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고정 시키는 어느 순간 - 설교자의 특성을 중심으로
담당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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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5 18:09
공회의 유명한 80대 목사님, 아직도 건강하게 강단을 맡고 계시며 유튜브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예전의 설교 늘 그 모습이다.
제목과 함께 설교의 요약을 논문식으로 큰 번호와 세부 항목으로 제목을 붙인다. 주교 공과식이다. 또박또박 읽는 듯이 한다.
50년대 백 목사님의 설교가 그랬다. 그 때 은혜를 받고 목회를 나갔기 때문에 이 분은 평생 그 때 은혜 때문에 그렇게 전한다.
60년대의 주경 설교에 붙들렸던 백태영 목사님의 설교는 평생 그런 식이었다. 좋은 뜻이다. 모두 설교를 두고 유명한 분이다.
70년대의 교리 설교의 깊은 분석에 은혜를 받고 이 노선을 각오한 분들은 목회를 나와도 평생 그런 흐름이다. 각자가 다르다.
지금 생존 세대를 기준으로 보면 6.25 전후의 배고픈 마지막 시기를 겪은 분들은 평생 밥에 대한 애착이 다르다. 자연스럽다.
70년대 산업 사회 초기를 겪으며 부동산 파동을 겪은 분들은 그 때 큰 돈을 벌었든지 잃었든지 늘 부동산에 투자를 강조한다.
이 시기에는 밥 굶는 사람은 없었다. 대신 먼저 돈 번 사람들은 여행이나 장난감 등의 취미 생활을 했다. 이 때 억울한 사람은?
70년대 주변에서 가끔 지켜 보며 부러웠던 놀이공원이나 가족 여행이나 아이들의 장난감을 기억하고 지금은 좀 넘쳐 보인다.
결국 오늘의 상황을 유심히 살펴 보면서 그 사람의 과거에 좋았거나 나빴던 일들을 짐작해 보면 유추에 어려움은 없을 듯하다.
예배당의 외형이나 종탑의 과시, 아직도 성탄절 장식에 집요한 교회, 목회자가 교인을 과도하게 내려 보는 경우도 그러하다.
이런 일을 느낄 때마다 신5:32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하신 말씀을 늘 기억하며 새겨 본다. 나는 어느 쪽이 지나친가.
백 목사님은 따르는 교인을 위해 정말 헌신했다. 이 정도의 인물은 아마 없을 듯하다. 사랑의 깊이가 아니라 범위를 말한다.
결혼, 출산, 육아, 교육, 진학과 진로, 취업, 사업, 불신 집안이나 이웃과 발생하는 문제.. 거의 모든 분야를 세심하게 살폈다.
그 과정에 정작 자신의 가족은 밀려 났고 그 여파는 오늘까지 총공회 전체를 흔들고 있다. 어떤 분들은 결산은 같다고 한다.
목회자가 가족보다 교회를 우선하면 우선 교회는 좋아 진다. 그러나 사택의 식구가 흔들리며 훗날 교회가 손해를 크게 본다.
세월을 길게 잡고 결산을 해 보면 목회자가 가족을 지나 치게 희생 시키는 것은 교회를 위해서라도 좋지 않다는 근거가 된다.
그런데 몰라서 그렇게 했을까? 하나님의 인도가 교회를 우선하되 그렇게까지 우선하게 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순종을 한다.
남의 사정 모르는 방송국 아나운서나 대학의 이론만 가르치는 교수들은 별별 소리를 할 수 있다. 내면의 주님 인도는 모른다.
그런데 세월을 더욱더욱 늘려 손익을 따져 보면 역시 주님을 따르는 길에는 부모 형제 자녀가 밀쳐 질 수밖에 없다. 필연이다.
교인들이 이 면을 알고 수고하는 목회자의 가족을 미리 살피면 좋다. 그러나 그렇게 할 정도면 이미 목회자가 되었을 것이다.
부공3의 지난 30년 이상의 세월에 늘 돌아 보는 것은 우리는 백 목사님처럼 가족을 밀쳐 내면서 교인을 위해 수고하느냐다.
그 분이 자신의 가족들보다 더 가깝게 더 뜨겁게 더 세밀히 살핌으로 오늘을 가졌다는 점에서 우리는 늘 마음에 빚이 있다.
우리가 맡은 우리 신앙의 사람들을 위해 모든 면으로 도움이 되어야 하는데.. 문제는 실력이 없으면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다.
정말 하려고 들려면 실력부터 길러야 한다. 그래서 내면을 우선 다지다 보면 주변에서 너무 자기 중심이 아니냐고 우려 한다.
해명을 다 하면서 나갈 수는 없다. 이런 오해가 제기 되면 얼른 자신을 돌아 보며 원래의 각오를 다시 돌아 본다. 나의 사명을.
아무리 열심히 살펴 보려고 해도 늘 놓치는 것이 있다. 주변의 지적이라는 것은 바로 한계에 갇히는 나를 깨우쳐 주는 것이다.
고맙게 듣고 다시 살펴 보고 또 한 걸음을 나가 본다. 우선 좋아 지면 안심을 한다. 안심을 하면 또 같은 일이 반복이 된다.
그렇게 하면서 서로가 자라 가는 것이다. 이 노선의 신앙 건설에 실제 현장 모습은 이렇다. 그래서 부족이 많고 소리도 있다.
그 모든 소리를 아이를 낳아 기르다 보면 집에서 아이 때문에 어지럽고 또 시끄러운 소리가 나는 것과 같다. 좋게 보면 좋다.
제목과 함께 설교의 요약을 논문식으로 큰 번호와 세부 항목으로 제목을 붙인다. 주교 공과식이다. 또박또박 읽는 듯이 한다.
50년대 백 목사님의 설교가 그랬다. 그 때 은혜를 받고 목회를 나갔기 때문에 이 분은 평생 그 때 은혜 때문에 그렇게 전한다.
60년대의 주경 설교에 붙들렸던 백태영 목사님의 설교는 평생 그런 식이었다. 좋은 뜻이다. 모두 설교를 두고 유명한 분이다.
70년대의 교리 설교의 깊은 분석에 은혜를 받고 이 노선을 각오한 분들은 목회를 나와도 평생 그런 흐름이다. 각자가 다르다.
지금 생존 세대를 기준으로 보면 6.25 전후의 배고픈 마지막 시기를 겪은 분들은 평생 밥에 대한 애착이 다르다. 자연스럽다.
70년대 산업 사회 초기를 겪으며 부동산 파동을 겪은 분들은 그 때 큰 돈을 벌었든지 잃었든지 늘 부동산에 투자를 강조한다.
이 시기에는 밥 굶는 사람은 없었다. 대신 먼저 돈 번 사람들은 여행이나 장난감 등의 취미 생활을 했다. 이 때 억울한 사람은?
70년대 주변에서 가끔 지켜 보며 부러웠던 놀이공원이나 가족 여행이나 아이들의 장난감을 기억하고 지금은 좀 넘쳐 보인다.
결국 오늘의 상황을 유심히 살펴 보면서 그 사람의 과거에 좋았거나 나빴던 일들을 짐작해 보면 유추에 어려움은 없을 듯하다.
예배당의 외형이나 종탑의 과시, 아직도 성탄절 장식에 집요한 교회, 목회자가 교인을 과도하게 내려 보는 경우도 그러하다.
이런 일을 느낄 때마다 신5:32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하신 말씀을 늘 기억하며 새겨 본다. 나는 어느 쪽이 지나친가.
백 목사님은 따르는 교인을 위해 정말 헌신했다. 이 정도의 인물은 아마 없을 듯하다. 사랑의 깊이가 아니라 범위를 말한다.
결혼, 출산, 육아, 교육, 진학과 진로, 취업, 사업, 불신 집안이나 이웃과 발생하는 문제.. 거의 모든 분야를 세심하게 살폈다.
그 과정에 정작 자신의 가족은 밀려 났고 그 여파는 오늘까지 총공회 전체를 흔들고 있다. 어떤 분들은 결산은 같다고 한다.
목회자가 가족보다 교회를 우선하면 우선 교회는 좋아 진다. 그러나 사택의 식구가 흔들리며 훗날 교회가 손해를 크게 본다.
세월을 길게 잡고 결산을 해 보면 목회자가 가족을 지나 치게 희생 시키는 것은 교회를 위해서라도 좋지 않다는 근거가 된다.
그런데 몰라서 그렇게 했을까? 하나님의 인도가 교회를 우선하되 그렇게까지 우선하게 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순종을 한다.
남의 사정 모르는 방송국 아나운서나 대학의 이론만 가르치는 교수들은 별별 소리를 할 수 있다. 내면의 주님 인도는 모른다.
그런데 세월을 더욱더욱 늘려 손익을 따져 보면 역시 주님을 따르는 길에는 부모 형제 자녀가 밀쳐 질 수밖에 없다. 필연이다.
교인들이 이 면을 알고 수고하는 목회자의 가족을 미리 살피면 좋다. 그러나 그렇게 할 정도면 이미 목회자가 되었을 것이다.
부공3의 지난 30년 이상의 세월에 늘 돌아 보는 것은 우리는 백 목사님처럼 가족을 밀쳐 내면서 교인을 위해 수고하느냐다.
그 분이 자신의 가족들보다 더 가깝게 더 뜨겁게 더 세밀히 살핌으로 오늘을 가졌다는 점에서 우리는 늘 마음에 빚이 있다.
우리가 맡은 우리 신앙의 사람들을 위해 모든 면으로 도움이 되어야 하는데.. 문제는 실력이 없으면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다.
정말 하려고 들려면 실력부터 길러야 한다. 그래서 내면을 우선 다지다 보면 주변에서 너무 자기 중심이 아니냐고 우려 한다.
해명을 다 하면서 나갈 수는 없다. 이런 오해가 제기 되면 얼른 자신을 돌아 보며 원래의 각오를 다시 돌아 본다. 나의 사명을.
아무리 열심히 살펴 보려고 해도 늘 놓치는 것이 있다. 주변의 지적이라는 것은 바로 한계에 갇히는 나를 깨우쳐 주는 것이다.
고맙게 듣고 다시 살펴 보고 또 한 걸음을 나가 본다. 우선 좋아 지면 안심을 한다. 안심을 하면 또 같은 일이 반복이 된다.
그렇게 하면서 서로가 자라 가는 것이다. 이 노선의 신앙 건설에 실제 현장 모습은 이렇다. 그래서 부족이 많고 소리도 있다.
그 모든 소리를 아이를 낳아 기르다 보면 집에서 아이 때문에 어지럽고 또 시끄러운 소리가 나는 것과 같다. 좋게 보면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