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가져 온 '전도의 기회'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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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10 09:30
(자연에서 배운다)
태풍은 재앙인 줄로만 생각했다. 과학의 발달로 미련한 인간이 알고 보니 태풍은 환경의 적폐를 일거에 뚫는 응급 조처였다.
폭우와 홍수의 범람도 재앙인 줄 생각했으나 한 편으로 상류의 온갖 영양분을 공급하는 거름 공급임을 아는 사람이 있었다.
전쟁이 쓸고 가면 억울한 일은 무수한데 역사 전체를 보면 나무의 가지 치기였고 채소의 솎아 내는 생산적 제거 기능이 있다.
코로나 2년 넘는 전염병 공포에 일본의 식민지 시대에도 6.25의 전시에도 없었던 예배당 전면 봉쇄 조처라는 참화가 있었다.
코로나 전염병이 막은 것은 막혀야 할 것을 막았고 막히지 않아도 될 것은 전혀 영향이 없었다. 오히려 나아 진 것들도 있다.
방송이야 방역 봉쇄로 호황을 누렸을 것이고, 가족끼리 얼굴 볼 일이 없던 가정 가뭄에는 지난 2 년이 단비와 같았을 것이다.
국가의 방역 지시에 예배당을 걸어 잠근 교회의 출석에는 손해가 확실히 있는 것 같다. 그 외에 얻은 것도 참 많아 진 듯하다.
생계 차원의 목회와 교회는 무척 정리가 된 듯하다. 태풍의 청소적 효과다. 깊은 명상의 기간을 가진 분들도 있었을 것이다.
(의외의 기회를 맞았다)
방역의 여파로 전도의 호기를 만났다는 보고를 접했다. 공회는 매월 첫 주일 지나 교역자회가 있고 전국 소식이 모여 진다.
평소 주일학교를 인도하던 부부가 직업상 아동을 관리하지만 전도의 열심에도 불구하고 전도할 기회가 전혀 없었다고 한다.
시내 곳곳은 물론 시골까지 아이는 없고 교회마다 아이 하나를 금쪽같이 귀하게 챙기니 그 분에게는 전도할 기회가 없었다.
공회는 출석하는 타 교회 학생은 손대지 않는다. 교회를 다니거나 아니면 아예 교회를 다닐 수가 없는 학생들뿐이었다 한다.
방역 2 년에 전국의 교회는 문을 닫았고 방역이 해제 되자 몇 되지 않는 학생들은 미뤘 놓고 모두 장년반만 급하게 챙긴다.
주교생을 한둘이나 몇 명씩 애매하게 붙들고 있던 교회들이 문을 닫았거나 부모의 신앙도 느슨해 지며 아이들이 풀려 있다 .
방역 2 년을 통해 교회를 옮길 기회가 된 교인들도 많고 이 과정에 아이들은 교회 출석이 석연치 않게 되었다. 기회가 된다.
한 반사가 한 곳에서만 10여 명의 학생을 출석 시켰다. 비록 인근이지만 주소지가 다른 도시의 교회에까지. 방치 된 것이다.
공회의 1 급 반사가 아동을 관리하는 직업에 종사하면서도 10 년 동안 지켜만 봤지 데려 올 기회가 없었는데 기회를 잡았다.
그렇다면 코로나는 교회로서 손해인가, 덕인가? 교회에 따라 다를 수 있고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문제는 자기일 뿐이다.
4 월 중순에 방역이 해제 되었다. 그리고 집회가 있어 4 월의 보고를 접하지 못했다. 이제 6 월 회의에서야 이 소식을 접했다.
마음이 바빠졌고 주변에 부탁할 수 있는 교인들에게 이 소식을 전했다. 다른 교회를 다니니 권해 볼 수 없었다고만 생각햇다.
장년반 교인도 예외겠는가? 평소 옮겨 보고 싶어도 딱히 옮길 만한 교회도 없고 또 찾아 다니기는 것도 생각만큼 쉽지 않다.
방역 2 년 때문에 누구라도 별 일 없이 자기 교회를 다니지 않을 수 있고 그 기회를 통해 다른 교회를 찾을 기회가 있었다.
그렇다 해도 장년반은 그 숫자가 적다. 아이들의 경우는 쉽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숫자가 적다. 그래서 방치가 되고 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아이들에 대한 관심만은 특별했던 공회 교회들은 평소 그냥 넘겼던 주변의 아이들을 빨리 살펴 볼 때다.
적어 지면 더 적어 진다. 추워 지면 추위를 더 느끼게 된다. 이 번 5 월 집회 때 공부한 신앙의 가속 원리다. 모처럼의 기회다.
90 년대까지 우리 공회는 어떤 교인도 자기가 마음을 먹으면 몇십 명을 교회에 앉힌다고 생각했다. 대부분 실제 그러했다.
지금은 혼자 수백 명의 학생을 데려 오던 분도 1 명 학생을 앉히기 어렵다. 자기가 직접 낳아서 앉히는 것은 가장 빠르다.
80년대 초 백영희 목사님은 아이가 많고 데려 올 이런 기회가 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절규했다. 나도 모두도 느끼지 못했다.
2000년대가 시작 되며 실감을 하게 되자 그 절규는 심한 표현이 아니라 너무 순화 된 표현이었다. 지금 인구 절벽이라 한다.
방역 2 년 교회 문 닫기라는 것이 다시 올 수 있을까? 이 번에는 핑계를 대고 전면 통금을 시켰으나 다음에는 어려울 듯하다.
현재 우리는 교회가 문을 닫고 이제 막 재개 된 상태를 불과 한 달을 넘기고 있다. 주변에서 추스러기 전에 살펴 보면 좋겠다.
이 기간도 잠깐이면 또 예전처럼 이래저래 모두 묶이고 엮여서 또 다른 10 년을 기다려도 이런 기회가 오지 않을 수 있다.
며칠 동안 곳곳을 살피며 실감을 하고 있다. 코로나 방역의 2 년은 교회의 출석만을 두고 손해였다고 생각을 했다.
돌아 보니 2019년보다 코로나 기간 내내 조금씩 출석이 늘면서 지금은 10 % 정도 더 출석을 한다. 그래도 몰랐다.
주변에 다른 교회를 다니다가 흩어 진 식구들, 성경은 이들을 길을 잃은 양이라고 한다. 모든 공회들은 함께 챙겼으면 한다.
태풍은 재앙인 줄로만 생각했다. 과학의 발달로 미련한 인간이 알고 보니 태풍은 환경의 적폐를 일거에 뚫는 응급 조처였다.
폭우와 홍수의 범람도 재앙인 줄 생각했으나 한 편으로 상류의 온갖 영양분을 공급하는 거름 공급임을 아는 사람이 있었다.
전쟁이 쓸고 가면 억울한 일은 무수한데 역사 전체를 보면 나무의 가지 치기였고 채소의 솎아 내는 생산적 제거 기능이 있다.
코로나 2년 넘는 전염병 공포에 일본의 식민지 시대에도 6.25의 전시에도 없었던 예배당 전면 봉쇄 조처라는 참화가 있었다.
코로나 전염병이 막은 것은 막혀야 할 것을 막았고 막히지 않아도 될 것은 전혀 영향이 없었다. 오히려 나아 진 것들도 있다.
방송이야 방역 봉쇄로 호황을 누렸을 것이고, 가족끼리 얼굴 볼 일이 없던 가정 가뭄에는 지난 2 년이 단비와 같았을 것이다.
국가의 방역 지시에 예배당을 걸어 잠근 교회의 출석에는 손해가 확실히 있는 것 같다. 그 외에 얻은 것도 참 많아 진 듯하다.
생계 차원의 목회와 교회는 무척 정리가 된 듯하다. 태풍의 청소적 효과다. 깊은 명상의 기간을 가진 분들도 있었을 것이다.
(의외의 기회를 맞았다)
방역의 여파로 전도의 호기를 만났다는 보고를 접했다. 공회는 매월 첫 주일 지나 교역자회가 있고 전국 소식이 모여 진다.
평소 주일학교를 인도하던 부부가 직업상 아동을 관리하지만 전도의 열심에도 불구하고 전도할 기회가 전혀 없었다고 한다.
시내 곳곳은 물론 시골까지 아이는 없고 교회마다 아이 하나를 금쪽같이 귀하게 챙기니 그 분에게는 전도할 기회가 없었다.
공회는 출석하는 타 교회 학생은 손대지 않는다. 교회를 다니거나 아니면 아예 교회를 다닐 수가 없는 학생들뿐이었다 한다.
방역 2 년에 전국의 교회는 문을 닫았고 방역이 해제 되자 몇 되지 않는 학생들은 미뤘 놓고 모두 장년반만 급하게 챙긴다.
주교생을 한둘이나 몇 명씩 애매하게 붙들고 있던 교회들이 문을 닫았거나 부모의 신앙도 느슨해 지며 아이들이 풀려 있다 .
방역 2 년을 통해 교회를 옮길 기회가 된 교인들도 많고 이 과정에 아이들은 교회 출석이 석연치 않게 되었다. 기회가 된다.
한 반사가 한 곳에서만 10여 명의 학생을 출석 시켰다. 비록 인근이지만 주소지가 다른 도시의 교회에까지. 방치 된 것이다.
공회의 1 급 반사가 아동을 관리하는 직업에 종사하면서도 10 년 동안 지켜만 봤지 데려 올 기회가 없었는데 기회를 잡았다.
그렇다면 코로나는 교회로서 손해인가, 덕인가? 교회에 따라 다를 수 있고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문제는 자기일 뿐이다.
4 월 중순에 방역이 해제 되었다. 그리고 집회가 있어 4 월의 보고를 접하지 못했다. 이제 6 월 회의에서야 이 소식을 접했다.
마음이 바빠졌고 주변에 부탁할 수 있는 교인들에게 이 소식을 전했다. 다른 교회를 다니니 권해 볼 수 없었다고만 생각햇다.
장년반 교인도 예외겠는가? 평소 옮겨 보고 싶어도 딱히 옮길 만한 교회도 없고 또 찾아 다니기는 것도 생각만큼 쉽지 않다.
방역 2 년 때문에 누구라도 별 일 없이 자기 교회를 다니지 않을 수 있고 그 기회를 통해 다른 교회를 찾을 기회가 있었다.
그렇다 해도 장년반은 그 숫자가 적다. 아이들의 경우는 쉽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숫자가 적다. 그래서 방치가 되고 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아이들에 대한 관심만은 특별했던 공회 교회들은 평소 그냥 넘겼던 주변의 아이들을 빨리 살펴 볼 때다.
적어 지면 더 적어 진다. 추워 지면 추위를 더 느끼게 된다. 이 번 5 월 집회 때 공부한 신앙의 가속 원리다. 모처럼의 기회다.
90 년대까지 우리 공회는 어떤 교인도 자기가 마음을 먹으면 몇십 명을 교회에 앉힌다고 생각했다. 대부분 실제 그러했다.
지금은 혼자 수백 명의 학생을 데려 오던 분도 1 명 학생을 앉히기 어렵다. 자기가 직접 낳아서 앉히는 것은 가장 빠르다.
80년대 초 백영희 목사님은 아이가 많고 데려 올 이런 기회가 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절규했다. 나도 모두도 느끼지 못했다.
2000년대가 시작 되며 실감을 하게 되자 그 절규는 심한 표현이 아니라 너무 순화 된 표현이었다. 지금 인구 절벽이라 한다.
방역 2 년 교회 문 닫기라는 것이 다시 올 수 있을까? 이 번에는 핑계를 대고 전면 통금을 시켰으나 다음에는 어려울 듯하다.
현재 우리는 교회가 문을 닫고 이제 막 재개 된 상태를 불과 한 달을 넘기고 있다. 주변에서 추스러기 전에 살펴 보면 좋겠다.
이 기간도 잠깐이면 또 예전처럼 이래저래 모두 묶이고 엮여서 또 다른 10 년을 기다려도 이런 기회가 오지 않을 수 있다.
며칠 동안 곳곳을 살피며 실감을 하고 있다. 코로나 방역의 2 년은 교회의 출석만을 두고 손해였다고 생각을 했다.
돌아 보니 2019년보다 코로나 기간 내내 조금씩 출석이 늘면서 지금은 10 % 정도 더 출석을 한다. 그래도 몰랐다.
주변에 다른 교회를 다니다가 흩어 진 식구들, 성경은 이들을 길을 잃은 양이라고 한다. 모든 공회들은 함께 챙겼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