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식과 감사, 소망과 사명을 동시에 본다 - 공회의 현황에 대하여

남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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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판에는 이 홈에 올려진 글 중에 이곳에서 따로 소개하고 싶은 글도 포함됩니다. 

탄식과 감사, 소망과 사명을 동시에 본다 - 공회의 현황에 대하여

담당b 1 0
(찬송과 통곡)
바벨론에 포로 되어 갔다가 70년만에 돌아 온 이스라엘이 많은 고비를 넘기며 드디어 성전을 재건하는 기초를 놓았을 때,
모든 백성이 찬송하며 큰 소리로 즐거이 불렀다. 그런데 첫 성전을 보았던 여러 노인은 대성 통곡을 하였다. 혼란스러웠다.
스3:13, 백성의 크게 외치는 소리가 멀리 들리므로 즐거이 부르는 소리와 통곡하는 소리를 백성들이 분변치 못하였느니라

솔로몬 성전은 주전 957년경 완공했고 370년 정도 유지하다 주전 587년경 파괴 된다. 내 글에 연대나 수치는 늘 대략이다.
성경에 정확히 적은 것은 정확해야 하나 애매한 것은 정확히 찾으려다 엉뚱한 길로 가기 쉽다. 적히지 않은 것은 더 그렇다.
바벨론이 파괴한 성전을 70여 년만에 돌아 와 재건을 했으나 1차 성전과 비교할 줄 알고 모르는 차이 때문에 울거나 웃었다.

암이란 질병을 치명적으로만 아는 사람은 평생 떨며 산다. 그러나 폭넓게 또 깊이 아는 사람은 그 병 때문에 마음 편히 산다.
6.25 전쟁에 고생만 기억하는 사람은 전쟁 자체에 치를 떤다. 그러나 전쟁사를 아는 사람은 재건의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불신 시절을 한 면으로만 보면 억울하기 그지 없다. 불신 시절을 넓게 보면 그 때의 암흑 때문에 평생 빛의 세계를 감사한다.




(공회의 현황)
1980년대의 서부교회와 공회를 아는 사람은 세계 어디를 가도 긍지가 있었다. 광야 40년의 기적이 따로 부럽지 않았다.
1960년 이전의 서부교회와 공회를 아는 사람은 교계와 일반 사회의 시선을 아득히 뛰어 넘고 미리 천국처럼 살았었다.
1990년 이후만 아는 공회 교인들은 공회와 서부교회 출신이 여전히 괜찮은 줄 안다. 전후를 아는 사람은 참담하기만 하다.

나는 60년대도 80년대도 90년대와 오늘까지를 대부분 안다. 그렇다면 나는 참담하여 과거 영광을 기억하며 통곡해야 한다.
여기서 공회적 시각을 하나 소개해 본다. 공회는 그 때나 지금이나, 남에게나 나에게나 늘 같은 시각 같은 식으로 설명한다.
신앙 길은 '항상 두 길'이다. 물론 선택은 항상 '한 길'이다. 나의 걸어 갈 길은 하나뿐이다. 그러나 나의 품은 둘을 다 품는다.


서부교회와 공회를 1980년대로 기준 삼고 오늘의 서부교회와 공회를 비교한다면 우리는 통곡을 해야 한다. 참담할 뿐이다.
서부교회와 공회를 오늘 말세적 상황에서 신앙의 내면을 가지고 타 교단과 비교를 한다면 그래도 대견하다. 칭찬할 만하다.
서부교회보다 수십 배 큰 초대형교회는 많지만 코로나 방역에 예배당을 폐쇄하지 않았던 유명한 교 회는 서부교회뿐이다.

서영호 담임 목사님처럼 인품으로 경력으로 학자로 어디 내놓아도 국내 정상급 인물 중에서 이렇게 맞선 분은 이 분뿐이다.
젊은 사람은 잃을 것이 별로 없거나 젊음의 패기 때문에 용감하다. 신사참배 때도 그랬다. 세계로교회는 막 개척한 교회다.
서부교회처럼 세월 속에 역량을 축척한 교회들은 세상에게 걸릴 것도 많고 잃으면 아까운 것이 많다. 몸을 사리는 법이다.


전쟁이 나면 어느 나라든 20세 안팎의 일선 군인은 몸을 내던진다. 60대의 장수 장군들은 계산이 많다. 기득권이 참 많다.
재벌이나 고위직은 정권이 조사하면 걸릴 것이 많다. 김밥집 사장이나 택시 기사는 소위 목숨 걸고 싸운다. 잃을 것이 없다.
독립운동이든 민주화 운동이든 피 흘린 투쟁은 학생이나 노동자다. 교수나 간부들은 뒤에서 부채질만 하지 나서지 않는다.

일제 총독부나 6.25 점령지나 이 번 코로나의 세계적 비상 상황에서는 초대형 교회나 유명 인물들이 모두 숨을 죽였다.
기독교 거물들이 좌파 정권의 기독교 죽이기를 몰라서 순응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세상 속의 흐름을 누구보다 잘 안다.
기독교 거물들과 역사적 초대형교회들은 정권이 뒤지게 되면 당할 일이 너무 많다. 서부교회와 담임은 먼지 외에는 없다.

이 곳은 서부교회나 그 담임을 아주 나쁜 것처럼 표현하지만 그 기준이 높기 때문이다. 일반 기준으로 보면 청정 지역이다.
서부교회는 교계에 그 어떤 한 자리도 가진 적이 없다. 담임은 골목 위원회 위원 하나도 하지 않았다. 글 하나 발표도 없다.
백 목사님을 기준으로 볼 때 돈을 마구 썼다고 비판을 받지만 타 교단과 비교하면 성 프란시스와 비교할 정도가 아닐까?



(항상 양면을 본다)
성경과 공회의 전성기와 백영희 생전을 기준으로 나와 주변과 서부교회와 우리 공회들을 늘 살펴 본다. 참담할 뿐이다.
그러나 오늘 교계와 말세적 세상을 기준으로도 살펴야 한다. 그렇다면 서부교회와 서 목사님은 아직도 시대의 빛이다.
이런 양면의 시야를 가지고 연구소와 우리를 돌아 본다. 총공회와 서부교회와 백영희의 계통은 이 곳뿐이다. 처참하다.

그러나 서부교회를 통해 공회와 이 시대 모두에게 주어 진 귀한 백영희 설교 자료를 그 자녀만의 사유재산이라고 했으나
서부교회는 오히려 그 주장이 옳다고 목사 이름으로 지지 성명을 발표하고 각 공회들도 모두 그렇다고 지원을 해버렸다.
이 노선의 본질은 30년 전에 다 버렸다. 그러다 보니 여수 바닷가 시골 교회가 그 일을 다 떠 맡고 있다. 대참사가 아닌가?

그런데 전국의 공회 교회와 서부교회와 백영희 가족까지 이런 방향이다 보니 무식한 시골 우리가 사명을 다 맡아 버렸다.
서영호 박사님이 나섰다면 우리가 했을까? 서부교회가 투자했다면 시골 교회가 끼일 틈이나 있었을까? 그들이 거부했다.
백영희 직계에 하바드 출신만 5명? 이상이다. 스탠포드 MIT 옥스포드 시카고 대학 출신이 즐비하다. 그들이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여수 바닷가 시골 교회 하나가 전과 4범을 받아 가며 30년의 교회 경제를 쏟아 가며 한두 동지들과 해버렸다.
우리는 이 사명이 백영희 생전의 전성기 80년대를 잇는 것이며, 계승 발전하는 것으로 봤다. 그들은 오히려 막고 나섰다.
막고 나서다 보니 이런 현상은 참으로 참담한데 한 편으로 우리에게 이런 기회를 준 것이 되어 감사 무지무지할 일이었다.


이런 분위기에만 취해 있을 것은 아니다. 이 사명을 고스란히 다 받았고 1차 사명을 완수하고 2차 사명에 나서는 이 순간,
우리 내부 주변을 둘러 본다. 사람 같은 사람이 도저히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80년대의 나는 사람이었던가? 아니었다.
넘어 지며 깨어 지며 시행 착오를 통해 나아 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도 갈수록 그리 될 것이다. 그렇다면 소망이 된다.

당장, 단면만 보면 참으로 허무하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으로 훑어 보면 그 나이에 나보다는 낫다. 그러면 더 나아 지겠지..
또한 그 때는 백영희 생전에 공회와 서부교회의 전성기 안에서 나는 혜택을 봤다. 그냥 업히다 시피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오늘은 공회가 와해 상태며 세상과 교계는 말세 소돔 현상의 끝을 향해 달린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대단한 분들이다.



이 면으로는 한탄하면서 저 면으로 보면 감사할 뿐이다.
그래도 이 시대 속에 휩쓸려 다 죽어 가는데 아직도 이 노선의 계통을 이어 가는 생명력은 분명히 보인다. 그렇다면 됐다.
오늘의 수준이 괜찮다는 것이 아니라 소망이 있으니 됐다는 뜻이다. 새벽의 감사를 메모했다가 타이핑을 해 본다...
교인 2021.10.03 06:09  
 주옥 같은 남단 글에,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저희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전파되어 이스라엘의 그 시기남(질투)을 통해 수많은 랍비 유대인들을 개종시키고 계시는 주님의 역사라면 지금도 마찬가지 총공회 우리의 교만과 악독을 회개시키기 위해 외부 교인 칠천 인을 공회 내부로 유입시키시는 하나님의 역사에 감사한다. 머리(지도자)가 죽으면 꼬리(하찮은 계집종 한사람)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하신다. 이를 통해 우리는 다 깨지기 쉬운 질그릇일 뿐임을 자각하며 오직 보배 되시는 우리 주님만이 전두지휘하여 일하고 계심에 감사의 찬송과 회개의 탄식이 어우러져 천상의 영광만이 만방에 울려 퍼진다.



열왕기상19:14-18

저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여호와께서 저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로 말미암아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 왕이 되게 하고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일 것이요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리라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 인을 남기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열왕기상 20:11-21

이스라엘 왕이 대답하여 가로되 갑옷 입은 자가 갑옷 벗는 자 같이 자랑치 못할 것이라 하라 하니라 벤하닷이 왕들과 장막에서 마시다가 이 말을 듣고 그 신복에게 이르되 너희는 진을 베풀라 하매 곧 성을 향하여 진을 베푸니라 한 선지자가 이스라엘 왕 아합에게 나아가서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이 큰 무리를 보느냐 내가 오늘 저희를 네 손에 붙이리니 너는 내가 여호와인줄 알리라 하셨나이다 아합이 가로되 누구로 하시리이까 대답하되 여호와의 말씀이 각도의 방백의 소년들로 하리라 하셨나이다 아합이 가로되 누가 싸움을 시작하리이까 대답하되 왕이니이다 아합이 이에 각 도의 방백의 소년들을 계수하니 이백삼십이 인이요 그 외에 모든 백성 곧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을 계수하니 칠천 인이더라 저희가 오정에 나가니 벤하닷은 장막에서 돕는 왕 삼십이 인으로 더불어 마시고 취한 중이라 각 도의 방백의 소년들이 먼저 나갔더라 벤하닷이 탐지꾼을 보내었더니 저희가 회보하여 가로되 사마리아에서 사람들이 나오더이다 하매 저가 이르되 화친하러 나올지라도 사로잡고 싸우러 나올지라도 사로잡으라 하니라 각 도의 방백의 소년들과 저희를 좇는 군대들이 성에서 나가서 각각 적군을 쳐 죽이매 아람 사람이 도망하는지라 이스라엘이 쫓으니 아람 왕 벤하닷이 말을 타고 마병으로 더불어 도망하여 면하니라 이스라엘 왕이 나가서 말과 병거를 치고 또 아람 사람을 쳐서 크게 도륙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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