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감보다 시각, 시각보다 느낌

남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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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판에는 이 홈에 올려진 글 중에 이곳에서 따로 소개하고 싶은 글도 포함됩니다. 

촉감보다 시각, 시각보다 느낌

담당 0 0
백 목사님은 향으로 느끼라고 했다. 처음에는 도인이 우리처럼 하수들에게 괜히 하는 말이 아닐까? 실감이 되지 않았다.
우리는 보는 것이 가장 확실하다. 잡아 보면 더 확실하다. 그러나 들어 봐서는 애매하다. 냄새로 느끼는 것은 너무 멀다.


교회의 돈을 직접 들고 도망을 하면 엄청 큰 죄인으로 생각한다. 죄인은 죄인이다. 그러나 이런 죄인은 작은 죄인이다.
교회의 돈을 잘못 사용하면 그냥 실수라고 본다. 결과적으로는 현금을 쥐고 도망 가는 사람보다 교회는 더 큰 손해다.
가고 싶은 교회를 건너다 보다 기회가 오면 부임을 한다. 가면서 할 말은 많다. 보통 하나님의 인도를 앞에 놓게 된다.
그런데 마음에 드는 교회에서 견디지 못하면 이전 교회로 돌아 갈 수 있도록 사전에 조처를 해 둔다. 하나님의 뜻인가?


부임이 자유롭지 않은 타 교단과 달리 공회는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30여 년을 2년 정도로 계속 자리를 옮기게 했다.
교회도 여러 목회자를 접하면 여러 면으로 배우고 목회자는 여러 교회를 거치며 목회자 역시 여러 면으로 자라게 했다.
백 목사님의 지도력 때문에 이런 일이 가능했다. 그러나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많이 거치면서 나쁜 것도 함께 큰다.
2-3년에 한 번씩 교회를 이동하다 목사님이 돌아 가신 1989년부터는 한 번 부임한 교회는 공회가 이동 시키지 않았다.


그 때부터는 목회자가 현재 교회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스스로 떠나거나 교회가 목회자를 내보내는 경우만 이동을 했다.
공회는 목회자와 교회, 또는 다른 교회와 그 교회 목회자 사이에 소개나 중재나 상담을 하는 것이 원칙이다. 개입 금지다.
그런데 목회자에게는 교회가 자기의 전부지만 교인은 교회를 전부로 삼는 교인이 적고 대부분은 그냥 출석하는 교회다.
교회로 전부를 삼는 교인이라도 목회자들의 세계나 공회의 중재 등은 잘 모른다. 이 틈을 타고 정치 목사가 활동을 한다.


개척을 해서 한 교회를 자기 역량껏 마련해 본다. 그 개척 교회가 순복음교회처럼 세계 최대가 되면 옮길 리는 아예 없다.
그런데 개척을 한 후 목회자의 역량에 따라 30명, 50명, 100명, 수백 명으로 목회자 역량에 따라 대개는 자리를 잡게 된다.
목회자의 성장 역량은 5년이면 대개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능하다. 10년이면 거의 결정 된다. 생각 못한 변수도 늘 생긴다.
타 교단은 시골 교회에 도심이 형성 되며 30명 교회가 몇백 명이 되기도 하고, 1-2백명 교회가 몇천 명이 되는 수도 있다.


공회 교회는 처음부터 그런 전망을 생각하고 자리를 잡거나 또는 그런 기회가 온다 해도 워낙 특이해서 별로 그렇지 않다.
신도시에 제일 좋은 곳을 잡고 개척을 해도 뒤에 보면 1-2백 명이면 한계다. 타 교단처럼 별별 방법을 쓰면 훨씬 나아 진다.
일단 공회의 성격을 유지하는 교회를 기준으로 설명을 하고 있다. 처음 개척을 할 때는 모두가 만세 전 작정이라며 말한다.
그러나 5년에서 10년 사이에 교회의 규모가 어느 정도 정해 지면 자기 그릇을 안다. 이 때부터 옮겨 갈 교회를 찾게 된다.


부산공회처럼 이동의 가능성이 있으면 목회자가 아무리 소신이 있어도 참는다. 어느 날 생각 못할 기회가 오기 때문이다.
부산공회2가 제일 대표적으로 그러하다. 총공회의 큰 교회들이 가장 많이 있었고 그 교회들의 이동이 항상 잦게 있었다.
그래서 주변에 별 주목 받지 못하던 이들이 갑자기 역사성까지 가진 큰 교회로 이동을 하면 모두가 부럽고 소망을 가진다.
윗 사람에게 밉게 보이지 않으면 기회가 온다. 또 공회적으로 함께 할 수 있을 때 튀지 않으면 교회에 좋은 인상을 남긴다.


현재 거의 모든 교회가 세월 속에 계속 목회자가 이동이 되었다. 이렇게 세월이 역사가 되면 이제 공회도 타 진영처럼 된다.
좋은 면보다 사람은 나쁜 면이 더 잘 자란다. 가라지가 늘 곡식보다 앞 서는 원리다. 자기가 시작한 교회와 더 큰 다른 교회.
목회자로서 새 마음으로 새로 출발했으나 한계가 오는 상황에서 현 교회보다 나은 교회에 이동할 여지가 있으면 모두 간다.
모두야 갔겠는가? 아는 대로는 모두가 갔다. 그렇게 가고 나면 그 다음부터 이상하게 세상의 공무원처럼 사업자처럼 된다.


공회 전체를 통해 참으로 귀한 인물, 귀한 신앙, 귀한 교회들이 있었다. 규모에 상관 없이 참으로 의미가 있는 보배들이었다.
그런데 더 큰 곳에서 청하면 간다. 왜 그럴까? 더 멀리 더 넓게 보지 못했다. 정말 주님의 뜻이어서 계산하지 않고 순종했나?
그런지 아는 방법은 새로 가는 교회에서 적응하지 못하게 될 때를 대비하여 원래 있던 교회에 조처를 하는 것을 보면 안다.
있던 교회의 교인들을 위해 조처를 하는지, 자기가 돌아 올 때를 고려해서 교인들에게 손해가 많은데도 굳이 조처를 하는지.


공회의 몇 가지 상황을 봐 가며 그 동안 공회 내 여러 이동 사례를 한 번 살펴 보려고 한다.
교인들이 알고도 승인했으면 자기 결정이니 상관 없다. 그렇지 않다면 대단히 심각하다.
청년들과 함께 우리는 이 곳에 모든 것을 다 바친다고 설득해서 옮겨 놓고 자기는 떠나고..
간 곳에서 다시 뒤를 생각해서 함께 데려 나올 교인들을 챙긴 다음, 양쪽을 합하기도 한다.


작정하고 그러했는지, 하나님의 인도였는지. 일단 사례들을 살펴 보면 열매가 나왔기 때문에 나무 판별은 가능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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