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고 넘치는 이 사회, 차고 넘치는 이 공회. 수고한 이들이 고맙다. - 1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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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26 12:45
(우리 사회의 발전, 그 원인과 오늘)
한 번씩 전국을 다녀 본다. 전국에 저 많은 아파트와 공장이 저렇게 넘쳐도 되는가? 돈이 저리 많은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한 번씩 오가는 시내의 구석구석 적은 돈을 소복소복 부어 내 버린다. 가루수 교체, 차도 인도의 개선? 하고 또 하고 또 한다.
전국의 저 수 없는 천문학적인 돈과 지자체의 골목마다 쏟아 지는 적은 돈이 어울리며 폭우에 비 뿌리듯 생돈을 뿌려 댄다.
처음에는 몇 년이면 그칠 줄 알았고 주머니가 비면 그만 둘 것이라 봤다. 10년이 지났고 10년이 지났고, 또 10년이 지나 간다.
갈수록 더 심해 진다. 풍선을 불면 그 작은 것이 그렇게 덩치가 커진다. 불면 불수록 커진다. 그렇다고 무한이란 이 땅에 없다.
박정희 대통령이 18년 질주했다. 이후 수십 년을 이렇게 사기꾼들이 하이에나처럼 모여 들어 해 먹어도 아직도 남는가 보다.
박 대통령은 독재자다. 그런데 공회의 신앙은 단어를 다르게 사용한다. 공회의 독재란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고 본다.
세상은 '독재'라는 단어가 무조건 나쁜 표현이다. '사랑'이란 무조건 좋은 표현이다. 공회는 사랑을 가장 독이 치명적이라 본다.
공회는 잘 사용 되는 독재는 거지가 부자 되는 특효약이 될 수 있고 어린 아이가 제대로 된 성인이 되는 과정에 필요하게 본다.
3 세 아이에게 자유를 주나? 그 것은 아동을 버린 죄다. 30세 아들에게 60대 부모가 틀어 쥐고 일일이 간섭하나? 그 건 노예다.
10 세 정도에게 어느 정도가 좋을까? 가정마다 아이마다 다를 듯하다. 20대에게는 어떻게 해야 하나? 사람 따라 다를 듯하다.
박정희가 집권한 1961년의 한국 경제와 사회는 10 세 이하였다. 그가 임종한 1979년의 한국 경제와 사회는 20세 정도였다.
10대를 제대로 준비했다면 이후 세상에 내 던져도 그 동안 준비와 성장 된 축척이 알아서 대처하며 생존과 발전을 결정한다.
5공과 6공은 그냥 일반 관리를 했다고 본다. 20대 초반에 큰 실수가 없었다. 이로 인한 발전은 그들이 아니라 과거의 덕이다.
1990년대가 되면서 이제 평생 민주주의를 앞 세워 설치던 이들이 번갈아 가면 정권을 잡았다. 벌어 보지 못하고 쓰기만 했다.
10년을 퍼 붓고 내 버렸다. 그 동안 참았던 세월 때문에 이해를 할 수 있었다. 기다려 줄 만 했다. 한도 풀고 해 봐야 알 것이다.
10년을 다시 퍼 붓고 생 난리를 부렸다. 될 만한 것은 깨뜨리고 안 될 만한 일만 골라서 했다. 이 정도면 나라가 망해야 한다.
그런데 박정희 18년의 저력과 준비가 얼마나 굉장했던지 이후의 일반 관리와 이후의 망할 행동까지 오히려 발전에 이용됐다.
기초 체력이 60년대였다면 아프리카가 되었을 것이다. 기초 체력이 건장한 20대에게 고생은 특수 훈련을 받은 것처럼 된다.
좌파는 돈을 벌 줄 모른다. 먹고 쓰고 내 버릴 줄 만 안다. 이들의 끝 장 내는 요구까지 다 담아 주고도 나라는 발전 중이다.
최근에 그 좌파가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해 온 행동이 사회 모든 면으로 전부 공개가 되고 있다. 독재도 밝혀 지듯 그렇다.
(서부교회와 총공회, 그 건설과 그 이후)
1959년, 백영희는 고신에서 제명이 됨으로 비로소 눈치 보지 않고 원 없이 서부교회를 처음으로 운영했고 공회가 형성됐다.
1960년대를 통해 기초와 방향이 잡혔고 70년대에 끝 없이 발전을 했고 그 발전이 세계적이고 역사적인 줄은 우리도 몰랐다.
1989년에 가셨으나 80년대는 발전이 아니라 그의 사후를 위해 나갈 사람은 나가고 이 노선을 지킬 사람은 지킬 기회였다.
백태영 서영호.. 이런 분들은 백영희 생전인 1980년대에 공회를 정면 비판했다. 사후, 한 분은 나갔고 한 분은 안에 있었다.
나간 분은 떳떳하고 양심적이다. 안에 남은 분은 총공회를 일반 교회로 그의 평생 바꾸어 갔다. 그는 개선했다 할 것 같다.
1989년 8월 27일에 백 목사님은 돌아 가셨다. 서부교회는 이후 30년을 넘기며 지금까지 그 때 것을 가지고 까 먹고 있다.
박정희의 18년 독재로 이 나라는 40년을 발전만 했고 지금도 발전 중에 있다. 위험한 요소는 많으나 일단 발전 중이다.
서부교회는 1990년부터 추락이다. 서영호가 배운 개혁주의든 공회 기준이든 그의 식이 있다면 그 식으로 봐도 그럴 듯하다.
총공회도 서울공회처럼 아예 간판까지 바꾸고 나간 곳, 그러려다 어중간하게 서 있는 곳, 간판은 달았으나 내용은 다른 곳..
이 곳은? 이 곳에 안팎 전부를 늘 다 공개해 놓고 있으니 각자 평가하면 될 듯하다. 가루어 놓은 곳은 짐작할 수밖에 없다.
일단 이 곳이 쇠퇴는 아니고 유지를 한다면, 또는 아무리 적다 해도 약간의 발전이 있다면.. 그 것은 전적 백영희 덕분이다.
서부교회는 다른 공회들은 이 곳을 유치하다고 평가한다. 그들이 이 곳처럼 백영희 부스러기를 챙겼다면 엄청 났을 듯하다.
세상은 약육강식만 있고 사상과 성향이라는 것은 중요치 않다. 18년의 독재 덕분에 오늘 한국은 무슨 짓을 해도 될 정도다.
백영희, 그 교훈 그 노선 그 수고로 이 곳은 물론 오늘 이 길을 처음 알게 된 분도 마음만 먹으면 굉장한 세계를 가질 듯하다.
전국 어디를 가나, 주변 어디를 들여다 보나, 심지어 시골의 끝자락에까지 지상 낙원이라는 단어 외에는 표현할 길이 없다.
박정희, 그의 막 가는 독재 18년의 혜택을 이렇게까지 누리고 있다면 그에게 고마운 독재를 고맙다 해야 하지 않을까?
이 것이 세상 이야기니 그냥 하나 빗 대어 대충 그렇다고 치고 비교만 한다. 이 곳은 백영희에 대한 감사가 참으로 극진하다.
한 분을 만나 이렇게 배우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런 세계를 그려 보지 못했을 듯하다. 그리고 반기독에 앞 장을 섰을 듯하다.
내게는 이 분보다 아주 일찍 나를 가르친 분이 있다. 이 글과 반대 입장을 가진 이들이 극찬해 마지 않는 분, 인연히 참 깊다.
그 분은 박정희와 거의 같은 기간에 20년을 폭행과 탄압과 강제를 서슴치 않았다. 당시 내 눈에는 그 분의 독재만 보였다.
그런데 그 분은 그렇게 반독재에 앞장을 섰다. 그리고 그가 이루고 싶던 방향은 2세대에 의하여 아주 정 반대로 가고 있다.
이런 저런 남 다른 경험 때문에 감사한 마음이 지극하다.
한 번씩 전국을 다녀 본다. 전국에 저 많은 아파트와 공장이 저렇게 넘쳐도 되는가? 돈이 저리 많은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한 번씩 오가는 시내의 구석구석 적은 돈을 소복소복 부어 내 버린다. 가루수 교체, 차도 인도의 개선? 하고 또 하고 또 한다.
전국의 저 수 없는 천문학적인 돈과 지자체의 골목마다 쏟아 지는 적은 돈이 어울리며 폭우에 비 뿌리듯 생돈을 뿌려 댄다.
처음에는 몇 년이면 그칠 줄 알았고 주머니가 비면 그만 둘 것이라 봤다. 10년이 지났고 10년이 지났고, 또 10년이 지나 간다.
갈수록 더 심해 진다. 풍선을 불면 그 작은 것이 그렇게 덩치가 커진다. 불면 불수록 커진다. 그렇다고 무한이란 이 땅에 없다.
박정희 대통령이 18년 질주했다. 이후 수십 년을 이렇게 사기꾼들이 하이에나처럼 모여 들어 해 먹어도 아직도 남는가 보다.
박 대통령은 독재자다. 그런데 공회의 신앙은 단어를 다르게 사용한다. 공회의 독재란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고 본다.
세상은 '독재'라는 단어가 무조건 나쁜 표현이다. '사랑'이란 무조건 좋은 표현이다. 공회는 사랑을 가장 독이 치명적이라 본다.
공회는 잘 사용 되는 독재는 거지가 부자 되는 특효약이 될 수 있고 어린 아이가 제대로 된 성인이 되는 과정에 필요하게 본다.
3 세 아이에게 자유를 주나? 그 것은 아동을 버린 죄다. 30세 아들에게 60대 부모가 틀어 쥐고 일일이 간섭하나? 그 건 노예다.
10 세 정도에게 어느 정도가 좋을까? 가정마다 아이마다 다를 듯하다. 20대에게는 어떻게 해야 하나? 사람 따라 다를 듯하다.
박정희가 집권한 1961년의 한국 경제와 사회는 10 세 이하였다. 그가 임종한 1979년의 한국 경제와 사회는 20세 정도였다.
10대를 제대로 준비했다면 이후 세상에 내 던져도 그 동안 준비와 성장 된 축척이 알아서 대처하며 생존과 발전을 결정한다.
5공과 6공은 그냥 일반 관리를 했다고 본다. 20대 초반에 큰 실수가 없었다. 이로 인한 발전은 그들이 아니라 과거의 덕이다.
1990년대가 되면서 이제 평생 민주주의를 앞 세워 설치던 이들이 번갈아 가면 정권을 잡았다. 벌어 보지 못하고 쓰기만 했다.
10년을 퍼 붓고 내 버렸다. 그 동안 참았던 세월 때문에 이해를 할 수 있었다. 기다려 줄 만 했다. 한도 풀고 해 봐야 알 것이다.
10년을 다시 퍼 붓고 생 난리를 부렸다. 될 만한 것은 깨뜨리고 안 될 만한 일만 골라서 했다. 이 정도면 나라가 망해야 한다.
그런데 박정희 18년의 저력과 준비가 얼마나 굉장했던지 이후의 일반 관리와 이후의 망할 행동까지 오히려 발전에 이용됐다.
기초 체력이 60년대였다면 아프리카가 되었을 것이다. 기초 체력이 건장한 20대에게 고생은 특수 훈련을 받은 것처럼 된다.
좌파는 돈을 벌 줄 모른다. 먹고 쓰고 내 버릴 줄 만 안다. 이들의 끝 장 내는 요구까지 다 담아 주고도 나라는 발전 중이다.
최근에 그 좌파가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해 온 행동이 사회 모든 면으로 전부 공개가 되고 있다. 독재도 밝혀 지듯 그렇다.
(서부교회와 총공회, 그 건설과 그 이후)
1959년, 백영희는 고신에서 제명이 됨으로 비로소 눈치 보지 않고 원 없이 서부교회를 처음으로 운영했고 공회가 형성됐다.
1960년대를 통해 기초와 방향이 잡혔고 70년대에 끝 없이 발전을 했고 그 발전이 세계적이고 역사적인 줄은 우리도 몰랐다.
1989년에 가셨으나 80년대는 발전이 아니라 그의 사후를 위해 나갈 사람은 나가고 이 노선을 지킬 사람은 지킬 기회였다.
백태영 서영호.. 이런 분들은 백영희 생전인 1980년대에 공회를 정면 비판했다. 사후, 한 분은 나갔고 한 분은 안에 있었다.
나간 분은 떳떳하고 양심적이다. 안에 남은 분은 총공회를 일반 교회로 그의 평생 바꾸어 갔다. 그는 개선했다 할 것 같다.
1989년 8월 27일에 백 목사님은 돌아 가셨다. 서부교회는 이후 30년을 넘기며 지금까지 그 때 것을 가지고 까 먹고 있다.
박정희의 18년 독재로 이 나라는 40년을 발전만 했고 지금도 발전 중에 있다. 위험한 요소는 많으나 일단 발전 중이다.
서부교회는 1990년부터 추락이다. 서영호가 배운 개혁주의든 공회 기준이든 그의 식이 있다면 그 식으로 봐도 그럴 듯하다.
총공회도 서울공회처럼 아예 간판까지 바꾸고 나간 곳, 그러려다 어중간하게 서 있는 곳, 간판은 달았으나 내용은 다른 곳..
이 곳은? 이 곳에 안팎 전부를 늘 다 공개해 놓고 있으니 각자 평가하면 될 듯하다. 가루어 놓은 곳은 짐작할 수밖에 없다.
일단 이 곳이 쇠퇴는 아니고 유지를 한다면, 또는 아무리 적다 해도 약간의 발전이 있다면.. 그 것은 전적 백영희 덕분이다.
서부교회는 다른 공회들은 이 곳을 유치하다고 평가한다. 그들이 이 곳처럼 백영희 부스러기를 챙겼다면 엄청 났을 듯하다.
세상은 약육강식만 있고 사상과 성향이라는 것은 중요치 않다. 18년의 독재 덕분에 오늘 한국은 무슨 짓을 해도 될 정도다.
백영희, 그 교훈 그 노선 그 수고로 이 곳은 물론 오늘 이 길을 처음 알게 된 분도 마음만 먹으면 굉장한 세계를 가질 듯하다.
전국 어디를 가나, 주변 어디를 들여다 보나, 심지어 시골의 끝자락에까지 지상 낙원이라는 단어 외에는 표현할 길이 없다.
박정희, 그의 막 가는 독재 18년의 혜택을 이렇게까지 누리고 있다면 그에게 고마운 독재를 고맙다 해야 하지 않을까?
이 것이 세상 이야기니 그냥 하나 빗 대어 대충 그렇다고 치고 비교만 한다. 이 곳은 백영희에 대한 감사가 참으로 극진하다.
한 분을 만나 이렇게 배우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런 세계를 그려 보지 못했을 듯하다. 그리고 반기독에 앞 장을 섰을 듯하다.
내게는 이 분보다 아주 일찍 나를 가르친 분이 있다. 이 글과 반대 입장을 가진 이들이 극찬해 마지 않는 분, 인연히 참 깊다.
그 분은 박정희와 거의 같은 기간에 20년을 폭행과 탄압과 강제를 서슴치 않았다. 당시 내 눈에는 그 분의 독재만 보였다.
그런데 그 분은 그렇게 반독재에 앞장을 섰다. 그리고 그가 이루고 싶던 방향은 2세대에 의하여 아주 정 반대로 가고 있다.
이런 저런 남 다른 경험 때문에 감사한 마음이 지극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