한 번을 위해 항상 투쟁적이었다.

하나는 숲 속에서 생존을 위해 필사적으로 달리는 쪽제비였고 그들은 양들이었으며 양을 기르는 목자였고 품위가 있었다.
남들을 먼저 배려하는 이들의 눈에 7명의 미국 우주 비행사들의 목숨, 그들의 가족, 그들은 실제 그들을 잘 느끼고 있었다.
나는 그들과 함께 살아도 늘 그들과 다른 세계를 살았다. 말도 서툴지만 진도와 성적과 돈을 벌기 위해 섞일 시간이 없었다.

만 2년을 함께 살면서도 나는 그들을 마치 동물원에 구경 간 우리가 우리 속에 동물을 보듯했지 그들과 같아 지지 않았다.
돈이 좀 여유가 있어야 함께 커피도 마시고 도넛도 먹고 오가고 함께 할 수 있다. 나는 커피 1잔도 마시지 않고 돌아 왔다.
남이 보면 갔다 왔으나 나는 갔다 오지 않았다. 남이 그렇게 알았던 것이지 나는 그 곳에서 묻혀 올 여지도 여유도 없었다.


우주 왕복선의 폭발 사고가 나던 그 언저리였던 듯하다. 인도에서 온 학생이 기숙사에서 나를 향해 '전쟁만 보더라'고 했다.
내 방에는 TV가 없었다. 가끔 옆 방에 가서 TV를 볼 때가 있다. 보게 되면 전쟁에 가장 잔인한 장면만 들여다 보고 있었다.
그 곳의 신학생들은 배려다. 용서다. 사랑이다. 남의 아픔에 울어 준다. 나는 내 살에 피가 나도 일부로 좀 그냥 놔 두고 본다.

내가 고문을 받을 때를 좀 느껴 보고 싶어서다. 지금도 혈관 주사를 맞을 일이 있으면 저 바늘로 가장 아프게 찌른다면...
이렇게 느껴 보기 위해 자세히 들여다 본다. 눈 빛이 좀 이상한지 간호사들이 왜 그러시냐고 묻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한 번은 간호사에게 내 팔이니 내가 주사를 찔러 보자고 해서 내 팔에 직접 주사를 찌르고 피를 뽑아 본 적도 있었다.

이런 사고 방식에 이런 행동은 공회가 있는 한국에서나 가능하고 그 것도 한국 사회의 좀 밑 바닥 쪽으로 가야 가능하다.
임전 태세, 전투 상황, 내 몸을 지금 원수가 고문을 하느라고 몽둥이를 든다면 총을 든다면 칼로 친다면... 이 것이 공회다.
문제는 이런 사정을 알지 못하는 문화국 선진국 덕스럽고 복스럽고 모든 것이 부드러운 그들에게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35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그 때를 생각하면 아무 할 말이 없고 미안할 뿐이다. 못 사는 나라 막 가는 공회 청년일 뿐이었다.
공회 청년들 중에도 그들과 어울리며 그들을 앞 서고 지도할 인물도 있다. 내 뒤에 간 분들은 적지 않다. 그들은 훌륭하다.
그들의 집안도 교육 배경도 그리고 그들의 준비와 함께 그들에게 제공 된 고향과 그 곳 교회의 배려는 원만했을 듯하다.



(수준이 낮으면 낮은 사람끼리 사는 것이 맞다.)
돈 없는 친구 하나가 돈 많은 친구들 사이에 끼이면 늘 얻어 먹든지, 아니면 자기 때문에 친구들이 불편하게 지내야 한다.
돈 없는 친구가 서럽지 않도록 하려면 함께 있는 사람들이 애를 먹는다. 주면 깔 보냐 할 것이고 안 주면 짜다고 할 듯하다.
이런 상황을 데려 온 자식, 장애아, 열등감을 가진 사람이라고 했다. 이해는 해 줄 수 있으나 주변에 끼치는 피해는 참 많다.

내가 아끼는 것이, 주변 사람으로 그들이 평소 아낀 돈으로 그들이 필요할 때 그들이 사용하는 것을 막지는 말아야 한다.
나의 부모가 죽어 내가 우는 장례식이 내 부모와 상관 없는 사람들에게 눈물이 되고 슬픈 출근 길이 되게 해서는 안 된다.
일본인은 이런 면이 투철하다고 한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에 한 마을에 떼 죽음이 일어 나도 흐느낌도 듣기 어려웠다 한다.

나는 남들에게 신세 지지는 않았다. 나는 나대로 그냥 생존을 위해 달렸다. 문제는 나 때문에 주변에 끼친 영향이 있었다.
신학교에서도 교수들도 같은 학생들도 친한 사람들도 교인들도 내가 너무 그들과 다르게 살아 버리니 모두가 안스러웠다.
나처럼 살아야 하는 것을 아는 분들에게는 넘치는 죄책감을 안겼고 이해를 못하는 분들에게는 불쾌한 기억을 남겨 드렸다.

그들이 나 때문에 겪은 불편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들과 평생 만나지도 않을 사람인데 그 시기에 그들을 겪으며 배웠다.
왕복우주선이 올라 가다가 폭발을 하면 그 장면에 눈물을 흘려야 정상이고 그렇게 되어야 적어도 신학생의 자격이 있다.
그 때는 느낌 없이 살았으나 평생을 두고 사람의 인사와 배려와 남에 대한 조심을 어떻게 하면 어찌 되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곳에서 이런 종류의 죄송함은 산더미처럼 많다. 그러나 내게 직접 지적하거나 표시 내는 사람은 없었다. 품어 준 것이다.
평생을 살며 정말 눈 뜨고 못 볼 일이 많다. 그 때마다 나의 평생에 다른 때보다 미국 생활을 생각하면 모두 품어 줄 수 있다.
나보다 더한 인간은 아직도 거의 보지 못했다. 없지는 않다. 그러나 거의 없다. 최소한 나보다는 훨씬 좋은 분들만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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