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향점 - 성경과 역사와 현실이 가리키는 곳

남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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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판에는 이 홈에 올려진 글 중에 이곳에서 따로 소개하고 싶은 글도 포함됩니다. 

지향점 - 성경과 역사와 현실이 가리키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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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겪어 본 바깥 분위기)
1977년, 서울에서 부산으로 2학년에 편입하여 학교를 다닐 때 같은 과에 제대를 하고 편입생으로 함께 다닌 분이 있었다. 고신의 핵심 가정 출신으로서 여러 면으로 방황을 하다 교회의 연초 기도원 행사를 따라 갔다가 방언을 받고 제대로 신앙 생활을 시작했던 분이다. 경제가 넉넉하고 시내 사람이어서 시골 출신이며 교회만 알고 다니던 나를 세상 구경도 시켜 주고 또 고신 핵심으로서 몇 가지 접하기 어려운 신앙 세계를 접촉 시켜 주었다. 1년 동안 가장 가깝게 지내면서 많은 일들이 있었고 나는 백 목사님을 소개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 분은 고신의 중심 청년으로서 내게 좀 넓은 세계를 보라며 적극 소개하였다. 서로 노력했으나 서로의 길이 달랐다.

나는 그 분 때문에 처음으로 남포동 극장이라는 곳을 가봤다. 서부교회를 소개하기 위해 가깝게 지내다 보니 그 분의 평범한 제안은 거절하기 어려웠다. 극장이란 그 자체가 공회에서는 선입견으로 죄가 되는 곳이다. 총 쏘는 서부영화 무법자, Outlaw였다. 이후로는 그 분이 다시는 세상을 소개하지는 않았다. 뭔가 짝이 맞거나 통해야 하는데 나와는 그렇게 통할 수는 없었다고 느꼈을 듯하다. 극장에 영화 보는 것은 죄가 아니다. 그러나 술 담배처럼 죄라고 생각하며 피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그 때 경험 때문에 평생 말할 수 있게 됐다.

서부교회에 몇 차례 함께 온 덕분에 그 분이 소개한 타 교회를 몇 번 가 봐야 했다. 시내 중심가에 침례교회의 부흥회였다. 최고 유명 부흥강사를 접해 볼 수 있었다. 그 분은 오랜 세월 한국의 대표적 부흥사로서 침례교를 대표했다. 두 번째는 양산의 감림산기도원에서 은혜를 받아야 한다고 해서 기도원을 가 봤다. 이 곳은 위치와 환경이 우리에게도 좋은 곳이어서 두어 번을 혼자 더 갔다. 세 번째는 수정동교회에 김종한 목사님의 사경회였다. 거제교회 담임이었다. 말씀이 참 좋았다. 시내의 보통 예배당을 보통으로 채운 정도였다. 내가 공회 외부에서 들어 본 설교 중에서 가장 말씀을 잘 전했던 분으로 지금까지 기억한다. 딱 말씀만 전했고 성경의 사랑은 예수님의 구원의 희생만 사랑이라는 내용 한 마디를 기억한다. 그리고 네번 째는 당시로서는 부산의 동 쪽 끝이었떤 동래 어느 외딴 교회 나트막한 동산에 나운몽 장로님 사경회였다.


(나운몽의 동방론)
고신의 원래에 가장 충실한 분, 침례교단 최고의 부흥사, 숱한 기적을 기록한 기도원, 이렇게 3곳에다 나운몽이라는 이름, 자못 기대가 컸다. 70년대 김천 용문산의 나운몽 장로님은 이단이 아니면서도 박태선 문선명 집단과 견줄 만큼 조직력과 열심이 뜨거운 곳인데 또한 고신이나 재건교회처럼 정통의 이름만 가지고 경직화 되어 있는 교회와 달리 한국의 기도원 운동에 제일 대표적인 곳이었다. 나로서는 직접 접하는 것이 처음이지만 혹시 우리 공회처럼 교계에 숨겨 진 보배라도 된다면 얼마나 귀한 일인가, 당시까지는 이 노선까지만 알고 있었지만 이 노선과 같거나 혹시 나은 곳이라면 얼마나 다행인가. 지금은 교계 전체를 모두 안다 할 정도지만 그 때는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예배당에 들어 서자 교인이 2-30여 명이나 될까? 전국적 지명도가 그렇게 높은 분인데 앉은 자리가 참 허무했다. 우리야 원래부터 숫자는 보지 않는다. 그런데 세월 속에 그렇게까지 전국을 뜨겁게 달구었다면 그리고 하나씩 배우고 자라 간 사람이 있었다면 이렇지 않을 듯했다. 생명력은 없고 운동만 있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찬송은 '먹보다도 더 검은'이라는 찬송이었다. 전형적으로 분위기를 띄우는 식인데 속 빈 공허뿐이었다. 어쨌든 말씀이라도 기대했다. 동방이라는 설교가 주제였다. 성경의 예언에 따라 말세가 된 현재 이스라엘의 반대편 한국이 동방의 빛이라 했다. 그 뒤에 보니 한국의 교회는 이단이든 아니든 대세가 알게 모르게 다 그러했다. 평생 그 때 그 내용을 마음에 두고 살폈다.


(성경과 역사가 가리키는 곳)
제대로 성경을 읽는다면 구약은 육체의 이스라엘이어서 뭐든지 보이는 것으로 시작했고 보이는 것을 중심으로 일단 가르친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신약은 신령한 이스라엘이니 시간과 공간과 어느 한 사건에 매이지 않는다. 시간과 공간과 어느 인물이나 어느 사건을 거론할 때는 우선 그 말씀으로 살피게 되지만 그 뜻을 살펴 신약의 어느 시대 어느 교회 어느 교인의 어느 상황에서도 그 말씀이 가르치는 뜻이 있고 그 면을 살피게 된다. 따라서 성경의 말세는 주님 오시고 세상이 없어 지는 때는 최후의 종말이고, 그 이전에 시대적인 종말도 있고 개인이 죽으면 그 사람은 주님을 보러 가야 하고 그 사람의 세상은 사라 진다. 말세에 빛날 동방도 지구가 둥근데 어디가 동방이겠는가? 진리의 빛을 밝히는 곳이면 그 어디나 동방이다. 불신자가 말하는 지리적인 동방과 서방이 아니다. 이단이든 세대주의자들이든 그 어느 누가 무엇을 기준으로 말한다 해도 그들의 말 중에 옳거나 참고할 만한 것은 해야 하고, 정통에 우리 편이 말을 해도 곤란한 주장은 조심해야 하고 과제로 미루는 것이 맞다.


* 성경이 가리키는 곳
행1:8에서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리라'고 하신 말씀의 지역은 일단 놔 두고 복음이 흘러 간 마지막은 어딜까?
지구는 둥글다. 기준을 잡는 곳은 어디든 그 반대편이 땅 끝이 된다. 그래서 지구 지리적 '땅 끝'은 일단 미루어 둔다 해도 이스라엘에서 시작한 복음이 가장 마지막에 도달한 곳, 그 곳은 남미도 아프리카도 동남아도 아니다. 세계 선교사를 보면 쉽게 특정을 할 수 있다. 여기에다 이스라엘을 기준으로 지리적으로 그 반대편을 짚어 본다면 태평양 바다를 짚지 않으려면 대륙의 끝이 된다.

* 역사가 가리키는 곳
구약의 복음은 이스라엘이 중심이었다. 신약으로 오면서 복음은 즉시 사방으로 흘러 갔다. 목회자 가정의 중심에도 불신자는 있고 그는 그 목회자에게 땅 끝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교회의 성장과 시대를 감당하던 주력 교회의 역사적 흐름을 살펴 보면 초대교회는 지중해를 중심으로 펼쳐 졌고 종교 개혁기는 대륙 한 복판에서, 그리고 이후 영국을 거쳐 미국 교회가 중심에 선 교회사의 중심 축을 파악하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다. 오늘의 세계 교회의 신앙 중심축은 어디일까? 넓게 보면 쉽게 파악이 된다.

* 계통이 가리키는 곳
시대마다 귀한 종과 시대를 감당하던 종들은 많았다. 엘리야가 나만 남았나이다 할 때 숨겨 둔 7천이 있다고 하셨다. 그렇다 해도 엘리야 시대는 엘리야 엘리사를 통해 구원의 계통이 이어 지고 있었다. 기계와 달리 생명 운동은 그 뿌리로부터 둥치 줄기 가지로 이어 지는 계통을 연결 시켜 보면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 지지 않는다. 하나의 씨앗이 떨어 지고 그 것이 자라며 열매를 맺고 그 열매가 비록 우리는 몰라도 어디로 움직이며 연결이 된다. 정통에서 정통이 나온다. 그 정통이 흘러 간 곳을 찾아 본다.

* 미래가 가리키는 곳
역사는 지난 날 흘러 온 계통을 살피는 것이다. 그런데 이왕이면 나아 가는 진행의 방향까지 함께 살피면 앞을 예측하면서 동시에 지난 날을 해석하고 바르게 살피게 해 준다. 세계 교회의 현재와 과거를 살피는 동시에 현재와 앞을 살펴 본다면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이 땅 위에 교회 중에 어느 교회를 중심에 두시고 인도를 하시고 계시는지, 애매한 것이 아니라 명확하게 드러 내고 인도하실 듯하다. 산 위에 동네는 굳이 눈을 감으면 보이지 않을 수도 있으나 제대로 보려 들면 모든 면으로 쉽게 보여 진다.

* 목적이 가리키는 곳
학생은 학교에서 찾고 도박꾼은 도박장을 뒤지면 된다. 나그네는 본향을 파악하고 그 길에서 찾거나 고향 집에서 찾으면 된다. 천지를 만들고 교회를 그 안에 두시고 인도하는 하나님은 우연이 없다. 목적을 두시고 운영하고 있다. 하나님을 닮은 교회, 말씀으로 교회를 가르치고 고치고 점점 자라가게 하신다. 말씀을 길로 삼고 이 길에 더 온전하고 더 정확하며 더 나아 간 교회가 하나님의 목적이 가리키는 곳을 향하는 앞 선 교회다. 말씀으로 살피다 보면 비교는 어렵지 않다. 지도적인 교회는 찾기가 쉽다.

* 주권이 가리키는 곳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운에 달렸거나 인간의 노력에 달렸다. 하나님 편에서 보면 인간의 노력과 세상의 운이란 인간의 착시 현상이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권으로 움직여 가고 있다. 하나님의 주권 운영 역사와 세상의 여러 형편이라는 것이 섞여 있다. 섞여 있지만 들여다 보면 인간이 만든 것인지 하나님의 인도인지 구별해 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나님의 주권이 현재 어느 교회를 붙들고 말세를 준비하는 중심에 두고 그 길에 세우며 모두를 그 쪽으로 데려 가시는지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듯하다.

* 종말이 가리키는 곳
불신자가 미신으로 봐도 그들의 종교로 봐도 그들의 도덕과 그들의 과학으로 봐도 세상은 끝이라고 한다. 교회는 이 땅 위에 시작할 때부터 종말을 앞에 놓고 준비를 했다. 입학이 있으면 졸업이 있다. 졸업을 염두에 두고 학교를 다닌다. 어떤 행동이 졸업에 맞는지 좋은지 구별하기는 쉽다. 세상이 아니라 천국이 우리가 가야 할 곳이고 그 때를 매 현실에서 준비하며 늘 그런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면 종말이 가리키는 곳은 알기가 쉽다. 종말에 맞춘 신앙과 교회를 확인하는 것은 주변 불신자가 봐도 알 듯하다.

* 종합이 가리키는 곳
성경과 역사와 계통과 미래와 목적과 주권과 종말이 가리키는 곳, 얼른 잡아도 그 기준이 7가지다. 더 살피려면 더 많겠지만 대략 7가지의 측량 기준점에서 맞춰 볼 때 초점에 나타나는 교회, 그런 신앙, 그런 운동, 그런 걸음이 있다면 그 것이 성경에서 말세 우리에게 기대하게 했고 가지도록 주신 동방일 것이다. 성경의 전파 과정, 교회의 발전과 전개 과정, 복음과 교회의 중심이 이어 지는 계통과 연결점, 그리고 현재 이후의 소망을 볼 수 있는데, 하나님의 원래 목적에도 맞고 하나님의 주권 역사가 종말을 만난 오늘 우리에게 이 길에서 노아가 홍수를 방주로 준비했듯이 소돔보다 더 더럽고 홍수 때보다 더 심각한 오늘의 어둡고 혼잡한 상황을 환하게 걸어 갈 수 있다면, 그 교회가 국내 교단이든 해외 교단이든 우리 편이든 남의 편이든 이제 믿는 곳이든 교회의 역사가 얼마나 오래 되었든 이 시대를 감당하며 이 시대의 신앙에 중심이 되어 오늘을 헤쳐 나갈 노아적 신앙이 아닐까?

조롱하는 것은 자유다. 비록 옳지만 무시하는 것도 참 쉽다. 그리고 두고 갈 땅에 좋고 편하고 모두가 모여 웃을 수 있는 교회와 예배와 신앙과 그런 분위기가 다 좋을 것이다. 그러나 홍수가 막상 시작이 되거나 유황불비가 쏟아 지기 시작하면 그 때는 그 웃음이 변하여 애곡이 될 듯하다. 나는 처음 은혜를 받고 너무 좋았을 때, 내가 혹시 잘못 된 길에 서 있지 않을까 또는 둘러 가는 길에서 손해를 보고 있지 않을까 하여 초기에 주변을 많이 두리번 했다. 다행스럽게 신앙이 들기 전부터 또 신앙이 들어 가던 그 순간에 내가 훗날까지 늘 비교를 해 봐야 했던 노선들을 여러 기회로 접해 볼 수 있었다. 그 것이 전부이겠는가? 내가 확신하는 데 필요한 만큼만 접했다. 또 그 것을 접하느라고 내가 갈 길을 허송할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오늘까지 이 길을 걷고 있다. 동시에 늘 세계 그 어느 곳에 이 노선과 같거나 또는 이 노선보다 더 나은 곳이 있는지 또는 어느 한 면으로라도 그런 곳이 있는지 늘 귀와 눈을 뜨고 살았다. 과거에는 뒤지고 다니지 않으면 접하기 어려웠으나 오늘은 외면을 하려 해도 전부 드러 나는 시대이다.

어느 교회 어느 인물을 이단이라 천하가 난리를 해도 나는 그 속에 보배가 있는지 살펴 왔다. 그리고 이제 이런 글을 적고 있다. 아직은 이 곳에서 역사의 교회들이 바라던 길, 그리고 오늘을 함께 사는 우리가 반드시 들여다 봐야 할 길, 이 길이라는 점을 일단 적어 본다. 전해 져야 할 글이면 주님이 그렇게 하실 것이고, 나로서는 누구 무슨 소리를 하든 일단 적어 놓는다.

교회는 주님을 머리로 삼는 한 몸이다. 모든 성도와 교회는 한 몸의 어느 한 부분이다. 어느 부분을 기준으로 삼아도 이 글은 다 해당이 된다. 그러므로 이 글을 냉정하게 읽었다면 혼자 취해서 벌 소리 한다고 비판할 것이 아니고 모두에게 각자 자부심을 가지시라는 글이다. 다만 누구든 부족한 점이 있으니 늘 배우고 고치고 자라 가는 면은 잊지 말자는 부탁일 듯하다. 내가 적은 이 길을 중심에 놓고 보면 모든 교회는 이 글에 해당이 된다. 다른 교회가 그들의 위치를 기준으로 적으면 나는 그 교회를 위해 돕고 배우고 멀리서 지켜 볼지라도 늘 부러워 해야 한다. 또 배울 것은 늘 배울 것이고 현재까지는 그렇게 해왔다. 이런 교회를 공회라 한다. 공회라는 간판이나 공회라고 자칭하는 조직의 그런 공회가 아니라 원래 공회의 개념이 그렇다. 서로가 함께 자라 가지만 이제 적은 이 뜻만은 어느 교회 어느 신앙에게라도 해당이 될 듯하다.


최근 급변하는 국제 상황 때문에 주변에서 질문이 많다. 그 때마다 믿는 사람이 세상의 소식을 물 건너 불구경처럼 지켜 보며 자기의 하루가 신앙의 하루 되는데 노력해도 부족한데, 세상의 소식을 들여다 보며 휘청거리면 신앙에 쏟을 힘도 없고 세파에 휩쓸리게 되니 조심하자는 부탁을 하게 된다. 이 때마다 지정학과 역사를 참고하면 간단한 몇 가지 원칙만 가지고 세상을 대처할 수 있다고 소개를 한다. 강대국은 건방지면 망하고 약소국은 강대국에게 밉보이면 망하는 것이니 타락한 세상은 약육강식이 성경적이다. 또 물가에 심은 나무는 물 걱정이 없으나 물 없는 곳에 심긴 나무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이 것이 타락한 세상이다. 바로 이런 거시적 안목으로 우리의 신앙 길을 본다면 교파가 아무리 많고 신앙의 노선이 아무리 복잡해도 우리는 아무 복잡할 것이 없다고 소개한다. '지향'을 마음에 두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목적 지향, 주권 지향, 계통 지향, 영원 지향, 우리를 인도하는 지향이 있다. 우선은 별별 일이 다 있다 해도 결국 이 범위를 넘지 못하고 이 길을 벗어 나지 않으며 우리를 인도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선택할 신앙의 노선과 방향은 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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