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과 출산에 대한 탄원, 그리고 양해 - 공회를 떠나는 교인의 지적
담당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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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31 09:59
우리 사회 어디에 가도 '지성'과 '인격'과 '상식'과 그리고 '집안의 내력'까지 두루 잘 갖춘 분의 이야기입니다.
공회 교회를 14년 출석하며 공회 교회에 순화가 되려고 최선을 다한 분이고 평소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하는 분이기 때문에 다름 내용은 간단히 소개합니다. 이 분은 교리라고 했으나 교리보다는 공회의 주력이라고 하는 것이 좋은데 '교리'처럼 보였다면 공회로서는 오히려 내심에 맞다는 점에서 고맙게 읽고, 그리고 안내를 했습니다. 오늘, 2022년에도 공회는 그 입장 그 주장을 고수해야 할 것인지? 심각한 분의 깊은 지적에 대한 공회의 설명도 덧붙입니다. 신앙의 기본 자세를 두고 참고하셨으면..
<교인의 글>
진작부터 목사님께 연락드린다는 게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 선뜻 글을 못 쓰고 이제야 글을 씁니다.
먼저 죄송하단 말씀 드립니다.
처음 교회에 출석했을 때 지금까지 제가 다녔던 교회들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에 굉장히 당황스러웠는데 그동안 제 나름으로 교회의 예배방식이나 분위기에 적응하고자 많이 노력했습니다.
마음의 갈등도 깊었지만 그렇다고 교회를 떠나겠다는 생각보다는 어떻게든 교회의 분위기에 내가 적응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독여 왔다는 게 맞는 표현일 것 같네요.
그럴수록 제가 가장 이해되지 않았던 게 바로 어린 나이의 아이들을 미처 사회생활도 해볼 틈이 없이 결혼이라는 틀에 갇히도록 하는 공회의 교리였습니다.
현 시대상에 맞지 않게 어린나이의 아이들에게 早婚을 시키는 공회의 교리에 저는 엄청난 괴리를 느꼈습니다.
20대 초반이면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한창 어여쁠 나이인데 미처 자신의 미래를 꿈꿀 틈이나 사회를 경험할 여유도 주지 않고 결혼이라는 틀에 갇히도록 하는가 하면 엄마의 손길이 가장 많이 필요한 어린아이들에게 미처 엄마의 사랑을 느껴볼 틈도 없이 동생이 태어나는 악순환을 반복하는 것도 저로서는 이해하기 참 힘들었습니다.
그런 문제들로 인해 공회교리에 대한 거부감을 갖게 됐고 제가 공회의 교리를 바꿀 수는 없으니 차라리 내가 교회를 떠나는 게 맞다는 결론을 내리기에 이르렀습니다.
또한 저와의 관계가 별로 좋지 않은 사람들을 교회에서 자꾸 마주쳐야 한다는 것도 저한테는 너무나 괴로운 일이었고 거부감 또한 컸습니다.
14년을 교회에 출석했지만 성도의 교제가 거의 없는 분위기에 특별히 가까이 다가가거나 마음을 나눌 만한 교우도 마땅히 없었고 유일하게 대화가 가능했던 선생님한테는 제가 고민하고 있는 문제를 몇 번 얘기한 적이 있었습니다.
... 그렇다고 교회를 아주 외면하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네요.
제 가슴 한 구석에 자리한 교회에 대한 그리움이나 감사의 마음을 무 자르듯 뚝~ 끊어내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목사님께서 용납해 주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여건이 허락하는 대로 가끔은 교회 예배에 참석하고 싶고 최소한 1년에 한번 정도 집회에도 참석하도록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선생님한테도 그런 제 생각을 전했습니다....
<목회자의 글>
뭐 하나 괜찮아 보이는 것이 없는 곳인데 오랜 시간을 걸쳐 지켜 봐 주시고 함께 해 주시고 항상 최선을 다해 도와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주님 앞에 서는 날까지 마트든 주변 어디에서든 늘 서로 볼 수 있는 거리니, 출석하는 교회에 상관 없이 만날 때는 늘 반갑게 뵙겠습니다.
이 곳에서 태어 나서 이 곳을 출석하는 분들이 아니면, 여러 입장 때문에 잠깐 지나 갈 수는 있어도 오래 다니는 것은 사실 불가능합니다. 제가 이 곳에 처음 부임하던 시절, 유독 나이 많은 분들이 많았고, 저는 책이나 읽고 글이나 쓰며 시간을 보낼 줄 알았습니다. 이 곳은 그런 분들의 교회였고, 교회의 역사도 1950년의 신앙에 고정하자는 선약이 있어 일반 교인이 계시기 어렵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시내 곳곳에 이 시대를 감당하며 어려운 때 복음으로 주변을 인도하는 교회들이 있고 특히 출석하려는 교회는 그 중심에 있습니다.
한 번씩 들러 주시면 항상 반갑겠습니다. 집회나 다른 기회에 함께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도 질문이 있으면, 이전처럼 부탁하겠습니다. 인생의 3분의 2를 지나는 때이니, 이 곳에서 겪은 여러 불편은 넓은 마음으로 품어 주셨으면. 그릇들이 작다 보니, 늘 이 곳은 그렇습니다. 적어 주신 여러 말씀들은 한 번씩 다시 읽어 가며 저희가 하루 아침에 고치지는 못해도 늘 더 나아 지도록 과제로 삼고 노력해 보겠습니다.
그 동안 교단과 교회의 분위기에서 모든 면의 불편을 감수해 주신 점을 다시 깊게 감사하고
교인들이나 심지어 저까지 이후에 만날 때 실망스런 모습이 보여도 자기 표현을 잘 하지 못해서 그렇다고 넓게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한 교회 정도는 옛 날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 하기 때문에 저는 이 곳을 거쳐 간 수 많은 좋은 분들께 늘 머리 숙여 죄송할 뿐입니다.
공회 교회를 14년 출석하며 공회 교회에 순화가 되려고 최선을 다한 분이고 평소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하는 분이기 때문에 다름 내용은 간단히 소개합니다. 이 분은 교리라고 했으나 교리보다는 공회의 주력이라고 하는 것이 좋은데 '교리'처럼 보였다면 공회로서는 오히려 내심에 맞다는 점에서 고맙게 읽고, 그리고 안내를 했습니다. 오늘, 2022년에도 공회는 그 입장 그 주장을 고수해야 할 것인지? 심각한 분의 깊은 지적에 대한 공회의 설명도 덧붙입니다. 신앙의 기본 자세를 두고 참고하셨으면..
<교인의 글>
진작부터 목사님께 연락드린다는 게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 선뜻 글을 못 쓰고 이제야 글을 씁니다.
먼저 죄송하단 말씀 드립니다.
처음 교회에 출석했을 때 지금까지 제가 다녔던 교회들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에 굉장히 당황스러웠는데 그동안 제 나름으로 교회의 예배방식이나 분위기에 적응하고자 많이 노력했습니다.
마음의 갈등도 깊었지만 그렇다고 교회를 떠나겠다는 생각보다는 어떻게든 교회의 분위기에 내가 적응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독여 왔다는 게 맞는 표현일 것 같네요.
그럴수록 제가 가장 이해되지 않았던 게 바로 어린 나이의 아이들을 미처 사회생활도 해볼 틈이 없이 결혼이라는 틀에 갇히도록 하는 공회의 교리였습니다.
현 시대상에 맞지 않게 어린나이의 아이들에게 早婚을 시키는 공회의 교리에 저는 엄청난 괴리를 느꼈습니다.
20대 초반이면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한창 어여쁠 나이인데 미처 자신의 미래를 꿈꿀 틈이나 사회를 경험할 여유도 주지 않고 결혼이라는 틀에 갇히도록 하는가 하면 엄마의 손길이 가장 많이 필요한 어린아이들에게 미처 엄마의 사랑을 느껴볼 틈도 없이 동생이 태어나는 악순환을 반복하는 것도 저로서는 이해하기 참 힘들었습니다.
그런 문제들로 인해 공회교리에 대한 거부감을 갖게 됐고 제가 공회의 교리를 바꿀 수는 없으니 차라리 내가 교회를 떠나는 게 맞다는 결론을 내리기에 이르렀습니다.
또한 저와의 관계가 별로 좋지 않은 사람들을 교회에서 자꾸 마주쳐야 한다는 것도 저한테는 너무나 괴로운 일이었고 거부감 또한 컸습니다.
14년을 교회에 출석했지만 성도의 교제가 거의 없는 분위기에 특별히 가까이 다가가거나 마음을 나눌 만한 교우도 마땅히 없었고 유일하게 대화가 가능했던 선생님한테는 제가 고민하고 있는 문제를 몇 번 얘기한 적이 있었습니다.
... 그렇다고 교회를 아주 외면하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네요.
제 가슴 한 구석에 자리한 교회에 대한 그리움이나 감사의 마음을 무 자르듯 뚝~ 끊어내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목사님께서 용납해 주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여건이 허락하는 대로 가끔은 교회 예배에 참석하고 싶고 최소한 1년에 한번 정도 집회에도 참석하도록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선생님한테도 그런 제 생각을 전했습니다....
<목회자의 글>
뭐 하나 괜찮아 보이는 것이 없는 곳인데 오랜 시간을 걸쳐 지켜 봐 주시고 함께 해 주시고 항상 최선을 다해 도와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주님 앞에 서는 날까지 마트든 주변 어디에서든 늘 서로 볼 수 있는 거리니, 출석하는 교회에 상관 없이 만날 때는 늘 반갑게 뵙겠습니다.
이 곳에서 태어 나서 이 곳을 출석하는 분들이 아니면, 여러 입장 때문에 잠깐 지나 갈 수는 있어도 오래 다니는 것은 사실 불가능합니다. 제가 이 곳에 처음 부임하던 시절, 유독 나이 많은 분들이 많았고, 저는 책이나 읽고 글이나 쓰며 시간을 보낼 줄 알았습니다. 이 곳은 그런 분들의 교회였고, 교회의 역사도 1950년의 신앙에 고정하자는 선약이 있어 일반 교인이 계시기 어렵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시내 곳곳에 이 시대를 감당하며 어려운 때 복음으로 주변을 인도하는 교회들이 있고 특히 출석하려는 교회는 그 중심에 있습니다.
한 번씩 들러 주시면 항상 반갑겠습니다. 집회나 다른 기회에 함께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도 질문이 있으면, 이전처럼 부탁하겠습니다. 인생의 3분의 2를 지나는 때이니, 이 곳에서 겪은 여러 불편은 넓은 마음으로 품어 주셨으면. 그릇들이 작다 보니, 늘 이 곳은 그렇습니다. 적어 주신 여러 말씀들은 한 번씩 다시 읽어 가며 저희가 하루 아침에 고치지는 못해도 늘 더 나아 지도록 과제로 삼고 노력해 보겠습니다.
그 동안 교단과 교회의 분위기에서 모든 면의 불편을 감수해 주신 점을 다시 깊게 감사하고
교인들이나 심지어 저까지 이후에 만날 때 실망스런 모습이 보여도 자기 표현을 잘 하지 못해서 그렇다고 넓게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한 교회 정도는 옛 날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 하기 때문에 저는 이 곳을 거쳐 간 수 많은 좋은 분들께 늘 머리 숙여 죄송할 뿐입니다.
