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한 절제, 신앙을 위한 연단..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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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01 09:06
집회, 전도가 없는 시기
찬양이 넘치고 교제와 봉사와 사랑이 넘치고 있다.
다 필요하다.
찬양과 교제와 봉사와 사랑은
인체에서 살과 피와 피부와 같으니 아름답게 힘 있게 모든 것을 좋게 만들어 준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것이 일정 부분 넘치게 되면 성인병으로 돌아 선다.
살이 알차니 좋은 것인데 그 선을 넘어 가면 비만이 된다. 이 때는 이미 내적으로 순환기 내분비계에 각종 지표가 선을 넘어 섰다.
평소
걷기를 하라고 한다. 땀이 나도록 노동을 하라고 한다.
집회는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이다. 전도도 그렇다. 신앙 세계에서 고난에 속한 일들이 있다. 성도라도 아직 우리의 마음과 습관에는 믿지 않던 시절에 좋아 하던 것이 있다.
맛 있는 것은 먹고 싶다.
적절하게 먹고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먹고 싶다. 더 먹으면 소화력이 좋아 지고 인체가 용량을 늘려 준다.
그런데 타락한 인간, 오늘의 물질계는 무한이 아니다. 자유성을 위해 유기적으로 기다려 주는 경계까지는 버텨 준다.
그 선을 넘어 서면 당뇨 신장 심장 뇌경색 콜레스테롤 등으로 무서운 지표들이 그 모습을 드러 낸다.
지금 실시간이 아주 대유행이다. 대놓고 좋은 것이라고 난리다.
공회는 80년대부터 전화로 연결해 가며 출산 후 조리 기간, 병원의 입원, 장거리 출타의 교인의 예배를 보충해 왔다.
백 목사님 생전에 준비한 영상 설교는 그 사후의 과도기에 말씀의 은혜를 돌아 보게 했다. 복습도 하고 미래를 준비했다.
이 연구소가 개척한 교회들은 30여년을 그렇게 준비했다. 2018년부터는 이 시대를 맞서고 있다. 성경 단 1권만 가지고.
집회, 새벽예배, 정시 예배, 주일학교, 조기 결혼, 다산, 주일 지키기, 근검절약...
이런 이야기는 교계에서 청교도니 개혁주의 초기니 라는 표현으로 마치 사례로 예화가 되기도 한다. 박물관 전시처럼.
우리는 생활 속에 그냥 계속 해 왔다.
우리 안에서조차
주변에 찬양 율동 교제 봉사가 넘치며 이 아름답고 좋은 세상에 모두가 밝은 얼굴로 활기차게 믿는데
왜 공회는 우중충하고 먹구름이 낀 날씨처럼 늘 그러냐고 한다.
종교라는 것이 원래 그렇지 않을까?
종교라는 것이 유치원 재롱잔치에 가까울까? 아니면 중환자실이나 장례식장에 가까울까?
신앙이라는 것이 원래 내면의 문제를 돌아 보며 심지어 우주와 인간의 역사까지 무겁게 살피는 것이 아닌가?
기독교란 그 중에서도 살아 있는 신앙이니 오늘도 그래야 하지 않은가?
교회 안에서도 모두가 시대를 따라 그렇게 되지만
공회처럼 가끔 한두 교회가 원래의 신앙을 지켜 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오래 살기만 하면 모든 것이 가능한 세상,
돈까지 더해 지면 굳이 천국을 가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시대다 보니
모두가 건강에 대한 걱정과 정보와 노력이 많다.
무슨 독감 하나에 세계가 떨고 5천만이 얼어 붙는 것을 보니 세상이 좋기는 참 좋은가 보다.
좋은 세상,
죽지 않고 더 나은 다음을 살기 위해 부모 말도 듣지 않고 교사 말도 우습게 아는 10대들이 몸을 만들기 위해 발악을 한다.
제대로 된 몸을 만드려면 먹는 것, 운동, 규칙적인 자기 절제... 중세 수도승처럼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는 이들이 많다.
나이가 많아질수록 더욱 그런 것 같다.
그렇다면 신앙의 절체, 신앙의 자기 수련도 필요하지 않을까?
처음부터 주일을 지키고, 결혼과 출산과 가정을 위해 땀 흘려 일을 한다면,
여기에다 집회나 매일의 새벽예배에 정성을 기울인다면
좋은 세상에 좋은 건강으로 좋게 사는 세상처럼
좋은 말세에 더 없이 은혜롭게 천국을 준비하는 우리가 될 듯하다...
찬양이 넘치고 교제와 봉사와 사랑이 넘치고 있다.
다 필요하다.
찬양과 교제와 봉사와 사랑은
인체에서 살과 피와 피부와 같으니 아름답게 힘 있게 모든 것을 좋게 만들어 준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것이 일정 부분 넘치게 되면 성인병으로 돌아 선다.
살이 알차니 좋은 것인데 그 선을 넘어 가면 비만이 된다. 이 때는 이미 내적으로 순환기 내분비계에 각종 지표가 선을 넘어 섰다.
평소
걷기를 하라고 한다. 땀이 나도록 노동을 하라고 한다.
집회는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이다. 전도도 그렇다. 신앙 세계에서 고난에 속한 일들이 있다. 성도라도 아직 우리의 마음과 습관에는 믿지 않던 시절에 좋아 하던 것이 있다.
맛 있는 것은 먹고 싶다.
적절하게 먹고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먹고 싶다. 더 먹으면 소화력이 좋아 지고 인체가 용량을 늘려 준다.
그런데 타락한 인간, 오늘의 물질계는 무한이 아니다. 자유성을 위해 유기적으로 기다려 주는 경계까지는 버텨 준다.
그 선을 넘어 서면 당뇨 신장 심장 뇌경색 콜레스테롤 등으로 무서운 지표들이 그 모습을 드러 낸다.
지금 실시간이 아주 대유행이다. 대놓고 좋은 것이라고 난리다.
공회는 80년대부터 전화로 연결해 가며 출산 후 조리 기간, 병원의 입원, 장거리 출타의 교인의 예배를 보충해 왔다.
백 목사님 생전에 준비한 영상 설교는 그 사후의 과도기에 말씀의 은혜를 돌아 보게 했다. 복습도 하고 미래를 준비했다.
이 연구소가 개척한 교회들은 30여년을 그렇게 준비했다. 2018년부터는 이 시대를 맞서고 있다. 성경 단 1권만 가지고.
집회, 새벽예배, 정시 예배, 주일학교, 조기 결혼, 다산, 주일 지키기, 근검절약...
이런 이야기는 교계에서 청교도니 개혁주의 초기니 라는 표현으로 마치 사례로 예화가 되기도 한다. 박물관 전시처럼.
우리는 생활 속에 그냥 계속 해 왔다.
우리 안에서조차
주변에 찬양 율동 교제 봉사가 넘치며 이 아름답고 좋은 세상에 모두가 밝은 얼굴로 활기차게 믿는데
왜 공회는 우중충하고 먹구름이 낀 날씨처럼 늘 그러냐고 한다.
종교라는 것이 원래 그렇지 않을까?
종교라는 것이 유치원 재롱잔치에 가까울까? 아니면 중환자실이나 장례식장에 가까울까?
신앙이라는 것이 원래 내면의 문제를 돌아 보며 심지어 우주와 인간의 역사까지 무겁게 살피는 것이 아닌가?
기독교란 그 중에서도 살아 있는 신앙이니 오늘도 그래야 하지 않은가?
교회 안에서도 모두가 시대를 따라 그렇게 되지만
공회처럼 가끔 한두 교회가 원래의 신앙을 지켜 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오래 살기만 하면 모든 것이 가능한 세상,
돈까지 더해 지면 굳이 천국을 가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시대다 보니
모두가 건강에 대한 걱정과 정보와 노력이 많다.
무슨 독감 하나에 세계가 떨고 5천만이 얼어 붙는 것을 보니 세상이 좋기는 참 좋은가 보다.
좋은 세상,
죽지 않고 더 나은 다음을 살기 위해 부모 말도 듣지 않고 교사 말도 우습게 아는 10대들이 몸을 만들기 위해 발악을 한다.
제대로 된 몸을 만드려면 먹는 것, 운동, 규칙적인 자기 절제... 중세 수도승처럼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는 이들이 많다.
나이가 많아질수록 더욱 그런 것 같다.
그렇다면 신앙의 절체, 신앙의 자기 수련도 필요하지 않을까?
처음부터 주일을 지키고, 결혼과 출산과 가정을 위해 땀 흘려 일을 한다면,
여기에다 집회나 매일의 새벽예배에 정성을 기울인다면
좋은 세상에 좋은 건강으로 좋게 사는 세상처럼
좋은 말세에 더 없이 은혜롭게 천국을 준비하는 우리가 될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