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경과 다독 - 가족에 대한 책임을 중심으로

남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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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판에는 이 홈에 올려진 글 중에 이곳에서 따로 소개하고 싶은 글도 포함됩니다. 

연경과 다독 - 가족에 대한 책임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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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오용하는 사례)
가족에 대한 책임을 벗고 싶으면 흔히 누가복음 14:26절을 사용한다. 눅14:26이 민망하면 마19:29을 사용한다. 더 편리하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이 한 구절 안에서도 '내게 오는 자'라는 전제 조건은 뺀다. 주님에게로 갈 때 문제가 되는 가족만 해당이 되는 것은 명확하다.
또 이 성구로 가족에 대한 책임을 벗을 때는 이 성구의 뒤에 붙여 놓은 '자기 목숨'도 함께 버려야 하는데 이 부분도 빼 버린다.

성경을 엄청 나게 강조하는 분들은 자주 접한다. 그런데 앞뒤를 빼고 재조립을 하고 건너 뛰면서 활용을 한다. 실은 악용이다.
그대로 읽어 보면 그 성구 안에서 또는 그 성구 주변에서 모두 해결이 된다. 그런 줄 알면서도 성경을 악용하는 것은 고범죄다.
이런 위험을 벗어 나려면 성경을 그대로 믿고 따르자는 것을 강조할 때 성경 전체를 차분히 읽어 보고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성경 모두를 살펴 한 성구를 조명해 보면 혼선은 모두 해결이 된다. 그런데 그렇게 하려면 시간이 걸린다. 늦어도 이 것이 옳다.



(성구를 조금 넓혀 본다.)
* 부모에 대한 사랑과 미움
눅14:26 '자기 부모를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라 하신 이 말씀의 반대로
막7:10 '네 부모를 공경하라'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했다. 신구약에 있다.
딤전5:8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고 했다.

십계명 중에 5계명이 네 부모를 공경이다. 그렇다면 눅14:26은 무슨 뜻인지 살펴 볼 성구이지 가족에 대한 면책이 아니다.
26절의 앞뒤를 잠깐 살펴 보면 주님을 따라 가며 배우는 제자가 되려 한다면 가족을 돌 보지 못할 수 있다는 말씀일 것이다.

* 미움과 사랑의 단어 자체
네 부모든 가족이든 다 빼 놓고 일단 '미움'과 '사랑'에 대한 말씀만 찾아 보고 비교해 본다.
눅6:35 '원수를 사랑'하라 했다. 원수까지 사랑해야 한다면 가족에 대한 사랑은 기본이다.
요일3:15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영생이 그 속에' 없다고 했다. 지옥 간다는 말이다.

한 쪽에서는 원수까지 사랑해야 하고 미워하면 지옥 간다고 기록하면서 눅14에서는 가족을 미워하라 했다면 연구 과제다.
한 성구만 국어 사전으로 해석하고 써 먹을 것이 아니라 성경 전체가 무슨 뜻으로 기록했는지 살펴야 한다. 성경신학이다.

* 자기 목숨에 대한 성구들
마16:26에서 천하를 얻고도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그 어떤 것도 목숨과 바꾸지 말라고 했다.
눅14:26에서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이 말씀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문제에만 해당이 된다.


(영어의 구문론을 본다.)
모든 영어 문장은 '주어 + 동사'가 있고 동사에 따라 뒤에 '보충'을 하든지 아니면 주어의 '목적'이 나온다.
영어 문장이 아름다워 지거나 복잡해 지거나 다양하게 분화 되는 것은 '동사' 때문이다. 그러나 주인은 '주어'다.
주인이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내가 성경을 이용하면 내가 성경 위에 있다. 성경을 따라 가야 믿음이다.

그래서 공회는 성경 1백 독을 목사 과정의 필수로 제시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성경 1백 독을 목표치인 줄로 오해를 한다.
공회는 주일학생도 매년 5 독이 나오고 일반 교인도 매년 10독이 예사로 나온다. 몇백 독을 읽은 교인은 주변에 흔하다.
하나에 파묻히기 전에 우선 창세기로부터 계시록까지 일단 읽는다. 물론 성경의 깊이는 예배의 설교를 통해 주로 배운다.
한 말씀에 깊이와 함께 성경 66 권 전체를 늘 접하는 것이 옳다는 것은 모두가 알 듯하다. 실제 그렇게 하는 경우는 드물다.

신학자는 한 성구 한 주제를 깊게 파고 든다. 신학자는 거의 전부가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고르게 읽는 경우는 없다.
타 교단도 평신도가 성경을 고르게 읽어 다독하는 경우는 있다. 그런데 다독일 뿐이지 깊게 읽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설교가 깊이 있게 들어 가지 않기 때문이다. 깊이 읽으며 전체를 꾸준하게 읽는 것. 참 중요하다. 오늘은 더욱 그러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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