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 떼와 양들의 협의 - 2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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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24 12:35
(방역 조처에 대한 판결)
7월 16일 서울행정법원이 교회에게 비대면 예배를 요구한 것을 무효로 판정했다. 7월 17일 수원지법도 같은 판결을 했다.
현재 부산지법에서 진행 중인 고신의 세계로교회와 공회의 서부교회 재판도 재판부의 분위기는 펴놓고 그런 분위기이다.
사정을 모르는 한국 교회는 판결문에 적힌 '종교 단체 차별'을 앞 세워 정부의 예배 차단을 비판하느라 정신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내용을 아는 사람들은 '1만 명 교회에 20명까지만 허용'한 판결을 두고 정부의 예배 금지보다 더한 심하다고 본다.
정부의 조처는 항상 사법부의 최종 판단에 변경이 될 수 있다. 사법부의 판단은 최종적이 된다. 예배에 대못을 박아 버렸다.
(맹수와 양의 본질)
정부든 사법부든 국회든 시민단체든 교육기관이든 철학이든 보건 의료인들이든, 이 땅 위에 전부는 우리의 신앙에 맹수다.
신앙인의 마음 속에도 신앙과 반대 되는 생각과 인격과 행위와 습관은 전부 맹수다. 여기서 맹수란 신앙을 해친다는 뜻이다.
내 안에 구습과 육체적 욕심과 세상에 물 들은 생각은 양 떼 우리 안에 들어 온 여우다. 바깥의 맹수만 맹수의 전부는 아니다.
양이란 무지 무능하다. 떼로 몰려 다니지만 단체의 힘을 모른다. 주인의 말만 따른다. 세상은 이리고, 신앙이란 바로 양이다.
이리가 양 떼를 위협하면 양이 할 일은 한 가지다. 목자를 향해 달리면 된다. 이리가 더 빠른데? 주님을 부르면 바로 오신다.
교회에게 예배를 막고 나서니 좌파 정권을 이리라고 난리들이데 우파 정권이면 코로나 방역에 예배를 자유로 풀어 줬을까?
세상을 비판하기 전에 코로나 초기에 전국의 유명 교단의 유명 신학자와 지도자들은 줄줄이 예배당 문을 닫으라고 했었다.
그들은 이리가 아닌가? 그들도 이리다. 담 밖에 이리보다 담 안에 들어 온 여우가 더 무섭다. 그런데 바깥 이리만 성토한다.
(맹수 두목에게 호소한 양)
개혁교회의 정통 교리에는 '정교 분리'라는 것이 있다. 로마 제국이 교회를 탄압했었다. 그러지 말라는 것이 정교 분리다.
주후 313년에 로마 제국이 기독교를 인정하고 곧 이어 국교로 삼았고 591년에는 로마 교황이 천주교 1천년 시대를 연다.
교회가 세상 세력을 가지게 되자 이제 교회가 안 믿는 세상을 지배하려 들었다. 영국의 성공회도 그렇다. 그 것은 이리다.
교회가 세상 권세를 가지면 '교회가 가진 것'이 아니라 '교회가 세상 이리로 변질'이 된 것이다. 모르니 이런 일이 벌어 진다.
세계로교회와 서부교회가 부산지법에 '이리 떼들이 양 떼인 교회를 잡아 먹는다'고 호소를 했다. 법원은 세상이 아니던가?
조폭에게 당했다고 전국 조폭 연합회 회장에게 호소를 한 것이다. 조폭 조정위원회에서 해당 조폭에게 조심하라고 했다.
너무 많이 뜯지 말고 적당히 뜯으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양들의 호소는 토끼와 사슴과 비슷하게 잡아 먹으라 한다.
멍청한 이리라면 대표단을 먹어 치우겠지만 지혜로운 맹수라면 양떼를 더 많이 잡아 먹은 패거리를 불러다 훈계를 한다.
표시가 나도록 양떼만 집중 공략을 하면 생태계까지 무너 지게 되고 나중에 맹수 전체의 이익에도 여러 면에서 불리하다.
(일제 때도 공산 정권 치하에도)
신사참배 문제가 처음 제기 될 때 총독부에 선교사들이 드나 들면서 총독과 협의를 했다. 어느 정도 선에서 타협할 것인가?
그 타협을 통해 밀려 오는 이리 떼를 잠깐 머뭇 거리게 한 효과는 있었다. 그런데 그 덕분에 결정권을 존중한 것이 되었다.
이후 교계는 신사참배 문제를 두고 법적으로 총독부 결정권을 인정한 셈이 되고. 총독부는 통치권을 행사한 것이 되었다.
내용적으로는 고종을 위협해서 합일 합방을 해 놓고 겉으로는 절차를 모두 밟은 것이다. 따져 봐야 당한 쪽만 억울하다.
공회는 국가와 대화할 정도의 인물이 없다. 그렇게 할 인원도 없다. 그렇게 할 교리나 성향도 아니다. 그래서 당하기만 한다.
세상적으로 이리 무능한 것이 양다운 것이다. 양이 맹수 협회에 대표단을 보내고 각서를 받고 아량을 받아 오면 달라 질까?
공회는 이럴 때 주님으로 달려 간다. 그 쪽이 힘이 있기 때문이다. 주님께 달려 오라고 주님이 사실 이리 떼를 동원한 것이다.
주님께 달려 가는 방법은, 평소 주신 말씀으로 사는 것이다. 이후 문제는 주님이 알아서 할 일이다. 죽든 살든 주님 결정이다.
부산법원은 재판 진행 중이다. 진행하는 모습으로 짐작해 본다. '왜 교회만 그렇게 엄하게 단속하는가?' 형평성을 묻고 있다.
그러면 다른 종교 단체와 같이 예배 참석을 단속하면 서부교회와 세계로교회는 만족할 것인가? 지금 가는 방향이 그렇다.
더 나아가 노래 공연장 극장 마트와 교회를 같이 제한한다면 만족할 것인가? 지금 그들의 호소는 이 것을 목표로 삼았다.
마트에 정원 10% 출입만 허용하면서 교회에도 그렇게 요구하면 기꺼이 받아 들일 것인가? 이들은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세상을 맞설 힘이 없어 교회가 예배 제한을 당하는 것과 세상과 따져서 예배 제한을 협상하고 합의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이리는 양을 잡아 먹도록 하나님이 만든 도구다. 그 도구 때문에 양은 주님을 더욱 사모하고 의지하게 된다. 이 것이 양이다.
그런데 양들이 맹수 협회에게 가서 토끼와 사슴과 우리 양을 형평성 있게 잡아 드시라고 요구를 하고 있다. 정상일까?
세상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이 가진 집권을 배제하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잡아 먹고 우리는 주님만 바라 볼 뿐이다.
7월 16일 서울행정법원이 교회에게 비대면 예배를 요구한 것을 무효로 판정했다. 7월 17일 수원지법도 같은 판결을 했다.
현재 부산지법에서 진행 중인 고신의 세계로교회와 공회의 서부교회 재판도 재판부의 분위기는 펴놓고 그런 분위기이다.
사정을 모르는 한국 교회는 판결문에 적힌 '종교 단체 차별'을 앞 세워 정부의 예배 차단을 비판하느라 정신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내용을 아는 사람들은 '1만 명 교회에 20명까지만 허용'한 판결을 두고 정부의 예배 금지보다 더한 심하다고 본다.
정부의 조처는 항상 사법부의 최종 판단에 변경이 될 수 있다. 사법부의 판단은 최종적이 된다. 예배에 대못을 박아 버렸다.
(맹수와 양의 본질)
정부든 사법부든 국회든 시민단체든 교육기관이든 철학이든 보건 의료인들이든, 이 땅 위에 전부는 우리의 신앙에 맹수다.
신앙인의 마음 속에도 신앙과 반대 되는 생각과 인격과 행위와 습관은 전부 맹수다. 여기서 맹수란 신앙을 해친다는 뜻이다.
내 안에 구습과 육체적 욕심과 세상에 물 들은 생각은 양 떼 우리 안에 들어 온 여우다. 바깥의 맹수만 맹수의 전부는 아니다.
양이란 무지 무능하다. 떼로 몰려 다니지만 단체의 힘을 모른다. 주인의 말만 따른다. 세상은 이리고, 신앙이란 바로 양이다.
이리가 양 떼를 위협하면 양이 할 일은 한 가지다. 목자를 향해 달리면 된다. 이리가 더 빠른데? 주님을 부르면 바로 오신다.
교회에게 예배를 막고 나서니 좌파 정권을 이리라고 난리들이데 우파 정권이면 코로나 방역에 예배를 자유로 풀어 줬을까?
세상을 비판하기 전에 코로나 초기에 전국의 유명 교단의 유명 신학자와 지도자들은 줄줄이 예배당 문을 닫으라고 했었다.
그들은 이리가 아닌가? 그들도 이리다. 담 밖에 이리보다 담 안에 들어 온 여우가 더 무섭다. 그런데 바깥 이리만 성토한다.
(맹수 두목에게 호소한 양)
개혁교회의 정통 교리에는 '정교 분리'라는 것이 있다. 로마 제국이 교회를 탄압했었다. 그러지 말라는 것이 정교 분리다.
주후 313년에 로마 제국이 기독교를 인정하고 곧 이어 국교로 삼았고 591년에는 로마 교황이 천주교 1천년 시대를 연다.
교회가 세상 세력을 가지게 되자 이제 교회가 안 믿는 세상을 지배하려 들었다. 영국의 성공회도 그렇다. 그 것은 이리다.
교회가 세상 권세를 가지면 '교회가 가진 것'이 아니라 '교회가 세상 이리로 변질'이 된 것이다. 모르니 이런 일이 벌어 진다.
세계로교회와 서부교회가 부산지법에 '이리 떼들이 양 떼인 교회를 잡아 먹는다'고 호소를 했다. 법원은 세상이 아니던가?
조폭에게 당했다고 전국 조폭 연합회 회장에게 호소를 한 것이다. 조폭 조정위원회에서 해당 조폭에게 조심하라고 했다.
너무 많이 뜯지 말고 적당히 뜯으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양들의 호소는 토끼와 사슴과 비슷하게 잡아 먹으라 한다.
멍청한 이리라면 대표단을 먹어 치우겠지만 지혜로운 맹수라면 양떼를 더 많이 잡아 먹은 패거리를 불러다 훈계를 한다.
표시가 나도록 양떼만 집중 공략을 하면 생태계까지 무너 지게 되고 나중에 맹수 전체의 이익에도 여러 면에서 불리하다.
(일제 때도 공산 정권 치하에도)
신사참배 문제가 처음 제기 될 때 총독부에 선교사들이 드나 들면서 총독과 협의를 했다. 어느 정도 선에서 타협할 것인가?
그 타협을 통해 밀려 오는 이리 떼를 잠깐 머뭇 거리게 한 효과는 있었다. 그런데 그 덕분에 결정권을 존중한 것이 되었다.
이후 교계는 신사참배 문제를 두고 법적으로 총독부 결정권을 인정한 셈이 되고. 총독부는 통치권을 행사한 것이 되었다.
내용적으로는 고종을 위협해서 합일 합방을 해 놓고 겉으로는 절차를 모두 밟은 것이다. 따져 봐야 당한 쪽만 억울하다.
공회는 국가와 대화할 정도의 인물이 없다. 그렇게 할 인원도 없다. 그렇게 할 교리나 성향도 아니다. 그래서 당하기만 한다.
세상적으로 이리 무능한 것이 양다운 것이다. 양이 맹수 협회에 대표단을 보내고 각서를 받고 아량을 받아 오면 달라 질까?
공회는 이럴 때 주님으로 달려 간다. 그 쪽이 힘이 있기 때문이다. 주님께 달려 오라고 주님이 사실 이리 떼를 동원한 것이다.
주님께 달려 가는 방법은, 평소 주신 말씀으로 사는 것이다. 이후 문제는 주님이 알아서 할 일이다. 죽든 살든 주님 결정이다.
부산법원은 재판 진행 중이다. 진행하는 모습으로 짐작해 본다. '왜 교회만 그렇게 엄하게 단속하는가?' 형평성을 묻고 있다.
그러면 다른 종교 단체와 같이 예배 참석을 단속하면 서부교회와 세계로교회는 만족할 것인가? 지금 가는 방향이 그렇다.
더 나아가 노래 공연장 극장 마트와 교회를 같이 제한한다면 만족할 것인가? 지금 그들의 호소는 이 것을 목표로 삼았다.
마트에 정원 10% 출입만 허용하면서 교회에도 그렇게 요구하면 기꺼이 받아 들일 것인가? 이들은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세상을 맞설 힘이 없어 교회가 예배 제한을 당하는 것과 세상과 따져서 예배 제한을 협상하고 합의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이리는 양을 잡아 먹도록 하나님이 만든 도구다. 그 도구 때문에 양은 주님을 더욱 사모하고 의지하게 된다. 이 것이 양이다.
그런데 양들이 맹수 협회에게 가서 토끼와 사슴과 우리 양을 형평성 있게 잡아 드시라고 요구를 하고 있다. 정상일까?
세상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이 가진 집권을 배제하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잡아 먹고 우리는 주님만 바라 볼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