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이나 남을지, 공회의 경건 그룹 - 8월 27일 순교일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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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27 17:03
(경건과 복음)
하나님을 상대하려다 보면 사람들은 경건하다고 말한다. 이런 사람들은 사람을 상대하는 면이 미흡하다. 균형 잡기란 어렵다.
다른 사람을 말씀으로 살리고 돕다 보면 복음적이라고 한다. 이들은 하나님 상대가 아무래도 성그러진다. 역시 균형이 어렵다.
재건 > 고신 > 합동 > 통합 > 순복음, 이런 순서로 놓고 보면 재건 쪽일수록 경건에 강하고 순복음 쪽으로 갈수록 복음적이다.
공회는 기본적으로 재건보다 경건 면이 강하다. 초기에는 그렇지 않다고 봤으나 세월 속에 지금은 이렇게 봐도 무난한 듯하다.
(공회와 경건)
공회는 기본적으로 하나님과 자기의 관계를 치중한다. 공회적일수록 이 면은 강해 진다. 사람들이 알아 주든 말든 그러하다.
실제 경건한 분들이 많다. 이런 분들은 만나는 자체가 어렵다. 성경을 읽든 기도 중이기 때문이다. 거의 산 속에 있는 편이다.
80세, 그 주변에서 그 이상 연세의 목회자들은 대부분 경건하다. 몇몇 분들은 요즘에도 이런 분들이 있을지 감탄할 정도였다.
60대들은 많지 않으나 괜찮아 보이는 경건한 분들이 계셨다. 앞에 분들과 비교하기는 어려워도 세대를 생각하면 좋아 보였다.
(정말 경건한가)
경건의 모양을 가지는 것은 어렵지 않다. 조화는 생나무와 구별이 되지 않는다. 기생이 춘향처럼 연극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그런데 세월이라는 하나님의 섭리가 그 속에 들어 있는 실체를 밖에다 드러 낸다. 참 경건자인지 생나무인지 춘향이 맞는지?
공회 역사를 통해 교역자는 이동을 시켜 보면 금방 드러 난다. 그리고 백 목사님 장례식을 통해 순식간에 다 것이 드러 났다.
바보라 경건해 보였거나 모양만 가진 이들은 지도자 사후 방향을 잃고 절인지 어딘지도 모르고 길을 잃었다. 모두 밝혀 졌다.
경건하게 보이려고 연극한 이들도 장례 후 자기 앞 날이 어찌 될지 모르게 되자 우왕좌왕했다. 너무 다급하자 가면을 벗었다.
대구공회 안에는 정말 경건한 분들이 몇 분 계셨다. 나는 그 분들의 몇몇 순간을 지금도 기억한다. 참 아쉬웠고 안타까웠다.
부산공회에는 경건한 분들이 계신다. 사후에 요동하지 않았다. 그런데 1997년을 지나며 마지막 한 분까지 본색을 드러 냈다.
최근 대구 노곡동에 나타 난 분들, 듣고도 믿지 않았다. 설쳤던가! 뻔히 알 만한 분들이. 정말 몰랐을까? 원래 아니었을까?
한 분은 작은 서영호 목사님이라고 칭한 분이다. 서 목사님도 장정애 집사님 사건과 시무투표 결과 때 보니 중량이 나왔다.
이 번에는 서 목사님보다 더 경건한 분인 줄 알았다. 원래 연구소와 여러 사연도 있다. 사직동에서도 여러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다 해도 세월 속에 경건을 지켜 내는 줄 알았다. 소속을 두기 위해 부공2를 택한 줄 알았다. 이 번에 보니 행동대였다.
한 분은 2019년에 지도부의 정보를 듣고 이 곳을 비판하는 말을 내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웠다. 이 분은 아직 잘 모르겠다.
(기회는 심판이다)
주님이 구름 타고 오시면 최후 심판이다. 그 최후 대심판 전에도 주님은 역사 세계를 한 번씩 뒤집어 놓으면 심판을 하신다.
노아 때와 주님 초림 때는 최후 대심판에 비교할 만큼 교회와 성도의 내면을 뒤집어 보였다. 신사참배나 6.25도 그런 식이다.
이 번 중국 코로나 문제가 생기자 모든 교회와 교인의 신앙 내면과 성향과 방향은 낱낱이 다 드러 났다. 따로 말이 필요없다.
잦은 일은 대처가 된다. 속으로 짐작하며 자기 외부 모습을 관리할 수 있다. 그러나 다급하면 다 나온다. 처음 겪어도 그렇다.
우리의 평생은 늘 현실이라는 기회로 이어 지게 된다. 매 현실은 지난 날의 자기를 열매로 보여 준다. 이 것을 행동이라 한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아도 주신 말씀이 있다. 그 말씀으로 요약한 교리가 있고 그 교리를 따라 걸어 간 노선이라는 것이 있다.
하나님을 상대하는 경건까지는 기대하기 어렵다 해도 말씀과 교리와 노선으로 생각하는 경건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다.
부공2, 지금 이 집단의 행동은 지난 날 그 형성 과정과 생존 순간과 이후 집권처럼 보였던 기간 내내 경건은 참 모르는 곳이다.
부공1과 4는 2019년 노곡동 기도원을 전면 철거하면서 스스로 자폭해 버렸다. 장소적으로 모습적으로 지켜 낼 대상이었다.
서 목사님이 강사에서 배제 되자 집회에 삐라를 뿌리며 훼방했다. 그리고 나와 버렸다. 그들의 길과 진리는 서 목사님이었다.
어느 틈엔가 거의 돌아 왔다. 부공2와 맞서 부공1에서 싸웠던 이들도 어느 틈에 모두 합류했다. 경건은 지조로 나타나는데..
지금은 노곡동 대문 앞에 관계도 없는 공무원들까지 대동하고 현장 대치를 하고 있다. 경건한 줄 알았는데 행동파였던가?
이들은 부공3 대표와 공개 토론은 철저히 기피한다. 아예 부공2 사이트조차 철저히 비공개다. 그들은 평양식으로 폐쇄하다.
공회는 심의를 한다 해서 공회다. 이 것은 공회의 정체성이다. 그들에게 이 곳이 형제든 이웃이든 원수든, 심의조차 피한다.
그들끼리 우물 안에 모여서는 '세계 최고'라고 한다. 그런데 왜 감추기만 하는가? 처음에는 경건 때문이라 했다. 정말 그런가?
이 번에 보니 행동파인데.. 서 목사님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출발을 했기 때문에 지금 와서는 참 난감한 곳. 부공2 고민이다.
하나님을 상대하려다 보면 사람들은 경건하다고 말한다. 이런 사람들은 사람을 상대하는 면이 미흡하다. 균형 잡기란 어렵다.
다른 사람을 말씀으로 살리고 돕다 보면 복음적이라고 한다. 이들은 하나님 상대가 아무래도 성그러진다. 역시 균형이 어렵다.
재건 > 고신 > 합동 > 통합 > 순복음, 이런 순서로 놓고 보면 재건 쪽일수록 경건에 강하고 순복음 쪽으로 갈수록 복음적이다.
공회는 기본적으로 재건보다 경건 면이 강하다. 초기에는 그렇지 않다고 봤으나 세월 속에 지금은 이렇게 봐도 무난한 듯하다.
(공회와 경건)
공회는 기본적으로 하나님과 자기의 관계를 치중한다. 공회적일수록 이 면은 강해 진다. 사람들이 알아 주든 말든 그러하다.
실제 경건한 분들이 많다. 이런 분들은 만나는 자체가 어렵다. 성경을 읽든 기도 중이기 때문이다. 거의 산 속에 있는 편이다.
80세, 그 주변에서 그 이상 연세의 목회자들은 대부분 경건하다. 몇몇 분들은 요즘에도 이런 분들이 있을지 감탄할 정도였다.
60대들은 많지 않으나 괜찮아 보이는 경건한 분들이 계셨다. 앞에 분들과 비교하기는 어려워도 세대를 생각하면 좋아 보였다.
(정말 경건한가)
경건의 모양을 가지는 것은 어렵지 않다. 조화는 생나무와 구별이 되지 않는다. 기생이 춘향처럼 연극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그런데 세월이라는 하나님의 섭리가 그 속에 들어 있는 실체를 밖에다 드러 낸다. 참 경건자인지 생나무인지 춘향이 맞는지?
공회 역사를 통해 교역자는 이동을 시켜 보면 금방 드러 난다. 그리고 백 목사님 장례식을 통해 순식간에 다 것이 드러 났다.
바보라 경건해 보였거나 모양만 가진 이들은 지도자 사후 방향을 잃고 절인지 어딘지도 모르고 길을 잃었다. 모두 밝혀 졌다.
경건하게 보이려고 연극한 이들도 장례 후 자기 앞 날이 어찌 될지 모르게 되자 우왕좌왕했다. 너무 다급하자 가면을 벗었다.
대구공회 안에는 정말 경건한 분들이 몇 분 계셨다. 나는 그 분들의 몇몇 순간을 지금도 기억한다. 참 아쉬웠고 안타까웠다.
부산공회에는 경건한 분들이 계신다. 사후에 요동하지 않았다. 그런데 1997년을 지나며 마지막 한 분까지 본색을 드러 냈다.
최근 대구 노곡동에 나타 난 분들, 듣고도 믿지 않았다. 설쳤던가! 뻔히 알 만한 분들이. 정말 몰랐을까? 원래 아니었을까?
한 분은 작은 서영호 목사님이라고 칭한 분이다. 서 목사님도 장정애 집사님 사건과 시무투표 결과 때 보니 중량이 나왔다.
이 번에는 서 목사님보다 더 경건한 분인 줄 알았다. 원래 연구소와 여러 사연도 있다. 사직동에서도 여러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다 해도 세월 속에 경건을 지켜 내는 줄 알았다. 소속을 두기 위해 부공2를 택한 줄 알았다. 이 번에 보니 행동대였다.
한 분은 2019년에 지도부의 정보를 듣고 이 곳을 비판하는 말을 내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웠다. 이 분은 아직 잘 모르겠다.
(기회는 심판이다)
주님이 구름 타고 오시면 최후 심판이다. 그 최후 대심판 전에도 주님은 역사 세계를 한 번씩 뒤집어 놓으면 심판을 하신다.
노아 때와 주님 초림 때는 최후 대심판에 비교할 만큼 교회와 성도의 내면을 뒤집어 보였다. 신사참배나 6.25도 그런 식이다.
이 번 중국 코로나 문제가 생기자 모든 교회와 교인의 신앙 내면과 성향과 방향은 낱낱이 다 드러 났다. 따로 말이 필요없다.
잦은 일은 대처가 된다. 속으로 짐작하며 자기 외부 모습을 관리할 수 있다. 그러나 다급하면 다 나온다. 처음 겪어도 그렇다.
우리의 평생은 늘 현실이라는 기회로 이어 지게 된다. 매 현실은 지난 날의 자기를 열매로 보여 준다. 이 것을 행동이라 한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아도 주신 말씀이 있다. 그 말씀으로 요약한 교리가 있고 그 교리를 따라 걸어 간 노선이라는 것이 있다.
하나님을 상대하는 경건까지는 기대하기 어렵다 해도 말씀과 교리와 노선으로 생각하는 경건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다.
부공2, 지금 이 집단의 행동은 지난 날 그 형성 과정과 생존 순간과 이후 집권처럼 보였던 기간 내내 경건은 참 모르는 곳이다.
부공1과 4는 2019년 노곡동 기도원을 전면 철거하면서 스스로 자폭해 버렸다. 장소적으로 모습적으로 지켜 낼 대상이었다.
서 목사님이 강사에서 배제 되자 집회에 삐라를 뿌리며 훼방했다. 그리고 나와 버렸다. 그들의 길과 진리는 서 목사님이었다.
어느 틈엔가 거의 돌아 왔다. 부공2와 맞서 부공1에서 싸웠던 이들도 어느 틈에 모두 합류했다. 경건은 지조로 나타나는데..
지금은 노곡동 대문 앞에 관계도 없는 공무원들까지 대동하고 현장 대치를 하고 있다. 경건한 줄 알았는데 행동파였던가?
이들은 부공3 대표와 공개 토론은 철저히 기피한다. 아예 부공2 사이트조차 철저히 비공개다. 그들은 평양식으로 폐쇄하다.
공회는 심의를 한다 해서 공회다. 이 것은 공회의 정체성이다. 그들에게 이 곳이 형제든 이웃이든 원수든, 심의조차 피한다.
그들끼리 우물 안에 모여서는 '세계 최고'라고 한다. 그런데 왜 감추기만 하는가? 처음에는 경건 때문이라 했다. 정말 그런가?
이 번에 보니 행동파인데.. 서 목사님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출발을 했기 때문에 지금 와서는 참 난감한 곳. 부공2 고민이다.
세부목록
지나가던이
2021.09.13 13:04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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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를 보아 파악할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워낙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직접 대화도 필요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글에서 쓰신 분은 그래도 부공2에서는 가장 말이 통할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부공3로 소속도 기대했지만 워낙 지켜보는 눈들이 많아 아렵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어쨌든 직접 대화는 필연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발적이냐 아니면 상황적 불가피성이냐의 차이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