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회의 경건 - 생활 속에 들어 온 수도원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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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30 14:38
(초대교회의 경건 운동)
초대교회의 초기 북 아프리카 쪽의 이집트 주변 교인들은 광야 사막으로 나가 수도원을 형성했다. 그리고 세계 곳곳으로 수도원은 하나의 운동이며 역사의 흐름으로 자리를 잡아 갔다. 주님과 단 둘의 시간을 갖기 위해 이들은 사람이 없는 곳, 사람이 찾아 올 수 없는 곳, 그 곳에서도 서로 만나지 않고 살려고 노력했다. '사막의 교부'라는 책을 구 게시판에 소개한 적이 있다. 오늘 기준으로 사막의 교부를 소개하면 즉각 이단 사이비 소리를 할 것이다. 강단 위에 쥐약을 먹고 뛰고 구르는 것이 성령의 은혜며 CCM이라는 영어까지 붙인 오늘의 지성적 교회가 그냥 두지는 못할 것이다. 그런데 공회만은 이 책을 접하면 우리가 그들 정도는 되지 않아도 느낌은 온다. 신앙의 세계는 그 내면이 그러 해야 한다. 그들은 눈으로 사람을 볼 수 없는 광야로 갔다면 공회는 가정을 가지고 주신 곳에서 생활을 하면서도 내면이 그들처럼 되어야 한다는 것을 추구한다.
(공회의 1960년대 이전)
공회 신앙은 동네 한 복판에 교회를 시작한다. 그리고 말씀 그대로 또 내면에는 주님과 동행을 노력한다. 주일이 되면 가족과 주변으로부터 거친 충돌을 피할 수 없다. 또 그런 환경 속에서 주님과의 내면 동행을 이어 가려면 자기도 모르게 입에서 '주여! 주여!'를 계속 반복하게 된다. 이 모습은 중들의 염불 같고, 미신의 주문처럼 보인다. 정신과 치료가 필요하다는 말도 들린다. 그렇지만 정상적인 공회 교인이라면 생활 속에 주님과 깊은 세계를 노력하며, 주님과의 동행은 반드시 현실의 생활 속에서 진행한다. 수도원 생활이 더 어려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생활 속에서 자기 내면을 수도원으로 만드는 것이 더 어렵다. 고대 미개 사회에서 도덕과 생활의 순결을 지키는 것은 쉬워도 오늘 도심 한 복판에서 그렇게 하려면 더 어렵다. 생활은 현실이며, 현실 속에서의 실행이라야 마음과 행동이 변화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런 어려운 길을 걸어 왔다.
아침 먹고 저녁까지 일을 하고, 저녁을 먹으면 곧 바로 주변의 높은 산을 찾는다. 새벽까지 철야하고 새벽예배 시간을 맞추어 내려 온다. 부산의 한 중심에서도 그렇게 했고, 시골의 교회들은 훨씬 쉬웠다. 이런 분위기가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다. 서울 한 복판에도 조선 시대의 유적들이 빌딩 사이 곳곳에 있으며, 그 순간 우리는 발전 된 오늘과 이런 유적이 있던 당시를 겹쳐 놓고 세월을 비교해 본다. 얻는 것이 많다. 감사할 것도 많다. 이렇게 되어야 오늘의 편리와 변화가 더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다. 아주 잊어 버리고 오로지 앞으로만 달려 가면 우선 얻는 것이 더 많을 듯해도 잃는 것이 더 많을 듯하다.
1970년대가 들어 오면서 갑자기 공회의 전국 교회에는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과제가 주어 졌다. 골목으로 나가면 교회를 가지 않고 놀고 있는 아이들이 소복했다. 그냥 가자 하면 따라 오고, 따라 오면 교회에 앉혀 놓고 교인을 만들었다. 60년대까지는 부모들이 어디 나갈 곳이 없었고 집 안에서 골목에서 대문과 창문 사이로 지켜 보기 때문에 어려웠다. 70년대가 되면서 갑자기 사회 전체적으로 연중 계속하여 일을 간다는 사회가 되었다. 휴일인 주일까지도. 아이들이 더 많든 60년대보다 아이들이 약간 줄어 드는데도 여전히 아이들은 넘치는 상황에서 그 아이들이 교회를 향할 수 없도록 뒷줄을 쥐고 있는 부모들이 시야에서 사라 진 것이다. 시골은 원래 겨울이 되면 할 일이 없었는데 70년대가 되면서 각종 영농 환경과 기술의 발전, 그리고 전국의 시골까지도 사회적 일자리가 생겼다. 도시는 말할 것도 없었다. 누구라도 원하면 마음껏 일을 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골목마다 아이들이 그냥 할 일 없이 몰려 있었고 이들에게 따라 가자는 선생님이 있으면 한둘이 나서고 그들을 지켜 보며 그 다음에는 모두가 몰려 왔다. 역사에 다시 반복 되기 어려운 환경이 미국에는 100여 년 전이라면 한국에는 70년대와 80년대에 주어 졌다. 이렇게 된 상황에서 평소 기회 되는 대로 누구에게나 전도하는 공회 교회들은 뜻하지 않게 학생들을 대규모로 데려 올 수 있었고 세계교회사적 기록을 남기게 된다. 의도하지 않았고 기대하지도 않았으며 체계적으로 대처한 것도 아니다. 그냥 평소처럼 했을 뿐인데 시대를 그렇게 만들어 주셨고 우리는 주시는 대로 다 받았을 뿐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돌발하자 공회는 역사적인 주일학교 부흥과 연이은 중고등 학생들의 부흥, 그리고 자연스럽게 장년반의 부흥이 뒤를 따랐는데 이 과정에서 60년대까지 공회가 견지 해 오던 '경건'을 과거 모습처럼 지켜 낼 수 없었다. 물론 몇몇 분들은 수 많은 학생들을 데려 올 수 있는 기회에도 주님과의 깊은 내면을 유지하기 위해 주일학생을 인도하는 일을 마다 한 경우가 있다. 그 분들에게는 그렇게 해야 할 성령의 개별 인도가 있었을 것이다. 있을 수도 있고 또 잘못 된 판단으로 기회를 놓쳤을 수도 있다. 물론 주시는 아이들을 마음껏 쓸어 담던 시절에 수십 수백 명의 학생들을 반사 1인이 예배당에 앉혀 놓는 일을 하는 이들 중에 그냥 주변의 분위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일부는 이런 외부 활동이 내면의 경건을 더욱 깊게 만들어 겉 보기에는 복음 운동의 '활동'만 있는 것처럼 보였으나 내면은 더욱 '경건'의 깊이를 더한 분들도 있을 듯하다.
(2000년대, 오늘의 이 신앙)
지난 날을 잠깐 정리 해 본 것은 오늘 때문이다. 오늘은 한 사람의 반사가 골목을 뛰어 다니며 아이들을 몰아 올 수 없는 환경이다. 결혼이 없어 졌고, 결혼을 해도 만혼이어서 아이가 나오지도 않고 또 만들지도 않는다. 아이들이 있다 해도 접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없어 졌다. 접한다 해도 말을 건네면 바로 부모가 개입하고 나온다. 이런 어려운 환경에서도 공회의 전국 교회는 주일학교에 대한 기본 인식이 바로 되어 있어 아이를 낳는 것도 많고 또 곳곳에서 아이들을 찾아 내어 교회로 인도한다. 타 교회와는 비교할 수 없이 대부분 교회는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전체로 보면 주일학생을 위해 시간과 노력을 쏟지 못하고 있다. 공회는 원래 장년반 주일 출석의 20 ~ 30%는 반사를 했다. 그리고 반사 별 출석 기준으로 10명 이상을 반마다 앉혔다. 장년반보다 주일학교의 출석수가 2~3배가 많아야 정상이었다. 지금은 주일 학생이 장년반의 25% 되기도 어려울 듯하다. 공회 교회들의 의지나 노력이나 개념이 없어서가 아니다. 주신 여건이 전혀 달라 졌다. 겨울에 싹이 나오려고 내어 밀면 얼어 죽는다. 이는 발전이 아니라 자살이다. 여름에 씨를 뿌리면 자라는 과정에 겨울이 와서 다 죽어 버린다. 전3:1에서 천하 범사가 기한이 있고 때가 있다 하셨다. 오늘은 어떤 때인가?
경건으로 다시 우리의 외부 모습과 생활 일정을 돌려야 할 때다. 조용한 곳, 은밀한 장소, 아무도 없는 시간, 그런 환경 그런 직업 그런 상황을 만들려고 노력할 시점이다. 도심에서 강원도 산속으로 들어 가라는 것은 아니다. 가정과 교회를 고정 요인으로 두고, 자신의 일정 생활 진로 활동을 조정해 본다면 가능하다. 요즘은 어느 건물이든 가정이든 방음이 완벽하다. 또 부모라도 자녀의 집에 연락을 하고 드나 든다. 겉 보기에는 복잡하기 그지 없는 현재 도심의 바쁜 환경 속에서 70년대 이전의 고요함을 찾아 보려고 마음을 먹으면 어렵지 않다. 10여 년 전에 멀리 순회를 다닌 적이 있다. 고속도로 4시간을 가야 하는 거리인데, 이 운전하는 시간이 내게는 당시로서 가장 고요했던 광야 생활이었다. 요즘 차들이 좋고 길이 좋고 모두가 점잖게 운전을 하기 때문에 나만 마음 먹으면 성경을 들으며 또는 기도하며 말씀으로 주님과 동행하는 생활이 깊은 산 중에 있는 듯했다.
원래 겨울이 되면 환경 때문에 모두가 생존을 위해 활동을 최소화 했다. 신앙의 세계는 연중 일정으로 보면 겨울 3개월을 광야 기도원에 가는 효과를 가질 수 있었다. 지금은 1년 365일, 심지어 1일 24시간이 늘 같은 분량으로 일을 할 수 있도록 또 정신 없이 바쁠 수 있다. 이런 중에 마음만 먹으면 역사에 없던 수도원 생활을 할 수 있다.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으라신 말씀으로 광야 사막에 기도원을 만들지 말고 현실 생활 속에 우리 마음 깊이 수도원을 만들 수 있다. 공회 신앙에게는 오늘의 현실은 70년대 주일학교 운동으로 전국이 전쟁터처럼 피난 행렬처럼 바빴고 정신이 없었고 전력을 다했던 바로 그 노력으로 경건의 깊음을 가져야 할 때로 보인다. 그렇게 이 시기를 사용하다 보면 그 과정에 준비 된 우리를 가지고 또 사용하실 다음이 있을 것으로 소망한다. 내일을 위해 준비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오늘은 오늘에 주신 오늘의 사명이 바로 주님과 깊은 동행의 경건이 아닐까.
초대교회의 초기 북 아프리카 쪽의 이집트 주변 교인들은 광야 사막으로 나가 수도원을 형성했다. 그리고 세계 곳곳으로 수도원은 하나의 운동이며 역사의 흐름으로 자리를 잡아 갔다. 주님과 단 둘의 시간을 갖기 위해 이들은 사람이 없는 곳, 사람이 찾아 올 수 없는 곳, 그 곳에서도 서로 만나지 않고 살려고 노력했다. '사막의 교부'라는 책을 구 게시판에 소개한 적이 있다. 오늘 기준으로 사막의 교부를 소개하면 즉각 이단 사이비 소리를 할 것이다. 강단 위에 쥐약을 먹고 뛰고 구르는 것이 성령의 은혜며 CCM이라는 영어까지 붙인 오늘의 지성적 교회가 그냥 두지는 못할 것이다. 그런데 공회만은 이 책을 접하면 우리가 그들 정도는 되지 않아도 느낌은 온다. 신앙의 세계는 그 내면이 그러 해야 한다. 그들은 눈으로 사람을 볼 수 없는 광야로 갔다면 공회는 가정을 가지고 주신 곳에서 생활을 하면서도 내면이 그들처럼 되어야 한다는 것을 추구한다.
(공회의 1960년대 이전)
공회 신앙은 동네 한 복판에 교회를 시작한다. 그리고 말씀 그대로 또 내면에는 주님과 동행을 노력한다. 주일이 되면 가족과 주변으로부터 거친 충돌을 피할 수 없다. 또 그런 환경 속에서 주님과의 내면 동행을 이어 가려면 자기도 모르게 입에서 '주여! 주여!'를 계속 반복하게 된다. 이 모습은 중들의 염불 같고, 미신의 주문처럼 보인다. 정신과 치료가 필요하다는 말도 들린다. 그렇지만 정상적인 공회 교인이라면 생활 속에 주님과 깊은 세계를 노력하며, 주님과의 동행은 반드시 현실의 생활 속에서 진행한다. 수도원 생활이 더 어려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생활 속에서 자기 내면을 수도원으로 만드는 것이 더 어렵다. 고대 미개 사회에서 도덕과 생활의 순결을 지키는 것은 쉬워도 오늘 도심 한 복판에서 그렇게 하려면 더 어렵다. 생활은 현실이며, 현실 속에서의 실행이라야 마음과 행동이 변화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런 어려운 길을 걸어 왔다.
아침 먹고 저녁까지 일을 하고, 저녁을 먹으면 곧 바로 주변의 높은 산을 찾는다. 새벽까지 철야하고 새벽예배 시간을 맞추어 내려 온다. 부산의 한 중심에서도 그렇게 했고, 시골의 교회들은 훨씬 쉬웠다. 이런 분위기가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다. 서울 한 복판에도 조선 시대의 유적들이 빌딩 사이 곳곳에 있으며, 그 순간 우리는 발전 된 오늘과 이런 유적이 있던 당시를 겹쳐 놓고 세월을 비교해 본다. 얻는 것이 많다. 감사할 것도 많다. 이렇게 되어야 오늘의 편리와 변화가 더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다. 아주 잊어 버리고 오로지 앞으로만 달려 가면 우선 얻는 것이 더 많을 듯해도 잃는 것이 더 많을 듯하다.
1970년대가 들어 오면서 갑자기 공회의 전국 교회에는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과제가 주어 졌다. 골목으로 나가면 교회를 가지 않고 놀고 있는 아이들이 소복했다. 그냥 가자 하면 따라 오고, 따라 오면 교회에 앉혀 놓고 교인을 만들었다. 60년대까지는 부모들이 어디 나갈 곳이 없었고 집 안에서 골목에서 대문과 창문 사이로 지켜 보기 때문에 어려웠다. 70년대가 되면서 갑자기 사회 전체적으로 연중 계속하여 일을 간다는 사회가 되었다. 휴일인 주일까지도. 아이들이 더 많든 60년대보다 아이들이 약간 줄어 드는데도 여전히 아이들은 넘치는 상황에서 그 아이들이 교회를 향할 수 없도록 뒷줄을 쥐고 있는 부모들이 시야에서 사라 진 것이다. 시골은 원래 겨울이 되면 할 일이 없었는데 70년대가 되면서 각종 영농 환경과 기술의 발전, 그리고 전국의 시골까지도 사회적 일자리가 생겼다. 도시는 말할 것도 없었다. 누구라도 원하면 마음껏 일을 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골목마다 아이들이 그냥 할 일 없이 몰려 있었고 이들에게 따라 가자는 선생님이 있으면 한둘이 나서고 그들을 지켜 보며 그 다음에는 모두가 몰려 왔다. 역사에 다시 반복 되기 어려운 환경이 미국에는 100여 년 전이라면 한국에는 70년대와 80년대에 주어 졌다. 이렇게 된 상황에서 평소 기회 되는 대로 누구에게나 전도하는 공회 교회들은 뜻하지 않게 학생들을 대규모로 데려 올 수 있었고 세계교회사적 기록을 남기게 된다. 의도하지 않았고 기대하지도 않았으며 체계적으로 대처한 것도 아니다. 그냥 평소처럼 했을 뿐인데 시대를 그렇게 만들어 주셨고 우리는 주시는 대로 다 받았을 뿐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돌발하자 공회는 역사적인 주일학교 부흥과 연이은 중고등 학생들의 부흥, 그리고 자연스럽게 장년반의 부흥이 뒤를 따랐는데 이 과정에서 60년대까지 공회가 견지 해 오던 '경건'을 과거 모습처럼 지켜 낼 수 없었다. 물론 몇몇 분들은 수 많은 학생들을 데려 올 수 있는 기회에도 주님과의 깊은 내면을 유지하기 위해 주일학생을 인도하는 일을 마다 한 경우가 있다. 그 분들에게는 그렇게 해야 할 성령의 개별 인도가 있었을 것이다. 있을 수도 있고 또 잘못 된 판단으로 기회를 놓쳤을 수도 있다. 물론 주시는 아이들을 마음껏 쓸어 담던 시절에 수십 수백 명의 학생들을 반사 1인이 예배당에 앉혀 놓는 일을 하는 이들 중에 그냥 주변의 분위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일부는 이런 외부 활동이 내면의 경건을 더욱 깊게 만들어 겉 보기에는 복음 운동의 '활동'만 있는 것처럼 보였으나 내면은 더욱 '경건'의 깊이를 더한 분들도 있을 듯하다.
(2000년대, 오늘의 이 신앙)
지난 날을 잠깐 정리 해 본 것은 오늘 때문이다. 오늘은 한 사람의 반사가 골목을 뛰어 다니며 아이들을 몰아 올 수 없는 환경이다. 결혼이 없어 졌고, 결혼을 해도 만혼이어서 아이가 나오지도 않고 또 만들지도 않는다. 아이들이 있다 해도 접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없어 졌다. 접한다 해도 말을 건네면 바로 부모가 개입하고 나온다. 이런 어려운 환경에서도 공회의 전국 교회는 주일학교에 대한 기본 인식이 바로 되어 있어 아이를 낳는 것도 많고 또 곳곳에서 아이들을 찾아 내어 교회로 인도한다. 타 교회와는 비교할 수 없이 대부분 교회는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전체로 보면 주일학생을 위해 시간과 노력을 쏟지 못하고 있다. 공회는 원래 장년반 주일 출석의 20 ~ 30%는 반사를 했다. 그리고 반사 별 출석 기준으로 10명 이상을 반마다 앉혔다. 장년반보다 주일학교의 출석수가 2~3배가 많아야 정상이었다. 지금은 주일 학생이 장년반의 25% 되기도 어려울 듯하다. 공회 교회들의 의지나 노력이나 개념이 없어서가 아니다. 주신 여건이 전혀 달라 졌다. 겨울에 싹이 나오려고 내어 밀면 얼어 죽는다. 이는 발전이 아니라 자살이다. 여름에 씨를 뿌리면 자라는 과정에 겨울이 와서 다 죽어 버린다. 전3:1에서 천하 범사가 기한이 있고 때가 있다 하셨다. 오늘은 어떤 때인가?
경건으로 다시 우리의 외부 모습과 생활 일정을 돌려야 할 때다. 조용한 곳, 은밀한 장소, 아무도 없는 시간, 그런 환경 그런 직업 그런 상황을 만들려고 노력할 시점이다. 도심에서 강원도 산속으로 들어 가라는 것은 아니다. 가정과 교회를 고정 요인으로 두고, 자신의 일정 생활 진로 활동을 조정해 본다면 가능하다. 요즘은 어느 건물이든 가정이든 방음이 완벽하다. 또 부모라도 자녀의 집에 연락을 하고 드나 든다. 겉 보기에는 복잡하기 그지 없는 현재 도심의 바쁜 환경 속에서 70년대 이전의 고요함을 찾아 보려고 마음을 먹으면 어렵지 않다. 10여 년 전에 멀리 순회를 다닌 적이 있다. 고속도로 4시간을 가야 하는 거리인데, 이 운전하는 시간이 내게는 당시로서 가장 고요했던 광야 생활이었다. 요즘 차들이 좋고 길이 좋고 모두가 점잖게 운전을 하기 때문에 나만 마음 먹으면 성경을 들으며 또는 기도하며 말씀으로 주님과 동행하는 생활이 깊은 산 중에 있는 듯했다.
원래 겨울이 되면 환경 때문에 모두가 생존을 위해 활동을 최소화 했다. 신앙의 세계는 연중 일정으로 보면 겨울 3개월을 광야 기도원에 가는 효과를 가질 수 있었다. 지금은 1년 365일, 심지어 1일 24시간이 늘 같은 분량으로 일을 할 수 있도록 또 정신 없이 바쁠 수 있다. 이런 중에 마음만 먹으면 역사에 없던 수도원 생활을 할 수 있다.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으라신 말씀으로 광야 사막에 기도원을 만들지 말고 현실 생활 속에 우리 마음 깊이 수도원을 만들 수 있다. 공회 신앙에게는 오늘의 현실은 70년대 주일학교 운동으로 전국이 전쟁터처럼 피난 행렬처럼 바빴고 정신이 없었고 전력을 다했던 바로 그 노력으로 경건의 깊음을 가져야 할 때로 보인다. 그렇게 이 시기를 사용하다 보면 그 과정에 준비 된 우리를 가지고 또 사용하실 다음이 있을 것으로 소망한다. 내일을 위해 준비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오늘은 오늘에 주신 오늘의 사명이 바로 주님과 깊은 동행의 경건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